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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연금술 - 사랑 좀 해본 편집자의 기획일지 #4 :: 2010/07/26 15:53
“사랑을 잘하는 편집자가 책도 잘 만든다.” 이런 망언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어제 새로 들어온 편집자분들과 밥을 먹으며 소개팅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망언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이런 저의 망언에 입각하여 선임 편집자들이 신입 솔로 편집자들에게 소개팅을 해주는 훈훈한 광경이 연출되고야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니 저는 그렇게 생각했더랬습니다. 사랑을 알아야 편집도 하지. 그게 이 블로그 글을 쓰는 이유가 되었고요.
요즘 저는 엄기호 선생님과 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엄기호 선생님을 만나서 커피도 마시고 술도 마시고 노닥거리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언젠가 실연을 하고 남미로 훌쩍 날아간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가는 비행기에서 헤겔과 기타 등등을 펼쳤는데 난해하고 복잡했던 헤겔의 말이 쏙쏙 들어오더란 겁니다. 짝짝짝 박수까지 쳐가며 저는 급공감을 했더랬습니다. 맞아요. 어려웠던 개념, 관계에 ‘사랑’을 넣어보면 쑥 이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 작업 중인 원고에 사랑에 대한 멋진 글이 등장합니다.
사랑은 난생 처음 내가 타자에 의해 자아가 붕괴되는 것을 경험하게 한다. 나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그만이 중요하다. 모르는 존재를 향해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 사랑의 경험이다. 사랑은 등가교환과 같은 것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반면 실연은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세상에서 자부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전혀 모르는 존재로 돌변하는 사건이다. 실연을 통해 사랑에 대한 체념이 아니라 상실을 감수하는 것을 배운다. […]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절대적인 타자와의 만남. 이것을 통해 인간은 성장해간다. 이것이 사랑과 실연의 드라마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이번 글을 쓰기로 한 것 또한 지젝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를 읽다가 발견한 이런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때로는 희극의 외피를 쓴 반복이 원래의 비극보다 더 끔찍할 수 있다는 것.” 아~~~ 가슴이 아립니다. 제 말을 못 믿으시겠다고요? 자 그럼 사랑의 눈으로(@_@, *_*) 이 험난한 글들을 읽어볼까요? 사랑의 연금술은 이 모든 말들이 사랑으로 읽히는 게 가능하게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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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은 대화와 양립할 수 없다. 겸손함이 결여된 (혹은 겸손함을 잃어버린) 사람은 민중에게 다가갈 수 없으며 그들과 함께 세계를 이름 지을 수 없다. (파울로 프레이리, 《페다고지》)
‘민중’만 ‘사랑’ 또는 ‘연인’으로 바꾸면 그대로 성립하는 말이겠지요.
사진은 대상화한다. 사진은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소유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변형시켜 버린다. 그리고 사진은 일종의 연금술로서, 현실을 투명하게 보여준다고 높이 평가받는다. 때때로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뭔가를 ‘훨씬 더 잘’ 보게 되며, 혹은 적어도 그렇게 느끼게 된다. 실제로 보통보다 사물을 더 잘 보이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사진의 주요 기능들 중 하나이다.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이 역시 ‘사진’ 대신 ‘사랑’만 넣으면 성립하는 말이겠네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금에는 어떤 신비한 힘이 있어서 다른 상품들과 교환될 수 있고 그것들의 가치척도가 될 수 있는가. 그들은 다른 상품들과 비교함으로써 금의 신비를 밝히고자 했다. 애당초 가치란 그렇게 발견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가치는 한 상품이 다른 상품들과 맺는 ‘관계’이지, 한 상품에 내재한 고유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병권, 《화폐, 마법의 사중주》)
금보다 더 믿을 수 없는 신비한 힘, 그러나 사랑에 내재한 고유성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힘, 그게 바로 사랑이겠지요?
서도는 동양의 관계론적 원리가 아주 잘 녹아있는 장르입니다. 붓글씨를 쓸 때는 처음에 쓴 획의 각도가 비뚤어졌다고 그것을 지우고 다시 쓰지 못합니다. 그 다음 획을 통해 결함을 교정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안 되면 다음 획으로, 또 안 되면 다시 다음 획으로…….또 글자가 틀리면 역시 다음 글자로 고쳐야 하죠. 한 행의 잘못은 그 다음 행으로 보완하고요. 이런 식으로 고쳐가면서 쓰다 보면 글씨를 쓰는 내내 굉장히 여러 곳을 동시에 봐야 합니다. (신영복, 《여럿이 함께》)
아,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하는 그 말이랑 어쩜 이리 똑 맞아떨어지는지요.
