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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에세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선물 :: 2009/12/23 09:42

지난 10월 18일, 저는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처음 잡았던 날짜인 11월 22일보다 한 달여나 앞당겨 치른 결혼식이었죠.
갑자기 결혼을 발표한 연예인을 바라보는 듯한 의혹의 눈길이 적지 않았으나, 실은 외할아버지의 병환이 깊어져 다급히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애초 계획보다 일찍 부부가 된 저희는 오히려 할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로 행복한 신혼생활을 시작했고, “진이 결혼식은 보고 가야 하는데.” 하시며 달력에 하루하루 X표를 치시던 할아버지는 원래 예정일을 하루 넘긴 11월 23일에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60년을 함께한 동반자인 외할머니, 엄마를 포함한 네 자녀 그리고 손자 손녀까지, 할아버지는 온 가족이 모인 가운데 눈을 감으셨습니다. 이미 의식은 없으셨지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 작별의 인사를 받으셨죠.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도 모두 제가 성인이 된 이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가까운 이의 죽음이 아주 낯선 일은 아니었지만, 임종을 지킨 건 처음이라 가쁜 숨소리만 들리던 고요함과 그 속에서 울려 퍼지던 마지막 인사말, 생과 사의 서로 다른 감촉은 매우 특별하고 강렬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삶이 끝나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보다 더 강렬했던 건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는 할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꼿꼿한 선비 같았던 할아버지가 실은 얼마나 애틋한 사람이었는지 읊조리듯 들려주시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호흡이 멈추는 순간 할아버지의 몸 위로 와락 달려들며 울부짖으셨습니다. 비명과도 같은 울부짖음 속에서 들려왔던 여러 가지 말들 중에서 이 한 문장이 지금껏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얼마나 사랑했는데!”
여든의 할머니가 외치는 ‘사랑’이라는 말은 그 생경함 때문에 더 절절한 울림이 되어 가슴속으로 번져나갔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외치는 ‘사랑했다’는 말은 지금껏 들어본 어떤 사랑 고백보다 더 진실하게 느껴졌습니다. 울부짖던 할머니는 곧이어 할아버지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셨습니다. 아니, 입맞춤이라기보다는 키스라고 해야 맞을 것 같네요.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올까 싶을 만큼 격렬한 키스. 엄마가, 외삼촌이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완강히 버티던 할머니의 뒷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그 장면은 염을 하고 입관을 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던 순간에도 똑같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얼음처럼 차갑고 딱딱하게 굳은 입술에 퍼붓던 또 한 번의 격렬한 키스. 그건 아들도 딸도 할 수 없는, 오직 평생을 함께한 배우자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일간의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의 늦은 밤, 침대에 나란히 누워 저는 신랑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할머니의 그 한 마디를 잊을 수가 없어. 우리도 마지막 순간에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어.”
그날 밤 우리는 어느 날보다 더 강하게, 뜨겁게 서로를 끌어안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이게 할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구나 생각하면서…….

글. 문학교양팀 이 진
[편집자 에세이] 난 내가 맘에 들어 :: 2009/07/19 21:42

카미노를 걸었다고 해서, 어떤 대단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사람이 저절로 달라지진 않는다. 우리는 다만 변화하기로 ‘선택’할 수 있을 뿐이지 않을까. 대개의 변화는 늘 느리게, 알아차리기 힘들게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나 자신의 속도였다. 내 속도에 맞지 않을 다른 지름길을 꿈꾸던 백일몽에서 빠져나와, 느리더라도 단단하게 한 걸음씩 발을 내디뎌야 했다.
김희경,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에서
얼마 전 대학 친구 몇 명이 실로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예뻐졌다, 하나도 안 변했다 등등 ‘여자애들’ 특유의 인사말을 주고받은 후 서로의 근황을 전하고, 이어 각자가 알고 있는 동기나 선후배들의 근황을 체크해나갔습니다. 그 친구는 무슨 시험을 준비한다더라, 그 선배는 결혼해서 어디에 산다더라, 그 후배는 이번에 어느 회사에 들어갔다더라... 잘못된 정보는 수정하고, 처음 접하는 정보는 새로 저장하며 낡은 자료를 업데이트해나갔죠.
이제 졸업한 지 4, 5년째, 여전히 변화가 많은 시기라 대개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묻는 말들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남들이 걷는 길을 기웃거리며 내가 선 자리를 가늠해보는 묘한 심리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부끄럽게도 뭔가 잘 안 풀리는 친구의 소식에서는 살며시 위안을 얻고, 화려한 행보를 보이는 친구의 소식에는 살짝 주눅이 들었습니다. 다른 이들의 길에 비추어 제 행복의 크기를 재는 얄팍한 마음이었죠.
사실 수년째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들의 삶은 제 삶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 제가 그들의 삶에 끼어들 수 없는 것처럼요. 그들이 행복하든 불행하든 저는 제 나름대로 행복하거나 불행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가끔은 그런 어리석은 비교가 저를 쓸데없는 열패감에 빠뜨립니다. ‘남의 떡’은 왜 늘 그렇게 맛있게 보이는 걸까요. 시간을 되돌려 제게 다시 기회가 온대도 절대 가지 않을 길이란 걸 잘 알면서도 말이죠.
다행히 그런 기분은 잠시뿐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날은 유쾌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어리석은 비교’에 하루 이틀은 의기소침해 있었을 텐데, 웬일인지 그날은 기웃거리던 눈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거든요. 늦은 밤 제가 무사히 집에 들어가기를 기다려준 사람에게 전화를 걸고, 읽다 만 원고를 꽤 흥미롭게 읽고, 그날 배달되어 온 CD를 잠깐 듣다가 알람을 맞추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며칠 후 문득 ‘내가 전보다 조금은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웃거리고 눈치 보고 비교하는 버릇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그 여파가 얼마 가지 않으니까요. 실은 요즘 좀, 제 삶이 괜찮아 보입니다. 심지어 아름다워 보일 때도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 고민도 많고, 두려움도 많고,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지만 그럴수록 내 길을, 내 발로, 내 속도로 걷고 있다는 느낌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나 혼자만 아는 길 곳곳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에 경탄할 수 있는 태도를 조금씩 익혀가고 있나 봅니다.
한비야 선생님의 새 책에 나오는 말처럼, 요즘 “난 내가 마음에 들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