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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 김만덕] 실직자 만덕의 재취업을 도운 것은? :: 2010/04/23 17:46

만덕이 드디어 상인으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이직은 힘든 일이었나 봅니다.
아직도 자신을 웃음을 파는 기생으로 보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만덕은 동문객주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밖으로 떠돌다 곧 실직의 고통을 겪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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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사원 김만덕의 쓸쓸한 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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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는 사원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주)동문 대표이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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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_거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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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_인력_시장의_한때.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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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족의 망언.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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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4회에 유난히 많이 웃으시던 우리 만덕씨>

동문객주에서 쫓겨난 몸이 되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뭔가를 '팔려' 노력합니다.
웃음을 파는 기생 '홍이'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그녀가 상인 '김만덕'으로서 처음으로 팔게 되었던 것은 '전복'이었지요. 마침 제주는 청과의 교역권을 따내기 위한 말린 전복 납품을 두고 동문과 서문이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실제로도 말과 감귤과 함께 전복은 제주도의 주요 공물 중 하나였지요.
만덕은 그 수요를 파악하고, 니트족 기술자(?) 백소례를 헤드헌팅해 사업에 착수하게 됩니다.
지금 같은 냉장 기술이 없었던 옛날엔 그저 말리는 것만이 전복을 썩히지 않고 보관하는 방법이었던 거예요.
아무리 임금님이라 할지라도 말린 전복포를 씹어드실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니,
마음만 먹으면 바닷가에서 싱싱한 회를 즐길 수 있는 지금은 참 행복한 시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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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특산품 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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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린 전복 공정 과정 - 냉동 기술이 없던 옛날에는 전복을 말려 포를 떠 먹었다고 합니다>

백소례를 납치하여 전복을 납품하지 못하도록 한 서문객주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만덕은 말린 전복을 한양 관리들에게 선보여 전복 공물 납품권을 동문객주에게 돌아가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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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이 잡으러 와 놓고 자기들끼리 싸움판을 벌이는 한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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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보고 있으면 눈물 날 것 같은 유지의 순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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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은 천냥보다 귀하다고 평가되는 제주의 말린 전복>

14회 말미에 동문객주 대행수님이 '제주 잠녀들의 오랜 경험'을 들어가며 제주 전복의 우수성을 강조했는데요.
제주 잠녀(潛女)들은 다른 지역의 여성들과는 다른 일상을 살아갑니다.
물질은 물때가 맞을 때만 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잠녀들이 평소에는 농사를 짓다가
간조가 되면 바다로 나가 해산물을 채취하고, 다시 만조가 되면 농사일 또는 가사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지요.

쉴 틈이 없는 이들의 일상 때문인지, 한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조선 세종 때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던 날, 제주목사 기건(寄虔)이 제주 순방에 나섰는데,
엄동설한에 발가벗은 여인들이 무리지어 바다로 뛰어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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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건은 처음에는 미친 여인들이 집단으로 괴이한 짓을 하는 거라 여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행원들이 저것은 잠녀들이 목숨을 걸고 해산물을 캐는 것이라고 알려주고,
이에 충격을 받은 기건은 일평생 잠녀들이 채집하는 해산물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조 임금 역시 해녀들의 고충에 대해 듣고는 수라상에 올라온 제주의 해산물을 차마 들지 못했다고 하지요.

이렇게 잠녀들이 추위도 두려움도 모르고 바다로 뛰어들어 채취한 해산물은 역사적으로 제주 경제의 중추를 담당해왔습니다. 감귤이 제주도민의 주요 소득원이 되기 전인 1960년대, 잠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해 얻는 수입은 전체 가정 소득의 3분의 1을 차지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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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한 동문과 패배한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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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본격적으로 대립 구도에 들어가게 될 세 사람>

만덕은 전복을 서문객주에 가져가지 않고 동문객주에 가져감으로써
친구라는 걸 앞세워 접근하던 문선을 거부하는 의도를 내비칩니다.

