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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임혜지의 글쓰기 :: 2010/03/10 14:20

그래도 꾸준하게 글을 쓰는 이유는 글 쓰는 것이 제게 마음의 평화와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에요.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생각을 논리적으로 하게 만들어 주거든요. 사람이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커다란 힘이 됩니다. 저의 글쓰기를 돈으로 환산하면 참으로 수지 안 맞는 사업이 되겠지만 이렇게 삶의 질의 차원에서 생각하면 공짜로 이런 기쁨을 얻는 거니까 대단히 수지 맞는 장사가 될 것입니다.
저는 언어에 관해서 재미난 경험을 하나 했어요. 모국어를 한번 잃어버렸던 경험이요. 한동안 독일어로 글 쓰고 독일어로만 생각하다 보니 한국말을 거의 다 잊어버렸지요. 지금부터 6년쯤 전에 저는 인터넷을 통해서 한국어를 다시 공부했어요. 더듬더듬 하루에 한 문장씩 써서 인터넷 모임에서 대화도 하고 토론도 하는 사이에 한국어 실력이 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동안 독일어로 글쓰는 훈련을 한 것이 한국어에도 고스란히 적용이 되더군요.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정리한다는 행위기 때문에 깊이 사고하여 그것을 표현하는 훈련이 되어 있다면 다른 언어로도 대입이 가능합니다. 아무래도 제겐 한국어가 제1언어니까 아주 쉽게 되돌아오고 또 금방 발전하더군요.
이 경험을 통해서 전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하나는 모국어를 잘 한다는 것은 자긍심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에 따라 생각하는 패턴이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하는 패턴에 따라 거기에 맞는 언어가 형성되어서 그런 거겠지요. 남은 어떤지 몰라도 제게 있어서 한국어는 분위기를 정확하게 묘사하기에 좋은 언어이고, 독일어는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기분을 잘 따지고 독일 사람들은 팩트를 잘 따지는가 하고 저 혼자 웃지요.
저는 글을 써놓고 아주 오래 검토하고 만지는 습관이 있어요. 내 마음 속에 떠오른 생각과 내가 써놓은 글이 일치하는지 끝없이 비교하고, 완벽하게 일치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치지요. 오래 다듬을수록 글이 쉽고 간단해져요. 저도 아름다운 표현과 문장의 편안한 리듬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정확한 전달을 가장 높이 칩니다. 그래서 뜻을 명확하기 위해서라면 같은 단어를 두번 세번 반복하거나 표현이 촌스러워지는 것도 기꺼이 감수하지요.
글이 어떤 때는 후루륵 잘 써지고 어떤 때는 머리를 쥐어짜듯이 힘들잖아요? 제 경우엔 힘들여 쓴 문장이 제일 좋은 문장이더군요. 잠깐 생각하고 쉽게 써내려간 글은 일단 시원해 보여도 논리의 비약이 심하고 조리가 없어서 나중에 정리하자면 애를 먹어요. 나도 잘 모르는 것을 어렴풋이 써놓았는지 겉보기에만 그럴 듯할 뿐 전달하려는 내용이 불분명하거나 아예 없는 문장도 있지요. 촌스러워도 벽돌 쌓듯이 차곡차곡 쌓은 문장이 논리적으로 더 탄탄하데요. 저만 그런 건지, 글 쓰는 다른 분들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저는 글을 쓸 때에도, 다 쓰고 나서도 행여 진실이 왜곡되거나 내 존재가 미화된 부분은 없는지 검토하고 고민합니다. 제가 아까 그랬잖아요? 글은 나를 위해서 쓰는 거라고. 그런데 나를 속이면 글을 쓰는 이유가 없어지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언젠가 깨달았어요. 사람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일기라 할지라도 글을 쓰는 순간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을. 글을 쓰는 그 순간 지나간 사건이 새로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건 자신의 고유한 시선으로밖에 사물을 볼 수 없어서 그런 거라는 걸 법륜스님의 말씀을 듣고 깨우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럴수록 더욱 정직하게 쓰려고 애쓸 뿐, 글에다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검토하기 위해서 쓰는 글일지라도 글을 쓰는 궁극적인 목적은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소통은 나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지요. 나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려는 이유는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함께 발전하자는 뜻 아니겠어요? 하지만 저는 남이 제게 참견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에 저도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독자들에게 저의 삶이나 저희 가족의 모습을 세세하고 솔직하게 보여드리는 것으로써 독자들께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넌지시 보여드려고 합니다. 단지 저의 길이기 때문에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 죄의식을 주고 싶지도 않아요. 그냥 이런 길도 있다고만...
참 재미있는 건 제가 독자들의 반응을 통해 세상을 좀 더 온전히 알게 되는 것이랍니다. "어휴, 저 사람들은 자동차도 없이 어떻게 사냐? 저렇게 아끼면서 어떻게 사냐?" 하는 말을 들으면 저야말로 신기합니다. "어머, 이상하다. 그냥 없이 사는 게 더 쉽지 돈 많이 벌어와서 자동차 사는 게 더 쉬운가?"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다른 사람들의 세상을 그제서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일기를 쓸 때조차 나만의 소설을 쓸 수밖에 없도록 좁은 시각을 가진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시시때때로 깨닫는 것은 유익하고도 유쾌한 일입니다.

