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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 김만덕] 실직자 만덕의 재취업을 도운 것은? :: 2010/04/23 17:46

만덕이 드디어 상인으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이직은 힘든 일이었나 봅니다.
아직도 자신을 웃음을 파는 기생으로 보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만덕은 동문객주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밖으로 떠돌다 곧 실직의 고통을 겪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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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사원 김만덕의 쓸쓸한 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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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는 사원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주)동문 대표이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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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_거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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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_인력_시장의_한때.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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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족의 망언.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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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4회에 유난히 많이 웃으시던 우리 만덕씨>

동문객주에서 쫓겨난 몸이 되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뭔가를 '팔려' 노력합니다.
웃음을 파는 기생 '홍이'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그녀가 상인 '김만덕'으로서 처음으로 팔게 되었던 것은 '전복'이었지요. 마침 제주는 청과의 교역권을 따내기 위한 말린 전복 납품을 두고 동문과 서문이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실제로도 말과 감귤과 함께 전복은 제주도의 주요 공물 중 하나였지요.
만덕은 그 수요를 파악하고, 니트족 기술자(?) 백소례를 헤드헌팅해 사업에 착수하게 됩니다.
지금 같은 냉장 기술이 없었던 옛날엔 그저 말리는 것만이 전복을 썩히지 않고 보관하는 방법이었던 거예요.
아무리 임금님이라 할지라도 말린 전복포를 씹어드실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니,
마음만 먹으면 바닷가에서 싱싱한 회를 즐길 수 있는 지금은 참 행복한 시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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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특산품 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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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린 전복 공정 과정 - 냉동 기술이 없던 옛날에는 전복을 말려 포를 떠 먹었다고 합니다>

백소례를 납치하여 전복을 납품하지 못하도록 한 서문객주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만덕은 말린 전복을 한양 관리들에게 선보여 전복 공물 납품권을 동문객주에게 돌아가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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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이 잡으러 와 놓고 자기들끼리 싸움판을 벌이는 한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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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보고 있으면 눈물 날 것 같은 유지의 순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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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은 천냥보다 귀하다고 평가되는 제주의 말린 전복>

14회 말미에 동문객주 대행수님이 '제주 잠녀들의 오랜 경험'을 들어가며 제주 전복의 우수성을 강조했는데요.
제주 잠녀(潛女)들은 다른 지역의 여성들과는 다른 일상을 살아갑니다.
물질은 물때가 맞을 때만 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잠녀들이 평소에는 농사를 짓다가
간조가 되면 바다로 나가 해산물을 채취하고, 다시 만조가 되면 농사일 또는 가사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지요.

쉴 틈이 없는 이들의 일상 때문인지, 한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조선 세종 때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던 날, 제주목사 기건(寄虔)이 제주 순방에 나섰는데,
엄동설한에 발가벗은 여인들이 무리지어 바다로 뛰어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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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건은 처음에는 미친 여인들이 집단으로 괴이한 짓을 하는 거라 여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행원들이 저것은 잠녀들이 목숨을 걸고 해산물을 캐는 것이라고 알려주고,
이에 충격을 받은 기건은 일평생 잠녀들이 채집하는 해산물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조 임금 역시 해녀들의 고충에 대해 듣고는 수라상에 올라온 제주의 해산물을 차마 들지 못했다고 하지요.

이렇게 잠녀들이 추위도 두려움도 모르고 바다로 뛰어들어 채취한 해산물은 역사적으로 제주 경제의 중추를 담당해왔습니다. 감귤이 제주도민의 주요 소득원이 되기 전인 1960년대, 잠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해 얻는 수입은 전체 가정 소득의 3분의 1을 차지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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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한 동문과 패배한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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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본격적으로 대립 구도에 들어가게 될 세 사람>

만덕은 전복을 서문객주에 가져가지 않고 동문객주에 가져감으로써
친구라는 걸 앞세워 접근하던 문선을 거부하는 의도를 내비칩니다.

이제 동문객주의 창고지기가 된 만덕은 문선과의 대립이 불가피해졌지요.
앞으로 문선과의 대결 속에 본격적으로 거상의 길을 걸어나갈 만덕의 행보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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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3 17:46 2010/04/2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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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 김만덕] 제주사람 김만덕도 몰랐던 '그것' :: 2010/04/13 15:58

네, 드디어 홍이가 '제주사람 김만덕'이 되었습니다.

전에 포스팅한 글에서 지적한 '만덕이 제주에 있지 않고 한양에서 살고 있던' 설정 문제가 제자리를 잡은 거지요. 아울러 수많은 난관과 음모와 미행과 추적과 살인교사 및 배신이 난무한 끝에 만덕이 양인 신분을 회복하였으니, '거상 김만덕'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설정이 드디어 완비된 거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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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제주 사는 김만덕이야.' 하며 그녀는 해맑게 웃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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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 이 세 글자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해야만 했는지 ㅠㅠ>

아울러 11회, 12회에서는 강유지 - 정홍수 - 김만덕의 삼각 관계가 정리되었습니다.
쿨하고 시크한 도시여자 만덕은 홍수의 변치않는 마음을 확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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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의 승리 4종세트>

끈질기게 치근덕대는 유지를 단호히 정리하고 돌아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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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놔, 놔! - 패배의 유지 4종 세트>

아울러 할매와 함께 동문객주에 자리잡게 되고,
홍수마저 한양으로 떠나보낸 만덕은 본격적으로 독신 사업가 거상으로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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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 사업 여성입니다, 친오빠처럼 도움 주실 분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만덕이 '상인'으로서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문의 만덕과 서문의 문선이 본격 대결하게 되겠지요.
아울러 질투의 화신이 된 홍수가 중간에서 조커로 활약하게 되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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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만덕이 제주 사람이 된 것을 기념하는 짤막한 정보 몇 가지.
드라마에서는 말투 외엔 잘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제주는 지역적 특성 상 굉장히 특이한 풍속을 많이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남사록>과 <탐라지>에 그러한 기록들이 많이 남아 있어요.
여기서 몇 가지 알아보자면-

1. 타 지방 사람들은 그 말을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대체로 억양이 앞은 높고 뒤는 낮았다.

