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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임혜지의 책에 대한 단상들 :: 2010/03/09 14:12

외국에 살면서 저는 거의 모든 독서를 독일어로 했어요. 그 중에서도 '책 읽어주는 남자' (Der Vorleser, Bernhard Schlink)와 '느림의 발견' (Die Entdeckung der Langsamkeit, Sten Nadolny)이 가장 인상에 남는 책이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은 책이고, 아직도 가끔씩 다시 읽는 책입니다. 앗, 그러고 보니까 둘 다 독일 작가의 책이군요. 요즘은 세월이 좋아졌지만 인터넷을 알기 전에 저는 한글로 된 활자에 굉장히 굶주렸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몇 권 되지 않는 한국책은 내용이 뭐든 간에 거의 달달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읽었지요. 저는 책을 원래 속독을 넘어 폭독에 가까울 정도로 빨리 읽어치우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마음에 드는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늘 새로운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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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쓴 첫 책은 독일어로 쓴 전공서적이에요. 두 번째와 세 번째 책을 근년에 한국어로 썼지요. 제가 그동안 써두었던 에세이들 중에서 건축에 관한 내용만 추려서 출판한 것이 재작년에 나온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한겨레출판)'입니다. 그러고나서 시사와 일상에 대한 에세이들이 좀 남았길래 제가 출판사에 여쭤봤습니다. 사실 저는 대운하라던가 인권, 성매매 등 시사에 관한 글을 출판하기를 내심 바랬지요. 그런 것이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푸른숲에서 '일상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모토로 소소한 일상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꼭지들을 절묘하게 조합해서 '고등어를 금하노라'로 멋지게 묶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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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저는 소설도 썼답니다. 저의 첫 한국책인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을 준비하면서 저의 한국어 실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일단 중단하고 '물안개의 집'이라는 소설을 먼저 썼습니다. 내 마음 속에 떠 있는 상을 잡아내어 표현하는 연습으로는 사랑 소설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데 뭣도 모르고 뛰어들었다가 아주 혼이 났지 뭡니까? 소설을 쓴다는 작업이 아주 사람 영혼을 말리고 진을 빼더군요. 제가 초보자라서 그랬겠지만 하도 감정이입을 하다보니 소설의 주인공이 임신하니까 저까지 가상임신을 해가지고 이거 실화라고 오해받는가 싶어서 가슴이 덜컥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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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다 쓰고보니 제법 제 마음에 들길래 여기저기 문학상에도 내보고 여러 출판사에 문의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블로그를 만들어서 연재로 솔솔 풀어버렸지요. 많지는 않아도 뜨겁게 공감하는 독자들도 만났고 해서 저는 성공작이라고 자부합니다. 그 소설을 쓰면서 저와 남편 사이의 깊은 상처가 치유된 면도 큰 수확입니다. 초보자로서 글쓴이의 내면세계를 겁없이 드러낸 작품이라 이제는 누가 출판하자고 해도 별로 반갑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책이 팔리고 안 팔리고는 우연이라고 믿고 있어요. 독자들이 특정 테마를 바라는 시기에 우연히 그런 책을 내면 잘 팔리는 것이고, 암만 괜찮은 책이라도 독자들이 시기적으로 외면하는 테마라면 안 팔리겠지요. 그런데 글을 쓰는 사람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쓰는 거거든요. 작가가 독자들의 변화하는 입맛에 다 맞출 수도 없고, 또 그러고 싶어도 그게 안 되니까 글 쓰는 사람들이 가난한 거 아니겠어요? 저는 글 쓰는 그 순간만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그 후에 잘 팔리거나 안 팔리는 건 제 덕도 탓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정말 쓰고 싶은 것은 탐정소설이어요. 잔인하지 않으면서 스릴 있는... 고건물에 얽힌 글감도 많이 확보해놓았구요,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까지 미리 써놓았다지요. (앗, 그런데 독일어로 썼구나.) 그런데 언제 그것을 쓰게 될지는 좀 요원합니다. 요즘 제가 거의 의무감에서 숙제처럼 쓰고 있는 글들은 독일 운하에 관한 칼럼 등 시의성이 있는 글들이거든요. 사대강 공사처럼 끔찍한 사건만 막고 나면 저도 한국 일에 신경을 끄고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에는 저의 문제지요. 제가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은 계속 일어날 테니까요. 또 저랑 독일어로 전공서적을 같이 내기로 한 독일 노교수님이 한 분 계신데 제가 아마 그 약속도 거절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언젠가는 양단간에 결정이 나겠지요. 제가 의무감에서 쓰는 글을 더욱 정성껏 씀으로써 만족감을 느끼던지, 아니면 어느 순간 의무감을 확 던져버리고 탐정소설을 쓰던지...

