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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임혜지의 글쓰기 :: 2010/03/10 14:20

그래도 꾸준하게 글을 쓰는 이유는 글 쓰는 것이 제게 마음의 평화와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에요.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생각을 논리적으로 하게 만들어 주거든요. 사람이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커다란 힘이 됩니다. 저의 글쓰기를 돈으로 환산하면 참으로 수지 안 맞는 사업이 되겠지만 이렇게 삶의 질의 차원에서 생각하면 공짜로 이런 기쁨을 얻는 거니까 대단히 수지 맞는 장사가 될 것입니다.
저는 언어에 관해서 재미난 경험을 하나 했어요. 모국어를 한번 잃어버렸던 경험이요. 한동안 독일어로 글 쓰고 독일어로만 생각하다 보니 한국말을 거의 다 잊어버렸지요. 지금부터 6년쯤 전에 저는 인터넷을 통해서 한국어를 다시 공부했어요. 더듬더듬 하루에 한 문장씩 써서 인터넷 모임에서 대화도 하고 토론도 하는 사이에 한국어 실력이 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동안 독일어로 글쓰는 훈련을 한 것이 한국어에도 고스란히 적용이 되더군요.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정리한다는 행위기 때문에 깊이 사고하여 그것을 표현하는 훈련이 되어 있다면 다른 언어로도 대입이 가능합니다. 아무래도 제겐 한국어가 제1언어니까 아주 쉽게 되돌아오고 또 금방 발전하더군요.
이 경험을 통해서 전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하나는 모국어를 잘 한다는 것은 자긍심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에 따라 생각하는 패턴이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하는 패턴에 따라 거기에 맞는 언어가 형성되어서 그런 거겠지요. 남은 어떤지 몰라도 제게 있어서 한국어는 분위기를 정확하게 묘사하기에 좋은 언어이고, 독일어는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기분을 잘 따지고 독일 사람들은 팩트를 잘 따지는가 하고 저 혼자 웃지요.
저는 글을 써놓고 아주 오래 검토하고 만지는 습관이 있어요. 내 마음 속에 떠오른 생각과 내가 써놓은 글이 일치하는지 끝없이 비교하고, 완벽하게 일치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치지요. 오래 다듬을수록 글이 쉽고 간단해져요. 저도 아름다운 표현과 문장의 편안한 리듬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정확한 전달을 가장 높이 칩니다. 그래서 뜻을 명확하기 위해서라면 같은 단어를 두번 세번 반복하거나 표현이 촌스러워지는 것도 기꺼이 감수하지요.
글이 어떤 때는 후루륵 잘 써지고 어떤 때는 머리를 쥐어짜듯이 힘들잖아요? 제 경우엔 힘들여 쓴 문장이 제일 좋은 문장이더군요. 잠깐 생각하고 쉽게 써내려간 글은 일단 시원해 보여도 논리의 비약이 심하고 조리가 없어서 나중에 정리하자면 애를 먹어요. 나도 잘 모르는 것을 어렴풋이 써놓았는지 겉보기에만 그럴 듯할 뿐 전달하려는 내용이 불분명하거나 아예 없는 문장도 있지요. 촌스러워도 벽돌 쌓듯이 차곡차곡 쌓은 문장이 논리적으로 더 탄탄하데요. 저만 그런 건지, 글 쓰는 다른 분들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저는 글을 쓸 때에도, 다 쓰고 나서도 행여 진실이 왜곡되거나 내 존재가 미화된 부분은 없는지 검토하고 고민합니다. 제가 아까 그랬잖아요? 글은 나를 위해서 쓰는 거라고. 그런데 나를 속이면 글을 쓰는 이유가 없어지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언젠가 깨달았어요. 사람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일기라 할지라도 글을 쓰는 순간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을. 글을 쓰는 그 순간 지나간 사건이 새로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건 자신의 고유한 시선으로밖에 사물을 볼 수 없어서 그런 거라는 걸 법륜스님의 말씀을 듣고 깨우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럴수록 더욱 정직하게 쓰려고 애쓸 뿐, 글에다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검토하기 위해서 쓰는 글일지라도 글을 쓰는 궁극적인 목적은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소통은 나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지요. 나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려는 이유는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함께 발전하자는 뜻 아니겠어요? 하지만 저는 남이 제게 참견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에 저도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독자들에게 저의 삶이나 저희 가족의 모습을 세세하고 솔직하게 보여드리는 것으로써 독자들께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넌지시 보여드려고 합니다. 단지 저의 길이기 때문에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 죄의식을 주고 싶지도 않아요. 그냥 이런 길도 있다고만...