[작가] 임혜지의 책에 대한 단상들 :: 2010/03/09 14:12
외국에 살면서 저는 거의 모든 독서를 독일어로 했어요. 그 중에서도 '책 읽어주는 남자' (Der Vorleser, Bernhard Schlink)와 '느림의 발견' (Die Entdeckung der Langsamkeit, Sten Nadolny)이 가장 인상에 남는 책이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은 책이고, 아직도 가끔씩 다시 읽는 책입니다. 앗, 그러고 보니까 둘 다 독일 작가의 책이군요. 요즘은 세월이 좋아졌지만 인터넷을 알기 전에 저는 한글로 된 활자에 굉장히 굶주렸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몇 권 되지 않는 한국책은 내용이 뭐든 간에 거의 달달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읽었지요. 저는 책을 원래 속독을 넘어 폭독에 가까울 정도로 빨리 읽어치우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마음에 드는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늘 새로운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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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쓴 첫 책은 독일어로 쓴 전공서적이에요. 두 번째와 세 번째 책을 근년에 한국어로 썼지요. 제가 그동안 써두었던 에세이들 중에서 건축에 관한 내용만 추려서 출판한 것이 재작년에 나온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한겨레출판)'입니다. 그러고나서 시사와 일상에 대한 에세이들이 좀 남았길래 제가 출판사에 여쭤봤습니다. 사실 저는 대운하라던가 인권, 성매매 등 시사에 관한 글을 출판하기를 내심 바랬지요. 그런 것이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푸른숲에서 '일상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모토로 소소한 일상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꼭지들을 절묘하게 조합해서 '고등어를 금하노라'로 멋지게 묶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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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저는 소설도 썼답니다. 저의 첫 한국책인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을 준비하면서 저의 한국어 실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일단 중단하고 '물안개의 집'이라는 소설을 먼저 썼습니다. 내 마음 속에 떠 있는 상을 잡아내어 표현하는 연습으로는 사랑 소설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데 뭣도 모르고 뛰어들었다가 아주 혼이 났지 뭡니까? 소설을 쓴다는 작업이 아주 사람 영혼을 말리고 진을 빼더군요. 제가 초보자라서 그랬겠지만 하도 감정이입을 하다보니 소설의 주인공이 임신하니까 저까지 가상임신을 해가지고 이거 실화라고 오해받는가 싶어서 가슴이 덜컥했네요.

