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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마지못해 사회비평의 붓을 들다 #3 :: 2009/04/2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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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보수, 그리고 그들을 대변하는 현 정부는 거의 우파 이념의 포로가 되어 있는 듯 행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어느 나라의 보수도 우리나라처럼 이념적으로 경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 변명하듯, 10년 동안의 좌파정부하에서 그런 태도를 갖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때 쌓였던 분노가 우리 사회에서 좌파의 잔재를 모두 쓸어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그 동기야 어찌 되었든, 그들은 유연성을 상실한 과격 이념가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 유연성의 상실이 현 정부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입니다. 이념을 떠나 유연한 자세로 정책을 평가하면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제대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념의 색안경을 끼고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오직 한 가지 색으로만 보일 뿐입니다. 제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점이며, 그 때문에 현 정부 출범 이후 줄곧 비판적 자세를 유지해온 것입니다.

이념과 관계없이 현 정부가 갖고 있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점은 잘못된 믿음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잘못된 믿음의 대표적 사례를 소위 ‘747공약’(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강국)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경제의 전반적 상황을 생각해볼 때, 연평균 7%대의 성장률을 달성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해외에서 자본을 들여와 공장을 짓기만 하면 되던 때나 가능할 법한 성장률입니다. 지금처럼 경제가 성숙한 단계에서는 무리수를 두지 않는 한 그런 높은 성장률을 계속 유지할 수 없습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이제는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내려앉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없었다 하더라도 7%대의 성장률은 허황된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거 때 민심을 끌기 위해 그런 공약을 한 것은 너그럽게 눈감아줄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치인의 허풍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보통입니다. 문제는 선거에 이긴 후에도 마치 그것이 가능한 목표인 양 행동하고 있는 데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믿음이 수많은 무리수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이미 똑똑히 목격한 바 있습니다.

또 하나의 잘못된 믿음은 토목공사로 우리 경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잘못된 믿음 때문에 그렇게도 물의가 많은 ‘한반도 대운하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운하사업에 대한 국민의 반대 의사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운하를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대운하에 대한 여론의 향방이 무엇인지 모를 리 없습니다. 귀를 틀어막고 있기 때문에 국민 대다수가 내는 반대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적어도 국민의 반수 이상이 반대하는 사업을 강행하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한 도박입니다. 설사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첫 삽을 뜨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틀림없이 나타날 극심한 국론 분열과 이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정부가 감당하기 힘든 정치적 부담을 가져다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대운하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는 것을 보면 잘못된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쿠오바디스 한국 경제> 에서 선보이는 사회비평은 우리 사회의 갖가지 현안 문제를 논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평소 경제학자로서 제가 갖고 있던 문제의식을 모두 쏟아 놓은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렇지만 제 비판의 주요한 표적이 현 정부의 정책이라는 사실은 감추기 어렵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정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는 대통령과 정부를 도와야지 비판만 하면 어떡하느냐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일을 잘된 일이라고 말하면서 비위를 맞춰주는 것이 진정으로 돕는 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친구의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는 것이 진정한 우정은 아니지 않습니까? 충심이 담긴 비판이야말로 진정으로 대통령과 정부를 돕는 길이라는 데 한 점 의심이 없습니다.

제 말만 옳다고 주장할 생각은 꿈에도 없습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학자적 양심을 걸고 제 개인적 의견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라, 논의의 출발점을 제시하는 것이 제 목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무언가 생각해볼 거리를 얻었다고 느낀다면 저로서는 더 이상의 기쁨이 없습니다.

마지못해 사회 비평의 붓을 들다 - 끝

2009/04/20 15:59 2009/04/2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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