참 재미있는 건 제가 독자들의 반응을 통해 세상을 좀 더 온전히 알게 되는 것이랍니다. "어휴, 저 사람들은 자동차도 없이 어떻게 사냐? 저렇게 아끼면서 어떻게 사냐?" 하는 말을 들으면 저야말로 신기합니다. "어머, 이상하다. 그냥 없이 사는 게 더 쉽지 돈 많이 벌어와서 자동차 사는 게 더 쉬운가?"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다른 사람들의 세상을 그제서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일기를 쓸 때조차 나만의 소설을 쓸 수밖에 없도록 좁은 시각을 가진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시시때때로 깨닫는 것은 유익하고도 유쾌한 일입니다.

[작가] 임혜지의 책에 대한 단상들 :: 2010/03/09 14:12
외국에 살면서 저는 거의 모든 독서를 독일어로 했어요. 그 중에서도 '책 읽어주는 남자' (Der Vorleser, Bernhard Schlink)와 '느림의 발견' (Die Entdeckung der Langsamkeit, Sten Nadolny)이 가장 인상에 남는 책이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은 책이고, 아직도 가끔씩 다시 읽는 책입니다. 앗, 그러고 보니까 둘 다 독일 작가의 책이군요. 요즘은 세월이 좋아졌지만 인터넷을 알기 전에 저는 한글로 된 활자에 굉장히 굶주렸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몇 권 되지 않는 한국책은 내용이 뭐든 간에 거의 달달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읽었지요. 저는 책을 원래 속독을 넘어 폭독에 가까울 정도로 빨리 읽어치우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마음에 드는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늘 새로운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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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쓴 첫 책은 독일어로 쓴 전공서적이에요. 두 번째와 세 번째 책을 근년에 한국어로 썼지요. 제가 그동안 써두었던 에세이들 중에서 건축에 관한 내용만 추려서 출판한 것이 재작년에 나온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한겨레출판)'입니다. 그러고나서 시사와 일상에 대한 에세이들이 좀 남았길래 제가 출판사에 여쭤봤습니다. 사실 저는 대운하라던가 인권, 성매매 등 시사에 관한 글을 출판하기를 내심 바랬지요. 그런 것이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푸른숲에서 '일상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모토로 소소한 일상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꼭지들을 절묘하게 조합해서 '고등어를 금하노라'로 멋지게 묶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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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저는 소설도 썼답니다. 저의 첫 한국책인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을 준비하면서 저의 한국어 실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일단 중단하고 '물안개의 집'이라는 소설을 먼저 썼습니다. 내 마음 속에 떠 있는 상을 잡아내어 표현하는 연습으로는 사랑 소설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데 뭣도 모르고 뛰어들었다가 아주 혼이 났지 뭡니까? 소설을 쓴다는 작업이 아주 사람 영혼을 말리고 진을 빼더군요. 제가 초보자라서 그랬겠지만 하도 감정이입을 하다보니 소설의 주인공이 임신하니까 저까지 가상임신을 해가지고 이거 실화라고 오해받는가 싶어서 가슴이 덜컥했네요.

소설을 다 쓰고보니 제법 제 마음에 들길래 여기저기 문학상에도 내보고 여러 출판사에 문의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블로그를 만들어서 연재로 솔솔 풀어버렸지요. 많지는 않아도 뜨겁게 공감하는 독자들도 만났고 해서 저는 성공작이라고 자부합니다. 그 소설을 쓰면서 저와 남편 사이의 깊은 상처가 치유된 면도 큰 수확입니다. 초보자로서 글쓴이의 내면세계를 겁없이 드러낸 작품이라 이제는 누가 출판하자고 해도 별로 반갑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책이 팔리고 안 팔리고는 우연이라고 믿고 있어요. 독자들이 특정 테마를 바라는 시기에 우연히 그런 책을 내면 잘 팔리는 것이고, 암만 괜찮은 책이라도 독자들이 시기적으로 외면하는 테마라면 안 팔리겠지요. 그런데 글을 쓰는 사람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쓰는 거거든요. 작가가 독자들의 변화하는 입맛에 다 맞출 수도 없고, 또 그러고 싶어도 그게 안 되니까 글 쓰는 사람들이 가난한 거 아니겠어요? 저는 글 쓰는 그 순간만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그 후에 잘 팔리거나 안 팔리는 건 제 덕도 탓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정말 쓰고 싶은 것은 탐정소설이어요. 잔인하지 않으면서 스릴 있는... 고건물에 얽힌 글감도 많이 확보해놓았구요,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까지 미리 써놓았다지요. (앗, 그런데 독일어로 썼구나.) 그런데 언제 그것을 쓰게 될지는 좀 요원합니다. 요즘 제가 거의 의무감에서 숙제처럼 쓰고 있는 글들은 독일 운하에 관한 칼럼 등 시의성이 있는 글들이거든요. 사대강 공사처럼 끔찍한 사건만 막고 나면 저도 한국 일에 신경을 끄고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에는 저의 문제지요. 제가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은 계속 일어날 테니까요. 또 저랑 독일어로 전공서적을 같이 내기로 한 독일 노교수님이 한 분 계신데 제가 아마 그 약속도 거절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언젠가는 양단간에 결정이 나겠지요. 제가 의무감에서 쓰는 글을 더욱 정성껏 씀으로써 만족감을 느끼던지, 아니면 어느 순간 의무감을 확 던져버리고 탐정소설을 쓰던지...