어쩌면 제가 탐정소설을 쓰더라도 한국어로 쓰게 될지도 몰라요. 제가 독일어로 소설을 쓴다면 꽤 오랜 시간을 모국어와 작별하고 독일어에 몰입해야 할 텐데 제가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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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해 35년을 독일에서 살았다. 칼스루에 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사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 스위스관 설계 및 기획에 참여했다. 현재 독일 뮌헨에 거주하며 프리랜서로 문화재 실측 조사와 발굴 연구를 하고 있고, 일감이 없을 때는 글을 쓰고 살림을 하느라 허둥댄다. 성격은 극과 극이지만 이상(理想)이 맞는 독일 남자와 결혼해 20년 넘게 같이 살고 있다. ‘우리 아이가 공부는 못해도 성격은 좋으니 걱정 마세요’라며 선생님을 위로하고 딸에게 대놓고 콘돔 사용법을 가르치는 대범한 엄마이지만, 댄스 학원에서 남편과 왈츠를 출 때가 가장 행복한 만년 소녀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 《프리드리히 바인브렌너 시대의 칼스루에 주택》(독일어),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이 있다. 


2010/03/09 14:12 2010/03/0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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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혜지 작가님을 인터뷰할 블로거를 찾습니다 :: 2010/03/09 09:45

2009년 푸른숲 독자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고등어를 금하노라> 임혜지 작가를 인터뷰할 블로거를 찾습니다. 자유로운 그러나 이기적이지 않은 생활을 꿈꾸고, 쿨하지만 뜨겁게 살아가는 엄마같고 언니, 누나 같은 그녀에게 인터뷰의 질문을 하고 싶은 블로거님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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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 기간 : 3월 8일 ~ 14일
블로거 발표 : 3월 17일  

신청 방법 : 블로거 이름, 블로그 주소, 인터뷰 질문 5가지 이상을 적어서 degool@prunsoop.co.kr 토트 메일로 보내주시고 덧글로 한줄 남겨주는 센스를 발휘해주세요~

인터뷰 방법 : 임혜지 선생님께서 블로거와 질문을 보시고 한 분을 지정하시면 그 분에게 임혜지 선생님과 메일로 인터뷰가 진행됩니다. 여기서 블로거님의 자기 소개와 질문이 선정되는 중요한 기준이 되겠지요. 질문의 내용에는 아무 조건이 없으니 마음껏 하시면 됩니다.

참조 사항 : 블로거가 아니어도 인터뷰어로 신청을 하실 수는 있으나, 블로그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면 더 좋겠네요. 블로거의 선택은 전적으로 임혜지 선생님이 선택하십니다.


2010/03/09 09:45 2010/03/0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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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탕화면] 3월 푸른숲 월페이퍼 :: 2010/03/08 17:35


푸른숲 월페이퍼 4종(클릭해서 다운받으세요)

2010/03/08 17:35 2010/03/0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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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밀방문자 | 2010/03/09 11:52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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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임혜지 작가가 블로거들에게 :: 2010/03/08 16:26

블로거에게 쓰는 편지

이렇게 블로거 독자들과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평소에 한국말로 대화할 기회가 적어서 이렇게 글로나마 대화하는 걸 참 좋아해요.

간략하게 제 소개를 하자면 전 지금 36년째 독일에 살고 있는 50대 여성이고요, 문화재 연구와 고건물 실측이 한동안 본업이었어요. 지금은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삶의 질을 높이고 좀 더 즐겁게 살려구요.

저는 독일인인 남편과 성년이 된 아들과 딸을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지로 여기며 살고 있지요. 저는 우리 아이들이 남편과 저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인간들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답니다. 당연하지요. 우리가 얼마나 정성을 들여서 키웠는데요. 그래서 딸이 시험 전날 밤에 춤추러 나가서 집에 안 들어와도 저희 부부는 쿨쿨 먼저 잡니다. 부모 사랑 듬뿍 받고, 넘치지는 않아도 모자라는 것도 없이 편안하게 자란 세대인데 자기들 인생을 오죽 잘 알아서 설계하겠냐고요. 옆에서 부모라고 괜히 믿지 못하고 걱정하는 것은 아이의 정서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독일 부모들이 다 이런 건 아니에요. 독일에서도 저희 가정이 좀 독특한 편입니다.)

남편과 저는 극과 극으로 다른 사람이어요. 정서적으로 공통점이 없다 보니 이론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저희 부부 사이에서 유일한 소통의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척하면 삼천리일 사안을 가지고 저희는 늘 머리를 싸매며 갑론을박 했는데, 이런 점이 저희 관계의 매력이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젊어서는 이런 상황이 참 한심하고 성가셨지만 이제 나이 먹으면서 보니 그렇게 다른 점으로 인해 우리는 서로에게 도전이 되어주고 서로를 키워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 부부는 아직도 잘 싸우지만 이젠 절망하지는 않고 쪼금 미워하다가 금방 잊어버립니다.



