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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수첩 - 나를 사로잡은 문장들 #2 :: 2010/06/25 11:12

#2. 고양이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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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뭘 보고 있는 거야? 눈은 충혈돼 가지고…….”
 고 군이 쑥스러운 듯 교정지 아래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오드리 헵번? 고양이도 이런 걸 좋아한달 말야?”
 “예전 주인님이 밤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보셨거든요…….”
 “창가에서 기타 치며 <문 리버> 부르던 헵번은 정말 근사했지? 근데 전 주인은 어떤 사람?”
 “아주 활발한 남자 분이었어요.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한번 책 얘기를 시작하시면 끝날 줄을 몰랐죠.”
 “흠, 고 군은 나 말고도 주인이 여럿 있었지, 난 고양이라곤 고 군이 처음인데 말야. 왠지 기분이…….”
 “하지만 지금 저의 주인님은 카스테라 님이니까요. 그렇게 서운해하실 건…….”
 그렇게 말하는 고 군의 입 주위가 살짝 씰룩거렸다. 왠지 좋아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말야, 오늘은 고 군이 좋아하는 책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어때?”
 “하지만 제가 여기 온 건,”
 “그러니까 내가 회복되기 위해선 고 군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구.”
 나는 음흉하게 씨익 웃었다.
 “아, 그러시다면 잠시만요.”
 고 군이 테이블 옆의 보자기에서 수첩을 하나 꺼냈다.
 “제가 좋아하는 문장을 적어놓은 수첩입지요.”
 고 군의 얼굴에 자랑스러운 표정이 퍼져나갔다.
 “흠흠. 제가 읽어드리는 구절이 어느 책에서 나온 건지 알아맞히시면 계속 읽어드릴게요. 틀릴 경우 주인님 차례가 되는 거구요.”
 “그래, 읽어봐.”
 “신기해요. 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 곳을 제게 처음 알려준 사람이 생각나요. 그것도 번번이요. 처음 가본 길, 처음 읽은 책도 마찬가지고요. 세상에 그런 게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떠올라요. '이름을 알려준 사람의 이름'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건 사물에 영원히 달라붙어버리는 것 같아요.”
 “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앗, 역시 주인님. 이번엔 좀 어려운 걸로.”
 “훗, 해보시지.”
 “이 거리는 아샤 라시스 거리라 불린다. 엔지니어인 그녀가 저자 속에 그 길을 놓았다.”
 “…….”
 “모르시겠어요?”
 “응…….”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에 나오는 구절이랍니다. 벤야민은 친구의 연인인 아샤를 흠모해서 이런 헌사를 바쳤어요. 정말 낭만적이지요?”

 ‘이런 유식한 고양이 같으니라고.’
 “좋아, 그럼 내 차례군. 난 고 군처럼 수첩이 없어서 정확히는 기억을 못 하는데, 정말 가슴이 저릿했던 한 문장이 있어. 두 명의 친구가 오랜만에 만났어. 기억이 안 나니 A와 B라고 할게. 아마 A의 직장으로 고향 친구인 B가 찾아와 오랜만에 재회한 상황이었던 것 같아. 둘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고, A는 바빠 죽겠는데 이야기를 마친 B가 화장실에서 이를 닦는다고 하더니 아주 오래오래 칫솔질을 하는 거야. 잇몸 다 닳겠다, 짜증이 솟구친 A가 한마디 하자, B가 이렇게 대답해. '내가 이를 다 닦으면 너 갈 거잖아.' 그때 그 한 구절이 정말 어찌나 가슴에 콕 박히던지. 나도 그런 적이 있었거든. 대학 때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난 좀 외톨이였던 반면 그 친구는 인기도 많고 온갖 동아리 활동을 하며 대학생활을 즐기던 중이었지. 그 애가 한번 시간을 내서 만나면 나는 헤어질 시간을 늦추고 싶어서 괜히 무슨 할 말이 있는 양 우물쭈물하곤 했어. 자존심 때문에 나랑 더 있어달라곤 차마 말 못 하고 그냥 오래오래 시간을 끄는 거지. 느릿느릿 안녕을 고하려고.”
 “네, 저도 읽은 기억이 나요. 단편소설이었는데 신경숙 작가인가.”
 “딩동댕. 맞힌 걸로 할게. 사실 나도 소설 제목은 기억이 안 나거든. 고 군은 다독가구나.”
 “호홋, 뭘요. 그럼 주인님, 하나 더 부탁드려요.”
 “음. 그러고 보니 나도 최근에 다이어리에 적어놓은 구절이 있어. 잠시만…… 여기 있다.  ‘매그니토가 사악한 존재가 된 것은 오랫동안 슬픔과 증오에 휩싸여 살았던 결과입니다. (...) 그의 증오와 슬픔은 처음에는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들에 영향을 미치는 '우리의 외부' 대상들이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중요한 건 결국 그 감정들이 우리의 '내면에 일으킨 결과입니다.’”
 “전혀 모르겠는데요. 철학책인 것 같은데…….”
 “응. 내가 최근에 교정보다가 적어놓은 거야. 내게 더할 수 없는 위안을 준 동시에 오랜 친구 하나를 잃게 한 구절이지…….”

 “이런 곳에 들어오려던 게 아니었어.”
 돌잔치로 주위가 떠들썩한 어느 레스토랑에서 그렇게 말하며 난색을 표하던 그 애의 얼굴이 기억난다. 난 뭐 별로 상관없어. 조용한 편보다는 그 편이 덜 어색하잖아.
 어쨌든 나는 타이밍을 맞추는 데는 쥐약이었다. 어쩌면 좋은 타이밍을 망치는 데 소질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상대와 나와의 간극을 메우기보다는, 직구를 던지고 게임을 끝내버리는 일방적인 사람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조차 이런 내 모습에 종종 놀랄 정도로.
 그러면서도 한 가지 믿고 있는 표지 같은 게 있었다. 그즈음 나를 사로잡고 있는 어떤 것(어떤 문장, 어떤 음악, 어떤 장소……)에 반응하는 상대의 모습을 보며 조심스레 나와 맞는 사람인지 점쳐보는 습관. 그날 그 자리에서도 어김없이 내가 편집하던 철학책의 한 단락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건 좋지 않아. 마음속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지만 늦었다.
 “나 최근에 참 못나게 살았다. 그러니까 상황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내 앞에 혹은 주위에  기쁜 일이 생겨도 기뻐하지 못하고, 조금만 기대하지 않은 일이 생겨도 확 방어막을 쳐버려. 최근에 이런 글을 읽었어. 어떤 사람의 증오와 슬픔이 처음엔 아무리 정당했다 하더라도……중요한 건 결국 그 감정들이 우리 ‘내면에 일으킨’ 결과라는 것.’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마음고생을 하던 때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는 내게 닥친 일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발버둥을 치다가, 마지막 한 방이 왔을 때는 그러기도 싫을 정도가 되었다. 팔짱을 끼고 매섭게 세상을 노려보다가, 나동그라져 이내 손을 놓아버렸다. 내가 믿는 신에게 손 내밀 힘조차 없었다, 아니, 그러기 싫었다. 나를 사로잡은 감정은 점차 대상을 알 수 없는 분노로 변해서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날을 세웠다. 삼십 넘어 이 무슨 사춘기인가.
 그런데 순전히 일로 만난 철학책 속의 한 구절이 가슴을 세차게 때렸다. 나의 슬픔이 아무리 정당한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 중요한 건 슬픔이 내 안에 들어와 일으킨 결과다. 그 문장이 바닥까지 내려갔던 나를 구원해주었던 것 같다.
 처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야. 지금 그 슬픔이 너를 어떤 상태로 끌고 가고 있는지 눈을 똑바로 뜨고 봐야 해. 그런 일이 일어난 이유에 집착하는 건 멍청한 짓이야. 슬픔에게 먹히기 전에 빠져나와! 죽을 것 같아도……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교정을 보는데 눈앞이 흐려졌다.

 떠들썩한 소음을 뒤로하고, 오랜 친구가 더는 친구가 아니었던 그날, 나는 작은 목소리로 나를 이해해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전달되지 않았다.
 내가 전하려던 건 그게 아니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그 아이의 피로한 눈에서 나의 말이 그저 튕겨나가고 있는 것을 보며 나는 입을 다물었다.
 최악의 타이밍. 책에서 받은 위로는 책에서 끝내는 편이 좋다. 이해받지 못한, 공유되지 못한 소중한 감정은 이내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고 만다.
 우리는 서로의 힘든 상황을 알았다. 십오 년 동안 우리가 겪은 일들, 보이기 싫은 구석들을 보이고 이해하는 데 길들여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서로의 스무 살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착하고 순수하고 상대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아이, 장난기 많고 순정만화를 좋아하고 자신감이 충만한 아이. 하지만 이제 더는 그렇지 않다는 걸 서로 알았다. 머리가 굵어졌고, 세상을 보는 시선도, 살아가는 방식도 달라졌다. 
 그 레스토랑 앞을 지날 때마다 되묻곤 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도 순전한 눈빛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저 들어주었다면 달라졌을까?

 “주인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어, 뭐라고?”
 “무슨 책인지 모르겠어요. 제목을 알려주세요. 궁금해서…….”
 “아, 그래. '스튜디오 필로, 철학이 젊음에 답하다'라는 책이야. 난 철학책이 머리가 아닌 내 삶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아, 네. 적어두겠습니다.”
 고 군은 고양이 수첩에 연필로 꾹꾹 눌러 책 제목을 적었다.
 고 군,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카스테라님의 <외로워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 나를 사로잡은 문장들>
교정보는 고양이를 만나다
고양이 수첩
감정을 정리하는 어떤 방법에 관하여

2010/06/25 11:12 2010/06/2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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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도비만 | 2010/06/25 16:3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제가 일방통행로에서 꽂혔던 말은,

    이별을 고하는 사람이 [이별을 전해 듣는 사람보다]
    얼마나 더 쉽게 사랑받는가!
    멀어져 가는 자에 대해 [감정의] 불꽃이 보다 순수하게 타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벤야민에게서 이런 말만을 기억하는 건가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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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옮겨다 준 당신의 목소리 - 「더 리더」속의 책들 :: 2010/06/23 17:50

본 지 꽤나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책이 많이 나오는 영화 중 하나였지요.

케이트 윈슬렛의 열연이 빛났던, 「더 리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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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이 영화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남주인공 '마이클'이 여주인공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는 대목입니다.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부제처럼,

언제나 사랑을 나누기 전에 책을 읽어줬던 남자,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었던 여자.

