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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 :: 2010/04/05 16:19

나는 늘 유이스를 대담한 항해사로 상상한다.
이 글은 아들의 항해일지가 될 것이다.
이 세상에 가만히 머물다간 아이, 아들이 달리는 장면을 꿈꿔온 아버지.
그들이 함께한 여행의 기억

마리우스 세라 지음 | 고인경 옮김 | 256쪽
도서출판 푸른숲 | 편집_ 문학교양팀 김미정
시작; 기지개를 켜다
과학; 낫지 않을지도 모른다
믿음; 농부의 기도
표식; 신호를 보내줘
메시지; 유유 씨, 계세요?
성; 유유에게 여자친구를
구분; 훈장을 단 아버지들
달리기; 단 하루만 달릴 수 있다면
소망; 손 영화
연금술; 약 나와라 뚝딱
낱말; 내게도 비밀을 말해줘
자기장; 자석 치료 받는 날
이하 생략
2009년 6월 14일 바르셀로나 오디토리움에서 특별한 콘서트가 열렸다. <불의 전차>를 배경음악으로 한 아이가 달리는 폴리스코프 애니메이션이 상영되었고, 카탈루냐 및 스페인의 유명한 문인과 가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수 브루노 오로가 ‘유유’라는 타이틀의 노래를 불렀다. 선천적 뇌 질환으로 인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아들 유유를 격려하기 위해 아버지 마리우스 세라와 그의 친구들이 기획한 콘서트였다. 그리고 콘서트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지난 7월 24일, 유유가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이 신문지면에 보도되었다.
한 자세로 가만히 이 세상에 머물다간 아이, 그리고 그런 아들이 달리는 장면을 늘 꿈꿔온 아버지. 그들이 함께한 여행의 기억을 담은 에세이 <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원제: Quieto). 라몬 룰 상 수상작가인 마리우스 세라의 자전적 에세이는 2008년 말 카탈루냐어로 출간되어 15주 넘게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고, 곧바로 스페인과 이탈리아 대형 출판사와 계약을 맺으며 출판계를 놀라게 했다. 스페인 언론 <아부이Avui>는 “개인의 경험을 문학의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감동적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행정 용어로는 85퍼센트의 장해를 지닌 장애인이다. 하지만 집에서는 이런 모든 꼬리표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누가 뭐라 해도 유이스는 나의 둘째 아이다. 그 애한테는 조금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몸이 약한 아들을 돌보는 데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매달린다는 뜻이다. 우리 부부와 딸아이는 유이스가 15퍼센트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절대 포기하지 않고 돕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항상 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대개는 어떤 방법으로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 서문에서
카를라가 흥분하여 편을 바꾼다. 동생의 두 번째 승리에 열렬히 박수를 보내고, 엄마를 상대로 한 세 번째 승리에는 더욱더 열광한다.
유유는 ‘멍 때리기’ 부문의 최우수 선수다. 그 부문에서라면 세계 챔피언과 맞서도 이길 기세다. 뇌를 쓰지 않는 능력이 무궁무진한 듯하다.
유유 엄마가 머리에 띠를 두른 유유를 온갖 각도에서 사진으로 남기는 동안, 카를라와 나는 유유를 “멍 때리기 세계 챔피언”, “세계 최고의 게으름뱅이”, 그 외에도 밴쿠버 과학박물관의 기발한 게임실에서 우리가 지어낸 온갖 타이틀을 갖다 붙이며 소리소리 친다. - 129~130쪽
“VIP 카드가 뭐예요, 아빠?”
[...]
“VIP는 영어로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는 뜻이야.”
딸의 눈이 커진다. ‘I’가 뜻하는 ‘중요한(Important)’이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인상 깊었나 보다.
“아빠가 그렇게 중요해요?”
딸이 묻는다.
나는 아이의 순진무구함에 그만 두 손을 들고 미소를 짓는다.
“내가 아니야. 중요한 사람은 네 동생이지.”
“유유가요?”
[...]
“너는 동생을 잘 몰라.”
내가 못을 박는다.
[...]