임혜지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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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해 35년을 독일에서 살았다. 칼스루에 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사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 스위스관 설계 및 기획에 참여했다. 현재 독일 뮌헨에 거주하며 프리랜서로 문화재 실측 조사와 발굴 연구를 하고 있고, 일감이 없을 때는 글을 쓰고 살림을 하느라 허둥댄다. 성격은 극과 극이지만 이상(理想)이 맞는 독일 남자와 결혼해 20년 넘게 같이 살고 있다. ‘우리 아이가 공부는 못해도 성격은 좋으니 걱정 마세요’라며 선생님을 위로하고 딸에게 대놓고 콘돔 사용법을 가르치는 대범한 엄마이지만, 댄스 학원에서 남편과 왈츠를 출 때가 가장 행복한 만년 소녀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 《프리드리히 바인브렌너 시대의 칼스루에 주택》(독일어),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이 있다. 


임혜지의 키워드 단상(업데이트 예정)
 
#1 임혜지의 책에 대한 단상 -> 보러가기
#2 임혜지의 글쓰기에 대한 단상 - 업데이트 예정

블로거 참여 코너(업데이트 예정)
 
1. 작가 임혜지를 인터뷰할 블로거를 찾습니다. - 클릭하세요
2. <고등어를 금하노라>의 서평 트랙백을 받습니다. - 클릭하세요
3. 임혜지는 OOO이다. 고등어를 금하노라는 OOO 이다.  - 예정

작가와 블로거와의 만남이란? - 보기

2010/03/08 16:26 2010/03/0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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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작가와 블로거와의 만남 :: 2010/03/08 16:24

푸른숲 블로그가 오픈된지 약 1년 가량이 되네요. 2009년 3월 6일에 오픈되었으니까요. 그동안 푸른숲의 책소개, 편집자와 정원사의 이야기들, 작가들의 소개 등의 글을 포스팅했습니다. 하지만 소통의 장으로서 역할이 부족했던 점을 느끼면서 푸른숲에서 작가와 블로거와의 만남이라는 컨셉으로 하나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내용은 책 쓰는 작가와 책 읽는 블로그의 소소한 이야기들로 꾸며지는데요.
먼저 푸른숲 작가님의 소개와 책에 대해, 글쓰기에 대한 단상을 들려드리고요.

두번째로 작가님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습니다. 관심있는 블로거님들의 신청을 받아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
물론 이것은 작가님만을 여러분께 소개하는 것은 아니고요. 마찬가지로 인터뷰 신청한 블로거님들 중에서 한 분을 택해 마찬가지로 블로거, 책, 글에 대한 얘기와 작가님의 크로스 인터뷰도 진행됩니다.


약간 어렵다면 첫번 째 진행되는 작가와 블로거의 만남을 유심히 지켜보시면서 참여해주시면 됩니다.
사실 이 인터뷰가 어떻게 재밌어질지는 저도 예상할 수 없거든요~

그럼 바로 첫 주인공의 소개를 보러 가시지요~ 새로운 포스트 글로 옮깁니다. 휘리릭~

하나. 임혜지 작가와 블로거와의 만남

2010/03/08 16:24 2010/03/0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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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거상 김만덕 그녀는 누구인가? :: 2010/03/0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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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TV를 보다 새로운 드라마 예고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상 김만덕>.
이름은 분명 '만덕'이란 남자 이름인데, 이미연이 나와서 연기를 하더군요.

들어본 적이 없는 인물이라 어리둥절해 하다가 그녀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알고보니 김만덕은 제주의 여자들 가운데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지금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녀가 살다 간 18세기에는 멀리 떨어진 한양의 사대부들도 만나보고 싶어 하던 유명인사였지요. 현대에 이르러서도 '18세기에 21세기를 살다 간 여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그녀. 그녀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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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김만덕 영정>

사실 역사서에 그녀의 기록은 얼마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녀에 대한 기록은 정조 시대 문인인 체재공의 문집 『번암집』 가운데 있는 '만덕전'의 기록이 전부죠. '만덕전'은 달랑 한 두 페이지 분량에 불과하지만, 그 기록만 되짚어 보아도 그녀가 굉장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739년(영조 15년)에 제주 양가집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어려서 부모님을 역병으로 잃게 됩니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하릴없이 기녀에게 몸을 의탁한 그녀는 양민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자라자마자 기적에 이름을 올려 관기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고 말죠. 가무를 익혀 제주도 제일의 기생이 된 그녀. 하지만 제 기분이 아닌 남의 기분에 맞춰 웃어야만 하는 기생의 삶은 고달프기만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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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녀는 스무 살 즈음 관아에 호소해 양민 신분을 되찾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객주를 차려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한 그녀는 제주도 안의 물건만 사고 파는 데에 지나지 않고 배를 사들여 육지와의 교역을 시작합니다.