소설을 다 쓰고보니 제법 제 마음에 들길래 여기저기 문학상에도 내보고 여러 출판사에 문의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블로그를 만들어서 연재로 솔솔 풀어버렸지요. 많지는 않아도 뜨겁게 공감하는 독자들도 만났고 해서 저는 성공작이라고 자부합니다. 그 소설을 쓰면서 저와 남편 사이의 깊은 상처가 치유된 면도 큰 수확입니다. 초보자로서 글쓴이의 내면세계를 겁없이 드러낸 작품이라 이제는 누가 출판하자고 해도 별로 반갑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책이 팔리고 안 팔리고는 우연이라고 믿고 있어요. 독자들이 특정 테마를 바라는 시기에 우연히 그런 책을 내면 잘 팔리는 것이고, 암만 괜찮은 책이라도 독자들이 시기적으로 외면하는 테마라면 안 팔리겠지요. 그런데 글을 쓰는 사람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쓰는 거거든요. 작가가 독자들의 변화하는 입맛에 다 맞출 수도 없고, 또 그러고 싶어도 그게 안 되니까 글 쓰는 사람들이 가난한 거 아니겠어요? 저는 글 쓰는 그 순간만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그 후에 잘 팔리거나 안 팔리는 건 제 덕도 탓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정말 쓰고 싶은 것은 탐정소설이어요. 잔인하지 않으면서 스릴 있는... 고건물에 얽힌 글감도 많이 확보해놓았구요,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까지 미리 써놓았다지요. (앗, 그런데 독일어로 썼구나.) 그런데 언제 그것을 쓰게 될지는 좀 요원합니다. 요즘 제가 거의 의무감에서 숙제처럼 쓰고 있는 글들은 독일 운하에 관한 칼럼 등 시의성이 있는 글들이거든요. 사대강 공사처럼 끔찍한 사건만 막고 나면 저도 한국 일에 신경을 끄고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에는 저의 문제지요. 제가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은 계속 일어날 테니까요. 또 저랑 독일어로 전공서적을 같이 내기로 한 독일 노교수님이 한 분 계신데 제가 아마 그 약속도 거절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언젠가는 양단간에 결정이 나겠지요. 제가 의무감에서 쓰는 글을 더욱 정성껏 씀으로써 만족감을 느끼던지, 아니면 어느 순간 의무감을 확 던져버리고 탐정소설을 쓰던지...
어쩌면 제가 탐정소설을 쓰더라도 한국어로 쓰게 될지도 몰라요. 제가 독일어로 소설을 쓴다면 꽤 오랜 시간을 모국어와 작별하고 독일어에 몰입해야 할 텐데 제가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을지도 몰라요.

[인터뷰] 임혜지 작가님을 인터뷰할 블로거를 찾습니다 :: 2010/03/09 09:45

블로거 발표 : 3월 18일
신청 방법 : 블로거 이름, 블로그 주소, 인터뷰 질문 5가지 이상을 적어서 degool@prunsoop.co.kr 토트 메일로 보내주시고 덧글로 한줄 남겨주는 센스를 발휘해주세요~
인터뷰 방법 : 임혜지 선생님께서 블로거와 질문을 보시고 한 분을 지정하시면 그 분에게 임혜지 선생님과 메일로 인터뷰가 진행됩니다. 여기서 블로거님의 자기 소개와 질문이 선정되는 중요한 기준이 되겠지요. 질문의 내용에는 아무 조건이 없으니 마음껏 하시면 됩니다.
참조 사항 : 블로거가 아니어도 인터뷰어로 신청을 하실 수는 있으나, 블로그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면 더 좋겠네요. 블로거의 선택은 전적으로 임혜지 선생님이 선택하십니다.
[인사] 임혜지 작가가 블로거들에게 :: 2010/03/08 16:26
블로거에게 쓰는 편지
이렇게 블로거 독자들과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평소에 한국말로 대화할 기회가 적어서 이렇게 글로나마 대화하는 걸 참 좋아해요.간략하게 제 소개를 하자면 전 지금 36년째 독일에 살고 있는 50대 여성이고요, 문화재 연구와 고건물 실측이 한동안 본업이었어요. 지금은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삶의 질을 높이고 좀 더 즐겁게 살려구요.
저는 독일인인 남편과 성년이 된 아들과 딸을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지로 여기며 살고 있지요. 저는 우리 아이들이 남편과 저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인간들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답니다. 당연하지요. 우리가 얼마나 정성을 들여서 키웠는데요. 그래서 딸이 시험 전날 밤에 춤추러 나가서 집에 안 들어와도 저희 부부는 쿨쿨 먼저 잡니다. 부모 사랑 듬뿍 받고, 넘치지는 않아도 모자라는 것도 없이 편안하게 자란 세대인데 자기들 인생을 오죽 잘 알아서 설계하겠냐고요. 옆에서 부모라고 괜히 믿지 못하고 걱정하는 것은 아이의 정서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독일 부모들이 다 이런 건 아니에요. 독일에서도 저희 가정이 좀 독특한 편입니다.)
남편과 저는 극과 극으로 다른 사람이어요. 정서적으로 공통점이 없다 보니 이론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저희 부부 사이에서 유일한 소통의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척하면 삼천리일 사안을 가지고 저희는 늘 머리를 싸매며 갑론을박 했는데, 이런 점이 저희 관계의 매력이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젊어서는 이런 상황이 참 한심하고 성가셨지만 이제 나이 먹으면서 보니 그렇게 다른 점으로 인해 우리는 서로에게 도전이 되어주고 서로를 키워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 부부는 아직도 잘 싸우지만 이젠 절망하지는 않고 쪼금 미워하다가 금방 잊어버립니다.
임혜지 작가님

