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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비전도 철학도 없는 2009년 세제개편안 :: 2009/08/29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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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살림이든 나라 살림이든 버는 것을 줄이고 쓰는 것을 늘리면 그 결과는 너무나도 뻔하다. 돈 달리는 나무를 갖고 있지 않은 다음에야 적자 살림을 면치 못하게 되는 것이다. 4대강 정비사업이다 뭐다 해서 재정지출을 천문학적 규모로 늘리면서 조자룡 헌 칼 쓰듯 세금을 깎아주었으니 나라 살림에 큰 구멍이 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버는 것을 늘리든 쓰는 것을 줄이든 어느 한쪽에서라도 단속을 해야 할 텐데, 나 몰라라 손을 놓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걱정스럽다.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 정부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우리는 좋은 편이라는 변명만 늘어놓는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낫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안심할 수 없는 일이다. 재정 건전성에 문제가 있는 나라들이 그것 때문에 정책 수행에 얼마나 큰 제약을 받고 있는지를 똑똑히 보아야 한다. 국가채무의 수준이 OECD 평균치를 훨씬 더 밑돈다는 사실이 방만한 재정 운영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최근 우리가 겪은 두 번의 심각한 경제위기에서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었던 것은 건전한 재정이었다. 만약 재정 건전성에 문제가 있었다면 정부의 행동반경이 무척 좁아졌을 것이고, 이에 따라 위기 극복도 훨씬 더 어려운 일이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그 문제만은 없었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 신축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방만한 재정운영이 지금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또 다른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손발을 꽁꽁 묶어놓는 결과를 빚을지 모른다.

정부도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곧 국회에 제출될 ‘2009년 세제개편안’을 통해 세금을 더 걷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로 인한 세수 증가분이 앞으로 예상되는 재정적자를 메우기에 턱없이 모자랄 뿐 아니라, 그 내용을 보면 ‘눈 가리고 아웅’이란 말을 연상케 한다. 보수 언론은 부자 증세로 세수 증대를 꾀한다고 대서특필하고 있지만, 마지못해 몇푼의 세금 더 내게 하면서 부자 증세라고 말하는 것은 낯 간지러운 일이다.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부자들의 조세 부담을 높이는 대표적인 조치로 선전하고 있는 것은 1억원 이상 고소득자에 대한 근로소득공제 축소다. 이로 인해 연소득 1억원인 사람의 소득세가 48만원 정도 늘어나지만, 2008년 세제개편안에 따라 세율이 2% 포인트 낮아진 것만으로도 이미 2백만원 가량의 세금이 절약된 상황이다. 감세폭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세금부담 증가를 갖고 부자 증세니 뭐니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빗발치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부자 감세를 밀어붙이던 정부가 이 정도로나마 뒷걸음질 친 이유가 자못 궁금하다.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지나쳤다고 느꼈던 것이 아닐까라고 짐작한다. 그런데 아직도 부유층에 대한 소득세 경감이 우리 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는지 묻고 싶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무슨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경제이론을 모두 동원해 봐도 별다른 답이 나올 것 같지 않다.

소득세를 깎아주면 사람들이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는 것은 일종의 신화에 불과하다. 예전의 스칸디나비아 국가처럼 최고 소득세율이 90%에 이를 경우에는 세율의 대폭 인하가 그런 효과를 가져다줄지 모른다. 그러나 35%를 33%로 낮춰준다고 해서 사람들이 분발해 더 열심히 일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고소득자 스스로 이 사실을부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부유층에 대한 소득세 감세는 아무 효과 없이 세수만 축내는 결과를 빚을 것이 너무나도 뻔하다.

법인세의 경우에도 거의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법인세율 인하로 인한 대규모 세수 결손을 임시투자세약공제 폐지와 최저한세 인상이라는 미봉책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정부도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절감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법인세율을 몇 % 포인트 내려준다 해서 투자를 꺼리던 기업이 갑자기 투자를 한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까? 이제는 정부도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무언지 알만도 한데, 아는 척도 하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나 역시 장기적으로 법인세율 인하를 추진해야 한다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법인세율을 대폭 낮출 때가 아니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대규모 재정지출이 필요한 시점에서 대규모 세수 결손을 가져올 정책은 삼가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경제 전망이 지극히 불투명한 상황에서는 법인세율 인하가 이렇다 할 긍정적 효과를 내기가 더욱 어렵다. 별 긍정적 효과를 내지도 못하면서 재정 건전성만 해칠 정책이라면 깨끗이 포기하는 것이 상책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타이밍을 잘못 맞추면 형편없는 정책이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3주택 이상 다주택자에 대한 전세보증금 과세방안 역시 실질적 의미에서의 부자 증세라고 보기 힘들다. 임대사업과 관련해 발생한 이자를 비용으로 공제하고 나면 과세대상이 될 소득이 거의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주택자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기만 할뿐, 실질적으로 그들이 내는 세금은 아주 적은 금액일 것이다. 다주택자들이 양도소득세 중과 한시 폐지로 인해 얻는 이득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서민친화적 정책처럼 보이기 위한 ‘사탕발림’의 대표적 사례라고 생각한다.

