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목욕탕에 갔다. 어릴 적에는 아버지의 강압에 따라 정기적으로 목욕탕을 가곤 했는데 소위 머리가 커지고 나서부터 남에게 알몸을 적나라게 공개하는 목욕탕은 피하고 집의 샤워 시설만을 이용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날은 이상하게 목욕탕이 끌리는 것이다.
목욕탕에 들어서자, 혼자 개수대에서 때를 미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저마다 다른 공정을 수행하고 있지만, 유독 짧은 팔을 탓하며 닿지 않는 곳에 땅따먹기를 하듯 한 평이라도 더 개간하려고 애쓰는 사람 몇몇이 눈에 띈다.
한데 내가 들어서자 그 몇몇 중 몇이 눈치를 본다.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들은 여전히 내 눈치를 본다. ‘예전 같았으면 분명 한 명은 달려들었을 법한데……이상하네.’ ‘내가 좀 삭았나? 사람들이 용기가 없어졌나?’ 아니다. 어제 오랜만에 만난 진숙이도 ‘여전히 인상은 말하면 다 들어줄 것 같다.’ 고 했다.
나는 조금 후 누군가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목욕탕에 오면 한번은 주도적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 “등 밀어드릴까요?” 이내 인상을 쓰고 땅따먹기에 열을 올렸던 군바리는 얼굴이 함박 스테이크가 된다. 나는 때만 밀어 줬는데, 그는 비누칠 서비스까지 한다.
누군가에게 등을 보인다는 것은 사실 매우 예민한 부분이다. 등을 보이는 것은 전쟁 영화에서 보면 항복을 뜻하는 무장 해제를 말한다. 또한 영화 300인에서는 수세에 몰린 스파르타 레오니다스 왕에게 지원군을 보내기 위해 공회의 수장에게 등을 보이며 성을 상납하는 고르고 여왕의 표정이 적나라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얼굴을 보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절정의 굴욕을 의미한다.
반면《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 몸》에서는 등에 대해 “가장 영광스런 죽음은 등 뒤에 창이 꽂히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 등은 자존심의 포기를 의미하는 동시에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굴욕의 정점에서 가장 큰 용기를 내포하고 있는데 《장부의 굴욕》이라는 책에는 굴욕을 감내하고 대업을 이룬 장부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비단 목욕탕에서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등을 내미는 것이 매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등’이라는 로렉스 같은 자존심은 다소 버리고, ‘때’와 같은 자신의 허물에 너무 민감하기 보다 나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서로에게 몸을 맡기는 균형 잡힌 무장해제, 즉 릴렉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옛 세대는 자존심이 높아서 무너졌다면, 현 세대는 자긍심이 없어서 쌓을 것도 없다. 자존심은 적당히 버리고, 적당한 자긍심으로 서로에 등을 들이대고, 함께 밀어주고, 함께 토닥여주었던 정겨운 목욕탕이 오늘따라 더욱 그립다.
글. 푸른숲 홍보팀 오성훈
푸른숲
2009/04/29 15:41
2009/04/2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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