그의 목소리에서 그녀는 책 속에 담긴 세상이 펼쳐지는 걸 느꼈을 거예요.


책을 읽어주고 그것을 듣는, 사소하지만 그만큼 애정이 넘치는 그들의 모습은

그 안에 숨기고 싶었던 한나의 비밀이 2차 세계대전이란 비극과 어우러져

그저 젊은 날의 추억으로 여기기엔 너무나 가슴 아련한 기억으로 두 연인에게 남게 됩니다.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래가 유행했던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듯이,

마이클 역시 책을 보며 오래 전 그들이 나누었던 추억을 떠올리는데요.

그럼 여기서 그가 읽어주었고, 그녀가 들었던 책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오디세이 (Odyssey), 호메로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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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오딧세우스, 오뒷세이아... 등으로 불리는 이 책은

그리스 신화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 이후 귀환하는 과정을 엮은 서사시입니다.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영웅들 가운데 가장 지략이 뛰어난 영웅으로 손꼽히는 오디세우스는

그 유명한 '트로이 목마'의 계책을 생각해낸 사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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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목마 - 이래서 어른들이 아무거나 함부로 주워오지 말라고 하시는 겁니다>


원래 그는 자신이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면 20년의 세월 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참전을 피하려 미친 척을 하지요.

그의 연기에 모두 속아넘어갈 뻔 하지만, 아들 텔레마쿠스를 그가 몰던 쟁기 앞에 갖다 놓아 탄로가 나게 됩니다.

아무리 미친척을 한다 해도 아들을 쟁기로 갈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요.


일단 참전을 마음먹고 그리스 군에 합류하게 된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최고의 용장 아킬레우스를 합류시키는데 결정적 공을 세웁니다.

아킬레우스는 그의 어머니 테티스 여신의 만류로 궁전에 숨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는 미남자였던 터라 궁전 안 수많은 여자들 사이에 숨어 있으면 구별을 할 수 없었죠.

여기서 오디세우스가 꾀를 냅니다. 수많은 보석과 장신구들을 여자들 사이에 뿌린 거죠.

그리고 그 가운데 칼 한자루를 끼워 넣어 뿌렸는데,

다른 여자들이 정신없이 보석을 줍느라 난리를 치는 가운데 아킬레우스 혼자 칼을 집어듭니다.

그렇게 정체가 탄로난 아킬레우스는 참전을 결심하게 되죠.


트로이 목마의 계책으로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는 고향 이타케 섬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트로이 함락 이후 약탈 과정에서 신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저주를 받아 그후 10년간 타향을 떠돌며 고난을 겪게 됩니다.

이 과정이 바로 <오디세이>에 담겨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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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를 유혹하는 세이렌>

노래를 불러 선원들을 암초로 유인해 배가 난파하도록 만드는 마녀 세이렌.

오디세우스는 배를 모는 부하들에게 납으로 된 귀마개로 귀를 막게 해 노래를 듣지 못하게 하지요.

그러면서도 자신은 세이렌의 노래가 어떤지 듣고 싶어 자신을 돛에 묶게하고 그녀들의 노래를 듣습니다.

넋이 나간 그의 표정이 재미있는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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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의 귀환>

10년의 전쟁과 10년의 방황 끝에 오디세우스가 귀환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입니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아내 페넬로페를 유혹하고 있는 남자들을 보게 됩니다.

20년 동안 남자들의 끝없는 유혹을 받은 페넬로페였지만,

그녀는 병약한 시아버지 라에르테스를 모시고 구혼자들을 물리치며 끝까지 남편을 기다렸지요.

오디세우스는 그녀를 유혹한 남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왕위에 오릅니다.

그렇게 <오디세이>의 이야기는 끝이 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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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마이클이 제일 먼저 그녀에게 녹음해 준 책이기도 합니다>


2.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Dama su sabachikoi), 안톤 체홉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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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에서 오디세이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책이지요.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입니다.

현대 단편 소설의 기틀을 마련한 작가로 꼽히는 체홉.

그의 작품은 짧은 분량 안에 삶의 단편을 생생하게 담아내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걸로 유명해요.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그런 그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드미트리는 휴양지에 놀러왔다가 그곳에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안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서로 배우자가 있는 그들은 비밀스러운 만남을 지속하면서 죄책감도 느끼지만,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걸 깨달으면서, 그동안의 삶에 대한 반성과 함께 가정의 유지와 사랑의 실현 가운데에서 갈등하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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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그의 단편은 재미있는 것이 많아요.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외에도 저는 <애수>라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아들을 잃은 마부가 그 슬픔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마차를 몰며 밤거리를 헤매다가,

결국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자신의 말과 대화를 나눈다는 이야기예요.


" 건초를 먹니?"

"그래, 그래, 너는 아니... 꼬지마 이오니치는 이젠 없어... 이 세상을 떠나버렸지... 허무하게 떠나버렸다고...

만일 말이다. 너에게 새끼가, 네가 낳은 새끼가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말이다. 그 새끼가 죽었다면 말이다...

얼마나 괴롭겠니..?"  늙은 말이 건초를 먹으며, 이야기를 들으며, 주인의 손에 입김을 내 뿜는다.....

이오나가 아주 열심히 말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애수」 중)


체홉의 소설은 그가 세상을 떠난지 100년이 넘게 지난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공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가 애정어린 시선으로 관찰하고, 깊게 생각하고, 따뜻하게 써내려간 글이 결국 인간 본연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3. 에밀리아 갈로티 (Emilia Galotti), 레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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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비중있게 등장한 위의 두 작품에 비해서 살짝 비추고 지나갔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18세기에 쓰여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현대까지 꾸준히 상연되고 있고,

독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분석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5막짜리 연극이고요. 독일의 전제정치를 비판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한 미모의 처녀가 그녀를 차지하려는 영주의 손에 약혼자를 잃고, 정절마저 짓밟힐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아버지의 손을 빌려 목숨을 끊고 만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그리고 그 아버지가 칼을 들고 영주를 찾아가 그의 얼굴에 칼을 내던진다는 파격적인 장면도 들어가 있습니다.


4. 허클베리 핀의 모험 (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마크 트웨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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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작품입니다.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의 후속작 격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죠.

소년 허크가 흑인 노예 짐과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강을 따라 떠나는 모험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방대한 자연에 대한 묘사 및 인물, 사회 비판 및 풍자 면에서 여러모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마크 트웨인의 역작이자, 미국문학에 한 획을 그은 명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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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진 허클베리 핀>


어릴 적 동화책으로 읽었던 <톰 소여의 모험>이 참 재미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축약하지 않은 원본 소설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나이 먹은 후 원본 소설을 보고 가장 충격이었던 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지요;;)

5. 채털리 부인의 사랑 (Lady Chatterley's Lover), 로렌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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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표정이 포인트입니다-_- 낭독을 마친 마이클에게 한 소리 한다는;;>


자, 자, 80년대 아이들에게 'X마 부인'을 능가하는 야한 여자로 통했던 '채털리 부인'의 등장입니다.

1928년 영국의 작가 로렌스가 쓴 작품이지요.


반신 불수가 된 남편을 헌신적으로 돌보지만, 성욕과 모성 본능을 채우지 못한

채털리 부인 콘스탄스가 다른 남자와의 관계를 통해 삶의 행복을 되찾아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에요.

사실 이 책은 당시 중산층과 하층민의 생활 묘사와 '사랑'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는 소설입니다.

그러나 굉장히 대담한 성 묘사로 인해 외설 시비의 대상이 되었고,

최근까지도 영화로 만들어지며 '문제작' 타이틀을 달 만큼 민감하기로 유명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엔 '재떨이 부인', '채터리 부인' 등으로 불리며

'아무 것도 모르지만 뭔가 아는 척 하려는 아이들'이 '그저 순진한 아이들'을 놀리는 소재로 써먹었더랬죠.

6. 닥터 지바고 (Doktor Zhivago), 파스테르나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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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더 유명한 '의사 지바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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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의 테마는 지금도 자주 들을 수 있는 명곡이지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혼란스러워진 시대 속에서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려는 지식인의 삶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소련에서 이 작품을 발표하려 했던 저자 파스테르나크는

나라에서 책의 발표를 허락하지 않자, 이탈리아에서 책을 출판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이듬해인 195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지만,

이것이 소련 내에서 문제가 되는 바람에 러시아 작가동맹으로부터 제명 처분을 받게 되죠.

그리고 그는 "러시아를 떠나는 건 죽음과도 같습니다. 엄한 조치를 하지 말아주십시오."라고 탄원하여

국외 추방을 면하는 대신, 노벨 문학상을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파스테르나크는 그후 1년 반 뒤 모스크바 근교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닥터 지바고>하면, 영화 때문인지 눈밭과 쓸쓸한 느낌의 음악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영화 안에서도 주인공 마이클이 쓸쓸해 보이는 장면에서 등장해 더욱 어울렸던 작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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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의 이별...>


'슈니츨러는 멍멍멍 짖고 있지만 슈테판 츠바이크는 죽은 개야'

'쉴러에게는 여자가 필요해'

'괴테의 시는 예쁜 틀에 끼워놓은 조그만 그림같아.'

책을 읽어주는 그의 목소리 속에서 세상을 보게 된 그녀.

감옥 안에서도 그녀는 그의 목소리가 있어 답답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편지지 위에 또박또박 써내려간 그녀의 짧은 서평은 귀여우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데가 있지요.

영화는 그들의 결말을 잔인할 정도로 확실하게 보여주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 저는 아직도 마이클이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로 옮겨진 책을 써내려갔던 작가들도 행복할 거란 생각도 했어요.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책을 써내려 갔던 그들은,

마이클 덕분에 책이 전해질 수 있는 곳 바깥에 머물던 한나에게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누군가에게 가장 좋아하는 책을

그 사람에게 가장 달콤할 것 같은 목소리로

읽어주고 싶은 요즘입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책을 읽어 주고 싶으신가요?


 

글. 언덕 위의 꼬맹이


2010/06/23 17:50 2010/06/2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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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읽은이 | 2010/07/22 13: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재털이 부인 웃긴데요 ㅋㅋ 저도 중학교땐가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내용은 생각이 안나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네요 ㅋ

  • 푸근한 냉소 | 2010/07/23 09:2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재털이 부인을 뛰어넘은 사춘기 시절 최고의 작품을 조심스럽게 소개합니다.