2009년도 세제개편안에서는 조세정책에 대한 그 어떤 뚜렷한 비전이나 철학을 찾아볼 수 없다. 무엇보다 우선 감세 기조를 계속 끌고 나갈 것인지 아니면 포기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읽을 수 없다. 감세 기조를 계속 밀어붙일 듯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왜 부분적으로 후퇴라고 볼 수 있는 조치를 취했는지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없다. 예를 들어 정부가 소득 1억원 이상 고소득자에 대한 근로소득공제의 축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논리적 근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디를 보아도 납득할 만한 답을 찾을 수 없다.

재정 건전성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볼 때도 2009년 세제개혁안 같은 땜질식 처방은 결코 만족스러운 해법이 될 수 없다. 배 밑바닥에 큰 구멍을 뚫어 놓고 차오르는 물을 사발로 퍼내려고 하는 듯한 느낌이다. 감세가 마치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듯한 시대착오적 믿음을 버리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더군다나 경기 활성화를 구실로 마음 놓고 돈 보따리를 풀어헤칠 태세라 걱정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정부는 4대강 정비사업으로 인해 다른 지역개발사업이 위축된다는 지적에 대해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다짐하고 있다. 재정지출을 크게 늘리지 않고서는 다른 사업에 영향이 가지 않게 만들 방법이 없다. 결국 이 다짐은 재정지출을 크게 늘리겠다는 의도를 에둘러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세수 감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껏 돈을 쓰겠다는 그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 정부는 출범 전부터 ‘작은 정부가 좋은 정부’라는 구호를 줄기차게 부르짖어 오지 않았는가?

머지않은 장래에 재정 건전성 문제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심각한 문제로 떠오를지 모른다. 사실 건전한 재정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역대 정부가 애써 쌓아놓은 업적이다. 입만 열면 ‘잃어버린 10년’을 말하는 사람조차 지난 두 정부가 재정 건전성만은 다치지 않았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현 정부도 역대 정부가 공들여 쌓아놓은 탑을 일거에 무너뜨렸다는 비난을 받고 싶지는 않을 것임이 틀림없다. 아직은 괜찮다고 낙관하지 말고, 재정 건전성을 해칠 만한 일은 스스로 삼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경제학자 이준구 교수님 홈페이지 http://jkl123.com/ 

2009/08/29 13:40 2009/08/29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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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시장주의자의 고백 :: 2009/08/2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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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쓴 죄로 ‘좌빨’이란 칭호를 얻게 되었지만, 저는 스스로를 시장주의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류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에게 시장의 힘에 대한 신뢰는 마치 등록상표와도 같다고 말할 수 있지요. 솔직히 말해 진보의 성향을 갖는다고 하기에는 시장의 힘에 대한 저의 신뢰가 너무 큰 편입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시장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장주의자로서의 제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한미 FTA - 걸어 볼 만한 도박인가?>입니다. 자유로운 무역에서 얻는 이득은 이것이 갖는 문제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믿음이야말로 시장주의자에게는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것입니다. 이 글에서 저는 그 믿음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스스로 시장주의자임을 고백한 셈입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한미 FTA에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걸어볼 만한 도박이라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제가 거리를 두고자 하는 것은 시장근본주의, 즉 시장의 힘에 대한 맹신입니다. 시장은 결코 완벽한 제도가 아닙니다. 시장의 실패를 가져다주는 수많은 요인이 존재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미국의 금융위기에서 잘 드러났듯, 시장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도록 방치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입니다. 저는 시장의 힘을 적절히 활용하되 어떤 선을 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믿습니다.

<미국 금융위기의 교훈>은 시장근본주의자들에게 던지는 도전장입니다. 미국 금융위기를 통해 우리는 시장의 탐욕이 빚은 무서운 결과를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장근본주의자들은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금융위기가 정부의 실패로 인해 발생했다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솔직하게 시장의 한계를 인정하는 용기를 발휘하도록 촉구하는 데 이 글의 목적이 있습니다. 