이번에는 사랑의 비극에 대해서 들춰볼까요?
1920년대 미국의 암흑가 보스로 악명이 높았던 알 카포네는 수많은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한 번도 기소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탈세죄로 감옥에 갔다. (그레고리 맨큐, 《맨큐의 경제학》)
그렇습니다. 연애의 파탄은 아주 약한 고리에서 시작되는 법입니다.
어떤 과정이든 거기에 많은 모순이 있다면 그중에서 반드시 한 가지 모순은 주요한 것으로서 주도적, 결정적 역할을 하고 기타의 모순은 부차적이며 종속적 위치에 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과정을 연구하든지 그것이 만약 두 가지 이상의 모순이 존재하는 복잡한 과정이라면 전력을 다하여 그 주요 모순을 찾아내야 한다. 이 주요 모순을 파악하면 일체 문제가 순순히 풀린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사회를 연구할 때 우리에게 가르쳐 준 방법이다. 레닌과 스탈린도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를 연구할 때와 소련의 경제를 연구할 때에 역시 이 방법을 보여주었다. (마오쩌둥, 《모순론》)
(이거 슬슬 억지스러움이 묻어나오기는 하나) 어떤가요? 연애의 모순. 주요 모순과 주변 모순. 지난 어떤 사랑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그 프레임을 부정하려면 우선 그 프레임을 떠올려야 합니다. 일찍이 리처드 닉슨은 그 진리를 뼈아픈 방식으로 깨달았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고 그가 한창 사임 압력을 받던 당시의 일입니다. 이때 그는 TV에 나와 연설을 했는데 여기서 닉슨은 전국에다 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그 순간 모두가 그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이 일화는 상대편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려면 상대편의 언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프레임의 기본원칙을 가르쳐 줍니다. 상대편의 언어는 그들의 프레임을 끌고 오지, 결코 내가 원하는 프레임으로 기능하지 않습니다. (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상투적인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장면들. 쟤가 나한테 도대체 왜 저러나 싶지만 “나, 너 안 좋아해”를 수십 번 반복하느라 그 ‘너’를 좋아하게 되는 장면 말입니다.
다음은 솔로들의 마음을 후벼 파는 멘트들 되시겠습니다.
헤지펀드는 뉴욕 증권거래소와 나스닥 시장 거래량의 40%를 점유하고 있다. 헤지펀드의 중요성은 그러나 역설적이다. 거래량에서 헤지펀드는 전체의 40%를 차지하고 있다면 이들이 소유하고 있는 주식은 겨우 4%밖에 안 된다. (존 버글, 《만국의 주주들이여, 단결하라》)
빈익빈 부익부, 사랑의 절대 법칙입니다.
‘잉여’란 여분, 불필요함, 무용함을 의미한다. - 유용성과 필수불가결함의 기준을 설정하는 필요와 유용성이 무엇이든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당신 없이도 잘 할 수 있고, 당신이 없으면 더 잘 할 수 있다. 당신이 거기 있어야 할 어떤 자명한 이유도 없고, 당신이 거기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만한 어떤 뚜렷한 정당성도 없다. 잉여로 규정된다는 것은 버려져도 무방하기 때문에 버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그문트 바우만, 《쓰레기가 되는 삶들》)
아, 눈물이 앞을 가려 그 어떤 말도 달지를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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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런 뜻이었습니다. 세상이 열리고,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 사랑만큼 강렬한 것도 없잖아요. 기쁨도 더 크게, 슬픔도 분노도 짜증도 서러움도 더 크게 만들어주는 증폭기가 사랑이니까요. 어떤 사랑을 하고 계신가요? 아니 사랑을 하고 계신가요? 그나저나 우리 신입들의 사랑은 시작될 수 있을까요? 어흥.

감정을 정리하는 어떤 방법에 관하여 - 나를 사로잡은 문장들 #3 :: 2010/07/14 17:23
#3. 감정을 정리하는 어떤 방법에 관하여
“고 군! 나 왔어. 이것 봐, 인터넷으로 주문한 캣타워가 도착했어…….”
“고 군……?”