풍랑을 만나 침몰하는 배가 많았던 당시 상황에서 배로 하는 무역은 굉장한 모험이었죠. 하지만 과감한 투자를 실행했던 만덕은 크게 성공해 많은 돈을 벌어들입니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부모를 잃고 기생이 된 삶에서 벗어나 커다란 부자가 된 것만으로도 조선시대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지만, 김만덕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실천한 '나눔'의 미덕 때문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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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년부터 1794년에 이르는 3년 동안 제주에는 흉년과 태풍이 번갈아 들이닥칩니다. 들판의 양곡이 말라 죽고, 바닷물이 들어 못 먹게 되어버렸죠. 제주 주민 수천 명이 굶어 죽는 일이 발생합니다. 조정에서 보낸 구호미를 실은 배들은 제주로 건너오다가 풍랑을 만나 가라앉고, 육지의 도움이 끊긴 제주 주민들은 모두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전 현감과 장교, 유생들이 양곡을 풀어 백성들을 먹였지만, 턱도 없이 모자란 상황이었지요.이때 김만덕은 자신이 평생 모은 돈을 풀어 육지로 배를 띄워 양곡 5백석을 들여옵니다. 그리고 관아에 양곡을 전달하여 굶주린 백성들을 살려내지요. 김만덕이 들여온 양곡 5백석은 천명이 넘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김만덕이 전 재산을 풀어 기아에 허덕이는 제주 백성을 먹여 살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정조 임금은 크게 감동하여 그녀를 한양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녀는 최초로 월해금법(제주 여자들은 육지로 나올 수 없다고 정해놓은 조선시대 법)을 깨고 한양에 발을 들인 제주 여인이 되지요.

관기 출신에, 결혼도 하지 않은 50대의 여인. 여자를 천시하던 한양의 사대부들에겐 하찮게 여겨질 출신의 그녀였지만, 한양의 모든 사람들은 당당히 정조 임금을 배알하고 의녀 반수의 벼슬까지 제수 받은 그녀를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벼슬이 높은 선비들은 만덕의 덕을 기리는 시와 글을 지어 칭송했지요.

만덕을 만난 정조 임금은 그녀에게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주겠다고 말합니다. 이에 만덕은 금강산을 구경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합니다. 정조 임금은 소박하기만한 그녀의 소원을 흔쾌히 들어주어 그녀는 반년동안 금강산 유랑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때 한양에 머물고 있던 체재공은 그녀를 인상 깊게 생각하여 그녀의 전기인 '만덕전'을 지어 전해줍니다. 조선 여인, 그것도 평생 섬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제주 여인이었던 만덕은 이렇게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대우를 받고 다시 제주도로 돌아와 여생을 마치지요.

사실,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삶은 그저 '제주도에서 성공한 여성 상인' 정도로만 치부되어 왔습니다. 그녀가 베푼 나눔의 삶과 신분과 처지를 극복해낸 의지는 주목받지 못했던 거지요. 김만덕의 주체성이 주목되기 시작하면서 그에 관련된 책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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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빛 김만덕>과 <거상 김만덕 -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예로부터 제주는 삼다도(三多島)라 불리었습니다. 돌, 바람, 그리고 여자가 많은 섬. 애초에 제주도는 화산 폭발로 이루어진 섬이니 돌이 많은 건 당연한 것이고, 사면이 바다인 섬이니 바닷바람이 많은 것도 이해할 수 있는데, 어째서 여자가 많은 섬이 된 것일까요?

제주도에 유독 여자가 많은 이유는 조선시대 조정에서 정해 놓은 월해금법(越海禁法) 때문이었죠. 월해금법은 제주 여자들이 바다를 건널 수 없도록 정해놓은 법이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사람이 자꾸 빠져나가는 탓에 제주의 인구가 줄어드는 걸 우려한 조정에서 취한 조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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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어려운 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매인 제주 여인들은 제 나름대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건널 수 없는 바다에 뛰어들어 평생 자맥질을 하며 삶을 이어가는 길을 택하거나, 항상 자냥(없을 때를 대비해 아끼고 모아 두는 것)하며 근근하게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곤 했죠.

제주도는 삼다도와 더불어 ‘삼재도(三災島)’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산이 높아 물이 나지 않으니 수재(水災), 돌이 많고 토질이 박하니 한재(旱災), 사면이 큰 바다니 풍재(風災). 사람이 살기 힘든 땅이라는 의미지요.

이렇게 힘든 땅에 매여 살아야만 하는 운명을 극복하고 주변 이들을 위해 가진 것을 선뜻 내어 놓는 큰 덕을 베푼 거상 김만덕. 책에 이어 이번 드라마를 통해 그녀의 삶과 뜻이 ‘나눔’의 미학이 부족한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해 봅니다.

2010/03/06 19:22 2010/03/0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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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 일기] 여지껏 숲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 2010/03/05 21:12

봄이다.
출근 준비를 하며 오늘은 날씨가 어떤가 하고 밖을 내다 본다.
어젠 비가 왔는데, 오늘은 하늘이 맑다.
마당에 쌓였던 눈이 흔적도 없이 녹고,
얼었던 흙이 녹아 촉촉하니 흙 제 본래 색을 뿜고 있다.

아, 이 스르르 녹아 편안한 느낌!