    이 영화 보시분들 기억하시는 분들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The Smile Of The Fox 여우의 미소라는 작품이죠 ^^

    다시 구해서 볼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복사해서 검색하고 있다면

    당신은....!!!

    당신은!!!!!!!!!!!

    호기심쟁이

    • 푸근한 냉소 | 2010/07/23 09:29 | PERMALINK | EDIT/DEL

      검색은 구글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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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소설선 <디 아더스> 북트레일러 :: 2010/06/23 10:58

다른 세계, 다른 취향, 다른 감수성.
이야기에 중독된 당신을 위해 준비한 푸른숲 소설선 <디아더스>


2010/06/23 10:58 2010/06/2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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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인터뷰] 서진 작가와의 만남 :: 2010/06/21 18:01


“삶의 진짜 재미, 모르고 살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서진


- 서진
게재일 : 2010-06-14 조회수 : 1,549
글·사진 / 김수영alive2277@yes24.com

북원더러, 서진 작가를 소개합니다

좁은 챙의 모자, 보라색 티셔츠, 둥그런 안경테, 우쿨렐레를 품에 안은 저 이가…… 서진 작가님? 인터뷰가 약속된 카페에서 서진 작가님을 뵙자마자 큰 웃음으로 인사 드렸습니다. 광안리 해변에서 당장 노래를 불러도 손색없는 뮤지션 패션으로, 둥가둥가 기분 좋게 줄을 튕기셨습니다. 그렇게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우쿨렐레를 연주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는지요?” “이거, 고작 3주요!” 그러니까 조카 것을 가져오신 거라고요. 장난감 같지만 보기보다 가격도 나가고, 요즘 같은 여름에 쓸모가 많다고 웃으십니다. 신상 우쿨렐레 반응이 꽤 괜찮은가 봅니다. 덩달아 웃음이 나네요. 오늘 선생님의 콘셉트는 그야말로 유쾌함 유발자!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 이후 문화잡지 <보일라> 편집장을 거쳤고, 현재 대안출판 프로젝트 <한 페이지 단편소설> 운영자, 문화웹진 <나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진 작가님. 본인도 열심히 소설 쓰기에 매진하고 계시지만, 그만큼 글을 쓰고자 하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도 많은 시간을 쏟고 계십니다.

매년 여행도 꼬박꼬박 다니기 위해 노력하시는데요. 여행 갈 때마다 꼭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 서점입니다. ‘어디엔가 반드시 내가 쓰고 싶은, 만들고 싶은, 인생의 모든 궁금증을 풀어줄 책이 숨어 있을 것만 같아’ 어슬렁어슬렁 오늘도 서점을 배회하는 북원더러지요. 디자인이 예쁜 새 책,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는 뉴욕의 서점을 북원더링한 기록입니다. <서진의 뉴욕 서점 순례>라는 제목으로 채널예스에서도 8개월간 연재된 적도 있었죠.

그런데 이 책, 남다른 구석이 있어요. 그러니까 읽기 전, 경고 문구를 살펴봅시다. “이 글에 등장하는 서점은 모두 작가가 직접 방문한 곳이지만 픽션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책과 저자, 서점 직원 등은 모두 실존 인물이고, 나머지는 가상의 인물임을 밝힙니다.” 그러니까 픽션과 실제 에피소드가 결합된, 소설가의 방식으로 들려주는 여행기인 셈이지요.

반은 가상, 반은 실제인 북원더러 서진이 주인공으로, 미래에서 책을 구하러 온 여자 제니스와 그녀를 사랑하는 작가 로버트가 뉴욕 서점을 배경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펼쳐나갑니다. 그러니까 책의 운명을 좌우하는 소설 『도서관을 태우다』를 쓰려는 주인공과 이를 방해하려는 가상인물들의 이야기지요. 실제 서점의 디테일한 배경과 서점 직원들의 이야기가 픽션과 맞물려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Unoppressive Non-imperialist Bargain Bookshop

책의 도시 뉴욕의 서점은 정말 매력적인 곳이더군요. 책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책장을 넘기며 눈이 휘둥그레질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미국의 가장 큰 스릴러 전문서점 Mysterious bookshop. 체 게바라식의 게릴라 서점 Unoppressive Non-imperialist Bargain Bookshop(해석하자면 ‘반압제적 반제국주의자의 할인 서점’이다!), 최대의 희귀본 중고 서점 Argosy books, 요리와 와인에 관한 모든 책이 모인 Kitchen Arts & letters 등등 뚜렷한 특색을 지닌 서점이 수두룩합디다.

출판사 헤드쿼터가 밀집해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작가들이 글을 쓰고 있다는 뉴욕. 그보다도 이런 서점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건, 역시 그런 책을 사주는 독자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이렇게 서점의 장르가 특화될 수 있는 까닭 역시, 특별히 어떤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거고요. 뱀파이어, 좀비, 모텔, 맥주와 기차여행. 자신의 주요 키워드를 꼽아내는 서진 작가님 역시 취향이 확실한 분이셨습니다. 당신의 키워드는 무엇입니까? 당신은 무엇에 꽂혀 있나요? 음악과 뉴욕의 서점을 거쳐, 개인의 취향까지, 이야기는 넘실넘실 흘러갔습니다.

책과의 만남은 서점에서 이루어진다. 똑같은 진열방식, 똑같은 이벤트로 마련된 대형 서점에서 우리는 똑같은 책들과 마주칠 확률이 높다. 그러나 뉴욕에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책을 진열하고, 보여주고 커뮤니티를 이루는 작은 서점들이 남아있다. 나는 그런 서점을 하나씩 순례하고 있는 중이다.(p.153)

북원더러, 책을 찾아 방랑하는 사람

안녕하세요. 뮤지션 서진 님!(웃음) 이번 앨범 반응은 좀 어떤가요?(웃음)

“이번 우쿨렐레 앨범이 우리나라 첫 앨범이라 잘나가고 있어요.(웃음)”

책을 찾는 사람을 뜻하는 ‘북원더러’라는 명칭이 매혹적이었습니다. 북원더러 대표로서,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북원더러는 책을 찾아 방랑하는 사람이에요. 북 헌터는 가치 있는 책, 오래된 책을 수집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사람이고 북원더러는 뭔가 인생에 문제점이 있는데 이걸 해결할 수 있는 책이 서점에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책을 찾아 돌아다니는 사람이죠. 서점 입장에서 보면, 반가운 손님은 아닐 수 있어요.(웃음)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가?’ 싶었는데 책 내고 보니 그런 분들이 많더라고요.”

북러버 중 가장 골치 아픈 부류가 북원더러 BOOK Wanderer(책 방랑자)다. 이들은 일반적인 북러버들처럼 읽고 싶은 책을 사기 위해 서점을 돌아다니지 않는다. 북헌터들처럼 값나가는 중고서적을 구하러 다니지도 않는다. 그냥 서점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닐 뿐이다. (…) 그들은 책을 찾고 있다. 삶의 무수한 의문에 답을 주는 책, 평생을 두고 쓰고 싶었던 소설과 비슷한 책,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변화시킬 책, 어쩌면 그런 책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북원더링은 멈추지 않는다.(p.231)

책의 성격이 오묘합니다. 여행기이기도 하고 소설이기도 하고 순례기이기도 하고요. 한 권의 잡지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요.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나요?

“여행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요즘은 시인들이나 작가 분들이 여행을 떠나서 감상을 적는데, 그럼 소설가들은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나만이 할 수 있는 게 뭘까? 결국 이야기로 풀어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실수였죠. 고난이 시작됐으니까.(웃음)”

어떤 고난이 왔나요?

“정보만 전하는 건 쉽잖아요. 이야기와 어떻게 잘 믹스시켜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많았죠. 편집자나 아내가 도움을 많이 줬어요. 특히 작가의 생각을 많이 담았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많이 해줬어요. 책이 과연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내 개인적인 생각이 담기게 됐어요. 정리해보니, 소설과 또 연결되는 부분도 있어서. 이게 소설이나 여행기로 볼 수 있지만, 한편 책과 서점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담고 있는 책이기도 하죠.”

끝까지 주인공 서진을 포기하지 않은 까닭은……(웃음) 여행기이기 때문인가요? 픽션이기 때문인가요?(웃음)

“‘이거 진짜야?’ 이런 거. 근데 얘기 자체가 황당하기 때문에, 진짜라고 생각하실 분은 없을 것 같아요. 제니스가 미래에서 온 여자라는 데에서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나’라고 써도 혼동하는 사람은 없겠다, 안심하고 썼는데……. 표지도 제 얼굴을 닮게 그려서(웃음)”

그래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실제 뉴욕 서점이 배경이고, 주인공이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를 쓴 소설가 서진으로 나오니까, 현실과 이야기가 오묘하게 겹쳐서, ‘이거 진짜야?’ 하면서 읽었어요.(웃음) 그런데 이야기 속 소설이 또 하나 등장하죠. 『도서관을 태우다』 이 소설은 실제 썼던 소설인가요?

“쓰고 있었던 소설이에요. 데뷔작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를 쓰기 전에도, 그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제목에 경도돼서. ‘도서관을 태우다’ 하면, 재미있는 소설이 나올 것 같더라고요. 맨 처음에는 대학생이 전국의 도서관을 태우는 내용이었다가, 나중에는 실직자가 과거로 가서 도서관을 태우는 여자와…… 이야기가 산으로 가다가……. 도저히 결말을 지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다면 왜 ‘도서관을 태우다’에 꽂히신 건가요?(웃음)

“맨 처음에 그 제목에 꽂힌 이유는, 제가 도서관을 진짜 태우고 싶었어요. 책이 아니라 열람실을요. 책을 빌리러 갔는데, 다 공부하고 있더라고요. 나쁘다는 건 아닌데, 우리가 도서관에서 해야 할 일은 이런 게 아닌데, 하는 마음에 철없는 상상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메타포적인 의미로. 도서관을 태운다는 것은 지식을 태운다, 낡은 것을 태운다는 의미이기도 하잖아요.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솔직하게 야하게, 진짜 여행을 묻는 여행소설 쓰고 싶어


『도서관을 태우다』는 언젠가 만날 수 있는 소설이겠네요. 미래에서 책을 구하러 온 제니스의 존재가 흥미롭습니다. 여행 중의 로맨스라는 여행의 로망을 실현시키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고요.

“남자를 구해주는 건 여자가 아닐까, 기본적으로 그런 생각을 해요. 뭔가 로맨틱한 게 들어가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저하고 로맨스를 이루는 게 아니라, 로버트와 사랑을 나누죠.”