어쩌면 제가 탐정소설을 쓰더라도 한국어로 쓰게 될지도 몰라요. 제가 독일어로 소설을 쓴다면 꽤 오랜 시간을 모국어와 작별하고 독일어에 몰입해야 할 텐데 제가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을지도 몰라요.

[인터뷰] 임혜지 작가님을 인터뷰할 블로거를 찾습니다 :: 2010/03/09 09:45

블로거 발표 : 3월 18일
신청 방법 : 블로거 이름, 블로그 주소, 인터뷰 질문 5가지 이상을 적어서 degool@prunsoop.co.kr 토트 메일로 보내주시고 덧글로 한줄 남겨주는 센스를 발휘해주세요~
인터뷰 방법 : 임혜지 선생님께서 블로거와 질문을 보시고 한 분을 지정하시면 그 분에게 임혜지 선생님과 메일로 인터뷰가 진행됩니다. 여기서 블로거님의 자기 소개와 질문이 선정되는 중요한 기준이 되겠지요. 질문의 내용에는 아무 조건이 없으니 마음껏 하시면 됩니다.
참조 사항 : 블로거가 아니어도 인터뷰어로 신청을 하실 수는 있으나, 블로그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면 더 좋겠네요. 블로거의 선택은 전적으로 임혜지 선생님이 선택하십니다.
[인사] 임혜지 작가가 블로거들에게 :: 2010/03/08 16:26
블로거에게 쓰는 편지
이렇게 블로거 독자들과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평소에 한국말로 대화할 기회가 적어서 이렇게 글로나마 대화하는 걸 참 좋아해요.간략하게 제 소개를 하자면 전 지금 36년째 독일에 살고 있는 50대 여성이고요, 문화재 연구와 고건물 실측이 한동안 본업이었어요. 지금은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삶의 질을 높이고 좀 더 즐겁게 살려구요.
저는 독일인인 남편과 성년이 된 아들과 딸을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지로 여기며 살고 있지요. 저는 우리 아이들이 남편과 저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인간들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답니다. 당연하지요. 우리가 얼마나 정성을 들여서 키웠는데요. 그래서 딸이 시험 전날 밤에 춤추러 나가서 집에 안 들어와도 저희 부부는 쿨쿨 먼저 잡니다. 부모 사랑 듬뿍 받고, 넘치지는 않아도 모자라는 것도 없이 편안하게 자란 세대인데 자기들 인생을 오죽 잘 알아서 설계하겠냐고요. 옆에서 부모라고 괜히 믿지 못하고 걱정하는 것은 아이의 정서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독일 부모들이 다 이런 건 아니에요. 독일에서도 저희 가정이 좀 독특한 편입니다.)
남편과 저는 극과 극으로 다른 사람이어요. 정서적으로 공통점이 없다 보니 이론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저희 부부 사이에서 유일한 소통의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척하면 삼천리일 사안을 가지고 저희는 늘 머리를 싸매며 갑론을박 했는데, 이런 점이 저희 관계의 매력이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젊어서는 이런 상황이 참 한심하고 성가셨지만 이제 나이 먹으면서 보니 그렇게 다른 점으로 인해 우리는 서로에게 도전이 되어주고 서로를 키워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 부부는 아직도 잘 싸우지만 이젠 절망하지는 않고 쪼금 미워하다가 금방 잊어버립니다.
임혜지 작가님

[기획] 작가와 블로거와의 만남 :: 2010/03/08 16:24
푸른숲 블로그가 오픈된지 약 1년 가량이 되네요. 2009년 3월 6일에 오픈되었으니까요. 그동안 푸른숲의 책소개, 편집자와 정원사의 이야기들, 작가들의 소개 등의 글을 포스팅했습니다. 하지만 소통의 장으로서 역할이 부족했던 점을 느끼면서 푸른숲에서 작가와 블로거와의 만남이라는 컨셉으로 하나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내용은 책 쓰는 작가와 책 읽는 블로그의 소소한 이야기들로 꾸며지는데요.