이제 동문객주의 창고지기가 된 만덕은 문선과의 대립이 불가피해졌지요.
앞으로 문선과의 대결 속에 본격적으로 거상의 길을 걸어나갈 만덕의 행보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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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3 17:46 2010/04/2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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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 김만덕] 제주사람 김만덕도 몰랐던 '그것' :: 2010/04/13 15:58

네, 드디어 홍이가 '제주사람 김만덕'이 되었습니다.

전에 포스팅한 글에서 지적한 '만덕이 제주에 있지 않고 한양에서 살고 있던' 설정 문제가 제자리를 잡은 거지요. 아울러 수많은 난관과 음모와 미행과 추적과 살인교사 및 배신이 난무한 끝에 만덕이 양인 신분을 회복하였으니, '거상 김만덕'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설정이 드디어 완비된 거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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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제주 사는 김만덕이야.' 하며 그녀는 해맑게 웃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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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 이 세 글자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해야만 했는지 ㅠㅠ>

아울러 11회, 12회에서는 강유지 - 정홍수 - 김만덕의 삼각 관계가 정리되었습니다.
쿨하고 시크한 도시여자 만덕은 홍수의 변치않는 마음을 확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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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의 승리 4종세트>

끈질기게 치근덕대는 유지를 단호히 정리하고 돌아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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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놔, 놔! - 패배의 유지 4종 세트>

아울러 할매와 함께 동문객주에 자리잡게 되고,
홍수마저 한양으로 떠나보낸 만덕은 본격적으로 독신 사업가 거상으로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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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 사업 여성입니다, 친오빠처럼 도움 주실 분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만덕이 '상인'으로서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문의 만덕과 서문의 문선이 본격 대결하게 되겠지요.
아울러 질투의 화신이 된 홍수가 중간에서 조커로 활약하게 되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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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만덕이 제주 사람이 된 것을 기념하는 짤막한 정보 몇 가지.
드라마에서는 말투 외엔 잘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제주는 지역적 특성 상 굉장히 특이한 풍속을 많이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남사록>과 <탐라지>에 그러한 기록들이 많이 남아 있어요.
여기서 몇 가지 알아보자면-

1. 타 지방 사람들은 그 말을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대체로 억양이 앞은 높고 뒤는 낮았다.

조선시대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의 기록에 따르면, 제주 사람들의 말소리는 가늘고 드세어
바늘로 지르는 것 같이 날카롭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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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드센 소리에 적응하셔야만 할 1人>

2. 밭머리에 무덤을 만들었다. 장례를 마친 지 100일이면 상복을 벗고 밭머리를 조금 파서 무덤을 만들었는데, 간혹 3년상을 지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3.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주에는 질병이 적어 젊은 나이에 죽는 사람이 없었으며, 80~90세까지 사는 사람도 많았다.

이원진(조선 중기의 문신. 효종 때 제주 목사로 하멜 등 표착한 30여 명의 네덜란드인들을 서울로 압송했다. 《탐라지》를 편수했다.)은 그 이유를 '제주가 비록 더운 지방이라고는 하나 한라산 북쪽에 위치하여 남쪽 대양의 악한 기운이 산으로 막히고, 대풍이 많다고는 하나 북쪽에서 오는 차고 시원한 기운이 습한 열기를 몰아 흩어지게 하므로 장수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산 남쪽은 북쪽만 못하다.'라고 했다. 게다가 옛날에는 노인성(老人星 : 용골자리 α의 고유명이며, 등급 -0.7등으로 시리우스 다음으로 밝은 별이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남극노인 또는 노인성, 수성으로 불리며,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고 믿어졌다.)을 보면 장수한다는 속설이 있었는데, 한라산에 올라가면 그 별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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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4. 딸 낳는 것을 좋아했다. 남자들은 상선에 연달아 뽑혀 나갔는데, 바닷길이 험하고 멀어 떠내려가거나 물에 빠져 죽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자의 수가 남자의 수보다 3배나 많아 승려들은 절 옆에 집을 지어 처자를 거느리고 살고, 구걸하는 사람들까지도 처첩을 둘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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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주도에서 살고... 싶어요!!!>

5. 제주에는 독특한 이사 풍습이 있다. 제주 사람들은 1년 중 '대한 뒤 5일째부터 입춘 3일 전'까지인 신구간에만 이사를 한다.