[방송] 고등어를 금하노라 - 임혜지 :: 2010/02/04 11:55

[임혜지] 저자 인터뷰 :: 2010/01/18 17:39

-아무래도 한국 부모들과 다른 것이 자녀들과 수평적인 선상에서 이야기를 하고 소통하는 것이라고 보이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경우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고집하는 부분이 없으신지요? 혹은 자녀 교육에 있어 늘 지켜왔던 원칙들이 있다면?
-저희 가정은 독일의 보통 가정보다 좀 더 수평적인 편이어요. 아이들이지만 고유의 인격을 지켜주는 게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나 남편이 남에게서 간섭 받는 거 싫어하기 때문에 남의 자유도 지켜주려고 노력했지요. 간난아기들도 타고난 성품과 자질이 있다는 게 보이잖아요? 저는 제가 데리고 키우는 동안에 이 고유한 성품과 자질을 망가뜨리지 않고 고이 보전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행여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맘에 들도록, 또는 세상의 입맛에 맞도록 아이들을 변형시킬까봐 주의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주 고민과 갈등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최소한 부모로서 가르쳐야 하는 것이 있잖아요? 건강 관리라든가 돈 쓰는 법이라던가 등등. 특히 저는 아이들이 부모를 너무 믿고 의지해서 나약한 인간으로 자라날까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어느 선까지 가르쳐야 하는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남편과 제가 성격적으로 아주 다른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둘이서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지고 토론을 하면서 문제를 파악하다보면 아이들에게 가는 부모의 횡포를 많이 줄일 수 있었어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행복의 기준을 설명해주신다면? 또 물질적인 풍요에 대한 동경은 없으셨는지? 자녀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저의 행복의 기준이요? 자긍심이어요. 남이 뭐래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것.
물질적인 풍요에 대한 별로 동경은 없었고 아직도 없어요. 가끔 하늘이 보이는 펜트하우스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냥 막연한 상상일 뿐이지 그다지 아쉽지는 않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누가 1000유로 주면서 그 돈을 하루만에 개인적인 쇼핑으로 다 쓰라 그러면 정말 고문일 것 같다구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그걸 어따가 다 쓴대요?
아들은 아마 저희랑 비슷할 것 같아요. 딸은 돈 좋아하지요. 뭐 살 것도 많고 가지고 싶은 것도 많거든요. 하지만 용돈을 알뜰하게 잘 쓰는 것 같아요. 물건 사는 것 보면 신중하기도 하고, 저보다 물건도 잘 고르구요.
남편는 가장이라 그런지 경제에 대한 책임감이 큽니다. 남편은 저희 노후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합니다. 자기가 먼저 죽으면 제가 외국인으로 혼자 늙으면서 돈도 없이 얼마나 고생을 할까 걱정이 태산입니다. (참 사랑스럽지요?) 저는 걱정 안 합니다. 걱정한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걱정 되면 나가서 땅이라도 파야지 가만 앉아서 걱정은 왜 하는지? 어떡하면 남편의 이 씰데 없는 걱정을 덜어줄 수 있을까 궁리를 하는 중입니다.
-때론 자녀들이 선생님 부부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경우도 없지 않을 텐데? 예를 든다면?
-때로가 아니라 그런 일이 자주 있어요. 우리 아이들은 저희 보다 훨씬 나은 사람들입니다. 성격도 더 좋고, 재능도 더 많은 친구들이지요. 토론하다 보면 저희보다 너그럽고 성숙한 면을 종종 발견하곤 하지요. 아들은 생각과 행동이 아주 단순하고도 반듯한 면에서 저의 존경을 사고, 딸은 사려 깊고 인생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서 좋습니다.
-남편분과 부부로서 공통점과 완전 극명한 차이점이 있다면?
-저희 부부는 성격이 참 달라요. 결혼관도 아주 다릅니다. 저는 사랑이 식으면 이혼하는 게 관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할 만큼 사랑에 기대는 사람이고, 남편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니까 일단 가정을 이뤘으면 사랑이고 나발이고 그냥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지요. 자연이나 사물을 보는 눈도 아주 달라요. 저는 달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려고 하는데 남편은 옆에서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김 새게 만들고.
저희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이라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둘이 토론해서 논리적으로 납득이 가면 솔직하게 수긍하지요. 이런 자세만 있으면 어떤 다름도 평화롭게 극복할 수 있지요. 각자 엄청 고집하는 분야가 있지만 각자 자기에게 중요한 것만 고집하기 때문에 다른 데서는 양보해도 별로 가슴이 쓰리지 않습니다.
