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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 소말리아 여성 할례 - 다히로 이야기 :: 2009/08/20 10:19

‘사막의 꽃 (Dessert Flower)?’  

3년 전인가, 방콕 공항 책방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을 때였다. 무표정한 아프리카 여인의 흑백사진 책 표지가 눈길을 끌었다. 소말리아의 한 유목민 소녀가 세계적인 슈퍼모델이자 유엔 인권대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였다. 또 그렇고 그런 신데렐라식 성공기려니 생각하고 내려놓으려는데, 옆에 있던 말쑥한 정장 차림의 40대 여자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그 책, 꼭 읽어보세요. 나도 그 책 덕분에 여성 할례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요.”

여성 할례? 방콕에서 한국으로 오는 5시간 내내 나는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별 기대 없이 산 책 안에는 내가 잘 몰랐던  소름끼치는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그동안 이곳저곳에서 들어 어렴풋이 알고 있긴 했지만 이런 정도인 줄은 몰랐다.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날, 마지막 장을 덮고서도 주말 내내 충격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월요일 사무실에 나가니 월드비전 소말리아에서 보낸 사업제안서가 한 건 도착했다. 제목은 <여성할례 피해자들을 위한 보건의료 사업과 할례 방지를 위한 주민교육사업>, 지체 없이 읽어내려 갔다. 제안서에 나타난 실상은 책보다 훨씬 적나라했다.

여성 할례(女性割禮)! 용어만 놓고 보면 마치 종교의식이나 되는 듯 신성하게 들리지만 실은 목숨을 위협하는 매우 잔인한 신체훼손 전통이다. 여성 할례란 여성의 외부 성기를 잘라내어 성적 쾌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수천 년 된 관습이다. 주로 아프리카 북부에서 행해지는데 지역에 따라선 상징적으로 살짝 상처만 내는 정도지만 소말리아는 외부 성기 전체를 잘라내고 소변이 겨우 나올 만큼의 성냥개비 머리만한 공간만 남기고는 전부 꿰매버리는, 소위 봉쇄술이라는 가장 끔찍한 종류의 할례를 받고 있다.

할례 받는 나이는 8세에서 10세 사이의 어린 꼬마들이다. 전문 의료인이 아닌 동네 여인이 깜깜한 방이나 집 마당에서 불결한 면도날이나 칼로 마취도 하지 않고 시술을 하니 그 정신적·육체적 후유증이 어떨지 불을 보듯 뻔하다. 평생 소변을 볼 때마다 10분 이상 걸리고 매달 생리 때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한 생리혈이 안에 고여 배가 몹시 아프고 아이를 낳을 때면 죽음까지 각오해야 한다. 소말리아가 출산 중 죽는 산모 수에서 세계 최고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문제는 이 여성 할례가 해외토픽에나 나올 만큼 희소한 특정 지역의 특이한 전통이 아니라는 점이다. 매 15초마다 한 명, 하루에 6천 여 명, 한 해에 무려 300여 만 명의 여자아이들이 받고 있는 대단히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관습이다. 이 순간에도 전 세계 1억 5천여 명의 여성들이 할례 후유증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지만 그 여자들은 절대 이런 얘기를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이것은 준엄한 전통이고, 고통이 있다면 그건 전통을 지키기 위해 개인이 마땅히 감수해야할 운명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제안서의 사업 내용은 여성 할례 피해자들을 돌보면서 동시에 지역주민, 특히 종교지도자와 부족장들에게 이 전통의 폐해를 잘 알려서 스스로 없앨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사업은 단순한 보건의료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여성 전체의 인권향상에도 결정적인 도움이 될 테니 꼭 지원하고 싶었다. 사업의 실행가능성을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소말리아 현장을 직접 방문하기로 했다.

소말리아는 1991년부터 무정부 상태이고 각 부족 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어 치안이 매우 불안하다. 우리가 소말리아로 떠나기 직전 용감무쌍(?)한 소말리아 해적이 미 군함을 납치해 거액의 몸값을 요구하는 일이 생겨 방문할 수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현장 방문에는 차질이 없었다.

우리 팀은 여성 할례 피해 상황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 전직 산파이자 할례 시술자였고 지금은 여성할례 금지를 위해 불철주야 뛰고 있는 30대 중반의 여직원과 밀착 근무를 하기로 했다. 아이디라는 이 직원은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영어도 상당히 잘했다. 어디서 영어를 배웠냐니까 국경 넘어 케냐 난민촌 학교를 다녔단다. 아이디 외에도 영어를 하는 소말리아 직원들은 100% 케냐 난민촌으로 자발적으로 ‘유학’가서 중등교육을 받았다니 케냐 난민촌이 소말리아의 하버드인 셈이다.    

먼저 지역 보건소를 방문했다. 우리가 건물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피를 철철 흘리는 여자아이가 아버지 등에 업혀 들어왔다. 세상에……. 입에서 젖 냄새도 가시지 않은 7살짜리 꼬마가, 한창 인형놀이나 해야 할 어린아이가 성기가 절단된 채 업혀 온 것이다. 아이는 온몸을 뒤틀고 입술을 깨물며 고통을 참고 있었다. 할례 중에는 아무리 아파도 신음소리를 내면 안 된다고 철저히 교육 받은 탓이리라.  