먼저 푸른숲 작가님의 소개와 책에 대해, 글쓰기에 대한 단상을 들려드리고요.
두번째로 작가님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습니다. 관심있는 블로거님들의 신청을 받아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
물론 이것은 작가님만을 여러분께 소개하는 것은 아니고요. 마찬가지로 인터뷰 신청한 블로거님들 중에서 한 분을 택해 마찬가지로 블로거, 책, 글에 대한 얘기와 작가님의 크로스 인터뷰도 진행됩니다.
약간 어렵다면 첫번 째 진행되는 작가와 블로거의 만남을 유심히 지켜보시면서 참여해주시면 됩니다.
사실 이 인터뷰가 어떻게 재밌어질지는 저도 예상할 수 없거든요~
그럼 바로 첫 주인공의 소개를 보러 가시지요~ 새로운 포스트 글로 옮깁니다. 휘리릭~
하나. 임혜지 작가와 블로거와의 만남
[방송] 고등어를 금하노라 - 임혜지 :: 2010/02/04 11:55

[임혜지] 저자 인터뷰 :: 2010/01/18 17:39

-아무래도 한국 부모들과 다른 것이 자녀들과 수평적인 선상에서 이야기를 하고 소통하는 것이라고 보이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경우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고집하는 부분이 없으신지요? 혹은 자녀 교육에 있어 늘 지켜왔던 원칙들이 있다면?
-저희 가정은 독일의 보통 가정보다 좀 더 수평적인 편이어요. 아이들이지만 고유의 인격을 지켜주는 게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나 남편이 남에게서 간섭 받는 거 싫어하기 때문에 남의 자유도 지켜주려고 노력했지요. 간난아기들도 타고난 성품과 자질이 있다는 게 보이잖아요? 저는 제가 데리고 키우는 동안에 이 고유한 성품과 자질을 망가뜨리지 않고 고이 보전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행여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맘에 들도록, 또는 세상의 입맛에 맞도록 아이들을 변형시킬까봐 주의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주 고민과 갈등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최소한 부모로서 가르쳐야 하는 것이 있잖아요? 건강 관리라든가 돈 쓰는 법이라던가 등등. 특히 저는 아이들이 부모를 너무 믿고 의지해서 나약한 인간으로 자라날까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어느 선까지 가르쳐야 하는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남편과 제가 성격적으로 아주 다른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둘이서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지고 토론을 하면서 문제를 파악하다보면 아이들에게 가는 부모의 횡포를 많이 줄일 수 있었어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행복의 기준을 설명해주신다면? 또 물질적인 풍요에 대한 동경은 없으셨는지? 자녀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저의 행복의 기준이요? 자긍심이어요. 남이 뭐래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것.
물질적인 풍요에 대한 별로 동경은 없었고 아직도 없어요. 가끔 하늘이 보이는 펜트하우스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냥 막연한 상상일 뿐이지 그다지 아쉽지는 않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누가 1000유로 주면서 그 돈을 하루만에 개인적인 쇼핑으로 다 쓰라 그러면 정말 고문일 것 같다구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그걸 어따가 다 쓴대요?
아들은 아마 저희랑 비슷할 것 같아요. 딸은 돈 좋아하지요. 뭐 살 것도 많고 가지고 싶은 것도 많거든요. 하지만 용돈을 알뜰하게 잘 쓰는 것 같아요. 물건 사는 것 보면 신중하기도 하고, 저보다 물건도 잘 고르구요.
남편는 가장이라 그런지 경제에 대한 책임감이 큽니다. 남편은 저희 노후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합니다. 자기가 먼저 죽으면 제가 외국인으로 혼자 늙으면서 돈도 없이 얼마나 고생을 할까 걱정이 태산입니다. (참 사랑스럽지요?) 저는 걱정 안 합니다. 걱정한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걱정 되면 나가서 땅이라도 파야지 가만 앉아서 걱정은 왜 하는지? 어떡하면 남편의 이 씰데 없는 걱정을 덜어줄 수 있을까 궁리를 하는 중입니다.
-때론 자녀들이 선생님 부부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경우도 없지 않을 텐데? 예를 든다면?
-때로가 아니라 그런 일이 자주 있어요. 우리 아이들은 저희 보다 훨씬 나은 사람들입니다. 성격도 더 좋고, 재능도 더 많은 친구들이지요. 토론하다 보면 저희보다 너그럽고 성숙한 면을 종종 발견하곤 하지요. 아들은 생각과 행동이 아주 단순하고도 반듯한 면에서 저의 존경을 사고, 딸은 사려 깊고 인생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서 좋습니다.
-남편분과 부부로서 공통점과 완전 극명한 차이점이 있다면?
