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보수와 진보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평합니다. 이념적인 입장을 떠나 객관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져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보수에 대한 비판은 저 스스로 만든 기준에 의한 것일 뿐 어떤 이념적 잣대로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수든 진보든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해야 마땅한 일 아닙니까? 지금 보수가 우리 사회를 쥐락펴락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의 화살이 주로 그들을 겨냥하게 될 뿐입니다.
예를 들어 ‘한반도 대운하사업’ 문제는 이념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것을 구상한 측이 보수든 진보든 관계없이, 그 자체로 경제적 타당성이 전혀 없는 사업입니다. 그런데 이 사업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저는 하루아침에 ‘좌빨’이 되고 말았습니다. 보수 정권이 정력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에 훼방을 놓았으니 너는 좌빨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논리입니다. 이런 허황된 논리가 판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입니다.
종합부동산세나 부동산, 혹은 교육과 관련한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도 이념과 무관한 일입니다. 그 정책들이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정책들이 우파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비판하는 저는 저절로 좌파가 되어버립니다. 그동안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제 비판에 정당한 근거를 들어 반박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표현으로 저를 매도하는 사람들만 많이 보았습니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예전에 저에게 배웠던 학생들은 저를 상당히 보수적인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더군요. 솔직히 말해 저는 그런 얘기를 듣고 상당히 놀랐습니다. 저 스스로는 그렇게 보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명색이 소득분배이론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사람인데, 어떻게 보수파가 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 제 심정이었습니다.
제가 미시경제이론을 주로 가르쳤기 때문에 그런 인상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시경제이론을 배워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그것은 가치판단이 완전히 배제된 채 순수한 경제적 논리로만 구성된 이론입니다. 그런 이론을 가르치다 보니 자연히 보수적이라는 인상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은 문학적이라는 인상을 주고, 예술을 가르치는 사람은 예술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1980년대에 제가 운동권 학생과 ‘끝장토론’을 한 적이 있다는 한 일간지의 보도는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운동권 학생과 설전을 벌였으니 보수적이라는 말인데,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가르치는 주류경제학에 대한 비판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반박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비주류경제학보다 주류경제학의 현실설명력이 더 크다는 제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사실 주류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은 어느 정도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배운 것을 모조리 부정하지 않고서야 시장이 효율성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을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주류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모두 보수적 색채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도 예외가 아님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저는 다만 시장이 만능이라는 생각을 거부하고 있을 뿐입니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1980년대의 저와 지금의 저 사이에 기본 입장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사람이 지금은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보수화된 데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 제 믿음입니다. 저는 예전의 위치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데 사회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다 보니 제 위치가 왼쪽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 분위기의 변화에 편승하지 못하고 예전의 위치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저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일까요? 저는 절대로 그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은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인상을 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 상황이 달라지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시점에서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보수화의 바람이 결국 한때의 유행이었음이 머지않아 밝혀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미 그 전조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보수는 스스로가 판 구덩이에 떨어지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현 정부가 온 사회를 대상으로 실험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정책 프로그램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여정부에 실망한 국민은 무언가 다른 것을 실험해본다는 데 솔깃한 심정이 되었을 수 있습니다. “설마 더 나빠지랴?”는 심정으로 보수적 정책 프로그램에 손을 들어주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더 나빠질 수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나빠져도 크게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정책을 공부한 사람은 소위 ‘개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압니다. 개혁을 한답시고 추구한 변화가 결국 개악이 되고 마는 사례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고 계획이 치밀하다 하더라도 진정한 개혁으로 이어지기는 무척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정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마추어만이 이것저것 바꿔놓기만 하면 개혁이 된다고 믿을 따름입니다.
제가 보기에 정부는 지금 위험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실험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정책 프로그램은 검증되지 않은 소박한 아이디어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그 정책을 실행에 옮겼을 때 나타나는 결과는 그들의 기대와 판이하게 다를 가능성이 큽니다. 설익은 아이디어의 섣부른 실험은 예기치 못한 재앙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마지못해 사회비평의 붓을 들다 3편> 에서 계속
푸른숲
2009/04/18 10:44
2009/04/1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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