욕망을 전이시킨 건가요?(웃음)

“다음 책엔 꼭 넣으려고요!(웃음) 꼭 엄청 야한 여행 에세이를 쓰고 싶은 게 목표예요. 여행 에세이 겸 소설이 되겠죠. 여행기가 제일 아쉬운 것은 실제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행에서 로망을 품고 있는 것은 로맨스란 말이죠. 혼자 간 여행이라면. 실제로 로맨스가 있었더라도, 실제로 에세이로 쓸 수 있는 사람은 없겠죠. 그런 비슷한 얘기를 읽어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되게 재미있는 거예요. 여행자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있잖아요. 판타지도 좋고, 재미있는 요소들을 넣어서 여행기 겸 픽션을 적으면 어떨까 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이 작업을 하면서, 기차로 미국 대륙횡단을 했거든요. 그때 아이디어가 있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결국 옛 사랑과 조우하는 이야기를 쓸 예정이에요. 픽션이니까 용감해질 수 있단 말이에요. 솔직하게, 여행의 어떤 의미를 되새기고 싶어요. 실제로 로맨스에 빠졌다면 어떨까? 떠나야 하는 사람인데, 순간적인 감정이라도 떠날 때는 어떨까? 픽션이라면 좀더 솔직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혹시, 로맨스가 좀더 섹시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없는지요.

“제 욕망이 아니고, 제 아내의 욕망이에요.(웃음) 항상 저에게 하는 말이, ‘서진 씨 야하게 쓰세요. 나는 괜찮으니까 조금 더 야하게. 이 정도는 야한 것도 아니야’ 늘 그래요.”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인가요?(웃음)

“아내가 생각하기에 저는 야하대요. 그런데 에세이나 소설을 보면, 그런 걸 자꾸 감추려고 하고, 멋있게 보이려고 하는데, 그런 게 좋지 않은 것 같대요. 잘 쓸 수 있는 부분을 좀 더 어필하면, 보다 가까운 나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솔직히 작가는 글 쓰면서 자기가 멋있게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거든요. 착하게 보이고 싶고, 매번 옳은 생각하고, 그런 분도 계실 건데. 사람 다 똑같잖아요. 그게 중요하다기보다는 내가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쁜 생각을 하더라도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잘 표현하면 그게 좋은 소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다 나쁜 짓 하잖아요. 그걸 리얼하게 잘 표현하는 게 소설이지, 멋있는 주인공이 좋은 일만 한다고 좋은 소설은 아니잖아요.”

선생님도 스스로를 야하다고 생각하시나요?(웃음)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지금 멋있어 보이시려고 하시는 말씀 아니세요?

“여러 사람에게 야할 필요는 없는 것 같고요.(웃음) 야하고는 싶어요. 저도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까, 자기의 생각을 뚜렷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진짜 멋있는 사람은 멋있는 생각을 가진 사람보다,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인 것 같아요. 특별한 생각 가진 것도 아니지만, 내가 느끼는 건 이런데, 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거죠. 그것도 재능이에요. 나는 내 말이 이해 받을 수 있을까 걱정해가면서 조심조심 얘기하거든요. 그럴 필요 없거든요.

어느 정도 자기를 내비치는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여요. 저는 말로써는 못하니까 글로써 하려는 거죠. 글로도 못 한다면 답답해서 못 살죠.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사람들이 소설 좀 써야 된다 싶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숨기는 게 많잖아요. 예의상 그런 것도 있는데, 글로 쓰면 그걸 풀어낼 수 있거든요. <한 페이지 단편소설>을 운영할 때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하죠. 그건 우수한 작품을 뽑는 프로젝트가 아녜요. 친구하게 말하긴 부끄러운 고민을, 공감할 수 있게, 솔직하게 쓴 글을 뽑아요. 좋은 것 같아요.”


뉴욕, 오래된 도시

추리소설 전문 서점 Partners & Crime

여행을 떠나기 전에 <론니 플래닛> 같은 여행 가이드를 사 보는데 그 도시에 대한 표현하기 힘든 감상적인 면은 여행 가이드보다는 소설에 더 잘 나타나 있는 경우가 많다. 뉴욕의 거리는 폴 오스터의 뉴욕삼부작을 읽으면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고, 존 스타인벡의 소설을 읽으면 캘리포니아의 살리나스 지역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재미있는 사실은 실제로 그 지역에 가보면 소설에서 읽은 것보다 오히려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설을 읽고 상상한 것들이 현실보다 더 리얼하기 때문일까?(p.257)

이 책은 뉴욕을 어떤 도시로 그리고 있나요?

“일단 뉴욕은 오래된 도시예요. 옛 서점도 남아있고, 건물들도 100년 정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나요. 다른 도시 가면 대형 서점밖에 없어요. 그런 오래된 느낌을 통해서 남아 있는 서점들의 얘기를 쓰고 싶었고.”

무엇보다 서점 하나하나가 특색 있어서 놀랐어요. 체 게바라 서점, 오스카 와일드 서점 등등 어쩜 그렇게 특화된 서점이 존재할 수 있을지 신기했어요.

“뉴욕에는 최고의 것들이 다 모여 있잖아요. 요리를 한다면, 최고의 요리사들이 있고, 미스터리를 읽는다면, 그걸 좋아하는 사람이 다 모여 있어요. 그래서 그 작은 서점이 나올 수 있었던 거죠. 출판사도 많고 작가들도 많고. 출판사 헤드쿼터가 뉴욕 브로드웨이에 다 있다고 보시면 되거든요. 그것도 이런 서점이 나올 수 있는 중요한 환경이었겠죠.”

저는 조금 의외였어요.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본 뉴욕은 새것들로 번쩍번쩍한 화려한 도시였거든요.

“실제로 집들이 굉장히 낡았어요. 새로운 콘도미니엄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뉴욕 사람들은 그런 걸 싫어해요. 오래된 걸 보존하고 싶어 하는 생각이 더 강해요. 기차역이 하나 있는데, 오른쪽의 그랜드센트럴 역은 사람들이 싸워서 옛 모습을 간직했거든요. 들어가 보면 되게 멋있어요. 그런데 팬스테이션은 최신식으로 바꿨는데 너무 재미가 없어졌어요. 뉴욕 사람들이 그걸 지키지 못한 걸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어요. 오래된 것을 아끼고 사랑하고 보존하려는 도시인 것 같아요.”

여행을 자주 하신다고 들었어요. 서점 기행, 기차 횡단 등등 평소에도 그렇게 테마나 주제를 잡아서 여행하시는 편인가요?

“평소에는 재미없게 다녀요. 한 도시에 2~3개월씩, 별거 안하고 있어요.(웃음) 심심해서 밖에 나가서 뭘 해볼까, 찾다 보니 특정한 한 주제를 탐험하게 되는 것 같아요. 뉴욕이 좋은 이유는 어떤 소재를 잡더라도 갈 곳이 있단 말이죠. 음식점 중에서도 일식당을 조사해보겠다, 러시아 식당을 조사해보겠다, 하면 다 전문가들이 하고 있는 곳들이 있어요. 이주민들도 많고. 어떤 주제든지 파고들 수 있어서 뉴욕이 좋았던 것 같아요. 이전에 블로그에서 ‘뉴욕의 일본 라멘 연구’를 올려본 적도 있거든요.”

서점마다 찾아가서 ‘구하고 싶은 세 권의 책’이 뭐냐고 질문을 하고 다니셨잖아요. 취재하면서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제가 또 소심하잖아요.(웃음) 쭈뼛쭈뼛 가서, 취재하는 티를 내면, ‘왜 오셨냐’고 관심을 가져요. 그러면 일이 쉽게 풀리는데, 보통은 안 그렇거든요. 어떻게 말을 걸까 고민하다 생각해낸 게, 사진을 좀 찍어도 되겠냐고 묻기로 했어요. 사진을 공개적으로 찍는 건 금지되어 있으니까. 일부러 물어보는 거죠. ‘무슨 일로 오셨느냐’ 유도할 수 있게(웃음) 그러다 문전박대 당한 경우도 한 번 있어요. 고가의 중고 서점에 갔더니, ‘바쁘다, 당신 같은 사람을 상대할 시간이 없다’는 거예요. 알았다고 나왔어요. 처음엔 기분 나빴는데, 고가의 중고 책들을 파는데, 일반 사람들이 구경한다고 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이해도 되더라고요.”

혹시 넣으려고 했는데 빠지거나, 더 추가하고 싶은 서점은 없었나요?

“이번에 뉴욕에 잠깐 들렀는데요. 그동안 수없이 서점을 찾아 다녔는데, 큰 대로변에 누구나 발견할 만한 서점이 하나 있는 거예요. 놓친 거죠! 아, 화가 나서 들어갔어요. 이 서점 대체 언제부터 있었냐고 물었더니, 10년이 됐대요.(웃음) 책이 나온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고, 그렇게 빠진 서점이 한 군데 있고, 나머지는 다 가봤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취향을 찾게 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거죠!

레프트 뱅크 서점 쇼윈도에 있는 초판 희귀본들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입니다. 서진 선생님이 구하고 싶은 세 권의 책은요?

“답할 수 없어요. 나는 남의 비밀을 듣고 싶은데, 나는 얘기해주고 싶지 않은 심보죠.(웃음) 제가 그 질문을 한 것은, 그 사람의 취향을 한번에 알아보고자 하는 거였어요. 미국에는 누군가의 서재를 뒤져서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조사하는 게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어요. 사생활침해라고. 그런 판례가 있었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솔직히 세 가지를 정할 수도 없고, 그걸 생각하더라도 쉽게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취향이 그대로 까발려지면서 잘못 판단하지 않을까. 나에 대해서. 이런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너무 야한 거 아냐?(웃음) 비도덕적인 거 아냐? 일본 책만 좋아하네?’ 하는 식으로.(웃음) 좋아하는 책이 뭐냐는 건 정할 수 있는데, 다 타버리는데 세 권을 구하라고 하면, 정말 말 못 할 것 같아요.”