또 저희가 아주 다른 점 때문에 이익도 많아요. 우리 둘의 서로 다른 관점을 통해 사물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어디 혼자 가서 뭐 보면 허전합니다. 반쪽만 본 것 같아서요. 그리고 제가 한글로 글을 써도 남편에게 설명해서 논리의 검증을 받아요. 제 눈에는 완벽해도 사고방식이 다른 남편의 눈에 헛점이 보일 수 있거든요.
-책을 통해 느껴지는 것이 남편 분이 오히려 더 한국 남자와 같은 성향(적어도 자식들에게 있어서) 이 있으신 듯한데? 딸아이가 여자로서 성장해 가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든지, 이성교제에 대한 걱정, 아들에 대한 걱정, 아이들의 공부를 자청해서 돕는 것과 같은 것을 보며 느끼는 남편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주신다면?
-딸에 대해서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더 보수적인 것은 만국공통의 이치가 아닐까요? 저희는 육아를 함께 했기 때문에 남편에게서 전형적인 어머니의 특성이 나타나기도 하고 제게서 전형적인 아버지의 특성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에 남편은 자라면서 부모님의 간섭과 돌봄을 저보다는 좀 더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인 것 같아요. 근데 저는 남편이 아이들에게 저랑 다르게 하는 게 참 좋아요. 그래야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균형도 잡히고, 아이들도 부모 생각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걸 배울 수 있을 것이고요.
-독일의 부모 자식 간의 유대감과 한국식 부모 자식 간 유대감을 비교해보면 어떤지요?
- 저희는 부모 자식 간에 그냥 친구 같이 느껴요. 그래서 저희 집에선 부모가 야단친다, 아이들이 야단 맞는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죠. 의견이 다르면 그냥 싸울 뿐이죠.
독일에는 부모 자식 간에 서로 이름을 부르는 가정도 있습니다. 저희는 뭐 딱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 제 아빠 이름을 부르더라구요. 아마 저와 남편이 서로 이름을 부르니까 그런 것 같은데, 남편이 굉장히 좋아했어요. 시댁 어른들이 아이에게 '아빠'라고 고쳐주니까 그러지 말고 내버려 두라고 버럭! 그런데 어느날 부터 아이가 '아빠'라고 부르더라구요.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누구나 다 '아무개'라고 부르지만 자기만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다고 하더군요. 암튼 어려서 우리 아들은 아빠를 참 좋아했지요.
-성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봤습니다. 독일 나름의 환경적 상황 탓인 경우도 있지만 한국 역시 그러한 성교육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부모들에게 조언해주실 성교율 노하우가 있다면?
-성교육의 첫째 목적은 동서를 막론하고 만연해 있는 성추행, 성폭행으로부터 유년기 자녀들을 보호하는 데에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아기 때부터 의견을 존중해주고 '네게 있어선 너 자신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다. 너의 기분과 감정은 존중되어야 한다. 너를 믿어라'라는 교육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고 봅니다.
둘째 목적은 미혼 자녀들의 세이프 섹스(안전 섹스)라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성병과 임신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콘돔을 사용하는 것은 쿨한 행동이란 걸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교육을 순결교육과 혼동하여 무조건 막거나 죄의식을 주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성에 대한 긍정적인 의식은 나중에 안정적인 부부생활의 기반이 됩니다.
출처 : 임혜지 작가 블로그 빨간 치마네집 http://www.hanamana.de/hana/

“우리가 언제 가장 행복하지?”
독일 뮌헨에 사는 고건축 전문가이자 독일 남자와 결혼해 두 아이를 키워온 50대 엄마 임혜지가 들려주는 '개념 있는' 가족 이야기. 돈보다는 시간을, 순간의 안락함보다는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타인에 대해서는 자유와 존중을 우선시하는 삶을 살기로 한 이들 부부는 세끼 식사를 온 가족이 함께하기 위해 직업적인 성공을 일부 포기하고, 돈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소비를 최소화했으며, 환경보호를 위해 난방과 온수, 자동차와 고등어를 포기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공부든 놀이든 연애든 아이들이 원할 때 자기 속도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부모가 되려고 노력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뭔가 불편하고 부족해 보이지만, 스스로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누구보다 높은 이들 가족의 이야기는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며, 소신껏, 덜 가져도 초라하지 않고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과 그것을 구현해가는 단위로서 '나의 가족'을 새롭게 보는 기회를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