흠~
확실히 봄 흙 냄새야.
주말에 동네 공원에 가면 나뭇가지에 솟은 새싹들을 볼 수 있을테지.

신도시 주변 아파트에 살 적엔 이 맛을 몰랐다.
회사를 오가며 남들 입는 대로 철 따라 옷을 바꾸어 입었고,
그저 가로수 잎 색이 바뀌고, 떨어지는 걸 보며 계절을 느꼈다.

원래 도시에 살면 그런 거지 뭐 했다.
그러다가 건강이 좋지 않은 딸에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주택으로 이사했다.

아내가 둘째를 가졌을 무렵이었다.
작지만 늘 맘에 그리던 마당이 있었고, 어린 시절 뛰놀던 그런 골목이 있었고,
숲이 울창한 공원이 가까이 있었다.

우리는 바람 많이 부는 날과 몹시 추운 날을 빼고는 늘 골목길을 걸어 공원엘 갔다.
둘째가 태어난 뒤론, 둘째를 업고 딸아이 손을 잡고서 또 다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와서 걸었다.

비가 오면 비오는 날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날 대로 좋았다.
그런 날, 공원 숲엔 사람이 적어 한적했고, 공기 속에 실려오는 모든 냄새가 진하고 생생했다.

잠자던 모든 감각이 살아났다.
작년에 셋째가 태어났다. 올 봄부턴 셋째를 업고 첫째와 둘째 손을 잡고 숲으로 갈 거다.
여지껏 숲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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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한 권이 있다.
이 아이 이름은 '코우'. 초록색 가방 안엔 도토리가 가득 들었다.
그 중에서도 코우가 가장 아끼는 도토리는 '토리'다. 도토리 엉덩이에 '토리'라고 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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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를 떽떼굴 굴리며 달리기 시합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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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에도 토리와 나가 놀고, 물놀이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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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어 코우는 도토리를 줍다가 그만 토리를 잃어버린다.
해질녘까지 토리를 찾던 코우는 펑펑 울며 집으로 돌아간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코우는 토리를 찾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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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는 나뭇잎을 젖히고 낑낑대며 엉덩이를 위로 돌려보지만,코우는 끝내 토리를 찾지 못한다.
토리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또르르 떨어진다. (이 장면 꽤나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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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깊은 잠에 빠졌던 토리는 봄에 새싹을 틔운다. 코우도 자라고, 토리도 꽤 커다란 도토리 나무로 자란다.
토리는 언제나 코우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리며 지켜본다. 시간이 흘러 집들이 많이 생겨 코우의 집도 보이지 않고, 자동차 소리에 먹혀 코우의 발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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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코우의 발 소리가 다가온다. 어른이 된 코우다.
토리는 깜짝 놀라 도토리를 떨어뜨리고 코우는 도토리 한 톨을 주워 엉덩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코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토리를 쳐다보며 "토리?"하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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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가 웃고, 토리도 웃는다.
이제 가끔씩 코우가 여기 와서 토리와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곤 한다.
끝~

가슴 뭉클한 인간과 자연의 만남이다.
아이들에게 이런 아름다운 자연의 추억을 주고 싶다.

 

글. 푸른숲 디자인팀 서채홍


2010/03/05 21:12 2010/03/05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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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3월 출간 예정도서 :: 2010/03/04 11:17

푸른숲 문학교양                                                                                                                       

나는 야한 장애인이고 싶다
김원형 지음|270쪽 내외|값 12,000원(예상)

골형성부전증이라는 장애를 갖고 있는 청년 김원영이 자신의 몸과 전 생애를 통해 사회를 말하는 '온몸으로 쓴 사회과학 에세이'. 강원도 시골 마을 방 안에 누워 있던 소년이 서울대 로스쿨에 진학하기까지 자신이 걸어온 길 하나하나를 사회 구조적인 차원에서 객관화시키며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을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대해왔는지, 편견 가득한 시선 속에서 장애인들이 세상에 등장하기 위해 얼마나 애써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스물아홉 해의 전쟁과도 같은 시간을 더쳐 '정상(正常) 세계의 정상(頂上)'에 다다랐지만 여전히 장애인의 정체성에서는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경계인의 위치에서 우리 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은 욕망과 열정, 사랑을 가진 뜨거운 존재라는 것을 선언하는 한편,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숙한 선택을 하는 순간에 편견을 깨는 의외의 선택을 함으로써 자신과 같은 약자들이 세상에 등장할 수 있게 해준 소수의 사람들이 보여준 용기와 자유, 연대의 힘을 증언하고자 한다.

서진의 뉴욕 서점 순례기
서진 지음|320쪽 내외|값 13,000원(예상)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가 서진의 뉴욕 서점 순례기. 픽션과 논픽션을 결합한 독특한 여행 에세이. 뉴욕의 서점을 순례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SF적인 소설 요소가 가미되어 있으며, 다양한 서점 정보를 비롯해서 뉴욕의 다채로운 문화행사, 작가, 갤러리를 보여준다.