<말에게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 <짜증나는 차량 5부제>에서도 저의 시장주의적 성향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참여정부 때 쓴 글이지만 제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아직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어떤 현안문제가 있을 때 정부는 규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현 정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역대 정부가 모두 그런 경향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정부가 걸핏하면 규제로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것은 편의주의에 젖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규제보다는 가격 메커니즘을 이용하는 정책이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규제가 확실한 효과는 내를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부작용을 가져오기 때문에 좋은 정책이 되지 못합니다. 결국 시장의 힘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규제를 선호하는 태도가 나오는 겁니다. 현 정부가 좋은 예지만, ‘시장친화’를 부르짖으면서 규제를 일삼는 태도는 사이비 시장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주택시장이나 교육문제와 관련해 정부 개입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것을 보고 제가 ‘큰 정부’를 선호한다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언제, 어느 경우에서나 큰 정부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박, 마약, 그리고 비만세>가 그 좋은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 저는 정부가 ‘큰 형님’(big brother) 노릇을 하는 데 대해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도박과 마약을 통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똑같은 도박과 마약인데 그대로 놓아두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카지노, 복권, 경마 같은 것은 도박의 일종인데도 전혀 통제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일관성의 결여를 어떻게 정당화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일관성 없는 정책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요.

또한 정부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시시콜콜 간섭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도박과 마약에도 자유로운 선택의 여지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시시콜콜 간섭하다가는 정부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말 것까지 통제하는 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사실 정부가 비만세를 부과한다는 것은 이미 그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글에서 저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본다면 보수적 성향의 자유주의자(libertarian)에 가까운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저를 ‘큰 정부’의 지지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저는 어떤 정책이 보수성향의 것인지 아니면 진보성향인 것인지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정책은 그것이 갖는 합리성에 의해 궁극적 평가가 내려져야 한다는 것이 제 신념입니다.

이 장의 나머지 글들은 경제학자로서의 제가 수필을 쓰는 기분으로 쓴 글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도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경제학자들은 수필을 써도 이렇게 골치 아픈 것만 쓴다고 말하실지 모릅니다. 경제학의 별명이 ‘우울한 학문’(dismal science)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겠지요? 그러니 경제학자인 저도 늘 우울한 글만 쓸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9/08/26 14:42 2009/08/2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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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시지프스의 바위, 교육 :: 2009/07/2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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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어디냐고 물으면 ‘교육’이란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자식 가진 사람 치고 교육 때문에 속을 썩인 경험이 없는 경우는 거의 없을 테니까요. 그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고도 좀체 개선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으니 걱정만 쌓일 따름입니다. 도대체 언제나 되어야 교육이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될지 막막한 심정입니다.

우리 교육에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혁신의 구체적 내용과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 문제처럼 사람들의 의견이 각양각색인 경우가 드물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어린 학생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어느 쪽 의견이 맞는지 검증해 볼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답이 없는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는 절망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정부와 보수진영 사람들은 시장원리의 도입만이 우리 교육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서로 경쟁하게 만들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풀린다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를 효율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주듯, 교육에서도 그와 같은 보이지 않는 손의 마법이 발휘될 수 있다는 믿음이겠지요.

그들은 ‘3불정책’이 우리 교육을 망치는 주범이라고 말합니다. 고등학교들 사이에 학력 격차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이를 무시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청을 높입니다. 대학이 자기 학생을 마음대로 뽑지 못하게 만드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불평합니다. 아주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왜 3불정책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것의 폐지가 어떤 사회적 파장을 가져올지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사회는 3불정책에 대해 너무 가혹한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 현실에서 3불정책은 어쩔 수 없이 채택할 수밖에 없는 고육책입니다. 그런데도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는 생각에서 <억울하게 매 맞는 ‘3불정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3불정책이 모든 문제의 근원인 양 말하지만, 아무리 따져 봐도 결국 그 방법밖에 없다는 점을 납득시키고 싶었습니다.

3불정책이 버젓이 살아 있던 참여정부 말기에도 대학들은 교묘한 수단으로 이를 피해갔습니다. 면접이나 논술고사를 감추어진 본고사의 형태로 변질시키는 동시에, 내신 반영률을 현저히 낮춰 고교등급제 금지의 실질적 무력화를 꾀했습니다. 저는 이런 꼼수를 쓰는 대학들의 무책임한 태도에 참기 힘든 분노를 느꼈습니다. 대학이 갖는 사회적 책무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런 무책임한 일은 감히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신, 수능과 관련된 오해 그리고 진실>에는 그와 같은 제 분노가 여과 없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은밀하게 내신 반영률을 낮추는 편법을 쓰는 대학들의 무책임한 태도를 강한 어조로 비판하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내신성적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현실에서 고교등급제를 채택하는 것은 교육자의 양심에 어긋나는 일임을 깨우쳐 주고 싶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대학들은 더 이상 꼼수를 쓸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대학들이 마음대로 입시제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니까요. 또한 고교평준화의 기본 틀을 부수려 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고교등급제 금지도 의미를 잃게 되었습니다. 보수진영의 오랜 꿈이었던 자율과 경쟁이 3불정책을 몰아내고 새로운 교육의 기본 규칙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율과 경쟁이 보이지 않는 손의 마법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 그것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기대입니다. 난마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우리 교육의 현실에서 자율과 경쟁은 결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 교육의 현실에서 섣부른 자율과 경쟁은 더 큰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최근 고려대학교의 수시모집을 둘러싼 극도의 혼란은 앞으로 닥칠 더 큰 혼란의 서주곡에 불과합니다.