베란다로 난 창문으로 고 군의 뒷모습이 보였다. 축 쳐진 어깨도.
“아 주인님. 오셨군요…….”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아뇨. 그냥 기분이 좀 울적해서요.”
“음. 그렇구나. 나도 오늘 좀 그랬는데. 우리 요 앞에 가서 한잔할까?”
싫다는 고 군을 끌고 집 앞 주점으로 들어갔다. 맥주와 고 군이 좋아하는 감자고로케를 시켜놓고 나는 주절주절 하루의 일과를 털어놓았다. 고 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고 군. 근데 정말 아무 일 없었어?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지만…….”
“주인님, 실은 아까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예전에 사귀었던 친구를 만났어요.”
“아, 그때 말했던 편사고의 단짝? 헤어질 때 많이 힘들었다고 했던가, 그 친구가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여서?”
“네. 그런데 서로 안부 인사를 주고받은 후에 그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고 군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미안하다고.”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고 군이 물었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나직이 말했다.
“미안해. 지금까지 너를 놔주지 않았던 거…….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으면서도, 나를 잊지 못하는 네게 계속 의지한 거……. 우리 헤어지자고 한 뒤에도 넌 한결같이 나를 믿어주고 내가 부르면 달려오고 내 편이 되어주었잖아.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네가 계속 그렇게 내 곁에 있길,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어. 내 말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들리는지 알아. 정말 미안해. 이제 나에 대한 미련을 버려도 돼.”
“왜 지금 와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렇게 날 힘들게 해놓고?”
“고 군, 정말 미안해. 왜냐하면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야. 내가 너와 같은 상황에 놓인 지금에야 네가 얼마나 힘들어했을지 알게 되었거든. 그러니까 이제 미련을 버리고 네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그 말을 듣고 나서 제가 바보가 된 기분이었어요. 사실 얼마 전까지도 그녀는 힘들 때면 저를 불러냈어요. 헤어졌지만 그렇게라도 인연이 유지되는 것에 대해 저는 일말의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나 봐요. 그러니까 그녀가 표현하지 않았을 뿐 저에 대한 마음이 남아 있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바보처럼…….”
그날 밤 우리는 새벽까지 맥주를 마셨다. 나는 그냥 고 군의 얘기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고 군은 그렇게 좋아하는 고로케는 손도 대지 않고 그냥 맥주만 마셨다. 혹시나 해서 생선까스를 하나 더 주문했지만 역시나 먹지 않았다.
내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고 군은 연신 “주인님, 죄송해요. 제가 참 바보 같죠” 하고 중얼거렸다.
그날 밤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리다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편지를 써서 고양이 수첩에 넣어두었다.
“고 군. 우리는 모두 외로운 바보들이야. 그런 바보들의 외로움을 온전히 지켜봐줄 수 있는 건 신뿐이야. 그리고 우리는 종종 책속에서 그런 신을 만나.
고 군처럼 내가 몇 년간 한 사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을 때 내 감정을 정리하게 해준 책의 한 부분을 적었어. 고 군에게도 도움이 되길. 그리고 내일은 우리 고로케도 먹자.”
“어째서 당신만 언덕을 내려가는 거지? 불에 타 죽을 셈인가?”
“죽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서쪽엔 당신의 집이 있잖아요. 그래서 난 동쪽으로 가요.”
화염 가득한 내 시야에 까만 한 점으로 남은 그녀의 모습을, 내 눈을 찌르는 통증처럼 느끼면 나는 잠을 깼다.
눈꼬리에 눈물이 흘렀다.
내 집이 있는 방향을 향해 걷는 것조차 싫다는 그녀의 말을 이미 난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건 상관없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성에 채찍질하여, 나에 대한 그녀의 감정이 싸늘히 식어버렸다고 겉으로는 체념하고 있었다 해도, 그녀의 감정 어딘가에 나를 위한 한 방울이 있으려니 하면서 실제의 그녀와는 무관하게 오직 나 자신 제멋대로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한 자신을 호되게 냉소하면서도 은밀히 담아두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런 꿈을 꾼 걸 보면, 그녀의 마음이 눈곱만치도 내게 없다고 나 자신의 마음 구석구석까지 굳게 믿어버리고 만 것일까.
꿈은 나의 감정이다. 꿈속 그녀의 감정은, 내가 지어낸 그녀의 감정이다. 나의 감정이다. 게다가 꿈에는 감정의 허세나 허영이 없잖은가.