신구간이란 새로운 것과 묵은 것의 사이라는 뜻으로, 제주 사람들은 하늘의 신과 땅의 신이 임무교대를 하는 일주일 남짓한 이 시기에 집을 옮겨야만 탈이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외지인들이 제주에 정착하려 할 때면 집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는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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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을 떠나 보낸 건, 신혼집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서였답니다... (거짓말)>

이제 본격적으로 '거상'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전환점을 맞은 <거상 김만덕>
참 상인으로 성장해가는 만덕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참고 도서 : <거상 김만덕,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2010/04/13 15:58 2010/04/1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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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의 실제 사랑은 누구일까요? - <KBS 드라마 거상 김만덕> 제대로 보기 :: 2010/04/08 15:48

요즘 만덕을 두고 두 남자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습니다.
형판 댁 도련님 정홍수와 강대방의 아들 강유지가 그 두 사람인데요.
친한 친구이기도 한 두 사람은 만덕을 가운데 두고 양보할 생각 없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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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력과 권력의 대결? - 한 쪽은 대기업 회장 아들, 한 쪽은 고위 공무원 자제...>

드라마 안에서 만덕은 어린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던 홍수에게 마음이 기운 상태입니다.
사랑을 거절당한 유지는 점점 삐뚤어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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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남자... 못된 남자... - 만덕이 자신을 거부하자 그녀의 양민 신분을 증명하는 명부를 태워버리는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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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들 둘의 사랑은 깊어만 갑니다>

사실 만덕은 평생 홀몸으로 지냈습니다. 채제공의 <만덕전>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만덕은 비록 살림을 차려 탐라의 사내들을 머슴으로 거느리기는 했으나 남편으로는 맞이하지 않았다." 기녀 출신이었던 탓도 있지만, 여자의 몸으로 평생 장사에 몰두한 나머지 혼인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평범한 삶을 누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요. 역시 <만덕전>의 일부입니다.
"... 만덕이 떠날 때 채제공을 보고 목멘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승에서는 대감의 얼굴을 다시 뵙지 못하겠나이다.'
 그리고는 처연히 눈물을 흘렸다. 이에 채제공이 위안해 주었다.
 '... 온 천하의 수많은 사내들 중에 이런 복을 누린 자가 있을까.
그럼에도 이제 하직을 당하여 도리어 아녀자의 가련한 태도를 짓는 건 대체 무슨 까닭인고.'

그리고 나서 체재공은 이 일을 서술한 <만덕전>을 지어 웃으면서 그녀에게 주었다.'

이때 만덕의 나이 58세, 체재공의 나이 77세였습니다.
제주의 억센 남자들을 머슴으로 부릴만큼 굳센 성품을 지닌 만덕이었지만,
체재공 앞에서는 '아녀자처럼 가련하게' 울며 헤어짐을 아쉬워 했던 겁니다.

당시 한양에서는 양민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임금을 뵌 만덕이 큰 화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공경대부와 선비를 비롯하여 한양의 모든 이들이 그녀의 얼굴을 보고자 몰려들었고,
박제가, 이가환, 정약용 같은 당대 최고의 문인들이 그녀를 위해 글을 지어 주었습니다.