푸른숲 주니어                                                                                                                         

로봇의 별 (전 3권) - 푸른숲 어린이 문학 018 ~ 020
이현 지음 | 오승민 그림 | 각권 230쪽 내외 | 값 8,800원

《짜장면 불어요》, 《우리들의 스캔들》의 작가 이현이 2년여의 각고 끝에 야심차게 펴내는 국내 최초 본격 SF 창작 동화 3부작.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인간의 명령대로만 움직이던 로봇이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찾기 위해 진정한 로봇의 별을 찾아 떠난다. 안드로이드 로봇 나로와 아라, 네다. 이들은 지구상에 단 세 대밖에 존재하지 않는 명품 모델로, 각기 다른 사람에게 팔려나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을 하게 된다. 각자의 방식으로 꿈을 좇는 과정에서 그들이 겪게 되는 아슬아슬하고도 위험천만한 사건들을 한 축으로 만화적인 상상력이 가미된 전형적인 모험 이야기가 펼쳐진다. 또 한 축으로는 지상 2킬로미터 위에 건설된 하늘 도시와 버려진 땅 아래 도시 사이에 새롭게 형성되는 계급 사회, 그리고 집안 관리용 인공 지능 컴퓨터 우렁이, 이름만 부르면 음파를 분석해 순식간에 파괴해 버리는 첨단 무기 소닉 핸드, 무엇으로든 변신이 가능한 만능 로봇 루피 등을 통해 첨단 과학 기술이 가져다 줄 미래 사회를 생생하게 경험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2010/03/04 11:17 2010/03/0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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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퍼시잭슨과 번개도둑 재밌게 보기 - 오스카의 신화 길라잡이 :: 2010/03/03 09:39

안녕하세요. 오스카입니다.
지난번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을 보고 올린 글을 읽으신 분들 가운데, 메두사 말고도 영화 안에서 등장하는 신들과 그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간단하게나마 영화 속에서 나온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한 기본적인 이야기들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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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 : 그리스 - 로마 신화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은 거대한 포세이돈이 바다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오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뭐, 주인공 퍼시 잭슨이 포세이돈의 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실제 그리스 - 로마 신화에서도 포세이돈은 올림푸스 12주신(主神) 가운데 하나입니다. 거의 제우스 다음 가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요.

사실, 그리스 - 로마 신화는 좀 막장 드라마처럼 시작됩니다. 제우스와 포세이돈, 하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자식을 낳으면 집어삼켜 버리는 괴상한 버릇을 가지고 있었어요. 사실 크로노스는 자기 아버지 우라노스를 고자로 만들어 쫓아낸 전력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제 아버지를 그렇게 처참하게 쫓아냈으니 자신을 닮은 자식들이 자기처럼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던 게지요. 아버지처럼 쫓겨나기 싫었던 크로노스는 그렇게 산 채로 자식을 삼켜 자기 뱃속에 가두었던 거예요.

아무튼 아버지가 자식들을 꿀꺽꿀꺽 삼키는 이 상황에서 애가 타는 것은 어머니 레아였습니다. 보다 못한 그녀는 여섯 번째 자식 제우스를 크로노스의 ‘식사’로 바쳐야 하는 상황에서 제우스를 작은 바위와 바꿔치기 합니다. 크로노스는 그 사실도 모르고 바위를 꿀꺽하고 사라지지요. 몰래 빼돌려진 제우스는 산 속에서 요정들과 함께 자라납니다. 그리고 완전히 자란 후 돌아와 크로노스의 뱃속에서 자신의 다섯 형제들을 구하고 그들과 함께 아버지를 몰아내지요. 그렇게 반란의 주역이자 올림푸스의 새 주인이 된 제우스는 하늘을 담당하는 신이 됩니다. 그리고 바다는 포세이돈에게, 저승은 하데스에게 맡겨 다스리게 하지요. 그리고 나머지 세명의 여신(헤스티아, 헤라, 데메테르)들은 그들과 함께 올림푸스에 머물며 각자의 영역을 관할하기 시작합니다.

2. 번개가 뭐기에, 형제끼리 으르렁대며 싸워댈까요?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에서 제우스와 포세이돈이 번개 때문에 싸우는 장면이 나와요. 포세이돈의 아들인 퍼시잭슨이 번개를 훔쳐갔다는 이유로 제우스가 따지는 거죠. 올림푸스를 차지한 제우스가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를 시켜 만들어낸 번개는 제우스의 지위를 보장하는 최강의 무기였으니까요. 그게 사라졌으니 제우스가 예민해질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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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우스는 번개의 신입니다>


앞서 말했듯, 그리스 - 로마 신화의 세계관 자체가 좀 막장(;;)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몰아내는 경우가 예사로 일어나고, 신탁의 경우에도 ‘네 아들이 너를 죽일 것이다’ 류의 예언이 허다해요. 그걸 믿고 자식을 버리는 아버지도 수두룩... 부자지간도 이럴진대, 형제지간이라고 화목할까요. 번개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워 질 거라 생각한 제우스는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거죠.