우리는 유이스의 VIP 카드 덕분에 줄도 서지 않고 유로디즈니의 놀이기구란 기구는 다 타며 사흘을 꽉 채워 보낸다. 카를라는 보는 것마다 빼놓지 않고 동생의 귀에 전달하는 남미 방송국의 사회자로 변신한다. 딸아이의 생글거리는 눈에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감탄이 마구 뿜어 나온다. 유유가 정말로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우리의 특별한 VIP라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다. -164~166쪽
오리올이 앞장서서 이끄는 축구 특공대가 플로어를 지배하는 동안, 강박적인 생각 하나가 몸속 저 깊은 곳에서 생겨나 응어리가 되어 목을 타고 올라오더니 듣도 보도 못한 강력한 암세포처럼 내 뇌리에 와 박힌다. 내-아-이-는-절-대-로-못-할-거-야. [...] 유이스가 여느 사람들처럼 할 수 없는 일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잘 알고 있다. 아니, 오래전부터 잘 안다고 믿었다. 하지만 <불쌍한 내 마음을 더는 아프게 하지 마>라는 곡의 춤 스텝을 결코 배우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더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기게 된다. 얼마나 슬픈지 활짝 뜬 채 깜박이지도 않는 아들의 눈과 마주치자 그 무정함에 상처를 받아 슬그머니 눈물이 올라온다. 이렇게 눈물을 흘리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57~58쪽
_지은이 : 마리우스 세라 (Marius Serra)
1963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카탈루냐어로 작품을 쓰며 2006년 소설 <광대극>으로 카탈루냐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라몬 룰 상을 수상했다. 1996년 <나의 삼촌>이라는 소설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고, 현재는 텔레비전에서 책 소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언론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작품 외에도 10여 권의 책을 썼다.
_옮긴이 : 고인경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스페인 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주한 멕시코 대사관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통번역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전쟁의 풍경> <그리고 갑자기 천사가> <이둔의 기억> <그림자를 훔친 남자> <천상의 선율을 담은 모차르트> <세계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 <생물의 진화를 관찰한 찰스 다윈> <도둑맞은 인류의 비밀을 찾아라> <달에서 발견된 비행일기> <악마의 바이올린> 등이 있다.
[편집자 일기] 3월에 눈이 내리면 :: 2010/03/22 13:21
3월 17일 밤, 눈이 내렸더랬다.
우리는 홍대 모처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대학 동문인 이들과는 한 선배의 출국을 앞두고
환송회 겸해서 매우 오랜만에 만났는데,
마냥 즐겁고 거나하게 마실 분위기는 아니었고
다들 뭔가 좀 아쉬웠으며 게다가 눈까지 날려서
진짜 싱숭생숭한 모임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한 녀석이,
“학교에나 갑시다.”
했고 날이 바뀌어 한밤중이 되었음에도 결국
우린 캠퍼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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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누군가,
“이걸로는 부족하다, 바다에 가자.”
하는 바람에 따라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밤바다는 역시나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그 차디찬 눈발 날리는 소리와 파도소리만 스테레오로 들려주더라.
나는 눈 때문이었는지 기분 탓이었는지 어쨌든
그냥 흠뻑 젖어서 서울로 돌아왔다.
AM. 05:27
집에 돌아오니
아니 이건 뭔가 싶었다.
잠 한숨 못 잤고,
그럼에도 출근은 해야 하고…….
피곤했다, 정말이지 너무 피곤했다.
‘내가 미쳤지, 미쳐.’
폭설이 내리던 찰나의 호기는 다 어디로 가고
말끔히 떠오르는 아침 해와 더불어
현실의 감각도 돌아온 것이다.
따지고 보면 몇 시간의 일탈인데
생활의 패턴이 흐트러질까 겁이 나
도무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직딩의 ‘눈 내리는 봄날의 놀이’.
가까이 두고도 쉽게 가기 힘든
우리의 캠퍼스에,
눈 내리는 새벽 바다에,
가자고 했던 이 누구인가.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은 ‘나’였다.
아, 그러니까 3월 중순에 눈이 내리는
이상기후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어쨌든 필이 꽂히면 뭐든 해치우게 하는 ‘무한도전’ 식의 정신력.
고만고만한 우리 생활을 버라이어티하게 해 줄,
우리만의 놀이를 개발하는 일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여러분, 제 직딩 놀이를 따라하시는 건 좋지만
그 말로가 피곤하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 두셔요.”

[편집자 에세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선물 :: 2009/12/23 09:42

지난 10월 18일, 저는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처음 잡았던 날짜인 11월 22일보다 한 달여나 앞당겨 치른 결혼식이었죠.