뉴욕 서점 취재를 하면서, 그런 질문을 던지셨을 때, 작가님 같은 반응을 보이신 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있어요. 어떻게 잔인하게 세 권을 구하냐면서. 그런 질문 하지 말라고. 어떤 분은 되게 진지하게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분도 있었어요. 단순하게 좋아하는 책을 말씀하신 분도 있고. 서점마다 취향이 정말 달라요. 어떻게 판단할 수가 없어요. 의도된 건 아닌데, 대답 중에 공통된 책이 몇 권 없었거든요. 서점에서 일한다면, 자기 취향은 확실하다는 거죠. 그런데 그 취향이 그렇게 많이 겹치지도 않고요. 그게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우리는 무슨 책이 좋은지 잘 모른단 말이죠. 그래서 베스트를 좇아요.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까, 좋겠지. 그것도 맞는데, 결국 제일 중요한 건 진짜 자기 취향을 찾게 되면 그것보다 소중한 게 없어요. 내가 이걸 좋아한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거죠. 누가 뭐라고 하든지 이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게 되고, ‘나는 이런 걸 좋아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죠. 사람들이 취향이 조금 더 세밀하고, 정확해지면 책도 더 많이 팔리지 않을까 싶어요. 기본적으로 출판계는 마이너거든요. 취향이 확실한 사람들이 만드는 게 바로 책이죠. 취향이 확실한 독자들이 많다면, 그런 책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겠네요.

“네, 그런 노력이 좀 부족한 것 같아요. 저도 요즘 많이 느끼는데, 예전에 제가 책 읽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책이 재미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직업을 갖게 됐어요. 그때 책을 많이 읽으면서, 내 취향이 이런 거구나 알게 됐고, 그쪽을 파다 보니까 어떤 작가 스타일을 알게 되고 따라 쓰고 싶은 욕망이 생기잖아요.

예전에는 남들이 듣고, 읽는 걸 접하곤 했는데, 취향이 뒤늦게 형성된 것 같아요. 그전에는 세상이 좀 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유행하는 노래도 비슷하고, 남들은 베스트셀러라는데 나는 어쩐지 재미가 없고. 계속 그렇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떤 계기를 통해서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쓰고 만들고 찍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런 작품은 대중한테 인기를 끌 수도 있지만 끌지 못할 수도 있겠죠. 한 예술가가 대중에게 인기 없는 작품을 만든다는 게 의미가 없는 게 아니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됐어요.

고로 내가 쓰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아니어도 의미가 있구나, 믿음이 생겼기 때문에 계속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조금 노력을 더하면, 나와 취향이 맞는 독자의 수도 많아지고, 취향의 깊이도 깊어지겠죠.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친밀감을 더 표현해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글 쓰는 사람에게 가장 큰 의미가 되고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책은, 사라진다

뉴욕 최대의 어린이 책 전문 서점 Books of Wonder

서점 취재를 하면 할수록 종이책의 수명이 점점 끝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신호는 여러 가지로 감지된다. 첫째,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둘째, 책의 종수는 많아지지만 정작 책다운 책은 출판될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셋째, 출판 산업이 대자본화하면서 책은 자체의 가치보다는 특정 콘텐츠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종이 값이 매년 미친 듯이 오르고 있다. 책을 만들 나무는 점점 부족해질 것이다.
종이로 만든 책과 그것을 파는 서점이 점점 죽음에 다가가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서점을 방문하면서 책 냄새를 맡고, 책장을 넘기는 것도 미래에서는 꿈같은 일일지도 모르는 것이다.(p.72)


종이 책이 정말 사라질까요?

“네. 아주 당연히요. 희귀본이나 보관용은 남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교육적 목적에서 종이 책이 사라지는 순간부터는 그 속도를 걷잡을 수 없을 거예요. 학교에서 E-Book을 쓰는 시대가 올 거거든요. 우리는 교과서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책은 종이 책이어야 한다는 세뇌가 되어 있죠. 아마 E-Book으로 학교를 다닌 세대는 종이 책에 애착이 없을 거예요.”

책의 미래를 내다보며, 작가로서의 미래는 어떻게 보십니까?

“책은 없어져도, 콘텐츠는 남는데, 이것도 양면이 있어요. 영화, 애니메이션, 이런 게 각광을 받을수록, 반면 언어로만 표현될 수 있는 깊이라는 게 상대적으로 더 가치를 발할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인터넷이 발달함으로써 사람들이 댓글이든 뉴스든, 글을 많이 읽기 시작했거든요. 굳이 책의 포맷이 아니더라도, 다른 포맷의 책을 쓰지 않을까. 굳이 길지 않아도 되고, 하나의 뚜렷한 주제를 잡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형식의 책이 등장하리라고 봐요.”

<한 페이지 단편소설> <보일라> 등등 문학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하고 계세요. 더 많은 사람들이 글 쓸 수 있는 공간, 혹은 기운을 마련해주시는 것도 같고요. 이런 활동을 통해 선생님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뭔가요?

“나는 ‘글 쓰는 사람’이라는 건 확신했어요. 내 시간의 50퍼센트는 소설을 써야 해요. 대신 나머지 50퍼센트는 다른 사람들이 그런 상상을 표현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봐요. 내가 쓰는 시간의 10퍼센트만 다른 사람들을 도와도 큰 기여를 할 수 있거든요. ‘나는 정말 훌륭한 작품을 써야겠어’ 하고 하루 종일 글을 써도 답이 안 나올 수 있죠. 그 시간의 1시간만 빼서,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도우면, 더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봐요. 그게 교육이잖아요. 그 사람을 꼭 작가 만들려고 조언을 주는 건 아니거든요. 글을 씀으로써 부가적으로 배우는 게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글을 써요.

이를 좀 더 돕기 위해서 <한 페이지 단편소설>을 시작한 거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해요. 이 정도는 남을 도와야 공평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쩔 때는 내가 시간 낭비하는 게 아닌가, 나에게 돌아오는 것도 없고 싶을 때도 있거든요. 결국에는 사람들 만나고 얘기해보면, 나의 작은 수고가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걸 배워요. <보일라>를 하는 것도 그렇죠. 늘 적자고, 벌어서 만드는 거죠. 그걸 통해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은 사람도 있었고, 알려진 사람도 있었고, ‘이렇게 공헌을 하는구나’ 그런 게 진짜 좋아서 하는 거죠. <나비>도 그렇죠. 무슨 일이든 내가 그렇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요.”


개인의 취향 찾기, 북 원더링을 하세요!

자기 취향을 모르는 사람이 많잖아요. 개인의 취향을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요?

“북원더러 대표로서, 좋은 방법을 추천해줘야 할 것 같아요.(웃음) 일단, 판매량과 별점을 믿지 말 것. 영화를 보든, 책을 보든 그런 걸 살펴보는데,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것은 그런 것과 상관없을 수 있어요. 일단 답이 없을 때는 여러 가지를 찔러봐야 해요. 그 과정이 반드시 필요해요. 그게 귀찮기 때문에 추천을 받고 베스트셀러를 보는 거거든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취향은 시간 날 때 계발하는 것이니까, 천천히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힘이 들더라도, 많이 접해서 취향의 영역을 넓혀나가야 해요. 모르던 분야에 정말 재미있는 게 있을 수도 있는데 평생 모르고 살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의도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보시고, 그러면 100권 중 적어도 두세 권은 건질 수 있다고 봐요.

그 다음부터는 쉬워요. 그 다음 탐색방법은, 골라낸 책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면 돼요. 그 작가가 쓴 다른 작품, 그 작가가 영향을 받은 작가. 이런 식으로 올라가겠죠. 그런 식으로 쭉쭉 보다 보면, 자기 취향을 발견할 수 있어요. 고정되면 또 재미없거든요. 심심해하는 단계에서 또 한번 싹 풀어주세요. 새로운 작가, 새로운 분야 책을 읽고 조금씩 넓혀 가면, 자기만의 취향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은 사람의 서재를 클릭해서, 그 사람이 추천하는 책들을 또 발견할 수도 있고요. 그러다 보면 개인의 궁극의 도서관 리스트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장담하건대 사람마다 다를 거예요. 똑같은 게 없을걸요.”


취향을 알면,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걸 이해하게 되겠네요.

“저는 취향이 없었을 때는 책이 재미없었어요. 많이 읽지 않아서 쉽게 판단했던 거죠. 사람들이 『삼국지』가 재미있다는데, 나는 재미가 없는 거야.(웃음) 내가 문제가 생겼구나, 싶었죠. 그러다 내가 좋아하는 책, 나와 비슷한 사람의 책을 발견했어요. 그걸 발견하는 기쁨을 다른 사람은 결코 이해 못할 거예요. 쟤는 왜 아이돌 콘서트 가서 소리 지르고 있을까, 싶지만 실제 빠져든 사람은 그게 무척 재미있거든요.”

그럼 책이 재미없다는 편견을 깼던 소설은 어떤 책이었나요?

“저는 엠마누엘 까레르의 『콧수염』이라는 책이 그랬어요. 그게 최초로 재미있다고 느낀 책이에요. 자기가 어느 날 콧수염을 기르다 잘랐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보는 거야. 맨 처음에는 놀리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너 언제 콧수염 길렀는데’ 되물어요. 여기서부터 정체성의 혼란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나를 둘러싼 모함이 있다고 생각해 그 나라를 뜨고, 홍콩에 가서 평생을 살며 이상한 짓을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거든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도 그런 책 중에 하나였죠. 소설 같지 않아서, ‘아, 이 정도는 나도 쓰겠네’ 싶었는데 절대 그렇게 안 써지는!(웃음)

성석제 씨의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라든지 김영하 씨의 『호출』 『그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도 한국 소설의 편견을 깨줬던 소설들이에요. 존경하는 박민규 씨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도 그랬고요. 이 작품 때문에 한겨레에 투고했어요.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을 뽑아주는 곳이라면, 내볼 만하겠다. 내 것도 나름 재미있으니까!(웃음) 감사하게 제 수상 파티에도 오셔서 격려해주셨어요.”


제일 어려운 게 1단계 같아요. 100권의 책을 읽는 것. 사실, 취향을 찾기 위해 그렇게 시간을 쏟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요. 아무거나 막 읽는 일이 좀 막막한데, 좀 효율적으로 골라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사람마다 방법이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일단 씨앗이 되는 도서가 있을 거예요. 그것과 관련된 책부터 시작하면 되는데, 그것과 아무 상관없는 인문학, 과학, 철학 책도 함께 읽는 거예요. 모르는 분야라면 인문서 격의 책을 추천해요. 예전에 우연히 『보랏빛 소가 온다』를 읽었는데 재미있었어요. 그때부터 경제 분야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뻗어나가는 거죠.