3. 데미갓(Demigod), 너넨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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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퍼시 잭슨은 데미갓, 즉 반신(半神)입니다. 부모 중 한 쪽이 신이고, 다른 쪽인 인간인 존재죠. 영원히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신들과는 달리, 소멸되는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신의 피가 흐르고 있기에 인간과는 다른 특출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스 - 로마 신화에서 활약하는 대부분의 영웅들은 이 반신들이에요. 헤라클레스, 페르세우스, 아킬레우스 등등. 퍼시 잭슨 역시 포세이돈의 아들답게 물을 다루는 기술을 구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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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제 눈을 즐겁게 해줬던 아나베스도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딸입니다. 원작에서는 지혜를 짜내고 전략을 세워 적을 제압하는 모습이 자주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그저 칼을 들고 돌격하는 열혈소녀로 그려져 아쉬운 면이 있었어요. 아테나는 전쟁의 신 '아레스'와 더불어 전쟁을 관할하고 있기도 한 여신입니다만... 전쟁의 양면성 : '야만'과 '냉정'을 구분지었던 신화의 메타포가 반영되어 있지 않아 아쉬웠어요.

4. 저승 가서도 작업은 계속된다 : 사티로스와 페르세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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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 잭슨의 친구 그로버는 염소의 다리를 가진 사티로스입니다. 그리스 - 로마 신화에서는 떼를 지어 다니며 산적질을 하거나 각종 사고를 치는 악마의 이미지로 등장해요. 사실 사티로스들은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시종들입니다. ‘음주가무, 주색’이란 단어에 걸맞게 사티로스들은 춤과 음악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합니다. 영화 안에서 그로버가 항상 여자에 둘러싸인 채 좋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역시 사티로스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런 그로버를 적극적으로 유혹(?)하는 하데스의 아내의 이름은 페르세포네입니다. 곡물과 땅의 여신인 데메테르의 딸이죠. 친구들과 함께 들판으로 놀러나갔다가 그녀를 보고 반한 하데스에 의해 무려 납치(;;)를 당해 땅 속으로 끌려들어간 비운의 여인입니다. 데메테르는 딸을 돌려달라고 제우스에게 간청을 하고, 동생과 적절한(-_-;;) 타협 끝에 페르세포네는 1년의 4분의 1만 하데스와 함께 지내고 나머지 기간은 땅 위로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딸과의 사이가 돈독했던 데메테르는 딸이 없는 동안엔 우울증에 걸려서 자신의 책무인 땅과 곡식을 돌보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곡식이 자라는 봄, 여름, 가을과 곡식이 자라지 않는 겨울이 구분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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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포네의 귀환>, 레이턴 - 데메테르의 기쁨이 느껴지시나요?


영화에서는 그런 설정을 완전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운의 여인 페르세포네가... 남자를 유혹하는 이미지로 등장하다니요. 남편 하데스를 질색하는 것까진 이해하겠는데, 영화 속에서는 거의 ‘아내의 유혹’ 수준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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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 로마 신화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와 책>


사실 영화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 책 <메두사의 시선>을 보면서 저도 헷갈리는 부분이 많아 오랜만에 그리스 - 로마 신화를 펼쳐보게 되었습니다. 책마다 다르게 묘사된 이야기들도 많고, 영화 안에서도 현대적으로 변용하느라 무시된 면도 많았지만, 결국 그리스 - 로마 신화는 ‘사람처럼 느끼고 행동하는 신’이 등장한다는 데서 인간의 욕망과 그로인해 생겨나는 사건들을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깊게 파고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수천 년 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족 : 그나저나 우마 서먼이 연기한 메두사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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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2 : 따뜻한 댓글 작성은 잠깐이면 됩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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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먹고 사는 인생을 꿈꾸는 20대.
음악, 소설, 역사, 드라마 애호가이자 아이폰 탐구자.
Mika, Muse, Radiohead, Green day를 좋아합니다.
최근엔 추노와 The ting tings에 빠져 있습니다.
얄밉지만 사랑스러운 언년이 같은 글을 어떻게 하면 더 아껴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글. 홍보팀 김현철

2010/03/03 09:39 2010/03/0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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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혜원 | 2010/03/04 14: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에코비전21의 전혜원기자입니다. 푸른숲 출판사에서 나온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이란 책을 저희 잡지에서 양서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대표 전화 좀 알 수 있을까요? ^^ 제 메일 주소는 pwd778@naver.com입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 푸른숲 | 2010/03/08 17:13 | PERMALINK | EDIT/DEL