저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개혁 구상에 본질적인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선, 특정계층의 이해관계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개편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고 싶습니다. 그 특정계층이 부유층이라는 것은 구태여 밝힐 필요가 없겠지요. 뿐만 아니라 무엇을 위해 기존의 교육제도를 뜯어고치려 하는지도 분명하게 납득할 수 없습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교육개혁인가?>에는 이와 같은 제 의문들이 조목조목 제시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의문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영어교육을 그토록 중시하느냐는 것입니다. 세계화의 시대에 영어교육의 중요성이 날로 커진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영어교육에 대한 편애는 누가 보아도 도에 넘칩니다. 그리고 영어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에도 문제점이 많습니다. 초등학생에게까지 영어몰입교육을 실시하겠다는 희한한 발상이 그 좋은 예입니다.      

영어몰입교육이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난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고집을 꺾으려 들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 했는데요. 그러나 정부의 영어교육 강화방안에는 아직도 많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영어 공교육 강화 - 무엇이 문제인가?>는 좀 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안대로 밀고 나간다면 수많은 부작용이 발생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필요 이상으로 영어를 중시하는 풍조는 거의 사대주의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이런 사대주의는 정부뿐 아니라 언론기관과 대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력 일간지가 대학을 평가할 때 영어 강의의 비중을 평가항목 중 하나로 포함시키는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실제로 영어 강의가 얼마나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렇게 하지 못할 텐데요.

영어 강의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교육의 질이 향상된다는 것은 실상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아니 실상을 잘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언론기관이든 대학이든 그렇게 뻔한 사실을 모를 리 없으니까요 <영어 강의가 대학교육을 망친다>는 이와 같은 대학의 위선을 고발하려는 의도에서 쓴 글입니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저까지 입을 다문다면 진실은 영원히 파묻혀 버리고 말지 모릅니다.

어찌 되었든 우리 교육은 건국 이래 가장 큰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 변화가 과연 어떤 결과를 내게 될지는 아직 점치기 어렵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훨씬 더 클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공교육 충실화는 여전히 이룰 수 없는 꿈으로 남는 한편, 어린 학생들이 입시지옥에서 헤매는 딱한 상황은 한층 더 심화될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이런 제 예측이 틀린 것으로 드러나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시장주의자의 고백> 에서 계속

2009/07/23 17:21 2009/07/2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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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4대강 정비사업 - 역사 앞에 떳떳할 수 있나? :: 2009/06/15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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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는 ‘4대강 정비사업’에 예산을 4조 7천억원이나 더 늘려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처럼 사업비가 크게 증가한 것은 보의 숫자를 4개에서 16개로, 그리고 토사 준설량을 2억 2천만 톤에서 5억 6천만 톤으로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하천 환경 정비 구간을 760km에서 870km로 늘리는 동시에, 4대강 자전거 길도 1,411km에서 1,713km로 늘릴 예정이라고 한다.

이로써 4대강 정비사업에 투입될 자금은 무려 18조 6천억원이나 되어 가히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사업이란 이름값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4대강 연계사업’을 준비하고 있어, 각종 부대사업까지 포함한 총 소요 예산은 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많은 돈을 어디서 끌어올 것인지도 걱정이지만, 엄청난 돈을 뿌려댄 결과가 고작 대규모 환경 파괴에 그치지는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막무가내로 4대강 정비사업을 밀어붙이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를 연상하게 된다. 이 사업의 실체에 대해, 그리고 이 사업의 효과에 대해 수많은 전문가들이 의문을 제기한 바 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국민의 소리에 이렇게 철저하게 귀를 닫아도 되는 일인지 의아스러울 따름이다. 여론에 연연치 않겠다는 소신 때문인지 몰라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태도가 자못 위태롭게 보인다.