조선시대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의 기록에 따르면, 제주 사람들의 말소리는 가늘고 드세어
바늘로 지르는 것 같이 날카롭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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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드센 소리에 적응하셔야만 할 1人>

2. 밭머리에 무덤을 만들었다. 장례를 마친 지 100일이면 상복을 벗고 밭머리를 조금 파서 무덤을 만들었는데, 간혹 3년상을 지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3.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주에는 질병이 적어 젊은 나이에 죽는 사람이 없었으며, 80~90세까지 사는 사람도 많았다.

이원진(조선 중기의 문신. 효종 때 제주 목사로 하멜 등 표착한 30여 명의 네덜란드인들을 서울로 압송했다. 《탐라지》를 편수했다.)은 그 이유를 '제주가 비록 더운 지방이라고는 하나 한라산 북쪽에 위치하여 남쪽 대양의 악한 기운이 산으로 막히고, 대풍이 많다고는 하나 북쪽에서 오는 차고 시원한 기운이 습한 열기를 몰아 흩어지게 하므로 장수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산 남쪽은 북쪽만 못하다.'라고 했다. 게다가 옛날에는 노인성(老人星 : 용골자리 α의 고유명이며, 등급 -0.7등으로 시리우스 다음으로 밝은 별이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남극노인 또는 노인성, 수성으로 불리며,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고 믿어졌다.)을 보면 장수한다는 속설이 있었는데, 한라산에 올라가면 그 별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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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4. 딸 낳는 것을 좋아했다. 남자들은 상선에 연달아 뽑혀 나갔는데, 바닷길이 험하고 멀어 떠내려가거나 물에 빠져 죽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자의 수가 남자의 수보다 3배나 많아 승려들은 절 옆에 집을 지어 처자를 거느리고 살고, 구걸하는 사람들까지도 처첩을 둘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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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주도에서 살고... 싶어요!!!>

5. 제주에는 독특한 이사 풍습이 있다. 제주 사람들은 1년 중 '대한 뒤 5일째부터 입춘 3일 전'까지인 신구간에만 이사를 한다.

신구간이란 새로운 것과 묵은 것의 사이라는 뜻으로, 제주 사람들은 하늘의 신과 땅의 신이 임무교대를 하는 일주일 남짓한 이 시기에 집을 옮겨야만 탈이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외지인들이 제주에 정착하려 할 때면 집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는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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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을 떠나 보낸 건, 신혼집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서였답니다... (거짓말)>

이제 본격적으로 '거상'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전환점을 맞은 <거상 김만덕>
참 상인으로 성장해가는 만덕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참고 도서 : <거상 김만덕,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2010/04/13 15:58 2010/04/1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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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회] 김만덕 연구의 최고 권위자 정창권 교수 - 4/27 :: 2010/04/12 09:27

 

2010/04/12 09:27 2010/04/1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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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만덕 생애의 몇 가지 미스터리 - 정창권 교수 인터뷰 :: 2010/04/12 09:20

요즘 KBS 1TV에서 <거상 김만덕>이란 드라마가 한창 방영되고 있다. 지금까지 수년 동안 김만덕을 계속 연구해왔고, 또 드라마나 공연, 학습만화 등으로 제작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했던 이로서, 김만덕의 생애에서 몇 가지 미스터리한 사항들을 발굴하여 새롭게 얘기해보고자 한다, 

원래 김만덕은 어떻게 생겼나?
드라마 <거상 김만덕>에서 만덕 역은 약간 가냘프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이미연 분이 맡고 있다. 한데 역사자료에선 젊었을 땐 살결이 곱고 아름다웠으며, 나이가 들어선 몸이 비대하고 키가 크며 말씨가 유순하고 외모에 후덕한 분위기가 나타났다고 한다. 즉, 관음의 형상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묘비문이나 정약용, 채제공 등의 기록에 의하면, 만덕은 특이하게도 중동(重瞳), 한쪽 눈에 눈동자가 둘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를 전혀 거리끼지 않았고, 오히려 중국의 요임금과 같이 성인들이 지닌 기이한 상으로 보았다.

어떻게 기녀에서 다시 양민으로 돌아왔나?
만덕은 20살 무렵 기녀에서 양민으로 돌아왔다. 원래 기녀들은 나이 50세가 되어서야 기녀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대비속신(代婢贖身), 곧 다른 사람을 사서 역을 대신시키고 풀려나오곤 하였다. 대개 말 한필의 값을 주고 대비속신했는데, 당시 말 한필은 거의 집 한 채 값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만덕의 경우는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기녀에게 의탁해 살았는데, 나이가 들자 그 기녀가 기안(妓案: 기녀 명부)에 올려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20살 무렵 그러한 사정을 목사에게 말한 뒤 양인 신분을 회복했다고 한다.
 한데, 만덕은 시종일관 타의적으로만 처신했을까? 필자가 보기에 만덕은 애초 기녀를 돈벌이 수단, 곧 하나의 직업으로 여기고 자청해서 기녀가 되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즉, 젊은 시절 적극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싶어서 스스로 기녀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덕은 어떻게 거상(巨商)이 되었나?
기록에 의하면 만덕은 재산이 많았고, 당시 제주 최고의 부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훗날 한양에 갔을 때 뭇 남성들이 그 소문을 듣고 접근해오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만덕은 과연 어떻게 해서 거상이 될 수 있었을까? 필자의 작품에서 자세히 얘기하고 있듯이, 만덕은 육지와의 무역, 특히 시세차익을 노려 거상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시대상황을 고려하면, 그녀는 포구에 객주(客主)를 차려놓고 제주의 특산물인 말총이나 우황, 미역, 전복, 귤 등을 배에 싣고 육지로 가서, 제주에 필요한 물건들인 곡식이나 소금, 철, 비단 등을 사서 들여왔던 듯하다. 또 나중엔 여러 척의 배도 거느리고 선주(船主)도 되었던 듯하다.