-저희 부부는 성격이 참 달라요. 결혼관도 아주 다릅니다. 저는 사랑이 식으면 이혼하는 게 관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할 만큼 사랑에 기대는 사람이고, 남편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니까 일단 가정을 이뤘으면 사랑이고 나발이고 그냥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지요. 자연이나 사물을 보는 눈도 아주 달라요. 저는 달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려고 하는데 남편은 옆에서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김 새게 만들고.
저희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이라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둘이 토론해서 논리적으로 납득이 가면 솔직하게 수긍하지요. 이런 자세만 있으면 어떤 다름도 평화롭게 극복할 수 있지요. 각자 엄청 고집하는 분야가 있지만 각자 자기에게 중요한 것만 고집하기 때문에 다른 데서는 양보해도 별로 가슴이 쓰리지 않습니다.
또 저희가 아주 다른 점 때문에 이익도 많아요. 우리 둘의 서로 다른 관점을 통해 사물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어디 혼자 가서 뭐 보면 허전합니다. 반쪽만 본 것 같아서요. 그리고 제가 한글로 글을 써도 남편에게 설명해서 논리의 검증을 받아요. 제 눈에는 완벽해도 사고방식이 다른 남편의 눈에 헛점이 보일 수 있거든요.
-책을 통해 느껴지는 것이 남편 분이 오히려 더 한국 남자와 같은 성향(적어도 자식들에게 있어서) 이 있으신 듯한데? 딸아이가 여자로서 성장해 가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든지, 이성교제에 대한 걱정, 아들에 대한 걱정, 아이들의 공부를 자청해서 돕는 것과 같은 것을 보며 느끼는 남편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주신다면?
-딸에 대해서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더 보수적인 것은 만국공통의 이치가 아닐까요? 저희는 육아를 함께 했기 때문에 남편에게서 전형적인 어머니의 특성이 나타나기도 하고 제게서 전형적인 아버지의 특성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에 남편은 자라면서 부모님의 간섭과 돌봄을 저보다는 좀 더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인 것 같아요. 근데 저는 남편이 아이들에게 저랑 다르게 하는 게 참 좋아요. 그래야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균형도 잡히고, 아이들도 부모 생각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걸 배울 수 있을 것이고요.
-독일의 부모 자식 간의 유대감과 한국식 부모 자식 간 유대감을 비교해보면 어떤지요?
- 저희는 부모 자식 간에 그냥 친구 같이 느껴요. 그래서 저희 집에선 부모가 야단친다, 아이들이 야단 맞는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죠. 의견이 다르면 그냥 싸울 뿐이죠.
독일에는 부모 자식 간에 서로 이름을 부르는 가정도 있습니다. 저희는 뭐 딱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 제 아빠 이름을 부르더라구요. 아마 저와 남편이 서로 이름을 부르니까 그런 것 같은데, 남편이 굉장히 좋아했어요. 시댁 어른들이 아이에게 '아빠'라고 고쳐주니까 그러지 말고 내버려 두라고 버럭! 그런데 어느날 부터 아이가 '아빠'라고 부르더라구요.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누구나 다 '아무개'라고 부르지만 자기만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다고 하더군요. 암튼 어려서 우리 아들은 아빠를 참 좋아했지요.
-성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봤습니다. 독일 나름의 환경적 상황 탓인 경우도 있지만 한국 역시 그러한 성교육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부모들에게 조언해주실 성교율 노하우가 있다면?
-성교육의 첫째 목적은 동서를 막론하고 만연해 있는 성추행, 성폭행으로부터 유년기 자녀들을 보호하는 데에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아기 때부터 의견을 존중해주고 '네게 있어선 너 자신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다. 너의 기분과 감정은 존중되어야 한다. 너를 믿어라'라는 교육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고 봅니다.
둘째 목적은 미혼 자녀들의 세이프 섹스(안전 섹스)라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성병과 임신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콘돔을 사용하는 것은 쿨한 행동이란 걸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교육을 순결교육과 혼동하여 무조건 막거나 죄의식을 주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성에 대한 긍정적인 의식은 나중에 안정적인 부부생활의 기반이 됩니다.
출처 : 임혜지 작가 블로그 빨간 치마네집 http://www.hanamana.de/hana/

“우리가 언제 가장 행복하지?”