출판사를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출판사는 비슷한 성격의 책을 내곤 하잖아요. 성격이 확실하니까. 그런 식으로 탐험하는 것도 에러율을 줄이는 거죠. 그러나 북원더링을 더 하시면 됩니다. 우연히 서점에 갔는데, 표지가 예뻐서, 제목이 맘에 들어서, 손에 들었는데 뭔가 마음이 들어서, 그렇게 만나는 책이 더 많을 거예요. 그런 책을 놓치지 마세요.”

2010/06/21 18:01 2010/06/2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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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히누너메님이 구하고 싶은 세 권의 책 :: 2010/06/19 15:21

책을 사랑하는 블로거 하누너메 님께서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서평을 정성껏 써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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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어린 서평에 감사 드리며,
토트씨가 히누너메님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세상의 모든 책이 사라진다면
하누너메님께서는 어떤 세 권의 책을 구하시겠습니까?"


1.헤로도토스 (Herodotos) 의 역사(  Histori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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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쓴  페르시아 전쟁사로  인류 최초의 동서양  문명의 대격돌을  다룬 역사서.
고대 페르시아 전쟁사에서 명멸하는 수많은 인물들을 통하여  많은 깨달음을 준 책으로 역사책도  소설만큼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책입니다.

2.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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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마음 가짐에 달려 있다는 황제의 말을 철저하게 신봉하며 살고 있는 나.
삶에 지치거나  욕심이  과하다고 생각 될 때  황제의 글귀를 읊조리며 마음의 평정을 찾게 됩니다.


3.노자의 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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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가 <도덕경>에서 들려주는 진리의 말은 물질 만능 주의에 빠진 현대인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먼저 살다간 선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우리면서 그의 뜻을 하나하나 헤아리다 보면 저절로 내 삶의 지향점이 찾아 지고요.
마음이 편해지는 책, 그것이 바로 노자의 도덕경입니다.

* 답변을 주신 하너누메님께 감사 드립니다.^^

2010/06/19 15:21 2010/06/1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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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보는 고양이를 만나다 - 나를 사로잡은 문장들 #1 :: 2010/06/18 11:48

#1. 교정보는 고양이를 만나다

 “주인님, 많이 피곤하신 모양입니다. 펜을 내려놓고 이제 잠자리에 드시지요.”
 “아, 안 돼……내일까지 교정을 다 봐야 하는데, 음냐.”
 고 군이 우리 집에 나타난 것은 삼 주 전이었다. 빨간색 펜을 꼭 붙들고 침대 위에서 침을 흘리며 자던 나는 사각사각 글씨 소리에 부스스 잠을 깼다.
 내 책상 앞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팔 토시까지 끼고 반듯한 자세로 앉아 교정을 보고 있는 늘씬한 뒷모습. 그런데 의자 뒤편으로 무언가가 비죽이 나와 있다. 저것은…… 꼬리? 순간 그가 고개를 돌렸다. 헉, 고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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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셨습니까, 주인님?”
 주인님? 그는 안경을 벗고 팔 토시까지 벗어 책상 위에 올려놓더니 공손히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주인님의 부름을 받고 이곳에 찾아왔습니다.”
 “나 부른 적 없는데…….”
 “부르셨습니다. 그것도 서른세 번이나요. 교정지에 흘린 침에 펜글씨가 번져서 에메랄드빛을 띠게 되면 저희 편사고(편집자를 사랑하는 고양이 모임)로 신호가 옵니다. 피곤에 지쳐 책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린 편집자를 회복시키는 것이 저희의 모토입니다.”
 “그러니까 날 위해 뭔가를 해주는 거예요?”
 “네. 먼저 주인님의 어린 시절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책들을 찾아 여행을 떠날 겁니다. 저는 스캣포드에서 독서치료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블라블라블라).”

 “잠깐만!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데, 난 바쁘다구요! 이번 주까지 봐야 할 교정지도 있고.”
 “그건, 염려 마세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교정보는 고양이' 2등상을 수상한 전력이 있지요. 그러니 일 걱정은 하지 마시고,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주인님에게 따뜻한 기억을 심어주었던 책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니, 생각만 해도 신나지 않으세요?”
 고양이의 눈에 별이 한가득 채워졌다.
 “자, 먼저 여기 족욕을 위한 물을 떠다놓았으니 발을 담그세요.”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 앞에 놓인 대야에 발을 넣었다. 뭐, 꿈이라고 해도 별로 나쁘지 않은데…….
 “아 뭐라고 부르면 되죠, 고양이... 군?”
 “고 군이라고 불러주세요, 심플하게. 앞으로 더 이상 외롭게 잠드시는 일은 없을 거예요.”
 고 군은 은색 수염을 매만지며 결연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대야 속 따뜻한 물의 온기가 발을 통해 몸 전체에 퍼지자 나는 최면에 걸린 듯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주인님, 눈을 뜨세요.”
 고 군의 속삭임에 나는 눈을 떴다.
 앗, 여기는 나의 중학교 시절 도서실. 국어부장이라는 이유로 도서실 열쇠를 맡아서, 점심시간마다 숨어들던 곳이다. 헤르만 헤세, 루이제 린저 등의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는 먼지 쌓인 서가에서 보내는 나만의 시간은 정말 충만했다. 사교적인 성격이 못 되던 나는 거기서 책을 읽고, 과제를 하고, 편지를 쓰고, 로맨스소설 따위를 끼적였다. 물론 나는 왜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친해지지 못할까, 고민도 수없이 하면서.(잠시 내성적인 사람들의 변을 해보자면, 이들에겐 자신만의 세계가 너무 크다, 한마디로 자의식이 넘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한 관심도 지대하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도 엄청 의식한다. 그러다 보면 나의 세계와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사이 그만 쉬이 지쳐버리고 만다.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되어야 할 순간에, 지금 나의 상태와 감정과 생각과, 그쪽의 상태와 감정과 생각을 헤아리다가 그만 패닉에 빠진다. 그리고 아, 이런 소모적인 건 싫어, 이러느니 혼자 있을래, 라는 선언과 함께 시작되는 외로움의 악순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성적인 사람들의 수줍음을 사랑한다. 그들은 쉽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단정하지 않고,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자기에게 돌아가 그 순간의 자신이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지를 찬찬히 돌아본다. 서툴지만 예쁜 사람들…….)

 암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던 내게 책은 어떤 말을 걸었던가?
 아아. 그냥 조용히 내가 읽어주길 기다리며 자신의 몸을 내보이던 그 사랑스러운 속살을 기억한다. 강요하지 않는다. 그냥 한 자 한 자를 안고 내 앞에 있을 뿐이다. 첫사랑은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역시 도서실에서 단짝 친구와 수학 정석을 앞에 둔 채 흥분한 목소리로 외치던 내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나의 마에카와 다다시를 찾았어!”
 ‘마에카와 다다시’는 《길은 여기에》(《빙점》의 작가인 미우라 아야코의 자전 에세이)에 등장하는 저자의 소꼽친구 이름이었다. 초등학교 교사로서 일본의 가치들을 아이들에게 열정적으로 전달하며 살던 저자 아야코가, 패전을 맞으면서 자신이 믿던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폐결핵에 걸려 요양 생활을 하던 13년의 기억을 담은 책이다. 허무주의에 빠져 자신을 방치한 채 남성들과 문란한 관계를 갖기도 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던 그녀에게 초등학교 동창인 마에카와 다다시가 찾아온다. 이성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역시 같은 병을 앓고 있던 그는 자신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저자와 연인 관계를 꿈꾸지 않는다), 저자가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길'을 발견하길 원했던 그의 진심이 엿보이는 편지 한 구절에 나는 보라색 볼펜으로 밑줄을 그어놓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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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지하게 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을 보는 건 참으로 쓸쓸한 일이지요.
그것이 설사 아야짱이 아니더라도 쓸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저자는 일관되게 신을 조롱하고 늘 죽음을 꿈꾸지만, 어느 날 춘광대에서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며 자기 발을 돌로 내려치는 그의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아야짱, 그렇게 살다간 당신은 죽고 말아.”
 저자는 멍해져서 땅 밑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열심히 어딘가를 향해 먹이를 나르는 개미를 본다. 그리고 발견한다.
 ‘이 개미에겐 목적이 있다.’
 문득 마음이 쓸쓸해졌지만, 그녀의 가슴속에는 조용한 의지가 샘솟는다.
 ‘속았다 생각하고 이 사람이 사는 방식을 따라가 볼까?’
 춘광대의 그 장면으로 인해 저자가 어떤 빛을 발견했듯이 나 역시 그러했다. 대학에 떨어진 후 안 그래도 내성적이었던 나는 더욱더 사람을 사귀는 것에 두려움을 갖게 되었지만, 이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어떤 끈을 보게 되었다. 이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소녀와 가르치고 싶다고 생각하는 청년의 만남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릴케의 말을 연애의 신조로 생각했으며, 종교를 가지게 되었다. 그때 내가 동경하던 현실의 마에카와 다다시는 선교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나에게 빛을 보여줄 책들을 찾아다니며 이렇게 편집자로 살고 있다.

 “주인님의 마에카와 다다시는 그 후로 만나보셨나요?”
 고 군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분은 벌써 결혼을 하셨지. 근데 고 군은 중매도 하나봐?"
 "아, 주인님의 외로움을 달래드릴 방법을 찾는 게 저의 역할이니까요. 심신의 회복을 위해서는…….”
 “아, 고 군. 심신의 회복도 좋은데 어제 그 교정 끝내놓았어?”
 “네네. 다 끝나갑니다~”
 고 군은 팔 토시를 끼더니 의자 위로 올라앉았다.