갑자기 결혼을 발표한 연예인을 바라보는 듯한 의혹의 눈길이 적지 않았으나, 실은 외할아버지의 병환이 깊어져 다급히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애초 계획보다 일찍 부부가 된 저희는 오히려 할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로 행복한 신혼생활을 시작했고, “진이 결혼식은 보고 가야 하는데.” 하시며 달력에 하루하루 X표를 치시던 할아버지는 원래 예정일을 하루 넘긴 11월 23일에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60년을 함께한 동반자인 외할머니, 엄마를 포함한 네 자녀 그리고 손자 손녀까지, 할아버지는 온 가족이 모인 가운데 눈을 감으셨습니다. 이미 의식은 없으셨지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 작별의 인사를 받으셨죠.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도 모두 제가 성인이 된 이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가까운 이의 죽음이 아주 낯선 일은 아니었지만, 임종을 지킨 건 처음이라 가쁜 숨소리만 들리던 고요함과 그 속에서 울려 퍼지던 마지막 인사말, 생과 사의 서로 다른 감촉은 매우 특별하고 강렬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삶이 끝나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보다 더 강렬했던 건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는 할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꼿꼿한 선비 같았던 할아버지가 실은 얼마나 애틋한 사람이었는지 읊조리듯 들려주시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호흡이 멈추는 순간 할아버지의 몸 위로 와락 달려들며 울부짖으셨습니다. 비명과도 같은 울부짖음 속에서 들려왔던 여러 가지 말들 중에서 이 한 문장이 지금껏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얼마나 사랑했는데!”
여든의 할머니가 외치는 ‘사랑’이라는 말은 그 생경함 때문에 더 절절한 울림이 되어 가슴속으로 번져나갔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외치는 ‘사랑했다’는 말은 지금껏 들어본 어떤 사랑 고백보다 더 진실하게 느껴졌습니다. 울부짖던 할머니는 곧이어 할아버지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셨습니다. 아니, 입맞춤이라기보다는 키스라고 해야 맞을 것 같네요.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올까 싶을 만큼 격렬한 키스. 엄마가, 외삼촌이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완강히 버티던 할머니의 뒷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그 장면은 염을 하고 입관을 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던 순간에도 똑같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얼음처럼 차갑고 딱딱하게 굳은 입술에 퍼붓던 또 한 번의 격렬한 키스. 그건 아들도 딸도 할 수 없는, 오직 평생을 함께한 배우자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일간의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의 늦은 밤, 침대에 나란히 누워 저는 신랑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할머니의 그 한 마디를 잊을 수가 없어. 우리도 마지막 순간에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어.”
그날 밤 우리는 어느 날보다 더 강하게, 뜨겁게 서로를 끌어안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이게 할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구나 생각하면서…….

글. 문학교양팀 이 진
[편집자 에세이] 어떤 엄마?! :: 2009/10/09 14:28

처음 일 주일 동안 참으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보름이 지나고 나자 딸아이는 되레 집에 안 가겠다고 울고불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형님 댁에 있는 4학년짜리 언니랑 더 놀고 싶어서다.
어느 날은 조카가 얼마나 재미있게 놀아 주기에 그러나 하고 옆에서 지켜봤다. 딸아이를 바퀴 달린 의자에 태워 기차놀이를 하고, 둘이 꼭 껴안고 소파 위에서 바닥으로 다이빙을 하고, 함께 그림책을 보며 킥킥거린다. 내가 봐도 참 잘 논다, 싶었다.
사실 나는 딸아이와 ‘신나게’ 놀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 아이와 재미있게 놀아 주기 위해 꼭 필요한 상상력과 인내심이 부족하고, 게다가 저질체력이라 늘 혼자 놀도록 방치한 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며칠 전 딸아이가 사촌언니와 눈물겨운 이별을 하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제부터 매일 밤 그림책을 한 권씩 읽어 주겠노라고 딸아이에게 약속했다. 뭘 알고 대꾸하는 것인지 코맹맹이 소리로 ‘응!’ 하는 아이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어제는 안방에 잠자리를 깔고 딸아이를 뉘어서 《난 내 이름이 참 좋아!》라는 그림책을 읽어 주었다. 딸아이는 내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금세 잠이 들어 버렸지만, 나는 혼자 낄낄거리면서 책을 끝까지 읽었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쥐순이 ‘크리센서멈’은 유치원에 다니고부터 잔뜩 주눅이 든다. 친구들이 ‘크리센서멈’이라는 이름이 우스꽝스럽다며 날마다 놀려 대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의 위로도 더 이상 소용이 없다. 그러나 어느 날 음악 선생님이 자신의 이름도 ‘크리센서멈’처럼 꽃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몇 달 후 태어날 아이가 딸이면 ‘크리센서멈’이라고 이름 지을 생각이라고 하자, 크리센서멈은 다시 자신감을 되찾게 된다. 친구들도 더 이상 크리센서멈을 놀리지 않는다.

참으로 단순한 내용이지만 이름 때문에 고민하는 아이의 마음이 잘 담겨 있었다. 무슨 이름이 알파벳 철자 열세 개나 되냐고 놀리는 아이들의 짓궂음조차도 귀여웠다. 나 역시 친구나 선생님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때가 있었지 하고, 어린 시절로 시계 태엽을 되감아 보기도 했다.