평생 제주에서만 지내다 처음 한양 땅을 밟은 만덕으로서는 이런 환대와 관심이 혼란스러웠을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당시 좌의정이었던 체재공은 서울로 올라온 만덕이 임금을 뵙고 금강산 유람을 하는 데에 있어 많은 배려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만덕의 일생을 기록한 <만덕전>을 자신의 저서인 <번암집>에 싣기까지 했으니,
체재공 역시 만덕에 대해서는 각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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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김만덕과 체재공의 초상>

만덕이 제주로 돌아오고, 그 후 2년 후에 체재공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이들의 점잖은 사랑(?)은 끝을 맺었지만, 평생 홀로 지내온 만덕에게 있어서 체재공과의 기억은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 안에서는 과연 만덕과 체재공과의 이 오묘한(?) 관계가 어떻게 그려질지, 아직은 이른 기대를 가져봅니다.

2010/04/08 15:48 2010/04/0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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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 김만덕] 제주 기녀는 조폭인가요? - KBS 거상 김만덕 전격 해부 :: 2010/03/23 09:05

지난 주말 ‘거상 김만덕’ 5회와 6회가 방영되었습니다.
그동안 열연했던 아역 연기자가 퇴장하고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전환점이 되는 회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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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말을 타고 변신(?)하는 만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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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을 했더니 7년이 지나 갔어요 - 여자의 변신을 제대로 보여준 문선이>


그리고 만덕이의 어린 시절을 마무리하는 사건은, 만덕이 묘향의 계략에 빠져 그녀의 수양딸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죠. (말이 수양딸이지... 기생 만들겠다는 거였지만요 ㅠㅠ)
동화를 구하기 위해 묘향의 제안을 받아들인 만덕은 이제 꼼짝 없이 제주 기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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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 조폭도 아니고...>

실제 역사에서는 만덕이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어 의지할 곳이 없어 한 기녀에게 의탁해 살다 기녀가 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먼저, 채제공(蔡濟恭)의 「만덕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 만덕의 성은 김이니, 탐라의 양갓집 딸이었다.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의지할 데가 없어 한 기녀에게 의탁해 살았는데,
  조금 자라자 관아에서 만덕의 이름을 기안(妓案, 기녀 명부)에 올려버렸다.
  만덕은 비록 머리를 숙이고 기녀 노릇을 할망정 기녀로 자처하지는 않았다.
  나이 스무 살이 넘어 자신의 사정을 관아에 울면서 호소하니, 목사가 가긍히(불쌍하고 가엽게) 여겨 기안에서 빼주고 양민으로 되돌려주었다. ...’

그리고 만덕이 죽은 뒤 한 달 뒤인 1812년 11월에 쓰였다는 <구묘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합니다.

‘김만덕의 본은 김해 김씨요, 탐라의 양갓집 딸이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홀로 가난으로 고생하며 자랐다.
살결이 곱고 아름다워 교방에 의탁한 바 있으나, 의복을 줄이고 먹을 것을 먹지 아니하여 재산이 점점 커졌다. ...’

어쨌든 만덕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기녀가 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처럼 여러 가지 계략을 꾸며 양갓집 규수를 기녀로 끌어들이는 건... 불법행위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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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 - 이걸 보면서 문득 생각난 영화, 멀쩡한 여자를 타락시키는 게...>


『탐라지(耽羅志)』에 따르면, 관기(官妓)는 관비(官婢 : 관아에 속한 여자 노비) 중에서 용모와 재주가 뛰어난 자를 뽑았다고 합니다.

어떻게든 좋은 인재(?)를 발굴해야만 했던 묘향으로선 만덕이 탐났을 게 분명해요.

19세기 중반에 작성된 『탐라영사례(耽羅營舍例)』에는 조선시대 제주목에는 관기가 32명, 관비가 17명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하네요.

그리고 이들 제주 관기는 특히 세력이 무척 강했다고 합니다.
이익태(李益泰,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의 『지영록(知瀛錄)』의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하네요.