이런 생각에, 나는 쓸쓸했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 《손바닥 소설》 중 〈불을 향해 가는 그녀〉
[아까운 걸작] 재미 없이 의미 없다 성공보다 성장이다 :: 2010/07/13 17:37

솔직히, ‘아까운 걸작’이라기보다 ‘억울한 작품’이다.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붕가붕가레코드라는 이 묘한 이름의 음반 기획사를 처음 알게 된 건 2008년 8월 우연히 본 신문 인터뷰에서였다. ‘재미있는 사람들이네.’ 직접 곡을 만들어 자취방에서 녹음하고, 앨범을 만들어 파는 음악인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좋아하는 일에 미치는 젊은이들. 음악뿐 아니라 자기 삶을 인디답게 만들어가는 청년들이라니, ‘의미까지 있잖아!’ 마침 ‘20대=루저’라는 이야기들이 넘치던 때였다. 많이는 안 팔려도 좋으니 재미있게 의미 있는 발언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달라졌다. 갑자기.
‘이런 애들도 책 내네’라는 반응도 있었으니 결과적으로는 그런 오해를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다. 책은 무려 11곡이 든 CD를 붙였음에도 한 달 만에 서점에서 눈에 잘 띄는 곳이 아닌 구석에 처박혔다. 소속 밴드를 총동원한 콘서트를 마치고 책이 사라지기 시작했으니 그날 공연이 이 책의 고별 공연이 되어버린 셈이다.
책 속 이야기는 끝났지만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모두에서 성공을 꿈꾸는 이 욕심 많은 청년들의 이야기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서른을 갓 넘긴 나이에 자기 경험을 밑천 삼아 “재미 없이 의미 없다” “성공보다 성장이다”라고 감히 말하는 청년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서점으로, 음악이 궁금하다면 레코드점으로 달려가시라.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시라.

출처 시사IN
여름날의 곰스크를 좋아하세요? - 사랑 좀 해본 편집자의 기획 일지 #3 :: 2010/07/12 17:12
곰스크를 아시나요
“나는 아직도 곰스크로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라는 말로 끝을 맺는 짧은 글이 있다. 제목도 <곰스크로 가는 기차>인 이 글은 독일사람 원작이다. 청소년 철학 교양으로 잘 알려진 안광복이 PC통신 시절에 번역해서 알렸다. 황경신은 이를 액자소설식으로 바꾸어 <페이퍼>에 실었다. 나는 군대 시절 한 후배가 그 <페이퍼>를 곱게 접어 보내준 덕분에 읽게 되었다. 많이 돌고 돌아 나에게도 왔다.
곰스크로 향하는 길, 잠시 머물려 했던 간이역에서 기차를 놓치고 그곳에 눌러 앉게 된 부부. 돈만 모이면, 조금만 상황이 나아지면 곰스크로 가리라 다짐하는 남편과 이곳도 좋으니 그곳엘 굳이 가야 하느냐는 부인. 그리고 황경신의 글에서 이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들려주며 자신들의 삶을 반추하는 청춘을 함께 보낸 한 남자와 여자.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수많은 블로그로 확인할 수 있다).
곰스크를 향하는 것도, 지금의 그곳에 머무르는 것도 모두 둘의 선택이고 둘의 책임이다. 다만 둘의 생각이 달랐을 뿐일 것이다. 20대의 중간쯤에 이 글을 읽었을 때와 본격적으로 밥벌이란 것을 하고 나서, 그리고 그 글을 처음 읽은 뒤로 10년이 지난 지금 저마다 다른 느낌이 든다. 왜 곰스크로 떠나지 못했는가 남자를 비웃고 여자를 비난하던 때가 있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있는 것 외에 더 무얼 바라고 더 먼 곳을 가야 하느냐 남자를 비난하던 때도 있었다. 그리고 반드시 그곳이어야만 가능한 일이란 없으니 현재에서 그곳을 만들자고 나름 희망적으로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글쎄…….