한데 근래 필자는 다산 정약용의 생가를 답사하던 중 이상한 지명을 발견했다. 다산이 유배되었던 강진 도암면에 '만덕리(萬德里)'라는 지명이 있었던 것이다. 강진은 당시 제주 민선(民船)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는데, 그곳에 혹 만덕의 객주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대체 얼마나, 왜 구휼(救恤)했을까?
 만덕의 나이 56세인 정조 19년(1795) 제주에 기근이 들어 백성들의 시신이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당시 제주 인구는 47,735명이었는데, 1년만에 무려 17,963명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이에 보다 못한 만덕이 자신의 재산을 내놓아 뭍에서 쌀을 사들여 제주 사람들을 구제했는데, 일설에 의하면 곡식 500석을 사들여 50석은 친척들에게 나눠주고, 나머지 450석은 관아에 바쳤다고 한다(당시 제주에서의 곡식 100석은 육지에서의 1000석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그럼 만덕은 대체 왜 구휼을 결심했을까? 먼저 그동안 돈을 너무 악착같이 벌어서 반성하는 의미로 그랬을 수도 있다. 당시 제주에 잠깐 놀러왔던 심노숭은 '만덕은 품성이 음흉하고 인색하여 돈을 보고 따랐다가 돈이 다하면 떠났는데, 남자가 입은 바지저고리마저 빼앗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유독 심노숭만이 감정적인 악평을 해놓았는데(그 깐깐한 추사 김정희마저도 만덕에게 은광연세(恩光衍世: 은혜의 빛이 널리 퍼지다)라는 글을 써줄 정도였다), 아마 심노숭이 제주에 갔을 때 뭔가 서로 다툼이 있었던 듯하다. 그렇지 않으면 실제로 만덕은 돈만 아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르는데, 이에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일순간에 큰돈을 내놓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만덕이 구휼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큰마음'에서 비롯된 듯하다. '나라도 있고 양반도 많은데, 제주 사람들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세상이 그들을 구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나라도 구해야겠다'는 심정으로 구휼했다는 것이다. 원래 만덕은 여자임에도 당당히 객주를 차리고, 뭇 남성들을 거느리고 무역을 할 정도로 포부가 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혹 채제공과 스캔들은 없었나?
구휼 후 정조 임금의 특별한 배려로 한양에 올라온 만덕은, 처음엔 거처할 곳이 없어 무척 힘들게 생활하였다. 이에 채제공이 임금께 아뢰어 비변사에 머물고 선혜청에서 달마다 식량을 대주도록 하였다. 또 채제공은 만덕이 제주로 돌아갈 무렵, 특별히 <만덕전>을 지어주기도 하였다.
 대체 채제공은 왜 그토록 만덕을 후대(厚待)했을까? 혹 무슨 스캔들은 없었을까?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두 사람은 남녀 관계를 초월한 인간적인 만남이었던 듯하다. 지우(知友), 곧 말이 통하는 관계였다는 것이다. 대개 우리는 남자와 여자가 좋게 지내면 무조건 이상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물론 질투심에서 그럴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남자와 여자를 초월한 만남도 의외로 많은 법이다.

왜 평생 독신으로 살았을까?
조선시대에 결혼은 필수적이었다. 만약 과년한 자식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 살면, 그 부모가 처벌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만덕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과연 왜 그랬을까?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남자들이 과거 그녀가 기녀였다고 결혼하기를 꺼렸거나, 아니면 기녀 출신으로서 남의 정실이 되기엔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만덕도 그럴 바엔 차라리 혼자 사는 길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물론 만덕도 뭇 여성들처럼 남자와 몸도 섞어보고 아이도 낳아보고 싶었을 테지만, 나이가 들어선 그저 일을 통해 삶의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한다. 

금강산 구경 후 제주로 돌아온 이후의 삶은 어떠했나?
만덕은 58세에 금강산 구경을 마치고 한양에 들렀다가 다시 제주로 돌아온다. 그리고 74세인 순조 12년(1812)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때까지의 행적에 대해선 기록이 부재하여 전혀 알 길이 없다. 아마도 객주를 통한 무역업을 계속했을 듯한데, 그렇다고 일에만 집착한 것이 아닌 노년의 여유로운 삶을 즐기거나 자신만의 상도(商道)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해주기도 했을 듯하다.
 그녀는 유언으로 '내가 죽거든 제주 성안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묻어달라!'고 했다는데, 죽어서도 제주 사람들을 돌보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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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_정창권 교수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하면서 저작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그동안 문학과 역사, 예술, 철학, 과학 등을 아우르는 동시에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통합형 연구’를 지향해왔고, 전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글쓰기를 시도해왔다.


* 이 글은 KBS 사보 4월 호에 실린 정창권 교수님(<거상 김만덕,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의 저자)인터뷰 글입니다.  