      안녕하세요. 전혜원기자님. 전화번호는 031-955-1400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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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오. 그런 슬픈 눈빛 하지 말아요, 메두사여 - 퍼시잭슨과 번개도둑 재밌게 보기 :: 2010/02/2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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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가 킹스 크로스 역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호그와트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떠난 다음부터 도시에는 수많은 ‘고대의 산물’들이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고층 빌딩 사이를 넘나들며 장풍을 쏴대는 무협지 속 ‘고수’들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요즘엔 아예 5백년 전에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던 도사가 봉인을 뚫고 현대에 등장했다는 설정의 영화까지 나와 버렸죠. 예쁜 애인이 알고 보니 외계인이었고, 옆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스파이였다, 이런 설정은 이젠 시시하게 느껴질 지경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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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그리스 - 로마 신화의 설정들을 통째로 현대 도시로 옮겨놓았어요. 주인공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인간 여자 사이에서 난 반신(半神)이고, 가장 친한 친구는 알고 보니 사티로스(그리스 - 로마 신화에 나오는 하반신이 염소 모양인 괴물)였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엔 올림푸스로 가는 문이 있는가 하면 포세이돈과 제우스가 그 앞에서 말다툼을 벌이기도 하죠.

뭔가 설정이 난삽하게 동원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지만, 영화 자체의 아이디어와 소재가 톡톡 튄다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었어요. 세상에, 터번과 선글라스로 저주받은 머리와 눈을 가리고 다니는 메두사라니. 그걸 매끈한 아이팟 터치 뒷면을 거울삼아 비춰 해치우는 주인공의 센스라니. 사실, 메두사 역으로 우마 서먼이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배우에 비해 생각 외로 메두사의 비중이 작아서 아쉽기도 했고요. 우마 서먼은 극본 안 메두사의 설정과 캐릭터에 반해서 출연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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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는 알고 보면 굉장히 불행한 여자입니다. 실은 그리스 -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인들이 불쌍하지요. 대부분의 남신(男神)들이 호색한인지라 그들에게 유혹당한 후 버려지기 일쑤거든요. 게다가 여신들은 왜 그리 질투와 시샘이 많으신지. 자기 남편하고 놀아났다고 저주, 자기보다 능력이 더 좋다고 저주, 예쁘다고 저주 (쯧쯧쯧). 메두사 역시 지혜의 여신 아테나로부터 저주를 받아 괴물이 된 케이스예요.

찰랑대는 엘라스틱(?)한 머릿결을 자랑하던 미모의 여인이었는데, 포세이돈의 눈에 들게 된 게 비극의 시작이었죠. 그래서 신과의 위험한 연애를 시작한 것까진 좋았는데, 하필 사랑을 나눈 장소가 아테나의 신전이었다니. 포세이돈 입장에선 자기를 짝사랑하는 아테나에게 보란 듯 저지른 행동이었겠지만, 힘없는 메두사는 무슨 죄인가요. 질투와 굴욕에 눈이 먼 아테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뱀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결국 메두사는 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이 돌이 되어버리는 괴물이 되고 말죠. 세상 사람들의 애정 어린 시선을 받던 미모의 여인에게 이 얼마나 잔혹한 저주인가요. 잔인한 아테나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페르세우스를 시켜 그녀를 처치하게 하고 그녀의 목을 잘라 자기 방패에 달기까지 했어요.

웬만한 그리스 - 로마 신화에서 메두사는 페르세우스의 영웅담 속에서 처음 등장해요. 그래서 ‘인간 메두사’의 슬픈 이야기는 그저 그런 괴물들의 비하인드 스토리일 뿐, ‘괴물 메두사’로 전락한 그녀는 페르세우스 이야기 속에서는 영웅의 손에 처치되어야 할 무서운 괴물일 뿐이죠.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아이들에 의해 목이 잘린 채 도구처럼 사용되는 그녀를 보며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분명 그녀는 인격이 있는 생명체인데 무서운 생물병기처럼 경고문이 붙은 냉장고에 봉인해두기까지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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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의 시선> 안에서 메두사의 시선은 모든 사물의 본질을 ‘돌’이라는 하나의 정의로 분석하려는 과학 활동의 은유라고 정의되어 있어요. 그 밖에도 피그말리온이 집념 하나로 인간으로 만들어낸 석고상은 로봇으로, 큐피트의 화살은 사람에 대한 공부인 철학이 ‘앎’에 천착한 나머지 정작 주축이 되는 ‘사람’을 잃어가는 것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하고 있죠. 영화가 현대 일상 속에 그리스 - 로마 신화를 가져다 놓았다면, 이 책은 그리스 - 로마 신화 속에 현대의 문제점을 가져다 놓았다고 할 수 있어요.

책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화와 현대 사회의 문제들의 접합을 흥미 있게 읽고 나서도, 왜 전 표지에 그려진 메두사의 모습이 안쓰러울까요. 카라바조의 원작 그림과 달리 흉측하게 벌어진 입이 가려져서일까요, 그녀의 눈빛이 상대를 돌로 만들어 버리는 저주의 눈빛이 아닌, 예전처럼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봐줄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만 같습니다. 진정한 ‘괴물’은 사람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그녀’가 아니라, 용모가 바뀐 그녀에게 따뜻한 시선 한번 주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글. 오스카

2010/02/22 21:09 2010/02/2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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