“저 아이, 괜찮을까요?”

아이디에게 물었다.

“보건소에 왔으니 괜찮을 거예요.”

할례 도중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일인데 그 부모가 보건소 근처에 살고 월드비전을 신뢰해 아이를 데리고 왔으니 망정이지 보통은 소 오줌으로 피를 씻어내고 염소 지방으로 상처 부위를 덮어 피가 멈추기만을 기다린단다.

“피가 멈추지 않으면요?”
“고스란히 죽을 수밖에 없죠. 그게 소말리아 여자아이들의 운명이랍니다.”  

도대체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기 딸에게 저토록 가혹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그 전통과 관습이 무엇이길래 아이의 목숨까지 걸고 지켜야 한단 말인가? 아이디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서 할례 받지 않은 여자는 불결한 여자로 간주되어 결혼을 할 수 없을 뿐더러 자기 딸에게 할례를 시키지 않는 집안은 그 마을과 부족에서 따돌림을 받아 도저히 살 수가 없단다.

여성 할례는 여자란 전적으로 남성의 소유물이니 결혼할 때까지 처녀성을 지키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성기를 꿰매고 있어야 마땅하다는 극단적인 남성 우월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정상으로 태어난 여자아이들을 모두 비정상으로 만드는 거다. 이게 멀쩡한 사람을 성인 의식이라는 이름으로 혀를 잘라 벙어리로 만들거나 다리를 잘라 절름발이로 만드는 것과 뭐가 다른가.  

갑자기 분노가 치민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나쁜 전통이라도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그들에게 없애라, 마라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뿌리 깊은 전통에 맞서 우리가 무슨 일을, 얼마만큼이나 할 수 있을까? 할례를 근본적으로 막지도 못하면서 할례 후유증을 겪는 겨우 수백 명 정도의 여성을 치료해주는 것만으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깨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때 극심한 할례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례로 섭외해놓은 여자가 나타났다. 얼굴만 동그라니 내놓고 머리와 온몸을 가린 전통의상을 입은 앳된 ‘다히로’는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려고 마주 앉았다. 나는 이런 순간이 싫다. 누군가에게 자기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괴로운 순간을 되씹게 하는 건 매우 잔인한 일이라 늘 미안하다. 그러나 피해갈 수도 없는 과정이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당신을 도우러 왔으니 힘들겠지만 될수록 자세하게 말해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너무 사무적으로 보인 것 같아 친근함을 표시하려고 손을 잡으니 어색했는지 살짝, 빼면서 남 얘기하듯 덤덤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다히로는 방년 19세, 여덟 살에 할례를 받을 때 학교 보낼 밑천인 소까지 잡아 친척들을 융숭히 대접하느라 학교는 근처에도 못 가봤단다. 열여섯 살에 결혼, 열일곱 살에 첫 아이를 임신했는데 출산하면서 무려 일주일 동안 진통한 보람도 없이 아이를 잃고 말았다고 한다. 이 지독한 산고 중 무슨 신경을 건드렸는지 한쪽 다리가 마비되어 버렸고 소변 통제 기능도 잃어버렸다. 중년의 남편은 몸도 가누지 못하는 어린 부인을 버리고 딴 부인을 얻어 나가 버렸단다. (나쁜 놈!!!)

갑자기 울컥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어린 아이가 전통이라는 포승줄에 꽁꽁 묶인 채 포악하기 짝이 없는 운명에게 죽도록 두들겨 맞고 있는 느낌이었다. 분해서 몸까지 덜덜 떨렸다. 다히로는 이런 내가 매우 의아하다는 듯 숙였던 고개를 살짝 들어 나를 훔쳐보았다. 난 아이의 손이라도 잡아 주고 싶었지만 또 뿌리칠까 봐 그러지 못했다. 다히로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혈하고 있는 채로 시골 움막에 홀로 버려진 다히로는 반 기절 상태에서 며칠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지냈단다.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얼기설기한 움막 천정으로 차가운 비가 떨어져도 고스란히 맞았고, 피 냄새를 맡고 온 하이에나가 주변을 어슬렁거려도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었단다.

“그런데, 들짐승들도 내가 불쌍했는지 날 해치지 않더라구요.”

나는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짐승도 불쌍히 여기는 삶이라니……. 굵은 눈물이 뚝, 손등 위로 떨어졌다. 우는 나를 본 다히로는 몹시 당황하여 통역하는 아이디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눈물방울을 눈썹에 매단 채 살짝 웃으며 계속해달라고 말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기의 처지가 너무나 기가 막혔단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이혼까지 당했는데 이대로 식구들이 많은 친정으로 돌아가 짐이 되느니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게 낫겠다고 체념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움막 앞을 지나던 아이디 눈에 띄었던 것이다.

두 시간 넘게 계속된 인터뷰 내내 이런 일을 당한 게 마치 자기 잘못인 양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다히로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이제 겨우 열아홉 살인데……. 한창 멋 부리며 부푼 가슴으로 미래를 꿈꿀 나이인데……. 불행했던 결혼과 이런 육체적 고통이 절대 네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고, 너는 전통의 희생자일 뿐이라고, 그러니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내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흘러 나왔다.