지금은 곤히 잠들어 있는 딸아이도 이제 곧 사소한 일로 친구들과 다투고 속상해서 엄마에게 SOS를 치겠지. 그때 이 책이 딸아이의 상처 난 마음에 좋은 연고가 되어 줄 것 같다. 어쩌면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참 건강하게 자랄 텐데……. 이름을 가지고 놀리는 아이들을 호되게 꾸짖지 않고도 놀림을 당한 아이의 마음을 토닥토닥 다독여 줄 수 있었던 건, 바로 공감의 힘이었으니까.
나는 과연 어떤 엄마가 될까. 새삼 긴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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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ns of vicodin addiction.
Tracked from Snort a vicodin. | 2010/06/10 23:10 | DELVicodin. Signs of vicodin addictio. Dangers of vicodin. Vicodin side effects. Vicodin detox.
[출판인 에세이] 어떤 봄날에 :: 2009/04/08 14:36

한 사내가 갑자기 자신의 삶으로부터 도망쳤다. 탐정은 이 사내를 찾아 나선다. 몇 년 뒤 이 사내를 찾아낸 탐정은 작은 충격에 빠진다. 사라진 남자는 자신의 삶으로부터 완전히 도망쳐서 전혀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탐정이 보기에 그는 예전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옛 여인과 비슷한 여인을 만나, 비슷한 일을 하면서, 비슷한 사랑을 나누면서 그는 ‘이것이 새로운 삶이다’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삶으로부터 도망쳤음에도 그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새로운 삶을 시작했으나 그 삶이 별다르지 않다면, 그는 어떻게 사라진 것인가. 아무리 새로운 삶을 시작해도 또다시 과거와 같은 삶을 계속하는 것. 그럼에도 그만한 수고를 들일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는 것.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그만한 수고를 들일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이 방점이 무한도돌이표인 우리 삶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대응방식을 보여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때때로 얼마나 허상인지를 깨닫는 경우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허상의 삶이기 때문에 매번 새롭게 또 다른 삶을 꿈꾸기도 하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예전의 삶과 똑같아지더라도……, 비록 내가 붙잡은 삶이 결과적으로 허상이었다 할지라도……, 살아내는 것이다.
또 다시 봄이 왔다. 매번 새 봄이 오지만, 그 봄은 여전히 옛날의 봄이고 낡은 봄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어느 봄이든 새롭지 않은 봄이 있을 것인가.
혹시 이 봄에 내 삶이 시시하고, 허망하고, 찌질하다고 느끼는 청춘이 있다면 실망하지 마시라, 아니 실망할 일이 아니다. 본디 삶이란 찌질한 것일지도 모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속에서, 그 봄 속에서 그럼에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확신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봄을 앞에 둔 사람들의 투덜거림에 지나지 않는다.
‘봄은 봄이건만 봄이 아닌 것’은 지나치게 당연한 것이다.

[치유 에세이]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2009/04/02 13:12



_혼자 사는 여성들이 겪는 두려움과 심리적 혼란에 주목하다
세상에는 남자처럼 성공하는 법, 재테크 비법, 스타일 관리법 등 여성들이 화려하게 성공하는 비법들이 넘친다. 그러나 성공했다고 불리는 많은 여성들조차, 복잡한 심리적 혼란을 겪고 있다. 이제 그들의 내적 필요에 주목해야 할 때다.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일구어가기 원하는 현대 여성들이 맞닥뜨린 고민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는 여자도 남자 못지않게 성공할 수 있다며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당당하게 자신을 내세우는 여성이 되라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여성을 두고 여자답지 못하다고 비난한다. 혼자 사는 여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더욱 심한데 아무리 학업과 직장 생활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룬 여성이라도 예외가 되지 못한다. 오래도록 애인이 없거나 결혼적령기가 지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하면 주위의 안타까움과 의구심이 뒤섞인 시선과 노골적인 질문들을 받으면서 자신감을 잃는다. 그러다 보면 실제로는 싱글 생활에 큰 불만이 없는 여성도 자신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자신이 뭔가 결격 사유라도 있는 게 아닌지 자문하는 경우가 많다.