2010/04/12 09:20 2010/04/1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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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의 실제 사랑은 누구일까요? - <KBS 드라마 거상 김만덕> 제대로 보기 :: 2010/04/08 15:48

요즘 만덕을 두고 두 남자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습니다.
형판 댁 도련님 정홍수와 강대방의 아들 강유지가 그 두 사람인데요.
친한 친구이기도 한 두 사람은 만덕을 가운데 두고 양보할 생각 없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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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력과 권력의 대결? - 한 쪽은 대기업 회장 아들, 한 쪽은 고위 공무원 자제...>

드라마 안에서 만덕은 어린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던 홍수에게 마음이 기운 상태입니다.
사랑을 거절당한 유지는 점점 삐뚤어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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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남자... 못된 남자... - 만덕이 자신을 거부하자 그녀의 양민 신분을 증명하는 명부를 태워버리는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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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들 둘의 사랑은 깊어만 갑니다>

사실 만덕은 평생 홀몸으로 지냈습니다. 채제공의 <만덕전>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만덕은 비록 살림을 차려 탐라의 사내들을 머슴으로 거느리기는 했으나 남편으로는 맞이하지 않았다." 기녀 출신이었던 탓도 있지만, 여자의 몸으로 평생 장사에 몰두한 나머지 혼인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평범한 삶을 누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요. 역시 <만덕전>의 일부입니다.
"... 만덕이 떠날 때 채제공을 보고 목멘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승에서는 대감의 얼굴을 다시 뵙지 못하겠나이다.'
 그리고는 처연히 눈물을 흘렸다. 이에 채제공이 위안해 주었다.
 '... 온 천하의 수많은 사내들 중에 이런 복을 누린 자가 있을까.
그럼에도 이제 하직을 당하여 도리어 아녀자의 가련한 태도를 짓는 건 대체 무슨 까닭인고.'

그리고 나서 체재공은 이 일을 서술한 <만덕전>을 지어 웃으면서 그녀에게 주었다.'

이때 만덕의 나이 58세, 체재공의 나이 77세였습니다.
제주의 억센 남자들을 머슴으로 부릴만큼 굳센 성품을 지닌 만덕이었지만,
체재공 앞에서는 '아녀자처럼 가련하게' 울며 헤어짐을 아쉬워 했던 겁니다.

당시 한양에서는 양민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임금을 뵌 만덕이 큰 화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공경대부와 선비를 비롯하여 한양의 모든 이들이 그녀의 얼굴을 보고자 몰려들었고,
박제가, 이가환, 정약용 같은 당대 최고의 문인들이 그녀를 위해 글을 지어 주었습니다.

평생 제주에서만 지내다 처음 한양 땅을 밟은 만덕으로서는 이런 환대와 관심이 혼란스러웠을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당시 좌의정이었던 체재공은 서울로 올라온 만덕이 임금을 뵙고 금강산 유람을 하는 데에 있어 많은 배려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만덕의 일생을 기록한 <만덕전>을 자신의 저서인 <번암집>에 싣기까지 했으니,
체재공 역시 만덕에 대해서는 각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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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김만덕과 체재공의 초상>

만덕이 제주로 돌아오고, 그 후 2년 후에 체재공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이들의 점잖은 사랑(?)은 끝을 맺었지만, 평생 홀로 지내온 만덕에게 있어서 체재공과의 기억은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 안에서는 과연 만덕과 체재공과의 이 오묘한(?) 관계가 어떻게 그려질지, 아직은 이른 기대를 가져봅니다.

2010/04/08 15:48 2010/04/0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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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 김만덕] 만덕이 떨어진 구질막은 과연 조선의 '호스피스 병동'이었을까? - 9, 10회에서 :: 2010/04/06 09:11

전 회에서 흉계에 빠져 구질막(救疾幕)에 들어가게 된 만덕.
그곳의 사람들은 모두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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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건 조.. 좀비?>

그리고 그들은 만덕을 대상군을 죽인 원흉이라 생각하고 괄시하지요.
만덕은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죽음의 그림자에 압도당합니다.

구질막은 살아갈 희망이 없는 자들이 갇혀 있는 곳이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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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종대왕님이 들으시면 눈 뒤집힐 소리를...!!>

그러나, 드라마 속에서 구질막을 '죽을 날 기다리는 곳'으로 그려놓은 것과는 달리,
실제 역사에서 구질막은 '전염병 전문 치료소'에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제주에 구질막이 생겨나게 된 것은 세종 10년에 있었던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세종 10년(1428) 8월 30일
형조에서 아뢰기를 "제주인 사노(私奴) 일동(一同, 사람 이름)은 그의 처 니을망(泥乙望)과 함께 전남편의 아들 정신도(鄭伸道)를 목매어 죽였습니다. 또 니을망에게는 나병에 걸린 10세 난 딸이 있었습니다. 관에서 나환자를 해변으로 옮긴다는 말을 듣고 그 딸을 해안으로 끌고 가서 떠밀었습니다. 그 딸이 손을 잡고 슬피 울어도 억지로 밀어서 언덕에서 떨어져 죽게 하였습니다. 청컨대 율(律)에 의하여 니을망은 장(杖) 60, 도(徒) 1년을 속하게 하고, 일동(一同)은 참에 처하십시오." 하니 그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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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

제주의 한 노비가 나병에 걸린 딸을 언덕에서 밀어 떨어져 죽게 했다는 거죠. 게다가 '관에서 나환자를 해변으로 옮긴다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제주에서는 병에 걸린 사람들을 해변에 방치하여 그대로 죽게끔 하고 있었던 거죠.