카스테라님의 <외로워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 나를 사로잡은 문장들>
교정보는 고양이를 만나다
고양이 수첩
감정을 정리하는 어떤 방법에 관하여

2010/06/18 11:48 2010/06/1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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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눌프 | 2010/06/22 09:37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렇게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하시더니만, 그 이유가... ㅋ

  • 토트 | 2010/06/22 09:51 | PERMALINK | EDIT/DEL | REPLY

    갑자기 회사에 몽돌이와 고양이를 같이 키우고 싶은 생각이...^^
    고양이 삽화는 이재현 팀장님의 작품이에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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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사생활 #2 - 아기자기한 종로 반디앤루니스 :: 2010/06/16 11:20

대한민국 출판영업자라면 일주일에 적어도 1회 정도는 꼭 방문하는 종로통의 중요서점
반디앤루니스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상호는 서울문고 이다
브랜드명이 반디앤루니스…….
아직 서울문고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초반에 브랜드 런칭하면서 지하철, 라디오 광고 엄청 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름 전략적으로 티저광고를 펼쳤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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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티저광고들>

‘우리 서점들은 왜 그런 생각을 안했을까?’ 라는 카피다…….
반디앤루니스는 과연 그런 생각을 했을까?   충분하진 않지만 많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이 서점은 다른 서점에 비해 고객층이 젊은 여성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

종로점 외에도 여러 지점들이 있지만 거의 모든 지점들이 종합쇼핑몰 지하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이기도 하고 전체적인 인테리어 컨셉이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그리고 여성분들이 좋아할 만한 액세서리 코너가 사방에 너무 많이 포진되어 있고 잡지코너도 언제나 메인 출입구 옆을 차지하고 있다. (생각해 보니 잡지코너는 다른 서점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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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앞 광장모습 - 전에는 도서판매 위주였지만 지금은……. 보시다시피>


앞에서 지방서점의 어려움과 그들의 자구책에 대해서 짧게나마 이야기 했었다.
지방이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정말 눈물 나는 자구책을 내놓고 어렵게 살림을 꾸려 나가는  건 서울에 있는 대형서점들 같다.

비싼 임대료, 수 많은 직원 인건비 등등...
예상컨대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는 점장님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온 자구책들이.... 책 이외의 것들을 파는 코너를 늘리는 것!
서점 안에 재 임대 매장을 주는 형식이다... (안경점, 로제타스톤, 핸드폰 코너등등...)
이런 방식은 서울에 있는 대형매장에서 전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유는 전에도 말했지만...   ‘책만 팔아서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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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및 애플 악세서리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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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펼쳐진 출판사 광고 매대>

반디앤루니스는 직원들의 노력으로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여기저기 장치를 해 놨다.
베스트셀러 코너 일부도서들에는 직원들의 짤막한 서평들이 붙어있다.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기대가 되는 신작들의 대한 홍보.

좋은 책이지만 각광받지 못하고 있는 불운한 책들에 대한 애정 어린 서평들…….
책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 외에도 매일 신문 스크랩 작업을 진행하여 주요 신문에 서평이 나온 도서나
화제가 된 도서들을 따로 진열해 주는 매대가 있다.
일부 인기 작가의 책 이외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양서들을 위한
직원들의 끈질긴 책사랑 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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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도서 진열 매대>

현재 한 잡지사에서는 아래와 같은 이벤트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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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너무 어렵다 …….

현재 한 출판사에서는 아래와 같은 이벤트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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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쉽죠잉~

두서없지만 이 말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다.

난 반디앤루니스를 많이 사랑한다.
무조건 사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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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6 11:20 2010/06/1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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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맹이 | 2010/06/22 13: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어렵다..쉽다...한 출판사의 이벤트가 정말 쉽군요 ㅋㅋㅋ

    • 희야 | 2010/06/25 09:58 | PERMALINK | EDIT/DEL

      반디앤루니스는 고급스러운 분위기 자체가 마케팅인것 같아요 ㅎㅎ

  • 도연명 | 2010/06/27 14:3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 티저광고 오랜만에 보네요..^^

    • 푸근한 냉소 | 2010/07/16 09:40 | PERMALINK | EDIT/DEL

      저도 저 사진 찾느냐고 고생좀 했슴다 ^^

  • 읽은이 | 2010/07/22 13:4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애프터스쿨 사인회를 해서 사랑한다는거...였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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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교양] 고마워요 철학부인 :: 2010/06/1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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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럴 때마다 나는, 철학에게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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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르 졸리앙 지음 | 윤미연 옮김 | 288쪽
도서출판 푸른숲 | 편집_  문학교양팀  이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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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전에 8
철학 부인에게 12
나는 누구입니까 27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69
희망이 없으면 두려움도 없습니다 123
우리는 살아 있기 때문에 죽습니다 165
우리는 자유롭게 태어난 게 아니라 의지로 자유로워집니다 199
운명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 그것은 굴복이 아닙니다 245
나의 수신자들에 대한 간단한 정보 269
옮긴이의 글 275
주석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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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그러운 여인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철학, 그리고 자신을 변화시키고 길러준 철학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풀어 쓴 독특한 철학 에세이 《고마워요, 철학 부인》이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출간되었다. “자기의 건축―철학을 이용하는 한 방법”이라는 원제처럼 이 책은 장애를 운명으로 여기며 저자 알렉상드르 졸리앙(Alexandre Jollien)이 자기를 부정하고 세상을 외면하던 저자가 철학을 통해 어떻게, 얼마나 달라지게 되었는지를 드러내 보여주는 철학 에세이다. 1975년생으로 서른둘의 나이에 이 책을 쓴 저자는 자신의 삶과 맞닿은 깊은 철학적 성찰을 편지 형식으로 한껏 드러내면서 우리에게 철학적 재미와 동시에 우리 역시 현실을 곰곰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5세기 로마 출신의 철학자 보에티우스는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다. 박학다식과 유능함으로 왕의 고문 자리까지 올랐지만 그의 능력을 질시한 이들에게 기회주의자로 몰려 반역죄의 누명을 쓰게 된 것이다. 감옥에서 그는 《철학의 위안》을 쓴다. 철학 부인이 그를 면회하러 찾아와 철학자들이 만든 치료제들을 그에게 상기시켜주고 철학 부인과 내면의 대화를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고마워요, 철학 부인》은 이와 비슷하게 편지의 형식에 자신의 철학 여정을 담은 책이다. 편지의 수신자는 지은이가 너무나도 많은 빚을 졌다고 말하는 철학 부인과 ‘성가신 애인들’, 그리고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변화시키고 길러준 철학자들이다. 즉 프랑스어에서 여성 명사인 철학(la philosophie), 공포(la frayeur), 죽음(la mort)을 의인화하여 그들에게, 또한 철학자 보에티우스, 에피쿠로스, 쇼펜하우어, 에라스무스, 스피노자, 에티 힐레숨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알렉상드르 졸리앙의 《고마워요, 철학 부인》은 우리에게 극복하려 발버둥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를 얻은 한 인간의 소박하고 뜨거운 고백으로써 감동을 선사한다. 또한 그를 구축한 철학자들을 통해 철학이 난해하고 근엄한 현학의 세계가 아니라 내 삶을 보듬는 위안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하게 해준다. 이 책은 졸리앙과 함께 떠나는 철학 여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질문하여 지혜를 구하는 삶의 아름다움, 즉 철학과 철학하는 삶의 매력으로 인도하는 담백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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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거의 무게, 죄의식, 두려움, 일상의 속박들 때문에 자유롭게 앞을 향해 나아가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나의 이러한 무능함 때문에 나는 철학이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지, 철학이 내 눈앞에 보여주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계속 자문하고 자세히 검토해보려는 것입니다. (8~9쪽)

내 생각으로는 철학자의 저서를 읽는 것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고 지혜를 일깨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어떤 책을 펼칩니다. 그러면 어떤 목소리가 나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들려줍니다. 나는 독자 여러분에게도 이 내밀한 대화를 체험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의 안내인들과 함께 밟아나가는 여정을 담은 이 편지글을 쓴 것입니다. (10쪽)

나는 종종 이렇게 자문했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내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하지만 당신은 온화하면서도 인내심 있게 나의 관점을 이렇게 바꾸어놓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금 여기서 행복해질까? 이제 멀리 있는 행복을 좇으려는 욕망을 과감히 버리고, 행복이 주어지는 그곳에서 현재의 행복을 음미하며 즐겨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게 아주 유리한 패는 바로 선(善), 즉 행복에 다다르기는 아주 쉽다는 것입니다. (에피쿠로스에게_70쪽)

하지만 나의 선택들이 내가 모르는 많은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 그것은 분명 포기와는 다른 것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내가 완전히 변화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내 욕망들이 자유로운 기쁨을 향해 나아가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당신이 현실과 완벽함을 동일한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당신의 《에티카》를 대충 부분적으로 읽음으로써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을지도 모를 위험한 숙명론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나는 그런 잘못된 독서법으로 자기만족과 오만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논거들을 만들어내기까지 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완벽하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스피노자에게_212쪽)

나의 스승 중 한 분인 스피노자는 소박한 삶을 살다가 숨을 거두었다. 나는 그가 종종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자유로운 사람은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며 죽음보다 삶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생각한다.” […] 스피노자는 내가 너를 생각할 때 나를 괴롭히는 현기증 나는 불안을 더 이상 피하지 말라고 권한다. 그는 인생을 그 자체로 사랑하는 법, 네가 불어넣는 공포 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사랑으로 즐겁게 존재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환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기가 싫어하는 것들을 억지로 먹는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은 먹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죽음을 두려워하여 애써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보다 삶을 더 잘 향유한다.” 스피노자 덕분에 나는 나의 삶 속에서 너에게 더 정당한 자리를 주려고 노력할 수 있다. (죽음에게_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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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알렉상드르 졸리앙(Alexandre Jollien)
1975년 스위스 사비에스에서 태어났다. 스위스 프리부르 문과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였고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고대그리스어를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철학과 저술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책 《약자의 찬가》는 몽티용 문학철학 상과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지원하는 문학창작 부문 몽타르 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출간된 《인간이라는 직업》 역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탯줄이 목에 감겨 질식사 직전에 기적적으로 태어났지만 후유증으로 뇌성마비를 가지게 되었다. 그로 인해 불편과 고통, 난관에 수없이 부딪히고, 내면에 잠자고 있는 인식에 대한 강렬한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 그는 철학에 빠졌다. 졸리앙에게 철학은 ‘philein(사랑하다)’과 ‘sophia(지혜)’, 즉 ‘사랑이 담긴 겸허함’이다. 그는 철학자란 지혜를 아직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 역시 고통을 덜고 구원을 얻는 방법으로서 철학을 만나지만, 철학이 불행을 덮어 가리는 유약이 아니라 세상을 생각하고 이해하고 깊이 연구하는 한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다.

옮긴이 | 윤미연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캉 대학에서 공부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가면을 쓴 과학》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못했다》 《나의 라디오 아들》 《첫 번째 부인》 《홍당무》 《구해줘》 《피카소》 《뒤피》 《장미》 《옥소도시》 《자연은 살아 있다》 《제2의 순수》 《초록색 정원에서 보내온 편지》 《불타는 세계》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마지막 숨결》 《라디오 국어 사용자쇼》 《우리는 함께 늙어갈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 《어느 완벽한 2개 의 죽음》 《스튜디오 필로》 등이 있다.