영문학 교수에서 심리치료사가 된 저자 플로렌스 포크는 20년간 현장에서 여성들을 상담하면서 커플, 싱글을 막론하고 많은 여성들이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단지 남자 친구가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인생을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남자 친구가 자신을 떠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정신적으로 의존적인 삶을 살아가고, 남편의 폭력이나 집착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혼자 남게 될까 봐 계속 문제를 끌어안고 지내고 있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혼자인 것을 두려워하는 여성들에게, ‘고독’이 ‘고립’의 유사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필요와 욕망, 본연의 자아와 만나고 창조력과 삶의 원동력을 얻을 수 있는 시간임을 알려준다. 이 책을 읽은 여성 독자들은 ‘혼자인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혼자 있는 시간을 자신을 성장시키는 환한 시간으로 바꾸어가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_‘우울한 혼자’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성장하는 고독’으로
그렇다면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만끽할 것인가?
이 책에는 저자의 경험을 비롯하여 여러 여성들의 내밀하고도 진실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안나는 오랜 외로움에서 비롯된 우울증으로 심리치료사를 찾았다가 한 가지 과제를 받는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서 동행이 있는 사람과 혼자인 사람의 숫자를 세어보라는 것이었다.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혼자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 순간 저주가 풀렸어요.”
안나가 미술관에서 발견한 것은 외로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우울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우울한 말들을 계속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에 무게를 실어주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렇다면 우울한 감정에 집착하는 태도를 버리고, ‘혼자 있는 것’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우울한 시간’이 아니라, ‘고요한 자유가 흘러넘치는 시간’이자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성장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관점과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힘도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안나의 사례는 보여준다. 그러한 깨달음으로부터 그녀는 외로움을 자기 자신을 위한 긍정적인 시간으로 바꾸어갔고 혼자 있는 시간을 만끽하는 법을 배웠다.
저자는 이밖에도 실연이나 이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겪은 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 혼자 있는 법을 배운 뒤에야 자신의 사랑과 삶을 되찾은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현장에서 심리치료사로 일하면서 저자가 깨닫게 된 것은 싱글, 커플을 막론하고 모든 여성은 혼자서 자기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 때,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 홀로 설 수 있을 때 진정한 관계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혼자 있는 것이 여성의 삶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통찰력 있는 분석을 제공한다. 그리고 여자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긍정적인 옵션과 가능성을 조근조근 들려주면서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자아와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내게 한다.
오랫동안 혼자 지내다 보니 나는 고독이 선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모든 여성이 나와 같이 삶이 바뀌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혼자라는 것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먼저 혼자라는 것이 외로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고립이나 소외나 실패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혼자 있는 것이 이런 것들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혼자 사는 여자로서 나의 첫 번째 과제였고, 여성 내담자들과 상담을 할 때 내가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혼자임이 무엇인지 이해함으로써 가장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어떤 의미로든 혼자인 여성들이라고 확신한다. (본문 60-61쪽)
이렇게 우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으로부터 소외된 채로 자라난다. (...) 자신과 분리되다 보면, 자신을 고의적으로 파괴하려는 시도에 대해 거부할 힘이 없기 때문에 여자는 외로움과 결핍감을 느끼게 된다. 나를 찾아온 어떤 여성은 “내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남자가 나를 예쁘다고 할 때 말고는 자신이 없어요. 키도 크고 금발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난 잘못 태어났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고백을 듣는 것이 내겐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중 하나였다. (본문 87-88쪽)
삐삐는 다듬어지지 않은 에너지를, 다루기 어렵고, 말을 안 듣고, 조숙하고, 모험을 즐기고, 인습에 반항하고, 터무니없고, 시적이고, 사물을 날카롭게 꿰뚫어보는 어린 소녀의 거친 면을 다 갖추고 있다.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 역시 자유롭고 생명력 넘치는 어린 소녀의 상상력을 잘 보여준다.(...) 삐삐는 세상에 나가 홀로 선다는 것, 즉 ‘자기’를 잊지 않고 그것을 선언하고 살아남는 것에 대한 하나의 은유다. (본문 105쪽)
지금까지 혼자 있지 않기 위해 줄기차게 도망 다녔지만, 이제 혼자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시점이 왔다고.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살아 있는 한 혼자인 때가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사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나를 지배했던 구원의 환상을 버려야 했다. 그러자 점차 두려움이 걷히면서 혼자인 것이 더 이상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혼자 사는 삶에 숨겨진 다양한 가능성들을 탐색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수치와 외로움의 공간이 아니라 치유의 공간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내 안의 많은 것이 다시 깨어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본문 25쪽)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서로의 고독을 지켜주는 사랑, 나란히 옆에 서서 가는 사랑, 그러면서 서로의 자유를 빼앗지 않는 사랑에 대한 시를 썼다. 이런 사랑은 결핍이 없는 사랑이다. 사실 엘렌과 로버트의 관계가 회복된 것은 혼자 있겠다는 결심,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감정을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바꾸어가고, 고독의 힘에 복종하기로 한 결심 덕분이었다. 그때서야 상대방의 모습을 투사를 거치지 않고 진정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원했던 진정한 파트너십을 만들어나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다음 해 발렌타인데이에 재결합했다. (본문 341쪽)
_지은이 : 플로렌스 포크 (Florence Falk)
미국 뉴저지주립대학교(Rutgers University) 영문학 조교수였던 플로렌스 포크는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으면서 심리치료사로 직업을 바꾸었다. 이후 미국 초월심리학 협회(American Association for Transpersonal Psychology) 및 맨해튼 융 협회(C.G.Jung Foundation in Manhattan)에서 강의와 워크숍을 담당하며 20년간 심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_옮긴이 : 최정인
서울대학교 불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본 대학교에서 번역학을 공부했다. 베텔스만 출판사에서 기획자로 일했다. 옳긴 책으로 《코스톨라니 실전 투자 강의》《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해피에이징》이 있다.