세종대왕님은 아직까진 별일 아니라고 생각 하셨는지, 패륜을 저지른 노비들만 처벌하게끔 하고 대대적인 구호 작업은 벌이지 아니하십니다. 그런데 17년 후, 제주의 역병 문제가 크게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세종 27년(1445) 11월 6일
제주안무사가 아뢰기를 "본주 및 정의·대정에 나병(癩病)이 유행합니다. 만약 병에 걸린 자가 있으면 그 전염되는 것을 우려하여 해변의 사람이 없는 곳에 두므로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암애(巖崖)에서 떨어져 그 목숨을 끊으니 참으로 불쌍합니다. 신이 승인(僧人)으로 하여금 뼈를 거두어 묻게 하고, 삼읍(三邑 ; 濟州牧·大靜縣·旌義縣)에 각각 치병소( 治病所)를 설치하여 병인(病人)들을 모아서 의복·양식·약물을 공급했습니다. 또 목욕할 그릇을 설치하여 의생(醫生)과 승(僧)으로 하여금 치료를 담당하게 하였습니다. 현재 나병(癩病)환자 69인 중에 45인은 차도가 있고 10인은 아직 낫지 않았으며 14인은 죽었습니다. 다만 삼읍에 승(僧)은 본래 군역(軍役)이 있는데, 청컨대 삼읍의 승 가운데 각 1인을 그 역에서 면제하여 항상 의생(醫生)과 같이 구료(救療)에만 전념하게 하십시오. 의생도 역시 녹용(錄用, 임용)을 허락하여 권장하십시오." 하니 병조(兵曹)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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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작에 대책을 세워 주시라고 했잖아요!!>

이때, 제주의 역병 문제는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병자들은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택하는 등, 그 참혹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거죠. 제주로 파견된 안무사(조선시대 때 지방에 변란이나 재난이 있을 때 왕명으로 파견되어 백성을 안무하던 임시 벼슬)가 이에 승려들과 의사들을 모아 병자들을 치료할 공간을 마련합니다. 이게 구질막의 시초가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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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 그럴리가>

이에 하나의 기관으로 자리잡은 구질막. 문종 대에 이르러서는 '구질막'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실록에 등장합니다.


문종 원년(1451) 4월 2일
기건(奇虔)을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로 삼았다. 기건은 이사(吏事, 문관이 하는 일)를 조금 익히고 제사(諸史)를 즐겨 보았다. 일찍이 제주목사로 있을 때 전복(全鰒)을 먹지 않았다. 또 제주가 해중(海中)에 있으므로 사람들이 나병(癩病)이 많았는데 비록 부모처자라 할지라도 또한 서로 전염될 것을 염려하여 사람이 없는 땅으로 옮겨두고 스스로 죽기를 기다렸다. 기건(奇虔)이 관내를 순행(巡行)하다가 해변에 이르렀을 때 암벽 밑에서 신음하는 소리를 듣고 가서 보니 과연 나환자(癩患者)들이었다. 그러므로 그 까닭을 물어서 알고는 곧 구질막(救疾幕)을 꾸미고 나환자 100여명을 모아 수용하되 남녀를 따로 거처하게 하였다. 고삼원(苦蔘元)을 복용시키고 해수(海水)로써 목욕을 하게 하니 태반이 치료되었다. 그가 체임하여 돌아올 때는 병이 치료된 자들이 서로 울면서 보내었다.

드라마에서는 잘 나와있지 않지만 나병은 문둥병, 혹은 한센병이라 불리는 병이에요. 하늘에서 벌을 받아 걸리는 병이라 해서 천형병(天刑病)이라 하기도 했지요. 드라마 속에서 만덕이 병이 옮아 고생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나병은 나병균에 의해 전염되는 병은 맞지만- 감기 낫듯이 쉬이 낫는 병은 아니랍니다.


아무튼, 기적에 이름을 올려 놓고도 기생이 아니라는 둥 정신을 못 차리던 만덕은
사람에 크게 데이고, 병에 한 번 크게 앓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듯 합니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 기생 신분으로부터 해방되고, 어머니를 살해한 의붓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준비하기 시작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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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의 정을 끊고 본격적으로 복수에 돌입하는 만덕 - 눈물로 인연을 끊는 수양모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친부 김응렬을 만나게 됩니다.
둘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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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실제 역사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이라니까요>

'귀양을 온 죄인' 신분으로 통정을 해 아이를 낳았다는 게 밝혀지면 크게 벌을 받게 될 김응렬.
그러나 자신이 만덕의 어머니가 양민이었다는 걸 증명해주지 못하면 만덕은 기생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조선시대엔 계층이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 세습되거든요.)

과연, 두 부녀 사이엔 어떤 일이 펼쳐질지, 만덕은 어떻게 기생 신분에서 벗어나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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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덕아, 제발 정신차려! - KBS 드라마 거상 김만덕 :: 2010/03/29 19:49

    6회 마지막에 홍수와 만덕을 스치게 하며 애간장을 끓이는 떡밥을 날렸던 만덕의 화초머리 행사는 적절한 할매의 난입(?)으로 무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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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시청자들은 알면서 속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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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속은 사람 한명 추가요~>

    그리고 만덕과 할매는 드디어 눈물의 해후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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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덕의 눈물 - 할매, 보고 싶었어요!>

    딸처럼 고이고이 키운 만덕이 제주에서 고작 관기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에 분노한 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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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전 자기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만덕이에게 화가 나더군요 - 고생을 덜 했어, 얘가>

    만덕이 양민이라는 걸 증명하는 증거를 찾기 위해 분주히 뛰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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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실버 파워가 대세인 요즘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양민을 함부로 천민으로 만들지 못하게 했어요.
    사실 돈 많은 지주가 소작농을 노비로 전락시키거나 하는 식으로
    양반이 양민을 억압해 천민으로 몰락시키기는 쉬웠죠.

    그러나 국가 전체로 봤을 땐 이러한 노비 수의 증가는 손해를 불러왔어요.
    왜냐하면 천민은 세금을 내지 않거든요. 나랏 돈이 그만큼 줄어들게 되는 거죠.
    임금은 여러번 명을 내려 양민을 함부로 천민으로 만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19세기 초엽 순조 임금 때에 편찬된 <율례요람>이란 책자가 있어요.
    이 책은 각종 범죄 별로 여러 사례들을 모아 관아에서 참고하도록 편찬한 책이었는데,
    이 율례요람의 한 사례에도 '양민을 억눌러 천인으로 만든 죄'가 수록되어 있지요.