지난 해 4대강 정비사업이란 말이 처음 나올 때부터 이것이 감추어진 한반도대운하사업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4대강 정비사업의 골격을 보면 이런 의심을 사고도 남음이 있다. 투입되는 예산의 규모며 보의 숫자, 토사 준설량 등 많은 측면에서 불안할 정도로 대운하사업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대운하사업으로 둔갑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떨쳐내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운하사업은 하지 않는다.”는 똑부러진 한 마디가 나온 적이 없다. 구렁이 담 넘어 가는 듯한 미적지근한 답변으로 얼버무려 왔을 뿐이다. 그런 대답으로 국민이 설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마어마한 착각이다. 정부가 국민을 속이려 든다는 의심만 더욱 강해질 뿐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경제성도 없으면서 환경에 대재앙을 가져올 대운하사업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4대강 정비사업이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수질 개선을 가져올지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사업이 수질 개선이 아닌 악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근거가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와 같은 의문을 해소시켜줄 그 어떤 설득력있는 해명도 들어본 적이 없다. 수질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해 왔을 뿐이다.

현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소통의 부족을 드는 사람이 많다. 4대강 정비사업과 관련해서도 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그렇게 큰 토목공사를 벌이려 하는 만용에 기가 막힐 지경이다. 더군다나 이 사업처럼 나중에 잘못된 것임이 판명된다 하더라도 원상으로 되돌리기 힘든 성격을 갖는 경우에는 조심스런 여론 수렴이 더욱 더 절실한 과제다.

이 사업을 현 정부의 임기 안에 모두 끝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음 정부가 흔쾌히 바통을 넘겨받아 후속 작업을 해주어야만 계획대로 사업이 마무리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다음 정부가 순순히 그 뒷마무리에 나설지는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일이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사업은 필연적으로 다음 정부에서 문제가 될 것이고, 따라서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될 가능성이 크다.

4대강 정비사업이 계획대로 모두 끝마쳐지는 것도 문제지만, 3년 정도 진행하다가 중단하게 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어정쩡하게 세워진 제방과 보들을 제거하고 원상으로 되돌리려면 또 다시 긴 시간과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파괴된 환경이 원래 그대로의 모습을 되찾는 데는 이보다도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 분명하다. 기세좋게 첫 삽을 뜬 4대강 정비사업이 역사상 최대의 낭비적 사업이라는 오명을 얻게 될지 모른다.

참여정부 때 계획된 행정복합도시, 혁신도시는 자칫하면 물거품이 될 운명에 처해 있다. 그때 조금 어렵더라도 광범하게 여론을 수렴해 거국적인 사업으로 이를 추진했다면 정부가 바뀌었다고 백지화되는 운명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4대강 정비사업도 이와 같은 운명에 처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 비극을 막으려면 지금 이 단계에서 철저한 여론 수렴과 검증의 과정을 거쳐 사업 수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나는 4대강 정비사업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과연 역사 앞에 떳떳할 수 있느냐고 묻고 싶다. 이 사업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는 칭송을 두고두고 받을 자신이 있는지 알고 싶다. 지금처럼 졸속으로 밀어붙인 사업은 나중에 해서는 안 되었던 사업이라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온 국토를 가로지르는 제방과 자전거 길이 예산 낭비와 환경 파괴의 상징물로 손가락질의 대상이 된다면 그것은 엄청난 비극이다.

만약 우리 강을 살리려는 진정한 마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폭넓게 여론을 수렴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야 한다. 백 년, 천 년 앞을 내다보고 하는 사업일진데 이렇게 서둘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 착공을 한, 두 해 앞당기려고 서두는 바람에 나중에 후회하게 될 일을 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자기 임기 안에 첫 삽을 뜨지 않아도 좋다는 열린 마음이 없는 한 사업의 성공을 기대하기 힘들다.

전투를 민주적 방식으로 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고지가 눈 앞에 있는데 어떻게 점령할지를 두고 갑론을박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와 행정은 전투가 아니다. 귀찮게 느껴지더라도 국민의 의견을 물어가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바로 민주적 정치와 행정이다. 4대강 정비사업을 둘러싼 논란도 이런 평범한 상식의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출처 : 이준구 교수님 홈페이지 http://jkl123.com/ 

2009/06/15 21:28 2009/06/15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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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아마추어 정부의 첫 1년 :: 2009/06/0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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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한겨레〉가 저에게 기명 칼럼을 쓸 의향이 있느냐고 물어 왔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별 생각 없이 거절하고 말았을 텐데, 그때는 상황이 조금 달랐습니다. 앞으로 사회비평의 성격을 가진 글을 제법 많이 써야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선거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는데,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거의 확실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 사회가 대격변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갈 것도 분명해 보였습니다.