[출판인 에세이] 사랑하며 살게요, 김수환 추기경님!!! :: 2009/03/16 16:02

처음엔 충격이었다. 아... 이제는 누구를 의지해 살까? 안타깝고 허망하고 애통했다. 어떡하나, 어떡하나, 하던 마음이 그 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무엇보다 그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훈훈해 지고 한없이 부드러워졌다. 저렇게 인중이 긴 분은 세상에 또 없을 거야... 하며 웃음이 떠오르고 온화한 그 분의 표정을 보며 나도 몰래 미소가 피어난다.
그 분이 이 세상을 떠나시니 이 세상에 사랑이 가득하다. 이 나라에 단비처럼 내린 축복이다. 원래 그 분 마음 속에 그리도 크고 아름다운 사랑이 있었던 것인데 가시면서 우리들 하나하나에게 보여주시고 다독여주신다. 잘 살라고. 그분이 하셨던 말과 행동, 마음가짐과 몸가짐, 겸손과 용기 등등 전해지는 이야기를 읽으며, 그렇게 사시며 겪었을 인간적 고뇌와 고통을 생각하며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 분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가지고 나는 상상해 본다. 드라마를 만든다. 이런 장면에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어떤 때 정말 외로우셨을까... 나도 모르게 또 두 손을 모은다. 약속을 한다. 보여주신 대로, 노력하며 살겠다고. 몸을 낮추고 가진 것 나누고 남을 배려하며 용기 있게 씩씩하게, 웃기는 말도 가끔 하며 살겠다고.
앞으로의 나의 삶은 예전과는 다를 것이다. 살면서 만나게 될 어떤 상황에서 나는 내게 물을 것이다.
“아름답게 살고 싶지? 추기경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 것 같아?”

[에세이] 최범석의 아이디어 :: 2009/03/09 20:54

패션계의 아이콘이자 악동, 끊임없이 진화하는 디자이너 최범석의 두 번째 책 .
빈티지, 팝아트, 미술관 등 디자인의 영감이 샘솟는 근원들을 찾아가보고, 여행, 작업 현장, 해외 컬렉션 등을 통해 패션을 호흡하며 사는 열혈 디자이너의 디자인 스피릿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그가 거침없이 쏟아내는 패션에 대한 열정은 디자이너 지망생과 연예인 지망생,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메트로섹슈얼의 지지를 받기에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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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최범석의 아이디어를 훔치다
_폴더명: 최범석의 I.D.E.A. / 패스워드: 패션을 향한 순수한 열망, 그리고 거침없는 패기
패션계의 핫 아이콘이자 악동, 끊임없이 진화하는 디자이너 최범석의 두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전통적인 디자이너들이 모델이나 배우의 뒤에 숨어 그의 스타일을 완성해주는 데 그친 데 반해, 디자이너 최범석은 그 자신이 ‘제너럴 아이디어’를 상징하는 모델이자 자신의 꿈을 끊임없이 추동해나가는 21세기형 디자이너다. 동대문에서 시작해 파리 백화점까지 진출한 그의 이력은 맨손으로 바닥부터 시작하는 이들에게 많은 희망을 안겨준 바 있다. 강백호와 서태웅의 매력을 동시에 지닌 사람, 순수하게 디자인과 패션 자체를 즐기지만, 자신의 옷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싶은 야망을 숨기지 않는 남자. 그 남자의 머릿속엔 무엇이 들었을까?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디자인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_디자인의 영감과 열정에 관한 이야기
이 책은 디자이너 최범석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패션이라는 문화와 꿈의 시작이 되었던 빈티지의 세계, 디자인의 영감을 공급하는 혈관 팝아트, 뉴욕의 모마, 뉴뮤지엄, 아모리쇼(현대미술 박람회) 등 나와 다른 사고의 네비게이터를 발견하는 미술관 등 디자인의 영감이 샘솟는 근원들을 보여준다. 또한 마크 제이콥스와 안나 수이를 만나는 뉴욕 컬렉션 런웨이, 여행, 파티, 클럽 등 젊음과 놀이가 에너지가 창조로 이어지는 현장 등을 통해 패션을 호흡하며 사는 열혈 디자이너의 디자인 스피릿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머리로 먼저 디자인하라’‘옷이 있는 공간 전부로 승부하라’‘상상의 가지치기’ 등 원단과 호흡하며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현장 디자이너의 실질적인 충고가 들어 있다는 점. 더 나아가 이 책은 패션이 라이프스타일이자 자기 표현의 도구인 오늘날 이삼십 대에게 꿈과 자극, 영감을 제공하는 책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1장 “Inspiration(영감)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2장 “프로 디자이너는 자신의 삶을 Design(디자인)한다.”