버거웠으므로 벗어버렸던
감사팀. 이게 내 첫 직장에서 내가 속한 팀이었다. “쌩유 베리 감사!”는 아니고 회사가 잘 돌아가는지, 개선해야 할 일은 없는지를 조사하고 경영진에 보고하는 그런 일이었다. 감사라는 게 당연히 피감사 대상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전국의 공장, 연구소, 영업 지점이었으니 직접 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한 달의 3분의 2는 지방으로 출장을 다니고 나머지 시간에는 결과를 보고서로 정리하느라 야근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3년 반을 살던 중간에, 연애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이분도 만만치 않아 직업은 간호사. 종합병원 간호사였으니 3교대. 게다가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들도 많고 긴박한 상황이 수없이 발생하는 신경외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주중에 서울을 비우고 주말에만 시간이 나는데 이분은 또 주말에 3교대 중 시간이 애매하게 걸리면 얼굴을 볼 수 없는 노릇. 드문드문 만나며 지냈다.
대화라는 게 초반에는 가장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부터 하게 마련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더 나고 대화량이 늘어나면 보다 본질에 가까운, 그러니까 서로에 대한 감정이니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이야기도 풀리게 마련이다. 만나자마자 “넌 사랑을 믿니?” 이럴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이런 ‘아다리’ 맞추기도 어려운 데이트 일정에서 하는 이야기란 먹고사는 일에 대한 것이다. ‘ㅇㅇ지점 감사를 갔는데 장부 조사하다 보니까 빼돌린 돈이 얼마라서 징계받았다’, ‘ㅇㅇㅇ호실 환자가 밤에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병동에 비상이 걸렸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전주에 가면 어디어디에 콩나물국밥이 맛있더라’ 같은 되도 않는 이야기로 발전하기는 쉬워도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땐 그랬다.
헤어졌다. 이맘때였다. 어느 날 역시 일주일치 출장을 다녀와 묵은 짐을 풀고 퍼졌다. 그분도 며칠의 야간근무를 마치고 자기 집으로 퇴근한 뒤였다. 통화를 하는데 갑자기 무기력해짐을 느꼈다. 더 이상 이 관계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그런 유. 그대로 좀 모진 방법으로 헤어지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사람에게 한 가장 나쁜 짓 중 하나다.) 삶이 버겁다고 해야 하나. 왜 이러고 사나 싶기도 했고. 덜컥 겁이 났다. 아무튼 비겁한 것이었다. 사랑만 말하고 살아도 아까운 시절에 둘이 마주 앉아 영수증과 통장 잔고와 카드 명세서 등을 놓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비극으로 여겨졌다.
나의 곰스크, 당신의 곰스크
작년 이맘 때 나는 결혼을 하여 본격 “영수증과 통장 잔고와 카드 명세서 등을 놓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삶을 시작하였다. 수북이 쌓인 부부의 한 달치 술값의 증거들을 보며 반성회를 하다가, 조금씩 늘어가는 통장 잔고를 보며 각자의 위시리스트를 살~짝 프리젠테이션하기도 하는 그런 시절을 사는 것이다.
나는 곰스크 행을 포기한 여인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인가. 잘 팔리는 책을 연이어 내놓는 획기적인 편집자가 되어, 수입의 총량을 늘려 수입 대비 음주비 지출을 낮추는 획기적인 방법을 떠올리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반대로 팍팍했던 감사팀 시절을 벗어나 일과 삶이 대체로 일치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라 만족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바로 그맘때 만들기로 한 책들을 보니 지나간 연애와 곰스크와……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팜 시티>. 시애틀의 슬럼에서 직접 벌을 치고 돼지를 기르는 사람의 에세이다. <콜드>. 지구가 얼마나 추운지 직접 경험해보겠다 북극 근처에서 1년을 산 어느 과학자의 에세이다. <최후의 모험가>도 이때 찾은 책이다. 열기구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는 게 꿈인, 그러나 태평양 상공에서 실종된 모험가를 다룬 논픽션이다.