‘... 제주에는 관노비의 수가 많다. 그들은 모두 기안에 들어간다. ... 관기는 목사의 수청을 드는 것 이외에도 삼읍의 수령 및 교수, 아객(雅客 : 반가운 손님), 군관, 삼학(三學)의 수청을 들기도 한다. ... 데리고 있는 관기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총애하는 것을 믿고 건방지게 구는데다가 그 세력 또한 굉장하여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 아주 하찮은 일이라도 뇌물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세상에서 이르기를 '제주기의 권세가 무섭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라고 한다. ...’

뭐, 이렇게 기가 셌던 제주 기생이었으니, 어린 아이 하나 기녀로 끌어들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만덕 역시 제주기에 걸맞은(?) 강단이 있었으니, 묘향의 선택은 탁월한 것이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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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一心)을 제대로 보여준 시위 장면>

그리고 6회 말미에 등장한 흥수!
자, 7년의 세월. 만덕의 멘토 할매와 첫사랑 흥수가 나란히 제주에 들어오지만, 만덕은 옛날 만덕이 아니었으니...
변해버린 만덕과 이들이 얽어가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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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 아니요, 홍이! - 그리고 7년 공부 끝에 그녀를 쫓아 제주까지 온 한 남자>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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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자유에 모미 아냐...(?)>


참고도서 :
<거상 김만덕,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지난 이야기 보기

[거상 김만덕]주 기녀는 조폭인가요? - KBS 거상 김만덕 전격 해부 | 2010/03/23
[거상 김만덕] 왜 만덕이는 쫓기게 되었는가 - KBS 드라마 거상 김만덕 전격 해부 | 201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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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 김만덕] 그녀는 기녀였을까 아니였을까 | 2010/03/11

2010/03/23 09:05 2010/03/2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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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 김만덕] 그녀는 기녀였을까 아니였을까 :: 2010/03/11 20:23

KBS 역사 드라마 ‘거상 김만덕’이 지난 주말에 시작되었습니다. ‘이미연의 복귀작’으로 시선을 집중시킨 것과 달리 초반 방영분에서는 만덕의 어린 시절을 다루느라 이미연 씨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역들의 좋은 연기와 악역들의 포스 때문인지, 간만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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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역’과 좋은 ‘악역’>

드라마를 보는 과정에서 재미를 위해 각색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김만덕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아요. 체재공이 남긴 『문암집』의 「만덕전」이 그나마 믿을만한 기록으로 남아 있을 뿐이지요. 소설가 정비석의 『명기열전』에도 만덕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작가가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덧붙인 픽션에 불과하다네요.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정창권)

역사적 기록이 부족하다는 건 작가에게 있어서 고역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하죠. 시간에 묻혀 가려져 있는 부분들을 상상력으로 멋지게 그려낼 수 있으니까요. 그럼, 여기서 드라마 ‘거상 김만덕’이 재미를 위해 각색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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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쁘신 건 사실입니다만...>


1. 너무나도 화려한 만덕의 의상 - 그녀는 기녀였을까? 아니었을까?
  네, 바로 드라마의 처음 부분이죠. 이미연 씨가 살짝 모습을 드러낸 장면이기도 합니다. 기생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옷을 입고 굶주려 죽어가는 제주 주민들 사이를 거닐며 천사처럼 구원의 손길을 펼치는 만덕.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서는 완벽한 자태(?)지만, 실제 역사를 한번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는 장면입니다.

  김만덕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기녀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기적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체재공의 「만덕전」에서는 만덕이 스무살 전후에 기생이 천하다는 걸 알고 양민 신분을 회복하였다고 적혀 있지만, 『정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는 후에 만덕이 정조를 배알하는 일을 기록하면서 그녀를 ‘제주기(濟州妓) : 제주의 기녀’ 혹은 ‘탐라기(耽羅妓) : 탐라의 기녀’로 적고 있어요. 이는 만덕이 끝까지 기녀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죠.

  체재공이 만덕을 높여주려 기녀 신분에서 면천(免賤)한 것으로 적은 것인지, 아니면 실록을 기록하는 사관이 만덕이 신분을 회복하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적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덕이 스무살 무렵 그동안 모은 돈을 밑천으로 장사를 시작해 거상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에요.