독일 뮌헨에 사는 고건축 전문가이자 독일 남자와 결혼해 두 아이를 키워온 50대 엄마 임혜지가 들려주는 '개념 있는' 가족 이야기. 돈보다는 시간을, 순간의 안락함보다는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타인에 대해서는 자유와 존중을 우선시하는 삶을 살기로 한 이들 부부는 세끼 식사를 온 가족이 함께하기 위해 직업적인 성공을 일부 포기하고, 돈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소비를 최소화했으며, 환경보호를 위해 난방과 온수, 자동차와 고등어를 포기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공부든 놀이든 연애든 아이들이 원할 때 자기 속도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부모가 되려고 노력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뭔가 불편하고 부족해 보이지만, 스스로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누구보다 높은 이들 가족의 이야기는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며, 소신껏, 덜 가져도 초라하지 않고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과 그것을 구현해가는 단위로서 '나의 가족'을 새롭게 보는 기회를 줄 것이다.
[임혜지] 고등어를 금하노라 :: 2009/10/05 15:20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가족 안에 짓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우리는 늘 서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우리가 언제 가장 행복하지?"


가족 이야기는 대개 진부한 통념의 세계에 머물거나 정반대로 극단적인 전복(顚覆)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고등어를 금하노라》는 통념과 전복 사이를 유유히 오가며 가족 이야기도 조화로운 창조의 세계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 임혜지는 십대 후반에 독일로 건너가 대학에서 건축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고건축 전문가이자 독일 남자와 결혼해 두 아이를 키워온 오십대 엄마다. 맞벌이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삶은 일견 평범한 듯하지만,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사소한 것 하나까지가 모두 부부의 신념과 의지의 결과물이라 삶에 대한 치열한 주인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주어진 대로, 운명을 맞아들이듯 살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살기로 한 이들은 돈보다는 시간을, 순간의 안락함보다는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강요와 간섭보다는 자유와 존중을 우선시하는 삶을 실천해왔다. 세끼 식사를 온 가족이 함께하기 위해 직업적인 성공의 일부를 포기했고, 돈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소비를 최소화했으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난방과 온수, 자동차와 고등어를 포기했다. 이 책의 제목에서 ‘고등어’가 뜻하는 바는 품위 있게 살기 위해 자발적으로 포기한 이 모든 것들을 상징한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은 이런 삶을 선택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해 결정하도록 했다. 생활 방식뿐만 아니라 공부도 연애도 놀이도 모두 아이들이 원할 때 자기 속도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뭔가 불편하고 부족해 보이지만, 스스로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자기 삶을 자기 생각대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상적인 만큼이나 정치적이지만 누구나 유쾌하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저자가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운동가가 아니라 하루하루 자신의 양심과 양식에 맞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건강한 생활인이자 나와 내 가족만이라도 달라지면 세상이 어제보다 좀 더 나은 곳이 될 거라 믿는 생활 밀착형 개혁가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살고 싶은 세상을 누군가 만들어주기를 막연히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 가족 안에 먼저 짓는 저자의 삶에서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자유롭고 창조적인 성격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며, 소신껏, 덜 가져도 초라하지 않고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과 그것을 구현해가는 단위로서 나의 가족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
자유로운, 그러나 이기적이지 않은 행복을 꿈꾸는 ‘유러피언 드리머’ 임혜지
제레미 리프킨이 《유러피언 드리머》에서 “일하기 위해 사는 미국인”과 “살기 위해 일하는 유럽인”을 대비시켰듯 최근 성장과 축적, 개인의 배타적 자유와 독립, 문화적 동화(同化)를 추구하는 미국적 가치관에 반하여 공동체 안에서의 자유와 조화, 지속 가능한 개발, 삶의 질, 문화적 다양성을 중시하는 유럽적 가치관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고등어를 금하노라》는 ‘유러피언 드림’이 실제로 유럽의 일상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1장 ‘자유로워라, 즐거워라’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신념과 의지대로 자유롭게 삶을 구성해나갈 때 삶이 얼마나 즐거워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의 자유는 부와 권력을 쥔 개인이 휘두르는 배타적 자유가 아니라 가족, 이웃, 사회, 나아가 전 세계에 함께 살고 있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더 단단해지는 공동체적 자유를 뜻한다. 