바로 그맘때 눈에 잘 띄지 않는 이런 책들이 눈에 들어온 건 나 역시 어떤 곰스크를 마음에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저마다의 곰스크를 찾아 떠난 사람들, 저마다의 곰스크에 도착한 사람들. 그들을 지켜보리라 하는 마음. 그리고 그러그러한 마음이 들 때 이 책을 읽는다면 나의 곰스크는 어디에 있는가, 아니 너의 곰스크가 있었다는, 그곳을 바라고 그리워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리라는 마음 말이다.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PS. 이 책들은 아직 출간하지 않았다. 퍼뜩 카테고리 이름은 <곰스크>라고 지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편집자 에세이] 내비 없이 고고씽 :: 2010/01/27 13:05

내비게이션을 떼다 버렸습니다. 처음 차를 살 때 공짜로 얻은 것이니 요즘 것처럼 화면이 크지도 않고 TV가 나오지도 않는, 길 안내 기능에만 충실한 녀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그 기능을 충실하게 해내지 못한 것이 이 녀석을 떼어버리게 된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처음에는 업그레이드가 잘 되지 않는 중소기업 제품이라 새로운 길을 달리면 마치 우주를 달리는 것 같은 휑한 지도를 보여줬습니다. 이건 참을 만했습니다. 나중에는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잠깐 일어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하고 주정하는 사람마냥 잠깐 불이 들어와서는 헛소리를 하고 다시 잠들기 일쑤였으니 더 이상 달고 다닐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버려도 되겠다 싶었던 것은 그 녀석 탓이 아니라 저 때문이었습니다.
내비가 정상이 아닌 덕을 본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태어난 고향 강원도 철암으로 혼자 차를 몰고 갈 때였습니다. 정선에서 태백으로 가는 길이었던가 내비가 잠깐 말을 안 듣는 새, 엉뚱한 길로 들어섰습니다. 잘 뻗는 새 길을 두고 구불구불 고갯길을 탄 겁니다. 차를 돌리기에도 좁고 위험한 고갯길이라, 그리고 딱히 시간이 급하지도 않는 백수 시절이었으니 고갯길을 따라 느릿느릿 올랐습니다. 아득한 고갯길 정상에서 온 길과 갈 길을 내려다보면서 어느새 눈물이 주룩 흘렀습니다.
아버지. 서른 해 가까운 고단한 서울 생활에 가진 것 없이 이 길을 넘어 ‘막장’ 생활을 하러 탄광촌으로 들어섰을 아버지, 그리고 다시 몇 해가 지나 이번에는 딸린 자식 둘과 어머니와 함께 다시 그 서울로 향하느라 이 길에 올랐을 아버지. 한 굽이 한 굽이마다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단출한 세간에도 힘겹게 고갯길을 올랐을 트럭에서 우리는 무슨 기대와 어떤 작정으로 서울을 향했을까…….
그 전에야 아는 길 나서면서도 습관적으로 내비를 눌러 경로를 확인하고는 했는데 그 일이 있은 후로는 정말 모르는 곳을 갈 때 위치를 확인하는 것을 빼면 되도록 내비를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내비가 말을 듣지 않아 믿을 수 없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되었지만요. 내비가 없고 보니 오히려 길을 떠날 때 목적지의 위치를 한 번 더 확인하게 됩니다. 가장 빠른 길만 단선적으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곳과 그곳의 위치를 일단 지도에서 확인하고 가는 여러 경로를 내 경험과 지도에서 다시 확인하게 되니 조금 ‘즐거운 불편’이 된 셈입니다. (원래 공부를 그렇게 하라지 않던가요? 암기만 하지 말고 원리를 이해하라고.)
한때는 그런 적도 있었습니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견강부회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시작됩니다. 주의하세요.) 아, 내 인생에도 내비게이션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 여기 가고 싶거든? 어떤 게 가장 빠른 길이야? 어떤 게 가장 안 편안한 길이야? 물었을 때 좌회전과 우회전, 그리고 조심해야 할 것들을 모조리 알려주는 그런 것 말입니다. 그런 게 있을 수도 없지만 그런 게 있다 해도 행복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가 기억납니다. 아, 중학교 때 읽었으니 동화는 아니겠네요.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이라는 쉘 실버스타인의 이야기입니다. 몸의 한쪽이 없는 동그라미는 자기에게 꼭 맞는 한쪽을 찾아 여행합니다. 온갖 여행 끝에 딱 맞는 한쪽을 마침내 찾았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동그래진 동그라미는 그동안 만났던 벌레나 꽃과 이야기를 나눌 겨를도 없이 그저 굴러만 가는 겁니다. 장기하 노래 <느리게 걷자>에도 이런 말이 나오잖아요? “그렇게 빨리 가다가는 죽을 만큼 뛰다가는 사뿐히 뛰어가는 예쁜 고양이 한 마리도 못 보고 지나칠 텐데.”