‘좌파정권 10년의 청산’이란 구호는 사회 전체를 오른쪽으로 돌려놓겠다는 선언을 뜻했습니다. 참여정부 말기의 무거운 사회분위기를 생각할 때 무언가 새 바람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싹쓸이하듯 갈아치우겠다는 태도가 자못 위험해 보였습니다. 개혁이라는 것이 말만 쉽지 실제로 해보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손을 대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손을 대는 과욕은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저는 대선 승리 예감에 도취해 있는 그들에게 이 냉엄한 현실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려면 앞으로 글을 많이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 〈한겨레〉의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해 12월 ‘이준구 칼럼’에 쓴 첫 글 <섣부른 실험 삼가야 한다>에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제 걱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아이디어로 온 사회를 뜯어고치겠다고 나서는 데 대한 걱정 말입니다.

그 후 1년 동안 이 칼럼에 열 몇 편의 글을 썼는데, 대부분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지인들로부터 “당신은 이 정부를 왜 그렇게 싫어하느냐?”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정부가 싫기 때문에 비판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막중한 책임을 맡은 정부가 잘못하는 점이 있으면 가차 없이 비판을 하는 것이 지식인의 임무입니다. 저는 그 지식인의 임무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참여정부를 늘 따라다니던 수식어가 바로 ‘아마추어 정부’라는 것이었습니다. 현실 정치의 경험이 별로 없는 운동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국정 운영이 미숙하다는 비아냥이었지요. 이명박 후보가 대선에서 그렇게 많은 표를 얻은 것은 ‘프로’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을 겁니다.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인 이 후보라면 진정한 프로의 면모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아낌없이 표를 던져준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정부가 해온 것을 보면 프로다운 면모를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프로라면 이 목표 저 목표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위기 앞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겠지요. 결론적으로 말해 이명박 정부가 첫 1년 동안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은 참여정부 못지않은 아마추어 정부였습니다.

이 정부가 갖고 있는 태생적 한계는 747이라는 비현실적 공약입니다. 어느 정도 성숙한 단계에 들어선 경제가 연평균 7%의 성장률을 달성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다는 말로 표를 얻었기 때문에 계속 발목이 잡혀 있는 상태입니다. 국민에게 무언가 보여주려고 하면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순리에 맞게 경제를 운영해 왔던들 상황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국민과 소통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없다는 점입니다. 모든 일을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려고만 할 뿐 국민의 소리에 겸허하게 귀 기울이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소리인데, 자기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철저하게 귀를 막습니다. 국정을 맡은 사람들이 내 편, 네 편을 따지는 편협한 태도를 가지면 안 되는데요.

지금처럼 경제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모든 국민이 힘을 합쳐 경제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실제로는 다른 행동을 보입니다. 역사 교과서를 다시 쓰는 일이나 미디어 업계를 재편하는 일 등 국민을 두 편으로 쪼개는 일에 더욱 열성을 보입니다. 경제상황이 이렇게 급한 터에 이념 투쟁 같은 데 에너지를 소모해서야 되겠습니까?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까지 끌어안고 협조를 구해야 할 판인데요.    

저는 지난 1년 동안 대략 이런 내용을 가진 글들을 그 칼럼에 써왔습니다. 2008년 12월 칼럼니스트 생활을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쓴 글의 제목은 <어둡고 긴 한 해를 보내며>였습니다. 이 제목이 말해주듯, 이명박 정부의 첫 1년에 대한 제 평가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더 이상의 시행착오가 없었으면 하는 제 간절한 바람을 그 글에서 읽어내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장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그 칼럼에 실렸던 것들입니다. 1720자라는 지면의 제약을 받았기 때문에 각 주제들에 대해 충분한 논의를 할 수 없었던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간결하게 요점 위주로 논의를 전개한다는 점에서 다른 글들과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 글들을 쓸 때 한정된 지면에 제 생각을 최대한 펼쳐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꽤 많은 글을 써야 할 것 같다는 제 예감은 그대로 들어맞았습니다. 물론 저 아니라도 정부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줄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정확하게 집어내 비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면서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의도적인 침묵을 지키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지식인으로서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부지런히 글을 써왔고, 이 점에 대해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여튼 제가 느끼기에 정말로 긴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시지프스의 바위, 교육> 에서 계속

