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다가 자기희생의 길을 걷다.
<좁은 문>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와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제롬과 그의 외사촌 누이 알리사의 금욕적이고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제롬은 자기보다 두 살이 많은 외사촌 누이 알리사가 어머니의 불륜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대뜸 자신의 인생을 결정해 버린다. 세상의 고난과 공포로부터 그녀를 지켜 주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그때부터 알리사에 대한 사랑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제롬은 자신의 존재 이유 자체를 그녀에게 두지만……. 정작 알리사는 제롬을 사랑하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처음에는 여동생 쥘리에트가 그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양보를 하며, 나중에는 ‘좁은 문’을 통해 천국에 들어가고자 현실적인 사랑을 거부한다.
그리하여 숱한 세월 동안 제롬과 쌓아 왔던 사랑의 추억들을 하나씩 하나씩 지워 간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은 얼굴을 맞닥뜨릴 때마다 언짢아하고 괴로워한다. 그러다 감정의 골은 깊어져 제롬은 그녀의 곁을 떠나고, 이도 저도 얻지 못한 알리사는 낯선 요양원에서 외로이 죽어 간다. 얼마 후 알리사의 마음이 온전히 담긴 일기장을 건네받은 제롬은 평생토록 그녀를 가슴에 품은 채 추억을 곱씹으며 홀로 살아간다.
이렇듯《좁은 문》은 종교적 계율이 가져온 위선과 비극을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비인간적인 자기희생의 허무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독자들에게는 진실된 사랑이 과연 무엇인지 겸허히 되짚어 보게 만든다. 아울러 서로 사랑하면서도 한 사람은 혼자서 쓸쓸히 죽음을 맞고, 다른 한 사람은 끝내 떠나 버린 사람을 잊지 못한 채 가슴 깊이 추억하며 남은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서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나에게 기대고 있던 알리사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블라우스에서 얇은 종이로 싼 작은 상자를 꺼내어 나에게 내밀다 말고 머뭇거렸다. 뭔가 망설이는 듯했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있잖아, 제롬. 자수정 십자가 목걸이야. 사흘 동안 품에 지니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너한테 돌려주고 싶었거든.”
나는 당황해서 되물었다.
“왜 그걸 나한테 돌려주려는 거야?”
“나에 대한 추억으로 간직해 뒀다가 네 딸에게 줘.”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큰 소리로 물었다.
“내 딸이라니?”
“흥분하지 말고 내 말을 잘 들어 봐. 제발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말고. 날 바라보지 마, 응? 그럴수록 내가 말을 꺼내기가 힘들어지잖아. 있잖아, 제롬. 언젠가 너도 결혼을 하겠지? 아니, 대답은 하지 마. 내 말을 끊지 말아 줘, 제발. 나는 그저 내가 널 많이 사랑했다는 사실을 네가 기억해 주길 바랄 뿐이야. 그리고…… 이미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삼 년 전부터, 난 네가 좋아하는 이 십자가 목걸이를 언젠간 네 딸이 날 추억하면서 목에 걸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물론 내가 누군지 모른 채로 말이야. 어쩌면 네가 그 애에게…… 내 이름을 붙여 줄 수도 있겠지.”
그녀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적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직접 주면 되잖아! ……알리사! 내가 대체 누구와 결혼을 하겠니? 나는 너밖에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잖아.”나는 그녀를 덥석 끌어안고 미친 듯이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내게 몸을 맡겨 상반신이 거의 뒤로 젖혀지다시피 한 그녀를 한동안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흐릿해지더니 스르르 눈이 감겼다. 잠시 후 그녀가 더할 나위 없이 또렷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
“이젠 늦었어, 제롬. 우리가 사랑을 통해, 사랑보다 더 큰 것을 보게 된 그날부터 이미 어긋나 버린 거야. 제롬, 네 덕분에 내 꿈이 아무리 높아졌다 해도, 인간적인 만족 앞에서는 추락해 버리게 마련이야. 난 자주 우리가 함께하는 삶이 어떨까 상상해 보곤 했어. 우리의 사랑이 완전함을 잃는 그 순간부터…… 나는 우리의 사랑을 견뎌 낼 자신이 없어졌어.”
“서로를 잃어버린 우리의 삶에 대해선 생각해 보진 않았니?”
“안 해 봤어! 단 한 번도.”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은 채 한동안 나란히 걷기만 했다. _185~189쪽
_지은이 : 앙드레 지드(Andre Gide, 1869~1951)1869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엄격한 종교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그는 종교에 대한 순응과 반발이라는 내면의 갈등을 작품에 꾸준히 표현하고자 했다. 소설뿐만 아니라 희곡, 평론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 《좁은 문》을 비롯해 《지상의 양식》, 《교황청의 지하도》, 《배덕자》, 《사전꾼들》, 《전원 교향곡》 등 여러 작품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종교의 문제를 탐구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과 구성을 시도함으로써 현대 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1947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_옮긴이 : 이충훈
서강대학교 불어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4대학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옮긴 책으로 《사드의 규방 철학》과 《회색 노트》가 있다.
_그린이 : 김덕현
홍익대학교 판화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과 2005년 두 차례 개인전을 가졌으며, ‘2009 국제 판화의 흐름전’ 등 국내외 그룹 전시회에 여러 차례 참여하였다. 지금은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순수 회화를 일러스트로 표현하는 작업에 열의를 가지고 몰두하는 중이다.
푸른숲
2009/08/12 16:25
2009/08/1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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