고장 난 내비게이션 하나 버려놓고 참 말이 많습니다. 최근에 차에 탄 일이 없는 색시가 이 사실(공동 자산의 일방적 폐기)을 알게 되었을 때, 제가 위에 말한 것처럼 변명을 늘어놓으면 이해해줄까요? 저는 워낙에 버리기를 좋아하고, 그 친구는 워낙에 모으기를 좋아하는 친구거든요. 사실 ‘모은다’ 감각이 충만하기보다는 ‘버린다’ 감각이 퇴화되어 있는 서로 다른 인종이랍니다. 내비 없이 둘이 길을 헤매는 여행, 그 설렘을 이 친구가 이해해주기를 바랄 뿐이지요. (저 밥은 얻어먹고 다닐 수 있을까요?)

[편집자 에세이] 어쩌다 보니 어른, 어른이다 보니 도망치고 싶은 :: 2009/11/13 09:05
옛날에는 저,
‘어른’이라는 말만 들어도 이런 식이었어요.
“나 오늘 집에 일찍 가야겠어.”
“왜?”
“흐르는 물에 귀 씻으러.”
‘서른 살까지만 살고 죽겠다’라고는 죽어도 말 못하지만, 그래도 ‘어른이 된다는 건 죽음이야!’ 이런 생각은 했어요. 왜 그랬을까. 애가 셋이라는데 일주일에 일곱 번 이상 동아리방에 놀러오는 선배 보면서 생활이 지난하다는 생각을 했고, 점심때쯤 명동에서 몰려나오는 넥타이족 보면서 ‘목구멍이 포도청’이 아니라 ‘목구멍이 협착’이었어요. 저는 생활의 지속과 유지, 그러면서 고정되어 가는 것들, 누군가를 원망하고, 원망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원망하고- 이런 것들을 무서워했던 것 같아요.
이젠 ‘어른이 된다는 건 너무 구려요’라고 말하는 친구들 앞에서 딱 한 음절밖에 입 밖에 내지 못해요. ‘쩝’. 왜냐면 그런 세상을 만든 책임, 방관한 책임, 아니면 감시에 소홀했던 책임을 져야 할 나이가 되었으니까요. 세상이 아름답지 않은 책임이 저 혼자에게 있다고는 말 못 하겠어요. 하지만 나는 어째서 한 음절밖에 할 말이 없을까. 어째서 승리의 기억을 만들지 못했을까. 단 한 번이라도, ‘이놈들아, 너네들 다 뿡이다!’ 이랬던 기억. 사람들이 ‘그게 무슨 승리?’ 하더라도 어쨌든 나에겐 승리. 이런 것. 장까지 활발하게 움직이는 유산균처럼, 내 마음 깊숙한 데까지 가서 반짝반짝 나를 빛나게 만들어 줄 만한 기억. 그런 게 있었다면 좋았겠다, 그러면 “세상은 ‘요따우’여도 우리 이렇게 재미나게 살면서 복수하자!” 이렇게 말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은 들어요.

사실 저에게도 아직 꿈이 있긴 해요. 밴드를 만드는 거예요. 이 밴드에서는 누구도 나이나 힘으로 다른 이를 제압하거나 억누르지 않아요. 밴드는 조화가 필수니까 구성원들끼리 잘 어우러져서 연대해야 되겠죠. 연대하면 사는 것이 덜 불안할 거고요. 창조적 영감을 나누면서 당연히 즐거울 거고, 즐거운 기운이 모여 만든 음악은 분명 아름답겠죠. 우리는 그 음악을 들고 슬픔이 많이 고인 곳에 가서 노래하고, 슬픔을 막 흩뜨리는 거예요. 거름으로나 쓸 수 있을 정도로 콩콩 빻아서요. 그런데 백일몽 카테고리에 있던 이 일을 진짜로 해낸 사람이 있네요.

어른이 되고 보니 엄마가 거적때기 같다고 하는 옷을 맘대로 입는다거나, 토요일에 오후 네 시까지 잔다거나, 내 뒤치다꺼리를 내가 하는 자유, 이런 것들이 아주 편안하고 좋아요. 하지만 등을 떠밀려,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된 듯한 이 기분, 이대로 삽십 대를 지나가도 되나 싶은 불안함, 나는 어른 노릇을 제대로 하면서 살고 있나 하는 미안함. 이런 것들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게, 제가 거치고 있는 ‘어른’이에요. ‘어른’이라는 말에 귀 씻던 청년치고는 참 재미없는 어른이 되었네요. 다시 한 번 이 대목에서 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