    따라서, 만덕이 양민이었다는 게 밝혀지면 그녀가 관기가 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불법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할매는 그렇게 열심히 만덕의 뿌리를 찾아 뛰는 거고요.

    예전에는 단순히 평민이 몰락해 노비가 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이런 정책이 시행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세금을 더 걷기 위한 목적에서도 이런 보호책이 필요했던 거군요.
    물론 자기 밑에 노비를 많이 거느린 양반들이 그 힘으로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기에 견제하는 측면도 있었던 거고요.


    그런데, 왜 만덕이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걸까요?

    그 고생 다하며 자신의 화초머리 행사를 막아준 할매에게
    '난 한번도 기생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라니!!
    이미 당신은 기적에 이름이 오른 기생이라고욧!!

    아무튼, 만덕의 태평함에도 불구하고 할매와 홍수는 각기 열심히 뛰기 시작했습니다.
    언제쯤 만덕이 정신을 차려 양인 신분을 회복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켤지는 모르겠지만요.
    만덕이는 왜 자신이 기녀라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괴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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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덕아, 정신차려! 너는 해적왕, 거상이 될 여자야!>

    2010/03/29 19:49 2010/03/29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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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상 김만덕] 제주 기녀는 조폭인가요? - KBS 거상 김만덕 전격 해부 :: 2010/03/23 09:05

    지난 주말 ‘거상 김만덕’ 5회와 6회가 방영되었습니다.
    그동안 열연했던 아역 연기자가 퇴장하고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전환점이 되는 회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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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하게 말을 타고 변신(?)하는 만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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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을 했더니 7년이 지나 갔어요 - 여자의 변신을 제대로 보여준 문선이>


    그리고 만덕이의 어린 시절을 마무리하는 사건은, 만덕이 묘향의 계략에 빠져 그녀의 수양딸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죠. (말이 수양딸이지... 기생 만들겠다는 거였지만요 ㅠㅠ)
    동화를 구하기 위해 묘향의 제안을 받아들인 만덕은 이제 꼼짝 없이 제주 기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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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뭐, 조폭도 아니고...>

    실제 역사에서는 만덕이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어 의지할 곳이 없어 한 기녀에게 의탁해 살다 기녀가 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먼저, 채제공(蔡濟恭)의 「만덕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 만덕의 성은 김이니, 탐라의 양갓집 딸이었다.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의지할 데가 없어 한 기녀에게 의탁해 살았는데,
      조금 자라자 관아에서 만덕의 이름을 기안(妓案, 기녀 명부)에 올려버렸다.
      만덕은 비록 머리를 숙이고 기녀 노릇을 할망정 기녀로 자처하지는 않았다.
      나이 스무 살이 넘어 자신의 사정을 관아에 울면서 호소하니, 목사가 가긍히(불쌍하고 가엽게) 여겨 기안에서 빼주고 양민으로 되돌려주었다. ...’

    그리고 만덕이 죽은 뒤 한 달 뒤인 1812년 11월에 쓰였다는 <구묘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합니다.

    ‘김만덕의 본은 김해 김씨요, 탐라의 양갓집 딸이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홀로 가난으로 고생하며 자랐다.
    살결이 곱고 아름다워 교방에 의탁한 바 있으나, 의복을 줄이고 먹을 것을 먹지 아니하여 재산이 점점 커졌다. ...’

    어쨌든 만덕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기녀가 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처럼 여러 가지 계략을 꾸며 양갓집 규수를 기녀로 끌어들이는 건... 불법행위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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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남자 - 이걸 보면서 문득 생각난 영화, 멀쩡한 여자를 타락시키는 게...>


    『탐라지(耽羅志)』에 따르면, 관기(官妓)는 관비(官婢 : 관아에 속한 여자 노비) 중에서 용모와 재주가 뛰어난 자를 뽑았다고 합니다.

    어떻게든 좋은 인재(?)를 발굴해야만 했던 묘향으로선 만덕이 탐났을 게 분명해요.

    19세기 중반에 작성된 『탐라영사례(耽羅營舍例)』에는 조선시대 제주목에는 관기가 32명, 관비가 17명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하네요.

    그리고 이들 제주 관기는 특히 세력이 무척 강했다고 합니다.
    이익태(李益泰,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의 『지영록(知瀛錄)』의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하네요.


    ‘... 제주에는 관노비의 수가 많다. 그들은 모두 기안에 들어간다. ... 관기는 목사의 수청을 드는 것 이외에도 삼읍의 수령 및 교수, 아객(雅客 : 반가운 손님), 군관, 삼학(三學)의 수청을 들기도 한다. ... 데리고 있는 관기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총애하는 것을 믿고 건방지게 구는데다가 그 세력 또한 굉장하여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 아주 하찮은 일이라도 뇌물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세상에서 이르기를 '제주기의 권세가 무섭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라고 한다. ...’