2010/06/15 16:45 2010/06/1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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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는 다만 거들 뿐 - 사랑 좀 해본 편집자의 기획 일지 #2 :: 2010/06/15 14:11

손발이 오그라들어요
그렇다. 이것은 굴욕이다. 히스 레저의 사진을 잭 니콜슨에게 내밀어 사인을 해달라니. 저 눈빛을 보라. 그러나 굴욕감을 느낀 게 잭 니콜슨뿐이었을까. 저 사진과 펜을 내민 저 저 사람, 저 사람도 집에 가서 엉엉 울었을지도 모른다. 아, 잭 니콜슨과 히스 레저를 구분하지 못하고 들이미는 엄청난 실수를 하다니 하면서 엉엉 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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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 사진의 ‘손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손발이 오그라든 이유도 편집자 일을 하면서 제안의 과정 속에서 실수를 종종 하기 때문이다. 주전공이 전혀 다른 분야인 사람에게 이런 거 써보면 어떨까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분의 포지션과 강점이 A인데 시장에서 원하는 게 B니 거기에 맞게 써달라 되도 않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그럼 B처럼 쓸 수 있는 사람을 찾으면 될 일이 아닌가. 게으른 탓일 테다). 

첫 책의 쌉싸롬한 기억
첫 책을 만들 때는 특히 중요한 실수가 많았다.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교정 문제. 저자는 나름 자기만의 문체가 있는데 비문이라면 고치겠지만 그런 것도 아닌데 문장에 일일이 손대는 것을 거부했다. 나중에야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요즘엔 편집자들마다 말랑말랑하게 써달라고 조르는데, 저자에 맞게 잘 포장해서 내는 게 아니라 모든 저자를 한 가지 틀에 맞춰서 책을 만드는 걸 보니 참, 놀랍다.”

더 중요한 문제는 구성이었다. 사실 그 책은 원고가 거의 완성된 상태에서 계약을 했다. 그런데 시의성 있는 내용인데다 저자의 지명도도 있으니 현실 경제 문제를 비판하는 원래 원고에 경제학 용어 설명이나 경제학 이론을 덧붙이면 좋겠다는 의견. 그러나 저자 입장에서 그것은 군더더기일 뿐이라며며 반대했다. 결국은 저자가 원하는 방향대로 진행이 되긴 했으나 저자도 심기가 불편하고 편집자도 일정과 상황에 밀려 지고 들어갔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에서 책이 나오게 되었다.

책이 잘 나오고 안 나오고를 떠나서 그 사람이 할 수 없는 것, 하기 싫은 것을 권하는 일은 고역이고 또한 무례함, 무지함이다. 그것이 특히 어떤 기준을 정해놓고 그 사람을 내 기준에 끼워 맞추려 할 때 더더욱 슬픈 일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을 할 때 더욱 크게 드러난다.

사랑은 독립성에 관한 상호동의이다
사랑에 관한 개똥철학은 무수히 많지만, 미처 사랑을 해보기도 전에 꽂혔던 말이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중앙도서관을 기웃거리다 어느 서가에서 발견한 프랑스 소설에서였다. 68세대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는데 제목도, 작가도 기억나지 않지만 첫 문장만은 아직 선명하다. “사랑은 서로의 독립성에 관한 상호동의이다.” 사랑이라 함은 자고로 말랑말랑하고 몽글몽글한 말들이어야 하는데 독립, 상호, 동의라는 말로도 정의할 수 있구나, 우와. 괜히 멋져 보였다. 그러나 폼이라도 잡으려고 “이 말 멋있지 않냐?”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꺼내면 십중팔구 “그럴 거면 뭐하러 사귀냐. 놔주지” 하는 대답이 돌아오게 마련이다. 사랑을 하되 독립성을 인정하기. 참 어려운 일이다.

결혼을 하고 보니 그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색시에게 얼마 전에 더 재미있는 일을 하는 회사에서 더 좋은 조건에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걱정거리는 지금보다 더 바빠질게 뻔하다는 것. 안 그래도 주중에는 자는 시간 외에는 일만 하는데 더더욱 여유는 사라지겠구나. 둘이 소맥을 말아 마시며 했던 고민의 요체는 그것이었다.

나나 그분이나 각자 한두 번씩 정말 하기 싫은 일을 피해, 또는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택하기 위해 인생 경로를 뒤튼 경험이 있었다. 그때마다 서로 말린 적은 없었다. “더 재밌을 것 같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따위를 묻고 답이 예스라면 재밌을 거라는데, 하고 싶다는데 말릴 이유는 딱히 없었다. 하고 싶은데 못하는 것은 당사자가 감내해야 하는 일이고 해야 하는데 못하는 것은 상대방에서 감당하고 대신 해주면 될 일이다. 상대방의 선택을 인정하는 것, 그것을 신뢰하는 것이 바로 독립성에 대한 동의가 아닐까.

편집자는 다만 거들 뿐
앞서 말한 책에서 실수했던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을 것이다. 내가 감당하지도 못할 거면서 더 잘 팔릴 수 있다는 기대로 이 사람이 왜 책을 쓰려 하는가,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했다. 최후의 기획자는 저자, 편집자는 슬램덩크의 명대사 “왼손은 다만 거들 뿐”이라는 말처럼 바로 그 왼손 역할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 만드는 책은 그런 실수를 피하려 애쓰는 중이다. ‘대한민국 20대에 관한 인류학적 보고서’라는 부제를 달고 집필 중인 책이다. 저자는 20대와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고 활동하는 활동가 겸 학자다. 저자는 한 꼭지 한 꼭지 원고를 메일로 전송 중이다. 그러면 나는 꼭지마다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정리해서 저자에게 전달하는 식으로 원고를 진행하고 있다. 그때마다 고민의 기준을 다시 되새긴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가 하려는 것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는가.

*추신.

정신없는 일필휘지
용두사미 어리둥절
이건 무슨 글일까요
사죄하는 마음으로
시 한 수를 바칩니다


그의 행복을 기도드리는

신동엽

그의 행복을 기도드리는 유일한 사람이 되자.
그의 파랑새처럼 여린 목숨이 애쓰지 않고 살아가도록
길을 도와주는 머슴이 되자.
그는 살아가고 싶어서 심장이 팔뜨닥거리고 눈이 우물처럼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나의 그림자도 아니며 없어질 실재도 아닌 것이다.
그는 저기 태양을 우러러 따라가는 해바라기와 같이 독립된
하나의 어여쁘고 싶은 목숨인 것이다.
어여쁘고 싶은 그의 목숨에 끄나풀이 되어선 못쓴다.
당길 힘이 없으면 끊어버리자.
그리하여 싶으도록 걸어가는 그의 검은 눈동자의 행복을
기도드리는 유일한 사람이 되자.
그는 다만 나와 인연이 있었던
어여쁘고 깨끗이 살아가고 싶어하는 정한 몸알일 따름.
그리하여 만에 혹 머언 훗날 나의 영역이 커져
그의 사는 세상까지 미치면 그때
순리로 합칠 날 있을지도 모를 일일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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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5 14:11 2010/06/1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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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맹이 | 2010/06/15 15:0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 분...알고 보니 시 읽는 사람이었다는..ㅋㅋ 그나저나 손 내미는 법을 잊어버린 나는 어쩌나..ㅋㅋ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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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서점순례] 뉴욕 최대의 희귀본 중고 서점 - Argosy Books :: 2010/06/14 14:57

“오랜만이네. 언제 뉴욕에 다시 왔어?”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예전에 안면을 튼 나오미가 묻는다. 뉴욕에 있을 때면 일주일에 한 번씩은 아거시 서점을 들렸다. 나오미는 서점 취재를 하고 있다는 말에 아거시 서점을 연 아버지  자랑을 늘어놓는다.

“우리 아버지(루이스 코헨)는 루즈벨트 대통령과도 왕래를 했어. 재클린 케네디 여사는 백악관 도서관을 만들 때 우리 아버지를 찾았지. 그뿐인 줄 알아? 미국 유수의 대학 도서관을 만드는 것도 아버지가 도와줬어. 어떤 책을 소장해야 하는지 조언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필요한 책은 어떻게 해서든 구해다 줄 정도였으니까. 처음엔 중고 서점으로 출발했지만 차차 미국 문학 초판본과 유명 작가들의 사인본, 오래된 지도와 그림 등을 판매하면서 책 수집가들의 명소로 자리 잡게 되었어. 가게는 우리 세 자매가 물려받아서 운영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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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매는 어린 시절 남들은 평생 가도 보지 못할 책들을 지긋지긋하게 봤을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줄곧 사이좋게 서점을 지키는 것을 보면 책에 대한 애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도 손자손녀를 거느린 할머니가 되어버렸네. 근처에 있던 몇몇 중고 서점은 모두 문을 닫아버리고 우리 서점만 남았지.”

중고 서점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최근에 나왔다가 되팔려온 중고 책을 파는 곳으로 소설을 위주로 다양한 책을 반값 정도에 살 수 있는 곳이고, 또 하나는 희귀 중고 서적Rare & Used Books을 파는 가게로 초판본이나 사인본을 살 수 있는 곳이다. 이 두 가지를 겸하는 중고 서점이 대부분이지만 서점 나름대로 중심을 두는 것이 있다. 스트랜드 서점이 일반적인 중고 도서를 취급한다면 아거시 서점은 주로 희귀 도서를 취급한다. 아거시 서점은 특히 문학 초판본을 귀하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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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원들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초판본이나 마크 트웨인의 사인본 같은 희귀 도서를 찾기 위해 책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다. 책상 위에는 작은 글씨나 사진을 살펴보기 위한 돋보기와 스탠드가 놓여 있다. 책 속의 흥미로운 사진은 따로 분리되어 팔리기도 한다.

아거시 서점에는 수동으로 움직이는 구식 엘리베이터가 있다. 직원이 직접 운전해야 하는 덜컹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오래된 지도와 그림을 판매하고 5층에는 일반 중고 서적을 판매한다. 다른 층에는 약속한 손님에게만 보여주는 희귀본 도서나 소장품이 있을 것이다.

뉴욕 최대의 희귀본 중고 서점 Argosy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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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East 59th St. ⑮ G5
www.argosybooks.com

글ㆍ사진 | 서진(북원더러, 소설가)

2010/06/14 14:57 2010/06/1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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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뜨인돌 | 2010/06/14 18: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 우리도 저런 중고서점이, 잘되면, 얼마나 좋을까요??ㅠ
    중고서점이라기에는 너무 고풍스럽게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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