3장 “즐겨야 보인다: Entertain your Design, Entertain your Life.”
4장 “네 꿈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여라(Action).”
-디자인에는 검정 띠가 없다. 어떤 수준에 도달했다 해서 노력과 시도를 멈추어선 안 된다. 즐거운 호기심과 용감한 시도가 없으면 디자이너는 사망. 새로운 맛이 궁금한 사람만이 새로운 맛을 찾을 수 있고, 결국 몸을 움직여 새로운 요리를 해보는 사람만이 새로운 요리를 완성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이 만들어볼수록 점점 더 잘 만들게 된다.
-‘난 시대를 좀 앞서가서 사람들이 내 디자인을 좀 어려워해.’ 내 주위엔 이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 그런데 그들이 간과한 게 뭔지 알아? 디자인은 그 시장에 맞는 것을 만들고, 그들과 커뮤니케이션 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만드는 거라는 점이야.
-전 세계 남자들의 운동 습관까지 바꾸다니! 유럽, 미국, 아시아의 수많은 남자들이 디오르의 옷을 소화해보겠다고 운동 습관을 바꿔가며 근육을 줄이고 있다. 디자이너의 파워가 실감나는 대목이다. 디자이너는 이처럼 세상을 바꾸고 시장을 바꿀 줄 알아야 한다. 나도 더 넓은 시장과 소통하고 더 많은 사람과 만나는 옷을 디자인하고 싶다.
-나는 자리가 없어 맨 앞쪽 계단에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조명이 암전되면서 천둥소리가 났다. 관객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아니, 저기 길 건너편에는 햇빛이 쏟아지고 있는데, 천둥소리와 함께 비가 퍼붓더니 도로를 물바다로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게 살수차가 있던 이유였다. 갑자기 건너 편 창고에서 모델들이 워킹을 시작했다. 그 옆으로 어떤 이들은 떠들며 우산을 쓰고 가고, 어떤 이는 비 맞은 개와 함께 지나갔다. 우산 하나를 같이 쓴 세 명의 여자들도 지나갔다. 정말, 비 오는 날 거리에서 만날 법한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었다. 나는 그 상상력과 과감함에 감동했다. 내가 본 쇼 중 연출 베스트 10 안에 들 것이다. 음악 대신 비라니! 하지만 그날의 감동은 저녁 내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아이디어가 부족한 게 아닐까 괴로워해야 했다. 나도 이처럼 다른 이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는 컬렉션을 꼭 하리라.
-파이(Phi) 컬렉션에서는 우연히 앞줄에 앉은 사람들의 신발을 보게 되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마크 제이콥스, 랑방 등 여러 상표의 신발들이 보였다. 컬렉션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멋스러운 구두를 신는 편이다. 그런데 내 앞에 불쑥 캔버스 운동화가 보였다. 신선했다. 컬렉션에 올 때는 거의 다 멋을 부린다. 나도 그렇다. 컬렉션에서 트렌드를 읽고 아이디어를 얻는 것 못지않게 컬렉션에 오는 사람들의 차림새와 멋에서 신선한 룩을 배울 때가 많다.
-또 재미있는 사실은 컬렉션에 처음 온 에디터들은 말 그대로 ‘첫 출장’ 느낌이 난다는 점이다. 옷을 잘 차려입었다기보다 신경을 많이 쓴 냄새가 난다. 반면 오래된 에디터들은 빨리 일을 끝내고 어디 좋은 레스토랑이나 가서 맛난 것을 먹어야지, 하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들은 많이 꾸미지도 않고 그냥 편하게 입고 온다. 물론 자기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컬렉션에 올 땐 좀 더 신경을 쓰긴 한다.