저자가 줄기차게 자유를 외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포기’라는 단어를 자주, 또 기꺼이 사용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2장 ‘내가 자유로운 만큼 내 아이도 자유롭게’에서는 부모의 진두지휘 아래 일치단결하는 가족이 아니라 어른이든 아이든 하나의 인격체로서 각자의 개성을 충분히 발휘하며 소통하는 가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3장 ‘공존을 위한 예의’에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형성한 역사적 유산을 존중하고 그 과정을 함께 겪어온, 또 그 결과를 함께 겪어갈 동시대의 이웃에 대한 예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생각대로 살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그래서‘우아한’가난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생각이 깊더라도 그것이 살아가는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결국엔 애초의 생각조차 사는 모습을 닮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생각대로 삶을 꾸려 나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우리는 대개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서 견고한 시스템에, 익숙함과 안락함에, 체면과 관계에 굴복하고 타협하는 길을 택한다. 다수의 삶에서 이탈할 경우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과 불편부당함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삶의 주인이고 싶은 저자의 가족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일상에서도 그대로 실천하는 용감한 선택을 했다. 돈이 사람을 평가하고 가족 간의 유대나 내 이웃의 삶을 해치는 건 인간적인 길이 아니라 믿기에 돈보다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전기를 펑펑 쓰는 난방기보다는 따뜻한 물주머니를, 엄청난 연료를 소비하며 이동해 온 먼 나라의 고등어보다는 내 나라의 먹을거리를 택하는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우리 부부는 학력에 비해서 적은 보수와 실력에 비해서 낮은 사회적 위상을 떳떳하게 감수한다. 또한 무섭게 절약한다. 아직도 크루아상 하나를 온전히 먹는 법 없이 꼭 둘이서 나눠 먹고 물 한 방울, 토마토 한 알도 헛되게 쓰지 않는다. …… 자유를 구하기 위한 검약의 습관은 2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 부부 사이에 유별난 동지 의식을 키웠다. 그 누구 앞에서도 당당하게 크루아상을 둘로 가르는 순간 우리가 은밀하게 주고받는 교감이라니. 그 자신감과 자긍심이라니. 파트너를 향한 존경과 신뢰를 담은 이 동지 의식은 우리 가정의 버팀목이다. - 23~24쪽
집에서 시작한 자유, 홈메이드 프리덤(Home-made Freedom)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위해 본능적인 열정을 발휘하며,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기보다는 자신의 판단과 선택으로 세상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이라 믿는 저자 부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이런 가치관을 그대로 실천했다. 부모라고, 어른이라고 다른 잣대를 대는 일은 최대한 자제하려 노력했다. 덕분에 아들과 딸은 공부도 예체능도 다소 늦되었지만 결국엔 타고난 난독증을 극복하고 원하는 공부와 일을 찾았으며,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을 스스로 하며 신나게 자기 삶을 개척하는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나와 남편은 공부를 많이 한 편이지만 공부 덕분에 부귀영화를 누려본 적도 없고, 또 부귀영화가 없다고 해서 불행하게 느낀 적도 없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학력에 대한 강박관념이 적다. 그래도 그렇지 우리도 초보 부모인데 자식의 앞날이 불안하지 않을 리가 있나. 그렇지만 아이들의 성적에 참견해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관리하는 방법을 터득할 기회를 앗을 수는 없었다. …… 성적에 무관심하다고 해서 우리가 교육에 무관심한 것은 결코 아니다. 자녀 교육은 남편과 내 인생에서 늘 우선순위이다. …… 우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의 놀이를 진지하게 보호하고, 행여 아이들이 도움이라도 청할라치면 갖은 상상력을 동원해 도와주었다. - 94쪽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가 함께 살아갈 길, 키를 낮춰 곁에 눕는 마음
저자가 살아가는 방식은 한국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독일로 건너가 독일 사회의 발전과 정체, 통일과 세계화로 인한 혼란, 나치 문제와 역사 청산의 과정을 겪으며 자리 잡았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던 저자는 사회의 상황과 자신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나’와 ‘너’와 ‘우리’의 심성을 보았고, 독일의 역사 청산 과정을 지켜보며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양심과 양식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스승은 나치의 역사였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녀는 인간이 야만의 역사에 반응하는 모습과 후대에 그것을 청산해가는 과정에서 자신과 아이들, 또 그 아이들이 갖춰야 할 덕목을 배웠다. 그것은 바로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자기중심과 세상과 이웃에 대한 예의였다. 이 책에 독일의 역사 청산에 관한 이야기가 비중 있게 포함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꼭 학식이나 사회적인 지위가 높아야만 지성인이 되는 게 아니다. 머리를 빡빡 민 채 낙하산 부대의 장화를 신고 설치던 신나치주의 청년들의 폭력이 심심찮게 일어나던 시기에 독일의 많은 가게의 출입문에는 엽서 크기의 노란 카드가 붙어 있었다. 그 카드에는 자기네 가게는 외국인이 폭력을 피해 들어올 수 있는 피난처이니 위험에 처한 외국인은 언제든지 뛰어 들어오라고 쓰여 있었다. 생면부지의 외국인을 자기네들이 나서서 깡패로부터 보호해주겠다고 선언하는 도자기 가게, 유리 가게, 꽃집 주인들은 바로 독일의 지성인들이다.