    뭐, 이렇게 기가 셌던 제주 기생이었으니, 어린 아이 하나 기녀로 끌어들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만덕 역시 제주기에 걸맞은(?) 강단이 있었으니, 묘향의 선택은 탁월한 것이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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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심(一心)을 제대로 보여준 시위 장면>

    그리고 6회 말미에 등장한 흥수!
    자, 7년의 세월. 만덕의 멘토 할매와 첫사랑 흥수가 나란히 제주에 들어오지만, 만덕은 옛날 만덕이 아니었으니...
    변해버린 만덕과 이들이 얽어가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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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이 아니요, 홍이! - 그리고 7년 공부 끝에 그녀를 쫓아 제주까지 온 한 남자>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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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자유에 모미 아냐...(?)>


    참고도서 :
    <거상 김만덕,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지난 이야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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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3/23 09:05 2010/03/2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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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거상 김만덕,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 2010/03/1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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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게 벌어 크게 쓴 조선의 여장부 김만덕 이야기!
    18세기에 21세기의 삶을 살다 간 여인,
    거상 김만덕의 불꽃같은 삶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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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권 지음 | 244쪽 | 값 11,000원
    도서출판 푸른숲 | 편집_  문학교양팀  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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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 만덕, 길을 나서다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시대 변화를 읽는 눈
    제주에서 상인이 된다는 것

    2부 - 거상의 탄생
    거상이 되기 위한 첫걸음
    타고난 장사꾼
    육지와의 직거래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야
    주문생산제의 도입

    3부 - 이제 곳간을 열어라!
    공물 진상선 경합
    만덕, 널리 덕을 베풀다
    이분이 임금이시고, 저곳이 금강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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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김만덕의 일대기와 더불어 18세기 제주 문화사를 표방하고 있다. 얼마 되지 않는 기록을 놓고 한 인물의 일대기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그 인물이 살았던 시대를 전면적으로 고찰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무엇을 입고 먹으며 살았는지, 생계를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고단한 삶을 달래기 위해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등이 촘촘히 들어찬 이야기 속에서 만덕은 그 시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생생한 캐릭터로 되살아났다.

    조선의 서민층 여성 중에서 생전에 김만덕만큼 큰 공적 명예를 누린 이는 없었다. 그녀는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안동 장씨 등이 개인의 뛰어난 능력으로 일부 상류층에 알려졌던 것과는 사뭇 대비되는 인물이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이들은 양반층에 속했고, 남성들이 정의한 위인의 조건에 들어맞는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만덕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보다 능동적인 인물이었고, 일찍이 나눔의 가치를 깨달은 말 그대로 ‘큰’ 상인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만덕을 한국 역사(특히 여성사)를 대표할 새로운 인물로 내세우려 한다. 만덕은 누구보다 비참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결국 모든 금기를 깨고 제주 최고의 거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룬 뒤에는 그동안 이룬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즉 그녀의 삶을 이끌었던 것은 축적이 아니라 성취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부자유한 시대, 빈한하게 자란 한 여성이 자아실현에 매진하는 모습은 경이롭고 아름답다. 어여쁜 아내, 인자한 어머니가 되기보다는 꿈을 가진 한 사람의 ‘나’로 살았던 김만덕. 그녀는 우리 시대의 진취적인 여성들은 물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도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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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덕은 본래 제주의 양갓집 딸이었으나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한 기녀에게 의탁해 살았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나이가 들자 자연 관기로 뽑혀 들어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만덕의 부모가 죽은 이유는 무엇이고, 그 시기는 과연 언제쯤이었을까? 먼저 아버지의 경우는 만덕이 어렸을 때 장사를 다니다 배가 난파되어 죽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뒤에서 보겠지만 상업이 매우 발달해 있었던 당시 제주에서는 남자들이 연달아 상선에 뽑혀 나가곤 했는데, 바닷길이 멀고 험하여 물에 떠내려가거나 빠져 죽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편 어머니는 만덕의 나이 열두 살 무렵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까 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만덕의 나이 열두 살 때인 영조 26년(1750) 9월에 여역(廬疫)으로 제주에서 죽은 사람이 무려 882명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 본문 21 페이지 중에서

    만덕은 상품유통이 활발한 포구에 객주와 유사한 점포를 차려놓고 뭍과 교역을 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왜냐하면 채제공의 <만덕전>에 "그는 재산을 늘리는 데 가장 재능이 있어 시세에 따라 물가의 높고 낮음을 잘 짐작하여 사고팔기를 계속하니, 몇십 년 만에 부자로 이름을 날렸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 본문 34 페이지 중에서

    "내 재산은 결국 제주 사람들 덕분에 모은 것이니, 이제 저들에게 돌려주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저들이 다 죽어가고 있는데 내가 천만금의 재산을 가진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또 그걸 어디에다 쓰겠느냐." - 본문 202 페이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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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지은이 : 정창권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하면서 저작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그동안 문학과 역사, 예술, 철학, 과학 등을 아우르는 동시에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통합형 연구’를 지향해왔고, 전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글쓰기를 시도해왔다. 특히 여성, 장애인, 노숙인, 아동, 노인 등 우리 사회의 약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영혼’을 되살리는 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연구 성과를 널리 알릴 수 있는 문화 콘텐츠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치밀하게 연구하되, 그것을 이야기식으로 풀어써 대중과 함께 호흡하려고 노력하는 그는 이 책에서 이야기체와 설명체가 교차하는 기존의 형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최대한 이야기체로 전개하되 필요한 부분에서만 역사적 설명을 가하는 방식을 택했다.
      최근의 논문으로는 <조선에서의 장애인 인식>, <김만덕 콘텐츠 개발과 활용방안> 등이 있고, 주요 저서로는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향랑, 산유화로 지다》,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등이 있다.

    2010/03/19 09:54 2010/03/1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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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왜 만덕이는 쫓기게 되었는가 - KBS 드라마 거상 김만덕 전격 해부 :: 2010/03/1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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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거덕... 못 볼 걸 봐버렸다;;>

    지난 포스팅에서 만덕이 제주로 가게 되는 연유가 어떨지 궁금하다고 이야기 한 적 있는데,
    결국 만덕이가 제주로 가게 되었습니다.