“걱정 마, 다히로. 우리가 옆에 있어줄게. 이제부턴 무조건 좋은 일만 있을 거야.”

이 말을 하면서 다히로를 꼭 껴안아주었다. 나의 기습 포옹에 그 아이는 멋쩍어 하면서도 날 만난 후 처음으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 저 박꽃처럼 환한 미소. 그제야 보통의 19살짜리 얼굴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런데 다음 순간 다히로가 갑자기 내 목에 두 팔을 두르더니 나를 꽉 껴안는 게 아닌가? 나도 놀랐지만 옆에 있던 아이디의 눈이 더 휘둥그레졌다. 몇 달 동안 같은 집에 살았어도 그 아이가 이렇게 애정 표현을 하는 것도,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도 처음 본다는 거다. 다히로는 많은 사람이 보고 있어서 쑥스러울 텐데도 한 번 잡은 내 손을 꽉 쥔 채 놓지 않았다. 헤어질 때가 되자 수줍어 홍당무가 된 얼굴로 이렇게 작별 인사를 했다.

“나바드 갈리요, 왈라아레이(잘 가요, 언니)”

가슴이 뭉클했다. 나더러 언니란다. 그래, 내가 언니가 되어줄게. 정말이지 나는 이 아이에게 구호팀장이 아니라 언니가 되고 싶다. 자기의 힘든 과거를 귀 기울여 들어주며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어주는 언니가 되고 싶다. 그런 언니가 곁에서 늘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다행히 다히로는 극심한 할례후유증에 시달리는 환자를 이디오피아 병원으로 보내 복원수술을 해주는 우리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출발일이 바로 모레란다. 아, 잘됐다. 이제 안심이다. 앞으로 전혀 새로운 삶을 살게 될 다히로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 하면 전쟁, 굶주림, 에이즈를 떠올린다. 그러나 다히로에게서 보듯이 드러난 이런 고통의 밑바닥에는 이들이 차마 말하지 못하지만 이들의 삶을 뿌리째 흔드는 할례라는 괴물이 있었다. 나는 어떻게 그렇게 모르고 있었을까? 지난 십 수 년간 여행과 구호활동을 하느라 아프리카를 내 집처럼 다니면서 스치고 만나고 친하게 지냈던 그 많은 여인들도 같은 고통의 뿌리로 몹시 힘들었을 텐데. 나는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의 실체가 그렇게 독한 것이었는지 눈치도 채지 못했다. 그들의 소리 없는 목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말리아 방문 이후 월드비전 한국은 <여성할례 피해자들을 위한 보건의료 사업 및 주민교육사업>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더불어 나는 목소리 없는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주겠노라고 굳게 마음먹었다. 나는 목소리가 크니까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전하면 얼마나 많은 다히로에게 힘이 될까.

나는 지금도 종종 다히로 이야기를 한다. 다히로도 때때로 내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세상 어딘가에 진심으로 자기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언니가 있다는 것을 되새기며 살았으면 좋겠다. 다히로처럼 녹녹치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아프리카의 모든 여성들에게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한비야 에세이 <그건 사랑이었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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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집으로 돌아와 당신에게 들려주는
한비야, 그녀가 꿈꾸는 세상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한비야의 중국견문록』『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통해 우리에게 가슴 뛰는 삶에 대한 열망을 심어주었던 한비야. 늘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 발전하며 독자와 함께 성장해온 그녀가 2009년 7월, 8년 6개월간 긴급구호 팀장으로 일해온 국제 NGO 월드비전을 그만두며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선사한다. 기존의 책들이 세계의 오지를 누비며 도전 의식을 불태우거나 긴급구호 현장에서 불을 끄는 소방관 같은 활동가의 모습이었다면, 이번 책은 자신만의 공간인 집으로 독자들을 초대하여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면서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현장에서의 자신을 돌아보는, 한비야의 맨얼굴이 드러나는 책이다.

할례와 관련된 이슬람의 성문화를 읽어볼 수 있는 이슬람 해부학 교과서 - 나의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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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이슬람을 만난다
나의 이슬람 | 율리아 수리야쿠수마 지음/구정은 옮김

우리가 아는 이슬람은 대개 AP, CNN, BBC 등 서구의 뉴스나 영어로 씌어진 콘텐츠를 통해서였다. 기독교와 무신론이 주류인 서구가 말하는 이슬람은 종교를 내세워 9.11 같은 테러를 저지르고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집단이다. 저자는 서구를 통해 보아온 이슬람이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무슬림들의 이슬람을 보여준다. 특히 중동 전체를 합한 인구보다 더 많은 이슬람 신자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공존하는 폭력의 이슬람과 사랑의 이슬람, 억압의 이슬람과 관용의 이슬람, 맹목적 이슬람과 합리적 이슬람, 성(sex)을 부정하는 이슬람과 성에 자유로운 이슬람, 아랍 이슬람과 동남아시아의 이슬람 등 이슬람이 가진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2009/08/20 10:19 2009/08/20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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