2009/06/05 10:52 2009/06/0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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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종부세, 그 경제학적 진실 :: 2009/05/1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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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출범 1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눈에 띕니다. 저소득 계층에서 정부 지지도가 높은 반면, 고소득 계층에서는 지지도가 낮게 나옵니다. 이 정부가 가진 사람의 이익을 충실하게 대변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 그런데도 저소득 계층의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게 나오니 흥미로울 수밖에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이처럼 뜻밖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게 되는 경우가 이것 하나만이 아닙니다. 상속·증여세 폐지가 바람직한지 물어보면 소득이 낮은 계층일수록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 세금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폐지에 찬성하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주로 부유층에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정책에 대해 물어봐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 나타납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자신의 계층적 이해관계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이 아주 멋지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선진 사회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성숙한 시민의식의 발로처럼 보이니까요. 그러나 진실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상황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그런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론 조작의 홍수 속에서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한동안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던 종부세 문제도 오도된 여론 때문에 아주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부세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세금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종부세가 이런저런 문제점을 숱하게 많이 갖고 있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부자들을 때려잡고 서민들까지 괴롭히는 불공평한 세금이라고 비난을 퍼붓습니다. 보수 언론이 여론을 이런 방향으로 이끌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제가 전공하는 재정학은 세금 문제를 가장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뿐 아니라 전문가로서도 종부세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전문가로서 제가 보는 종부세의 진정한 모습은 보수 언론이 그리고 있는 것과 크게 차이가 납니다. 그 정확한 진실을 일반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슬픈 종부세>를 쓰게 되었습니다.        

종부세가 마치 뿔이 난 괴물이라도 되는 양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글을 통해 그런 오해가 말끔히 씻어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어떤 세금이든 나름대로 문제점을 갖고 있습니다. 종부세에 몇 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나쁜 세금은 아닙니다. 그리고 문제점이 있으면 차츰 고쳐 나가면 됩니다. 그런데도 종부세를 당장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보수진영과 정부를 보면 잘못된 믿음이 얼마나 위험스러운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종부세에서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집 한 채만 갖고 있을 뿐 별 소득이 없는 사람도 부담을 지게 된다는 점입니다. 비싼 집 한 채를 갖고 있는 가난한 은퇴자의 문제는 언론의 단골메뉴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점을 시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과세대상 기준을 상향조정하고, 고령자와 장기보유자에 대해 감면조처를 취해 주면 소득 없는 은퇴자의 문제는 거의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종부세의 실질적 무력화를 바라던 세력은 헌재의 종부세 부분위헌 결정 소식을 듣고 환호작약했습니다. 그들로서는 세대별 합산과세가 위헌이라는 결정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종부세의 실질적 무력화를 가져오는 데 과세방식의 변경처럼 효과적인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집 부자들이 부부 명의로 분산 등기해 놓은 현실에서 이 조치 하나만으로 세금 부담을 절반 이하로 줄이는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대별 합산과세가 위헌이라는 헌재의 결정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결혼중립성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수평적 공평성이라는 훨씬 더 중요한 원칙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공평한 과세라는 관점에서 보면 수평적 공평성의 원칙은 거의 헌법과도 같은 중요성을 갖고 있습니다. 헌재는 이런 중요한 원칙을 헌신짝처럼 내던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저는 미국에 머물고 있을 때 헌재의 부분위헌 결정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 기사를 읽고 어찌나 화가 나던지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그 결정의 부당함을 밝히는 글을 써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헌재의 결정이 경제학의 기본 이론에 어긋난다는 뜻에서 제목을 <교과서를 바꿔 쓰라는 말인가?>로 붙였습니다. 수평적 공평성의 포기가 얼마나 엄청난 후퇴를 의미하는지 알기나 하고 그 결정을 내렸느냐는 강력한 항의의 메시지도 담겨 있었습니다.

그 글을 쓰고 나서도 마음의 평정을 찾지 못해 다시 <501호 김씨 가족의 분노>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수평적 공평성의 포기가 가져올 귀결을 좀 더 생생한 예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예를 보고서도 헌재의 결정에 아무 문제도 없다고 강변할 수 있겠느냐는 도전이었습니다. 저는 이 점에 관해 어느 누구와도 맞서 싸울 자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전해 온 사람은 아직까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 세금 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인가는 세금을 내야 하고, 경제적 능력이 큰 사람일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을 일종의 명예로 생각한다면 종부세가 그렇게 많은 시비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지의 장막>에는 우리 사회에 이런 건전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못한 안타까움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종부세는 거의 무력화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집 부자들이 종부세 부담이 무서워 집을 더 늘리지 못하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또한 똑같은 경제적 능력의 소유자가 서로 다른 세금을 내야 하는 불공평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세대별 합산과세로 돌아가지 않는 한 수평적 공평성의 회복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게다가 재산세로 통합하겠다느니, 아예 없애 버리겠다느니 별의별 말들이 다 나오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제는 저도 종부세에 대한 미련이 없습니다. 이런 누더기 꼴로 남아 있느니 차라리 없어져 버리는 게 더 낫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러나 종부세가 제대로 시험되어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퇴장의 운명을 맞게 된 데 대한 안타까움은 짙게 남아 있습니다. <종부세여, 안녕>은 때 이른 죽음을 맞은 종부세에게 제 안타까움을 실어 보내는 조사(弔辭)입니다. 언젠가는 종부세의 진가를 사후적으로나마 인정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습니다.