-안나 수이의 컬렉션을 본 첫 느낌은 헤어 쇼 같다는 것이다. 옷은 전체적으로 블랙 계열이고 무거운 컬러를 많이 썼다. 가발이 각양각색이라 시선이 너무 헤어로 집중됐다. 컬렉션을 준비할 때 옷에 포인트가 많으면 헤어나 메이크업을 상대적으로 약하게 하고, 옷이 단순하면 액세서리나 헤어, 메이크업으로 포인트를 주는 게 완성도를 높이는 길이다. 안나 수이 컬렉션은 요소가 너무 많은 것 같았다. 마지막 점검을 디자이너가 직접 하지 않은 걸까?
-그런데 쇼 시작 전에 마크가 뛰어나왔다. 그리고 인사를 한다. 순간 나는 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아! 피날레를 먼저 하는구나, 이거 전에 여러 번 했는데. 역시나. 모델들이 줄을 맞춰서 피날레로 쇼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한 벌씩 입고 나오며 쇼가 끝났다. 그것도 모두 짜증이 묻어 있는 얼굴이었다. 이건 뭐, 켄터키 할머니들이 흐린 봄날 차 마시러 가는 것 같은 쇼였다. 음악은 정말 좀 심했다. 꼭 미국 국가 같았다. 쇼를 보는 내내 다른 사람들의 표정 역시 그다지 감동을 받은 것 같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이건 아닌데, 하는 표정이었다. ![]()
32살,
동대문에서 파리, 그리고 이제 뉴욕으로
끝없이 진화하는 디자이너 최범석의 열정의 디자인 레슨
남자배우들이 꼽는 잇(it) 브랜드 '제너럴 아이디어‘
디자이너 최범석의 머릿속을 훔치다
패션계의 핫 아이콘이자 악동, 끊임없이 진화하는 디자이너 최범석의 두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전통적인 디자이너들이 모델이나 배우의 뒤에 숨어 그의 스타일을 완성해주는 데 그친 데 반해, 디자이너 최범석은 그 자신이 ‘제너럴 아이디어’를 상징하는 모델이자 자신의 꿈을 끊임없이 추동해나가는 21세기형 디자이너다. 동대문에서 시작해 파리 백화점까지 진출한 그의 이력은 맨손으로 바닥부터 시작하는 이들에게 많은 희망을 안겨준 바 있다. 강백호와 서태웅의 매력을 동시에 지닌 사람, 순수하게 디자인과 패션 자체를 즐기지만, 자신의 옷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싶은 야망을 숨기지 않는 남자. 그 남자의 머릿속엔 무엇이 들었을까?
디자인은 어디서 오는가
디자이너는 세상과 어떻게 만나는가
이 책은 디자이너 최범석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패션이라는 문화와 꿈의 시작이 되었던 빈티지의 세계, 디자인의 영감을 공급하는 혈관 팝아트, 뉴욕의 모마, 뉴뮤지엄, 아모리쇼(현대미술 박람회) 등 나와 다른 사고의 네비게이터를 발견하는 미술관 등 디자인의 영감이 샘솟는 근원들을 보여준다. 또한 마크 제이콥스와 안나 수이를 만나는 뉴욕 컬렉션 런웨이, 여행, 파티, 클럽 등 젊음과 놀이가 에너지가 창조로 이어지는 현장 등을 통해 패션을 호흡하며 사는 열혈 디자이너의 디자인 스피릿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머리로 먼저 디자인하라’‘ 옷이 있는 공간 전부로 승부하라’‘상상의 가지치기’ 등 원단과 호흡하며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현장 디자이너의 실질적인 충고가 들어 있다는 점. 더 나아가 이 책은 패션이 라이프스타일이자 자기 표현의 도구인 오늘날 이삼십 대에게 꿈과 자극, 영감을 제공하는 책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_지은이 : 최범석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스물한 살 나이에 동대문 시장에서 원단 장사를 하며 바닥부터 디자인을 배웠다. 이후 '가진 것 없고, 아는 것 없다'는 의미의 브랜드 ‘Mu’를 론칭해서 열렬한 반응을 얻었다. 2003년 봄, 우연히 참관한 파리 컬렉션에서 옷으로 세계와 소통하는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해 10월, 브랜드 ‘General Idea by Bumsuk’을 설립, 3년 만에 한국인 최초로 파리 프렝탕 백화점, 르 봉 마르쉐 백화점 등에 ‘제너럴 아이디어’ 매장을 오픈했다.
현재 대한민국 젊은 남성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 최범석. 그는 지금 다시 한 번 세계 패션과 만나기 위해, 2009년 2월에 열리는 뉴욕 컬렉션을 준비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