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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사랑의 다른 이름, 좋은 이별 :: 2009/11/23 16:21

내가 이별에 서투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어떻게 이별하는지 유심히 보기도 했다. 사랑이 끝났을 때 어떤 이들은 순식간에 폭력적으로 변하면서 상대방에게 가학적인 언행을 했다. 어떤 이들은 상대방을 부여잡고 거듭거듭 매달리고, 어떤 이들은 잘 가라면서 쿨하게 돌아서서 재빨리 다른 연인을 만났다. 이별 후 아주 먼 곳으로 떠나거나 죄의식 속에서 자기 파괴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별에 서툴고 헤어진 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물론 세상에 통용되는 몇 가지 이별의 지침들이 있기는 했다. 떠난 사람은 깨끗이 잊는 게 낫다. 바쁘게 지내다보면 곧 괜찮아질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지내야 한다. 슬픔이나 고통은 혼자 조용히 처리해야 성숙한 사람이다. 그런 지침들은 그러나 마음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아픔이 더 오래 지속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좀 이상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이별하는 방법을 모를 뿐 아니라 이별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서점에 가면 사랑에 관한 책은 읽기도 숨찰 만큼 많이 있는데 이별에 대한 책은 찾아내기조차 힘들었다. 이별도 사랑만큼 오래된 일이고 중요한 삶의 한 요소일 텐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었다.

내 마음은 고통으로 칠흙처럼 어두워졌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죽음뿐이었다. 내 고향은 나에게 고통이 되었으며 아버지의 집은 특별히 불행한 장소가 되었다. 그 친구와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이 그가 떠난 후 끝없는 고통이 될 뿐이었다. 나는 사방을 두루 살펴 친구를 찾았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 자신이 알 수 없는 하나의 큰 수수께끼였다. (……)

  내 안에 뭔지 모를 상반되는 종류의 이상한 기운이 번져 갔다. 삶에 대한 회의와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나란히 함께 했다. 죽음이 친구에게 했던 것처럼 모든 사람들을 순식간에 집어삼키고 말 것 같았다. 친구의 반쪽이라고 믿었던 내가 그가 죽은 후에도 살아 있다는 사실은 더욱 이상했다. 나는 친구와 두 몸에 담긴 하나의 혼처럼 느꼈기에, 남은 반쪽으로 살아야 하는 일이 소름끼쳤다. 그러나 반쪽인 나마저 죽는다면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가 완전히 죽게 될까봐 죽는 것조차 두려웠다.

아우구스티누스 ‘회상록’ 한 대목이다. 아우구스티누스 황제 시절에도 이미 이별이 있었고 이별의 고통이 있었지만 이별과 그에 따른 감정 문제에 대해 처음 논의된 것은 20세기에 이르러서였다. 1917년 프로이트는 1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한 장병의 유족이나 미망인이 특별한 감정 상태에 처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을 면담한 경험을 토대로 ‘애도와 우울증’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슬픔은 보통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에 대신 들어선 어떤 추상적인 것, 즉 조국, 자유, 이상 등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똑같은 종류의 상실이 슬픔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프로이트는 슬픔을 정상적 애도 반응, 우울증을 비정상적인 애도 반응으로 구분했다. 그가 제시하는 비정상적인 애도 반응에는 고통스러울 정도의 낙심,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 중단,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상실, 모든 행동의 억제, 그리고 자기를 비난하면서 급기야는 누가 자신을 벌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는 상태 등이다. (이 글에서 ‘슬픔’은 내면에 깃든 생각과 감정을 의미하고, ‘애도’는 슬픔의 감정을 외부로 표현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애도 작업’은 슬픔을 표현하는 행위뿐 아니라 슬픔과 관련된 감정의 단계를 거치면서 변화되는 과정을 통털어 이른다.) 프로이트는 잘 이별하지 못하면 병이 된다는 사실을 최초로 제안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있는 성취를 이루었을 것이다.

내가 사랑뿐 아니라 이별에도 서툴렀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 역시 정신분석을 받은 이후의 일이었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사랑에 서툴듯 이별에 대해서도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아예 이별이라는 경험을 마음 안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이별에 대한 이야기는 입밖에 내지 않으며, 슬픔이나 고통을 토로하는 사람은 감정을 다스릴 줄 모르는 미숙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심지어 우리는 이별을 삶의 경험 중 하나가 아니라 특별한 패배의 경험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별했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잃었다고 말하면서.

우리의 이별 무능력에 대해 이해하고나자 위에 인용된 서정주 시인의 시가 다르게 읽혔다. 그것은 사랑하고 이별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우리 모두에 대한 풍자 같았다. 제멋대로 오해하고 도망친 신랑도, 재가 되어 무너져내릴 때까지 한 자리에 앉아 있던 신부도 코믹 만화의 한 장면이 틀림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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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졌다고, 떠나갔다고, 아프다고... 말하자


김형경의 <좋은 이별>은 슬퍼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입니다. 떠나지 못하고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마음 처방전 김형경의 심리에세이 <좋은 이별>

김형경 심리 에세이 3부작의 최종편이자 완결편. 이별에 대해 말하지 않는 문화가 우리의 이별 과정을 더 고통스럽게 하고, 그 후유증이 자신은 물론 사회를 병들게 한다고 생각하는 저자가 이별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행동의 모든 층위를 세밀하게 그려 보여준다. 어떤 대상에 대해 잘 알게 되면 두려움이 크게 줄어들듯이 이별에 대해 충분히 알고 나면 충격을 최소화하며 건강하게 위기를 넘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이별 이후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속속들이 꺼내 보이며 긍정해준 이 책은 개인적인 상실을 극복하는 데도 유용하겠지만, 무엇보다 최근 유명인들의 잇따른 죽음을 겪은 우리 사회에 이별이나 애도에 대한 보녁적인 논의를 제안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09/11/23 16:21 2009/11/2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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