<아마추어 정부의 첫 1년> 에서 계속

2009/05/18 20:23 2009/05/1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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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마지못해 사회비평의 붓을 들다 #2 :: 2009/04/1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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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보수와 진보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평합니다. 이념적인 입장을 떠나 객관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져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보수에 대한 비판은 저 스스로 만든 기준에 의한 것일 뿐 어떤 이념적 잣대로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수든 진보든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해야 마땅한 일 아닙니까? 지금 보수가 우리 사회를 쥐락펴락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의 화살이 주로 그들을 겨냥하게 될 뿐입니다.

예를 들어 ‘한반도 대운하사업’ 문제는 이념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것을 구상한 측이 보수든 진보든 관계없이, 그 자체로 경제적 타당성이 전혀 없는 사업입니다. 그런데 이 사업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저는 하루아침에 ‘좌빨’이 되고 말았습니다. 보수 정권이 정력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에 훼방을 놓았으니 너는 좌빨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논리입니다. 이런 허황된 논리가 판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입니다.

종합부동산세나 부동산, 혹은 교육과 관련한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도 이념과 무관한 일입니다. 그 정책들이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정책들이 우파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비판하는 저는 저절로 좌파가 되어버립니다. 그동안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제 비판에 정당한 근거를 들어 반박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표현으로 저를 매도하는 사람들만 많이 보았습니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예전에 저에게 배웠던 학생들은 저를 상당히 보수적인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더군요. 솔직히 말해 저는 그런 얘기를 듣고 상당히 놀랐습니다. 저 스스로는 그렇게 보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명색이 소득분배이론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사람인데, 어떻게 보수파가 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 제 심정이었습니다.

제가 미시경제이론을 주로 가르쳤기 때문에 그런 인상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시경제이론을 배워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그것은 가치판단이 완전히 배제된 채 순수한 경제적 논리로만 구성된 이론입니다. 그런 이론을 가르치다 보니 자연히 보수적이라는 인상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은 문학적이라는 인상을 주고, 예술을 가르치는 사람은 예술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1980년대에 제가 운동권 학생과 ‘끝장토론’을 한 적이 있다는 한 일간지의 보도는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운동권 학생과 설전을 벌였으니 보수적이라는 말인데,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가르치는 주류경제학에 대한 비판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반박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비주류경제학보다 주류경제학의 현실설명력이 더 크다는 제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사실 주류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은 어느 정도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배운 것을 모조리 부정하지 않고서야 시장이 효율성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을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주류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모두 보수적 색채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도 예외가 아님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저는 다만 시장이 만능이라는 생각을 거부하고 있을 뿐입니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1980년대의 저와 지금의 저 사이에 기본 입장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사람이 지금은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보수화된 데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 제 믿음입니다. 저는 예전의 위치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데 사회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다 보니 제 위치가 왼쪽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 분위기의 변화에 편승하지 못하고 예전의 위치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저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일까요? 저는 절대로 그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은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인상을 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 상황이 달라지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시점에서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보수화의 바람이 결국 한때의 유행이었음이 머지않아 밝혀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미 그 전조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보수는 스스로가 판 구덩이에 떨어지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현 정부가 온 사회를 대상으로 실험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정책 프로그램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여정부에 실망한 국민은 무언가 다른 것을 실험해본다는 데 솔깃한 심정이 되었을 수 있습니다. “설마 더 나빠지랴?”는 심정으로 보수적 정책 프로그램에 손을 들어주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더 나빠질 수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나빠져도 크게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정책을 공부한 사람은 소위 ‘개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압니다. 개혁을 한답시고 추구한 변화가 결국 개악이 되고 마는 사례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고 계획이 치밀하다 하더라도 진정한 개혁으로 이어지기는 무척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정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마추어만이 이것저것 바꿔놓기만 하면 개혁이 된다고 믿을 따름입니다.

제가 보기에 정부는 지금 위험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실험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정책 프로그램은 검증되지 않은 소박한 아이디어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그 정책을 실행에 옮겼을 때 나타나는 결과는 그들의 기대와 판이하게 다를 가능성이 큽니다. 설익은 아이디어의 섣부른 실험은 예기치 못한 재앙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마지못해 사회비평의 붓을 들다 3편> 에서 계속

2009/04/18 10:44 2009/04/1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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