주류로 사는 인생과 지성인으로 사는 인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주류로 살면서 어느 한 영역에서 지성인의 역할을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 그래서 나는 주류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편 회사의 평사원이 우리 회사도 나치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금을 내느냐고 물었을 때) 아마도 반감을 가졌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위협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가 소신 있는 발언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줬던 것처럼 주류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아는 것만으로도 사회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 200~201쪽
일이 재미있으면 더 해. 하지만 돈 때문에 더 하지는 마
남편이 회사에서 일주일에 36시간 근무를 40시간으로 늘리라는 제안을 받았다. 아이들도 다 컸으니 하루에 30분 더 일한다고 사생활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맘대로 해. 일이 재미있으면 더 해. 하지만 돈 때문에 더 하지는 마. 우린 지금 버는 돈도 다 못 쓰는데.”
“집에 일찍 와봤자 신문이나 읽고 노는걸.”
“신문이나 읽고 노는 건 안 중요해?”
신문이나 읽고 노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남편은 일을 더 하지 않았다(몇 달 후에 회사에선 남편을 일주일에 40시간 일해야 하는 위치로 승격시켰다. 그것은 또 다른 책임감과 성취감이 따르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남편을 위해 진심으로 기뻐했다). - 22쪽
우리 부부의 건강한 생활력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 동안 남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실내를 정리하고 청소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그는 바로 남편이었다. 그의 옆에도 다른 여성들이 쭐레쭐레 붙어서 눈치껏 일을 돕고 있었다. 내 남편은 이 파티에 참석한 유일한 아버지였다. 돈이 많거나 직책이 높아서 항상 바쁜 다른 부모들과 달리 그다지 책임이 막중하지 않은 직책에 있어 이렇게 아이들의 학교 파티를 위해 결근할 수 있는 나와 남편의 처지가 새삼 감사했고, 선수급은 아니더라도 일용할 양식을 제 손으로 요리하고 치울 수 있는 우리 실력이 자랑스러웠다. - 41쪽
나는 어린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살 수 없다
지멘스에서는 남편이 국제 결혼한 사실을 눈여겨보고 국제적인 일꾼으로 양성하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역동적으로 일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남편은 “나는 어린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살 수 없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고도 붙을 줄 알고 감이 좋다니!
내가 엑스포 건으로 외국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을 때 남편은 망설임 없이 전업주부의 역할을 맡아주었다. 남편의 지론은 그래야 아이들이 행복하고, 아이들이 행복해야 자기가 행복하다는 거였다. 엑스포가 끝난 뒤에는 내가 아이들을 돌보며 남편의 취업을 도왔다. 남편이 가까스로 안정된 직장을 구하고 아이들이 제 앞가림을 할 나이가 되자 우리 부부는 다시 나의 자립을 위해 힘을 합쳤다. ……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의 돈이 아니라 부모의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평생에 걸쳐 철저하게 실천할 수 있었던 걸 우리는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풍요로운 인생을 맛볼 생각도 못 했을 것 아닌가? - 84~85쪽
한두 번 실수로 망가지는 인생은 없어
“콘돔만으로는 불안하니 피임약과 콘돔을 같이 써야겠어.” “제대로 사용하면 안전해. 콘돔을 쓰면 피임약은 필요 없어.”
“아니야, 엄마. 그러다가 임신하면 내 인생 망치는 거야.”
“피임을 제대로 했는데도 임신이 된다면 그건 할 수 없는 일이야. 네 잘못이 아니라구, 그리고…….”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이 세상에서 네 인생을 망칠 수 있는 건 없어.”
“엄마는. 공부도 안 끝난 열다섯 살짜리 소녀가 임신하면 인생 망치는 거지.”
펄쩍 뛰는 딸에게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임신해도 인생 망치는 거 아니야. 불편하긴 하지만 괜찮아. 넌 아기 기르면서 공부할 수 있어. 엄마 아빠도 성심껏 도와줄 거야.” - 114~115쪽
_지은이 : 임혜지
고등학교 때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해 35년을 독일에서 살았다. 칼스루에 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사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 스위스관 설계 및 기획에 참여했다. 현재 독일 뮌헨에 거주하며 프리랜서로 문화재 실측 조사와 발굴 연구를 하고 있고, 일감이 없을 때는 글을 쓰고 살림을 하느라 허둥댄다. 성격은 극과 극이지만 이상(理想)이 맞는 독일 남자와 결혼해 20년 넘게 같이 살고 있다. ‘우리 아이가 공부는 못해도 성격은 좋으니 걱정 마세요’라며 선생님을 위로하고 딸에게 대놓고 콘돔 사용법을 가르치는 대범한 엄마이지만, 댄스 학원에서 남편과 왈츠를 출 때가 가장 행복한 만년 소녀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 《프리드리히 바인브렌너 시대의 칼스루에 주택》(독일어),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