    바로 강 대방의 청나라 비단 밀매를 보게 된 까닭에 밀매 증거를 없애려는 강 대방 측과 목격자를 찾는 주부 김응렬 양 쪽에서 쫓기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덕분에 양성소는 해체가 되고, 만덕은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정처없는 도망길에 나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가 가야만 하는 곳은 바로 양성소 할매의 고향인 제주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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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아에서도 난리, 강 대방 쪽에서도 난리 - 못 볼걸 본 탓에 이래저래 인기(?)가 많아진 만덕>

    그런데, 여기서 잠깐. 강 대방이 사악한 인물이긴 하지만,
    그 '사치 금지령'이 무엇이기에 아직 어린 만덕을 잡아 죽이려고까지 했을까요?

    만덕이 어릴 적, 조선의 임금은 영조 임금이었습니다. (재위, 1724년~1776년)
    국사 교과서에는 '탕평책'을 펼친 명군이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매정한 아버지이기도 했어요.

    그런 그는 양반들이 도에 넘치는 사치를 부리는 것을 싫어해 여러가지 금지령을 내립니다.
    실록의 기록을 보면, 영조 22년(1746년, 만덕 8세)에 비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 무늬 있는 비단의 반입 금지령을 어긴 이명직(李命稷)을 형조(刑曹 : 오늘날의 검찰) 로 하여금 엄밀히 조사하여 아뢰게 하였다.

     이때에 재자관(䝴咨官) 이명직이 돌아오는 길에 비단을 사 가지고 오는 것을 평안 도사 임집이 수색하여 내어서
     그 비단을 곧장 불태워 버리고 이명직은 순영의 감옥에 가둔 다음, 사유를 갖추어 써서 계문하였다.

     이에 임금이 이명직이 맨 먼저 새로운 금지령을 범하였기 때문에 사형에 처하여야 하지만
     아직 정해진 형률이 있지 않다 하여 입시한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무려 "사형"이랍니다. 그저 '무늬 있는 비단 사 가지고 오지 마!'라고 한 임금의 명을 어긴 것만으로 사형이라는데,
    엄청난 양의 비단을 밀매한 강 대방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겠죠.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의 목숨도 위태위태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자신의 범법에 결정적 증거가 될 만덕을 살려 둘 수 없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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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그런데, 여기서 또 잠깐. 드라마 속 만덕은 아무리 봐도 8살 보다는 많아 보이는데요.
    그럼 만덕이 8살때 내려진 금지령을 어기면서까지 당시 귀족들은 몰래몰래 비단을 들여왔다는 건데요.

    실제 역사에서도 영조가 내린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사치는 여전했던 모양입니다.
    실록에 또 다른 기록이 나오거든요. 영조 32년(1756, 만덕 18세)의 기록입니다.

    "사족(士族)의 부녀자들의 가체(加髢)를 금하고 속칭 족두리(簇頭里)로 대신하도록 하였다.
    가체의 제도는 고려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곧 몽고의 제도이다.

    이때 사대부가의 사치가 날로 성하여, 부인이 한번 가체를 하는 데 몇백 금(金)을 썼다.
    그리고 갈수록 서로 자랑하여 높고 큰 것을 숭상하기에 힘썼으므로, 임금이 금지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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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체머리 - 이 정도는 기본이었다네요>

    가체는 조선시대 부녀자들이 했던 머리 장식이에요.
    처음엔 간소하게 머리를 틀어 올렸던 것이 조선 후기로 갈 수록 화려하게 치장하는 풍조가 생기게 되었죠.
    그게 어느 정도였냐 하면,


    " ... 당시 여인들 사이에서는 높고 화려한 가체를 쓰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런데 이 가체 하나의 값은 당시 중인계층 열 가구의 재산과 맞먹을 만큼 비쌌다.

    그래서 이로 인한 폐단이 많았는데, 기록에 의하면 당시 가체의 값은 평균 70만 냥, 즉 쌀 수만 가마에 해당했다.

    여기에 금은 보석으로 장식을 할 경우, 그 값은 수백만 냥에 달해서 가체를 마련하려면 양반이나 유생의 집에서는 집과 전답을 팔아야만 했다 ..."

    (『조선은 양반의 나라가 아니오』, 가람기획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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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족두리입니다>

    그래서 가체를 금지하고 족두리로 대체하게 했건만, 양반들은 이제 가체 대신 족두리를 꾸미기 시작했다니 말 다했죠. 사치에 비단이 빠질 수 없어, 양반집 여인들은 가체 못지 않게 화려한 옷차림을 선호했다 합니다.

    그리고 그 옷에 들어가는 것이 드라마에서 문제가 된 청나라 비단, 사라능단이라는 거였죠.
    옷 재료 가운데 가장 비싸고 화려한 것이었고, 주로 사신들이 오가는 길에 들여왔다고 합니다.
    영조는 사라능단의 수입을 규제하고, 국산 비단에까지도 무늬를 넣지 못하도록 규제했다고 하네요.

    예나 지금이나 부유층의 사치는 여전했던 모양이에요.
    지금보다 법이 더 엄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양반들이 화려한 옷을 고집했고,
    그에 편승한 상인들이 불법적인 상거래를 통해 돈을 벌어들이고자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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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는 돈 욕심 내지 않을께요 ㅜㅜ (거짓말)>

    아무튼, 첫 회에서 돈이 좋아 돈을 물고 살려던 만덕은 돈 때문에 목숨까지 걸며 검은 거래를 하던 강 대방에 의해 쫓기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녀는 제주까지 쫓겨 가면서도 아직도 돈이 좋다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아직 거상이라기엔 많이 부족해 보이는 그녀가, 어떻게 나눔의 미덕을 깨달은 큰 상인이 될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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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꼬맹이 - 거상 김만덕 연재 필자
  • 2010/03/17 09:55 2010/03/1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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