  드라마가 만덕전의 설정을 따라갈지, 실록의 설정을 따라갈지, 아니면 작가가 꾸며낸 독자적인 스토리로 나아갈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항상 ‘자냥(없을 때를 대비하여 있을 때 아끼고 모아 두는 습관)’하며 살았던 제주 여인들의 습관을 볼 때, 만덕에게 화려한 옷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여주인공은 항상 예뻐야만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지만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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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거상 김만덕 그녀는 누구인가? :: 2010/03/0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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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에 TV를 보다 새로운 드라마 예고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상 김만덕>.
    이름은 분명 '만덕'이란 남자 이름인데, 이미연이 나와서 연기를 하더군요.

    들어본 적이 없는 인물이라 어리둥절해 하다가 그녀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알고보니 김만덕은 제주의 여자들 가운데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지금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녀가 살다 간 18세기에는 멀리 떨어진 한양의 사대부들도 만나보고 싶어 하던 유명인사였지요. 현대에 이르러서도 '18세기에 21세기를 살다 간 여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그녀. 그녀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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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김만덕 영정>

    사실 역사서에 그녀의 기록은 얼마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녀에 대한 기록은 정조 시대 문인인 체재공의 문집 『번암집』 가운데 있는 '만덕전'의 기록이 전부죠. '만덕전'은 달랑 한 두 페이지 분량에 불과하지만, 그 기록만 되짚어 보아도 그녀가 굉장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739년(영조 15년)에 제주 양가집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어려서 부모님을 역병으로 잃게 됩니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하릴없이 기녀에게 몸을 의탁한 그녀는 양민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자라자마자 기적에 이름을 올려 관기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고 말죠. 가무를 익혀 제주도 제일의 기생이 된 그녀. 하지만 제 기분이 아닌 남의 기분에 맞춰 웃어야만 하는 기생의 삶은 고달프기만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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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그녀는 스무 살 즈음 관아에 호소해 양민 신분을 되찾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객주를 차려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한 그녀는 제주도 안의 물건만 사고 파는 데에 지나지 않고 배를 사들여 육지와의 교역을 시작합니다.

    풍랑을 만나 침몰하는 배가 많았던 당시 상황에서 배로 하는 무역은 굉장한 모험이었죠. 하지만 과감한 투자를 실행했던 만덕은 크게 성공해 많은 돈을 벌어들입니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부모를 잃고 기생이 된 삶에서 벗어나 커다란 부자가 된 것만으로도 조선시대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지만, 김만덕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실천한 '나눔'의 미덕 때문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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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2년부터 1794년에 이르는 3년 동안 제주에는 흉년과 태풍이 번갈아 들이닥칩니다. 들판의 양곡이 말라 죽고, 바닷물이 들어 못 먹게 되어버렸죠. 제주 주민 수천 명이 굶어 죽는 일이 발생합니다. 조정에서 보낸 구호미를 실은 배들은 제주로 건너오다가 풍랑을 만나 가라앉고, 육지의 도움이 끊긴 제주 주민들은 모두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전 현감과 장교, 유생들이 양곡을 풀어 백성들을 먹였지만, 턱도 없이 모자란 상황이었지요.이때 김만덕은 자신이 평생 모은 돈을 풀어 육지로 배를 띄워 양곡 5백석을 들여옵니다. 그리고 관아에 양곡을 전달하여 굶주린 백성들을 살려내지요. 김만덕이 들여온 양곡 5백석은 천명이 넘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김만덕이 전 재산을 풀어 기아에 허덕이는 제주 백성을 먹여 살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정조 임금은 크게 감동하여 그녀를 한양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녀는 최초로 월해금법(제주 여자들은 육지로 나올 수 없다고 정해놓은 조선시대 법)을 깨고 한양에 발을 들인 제주 여인이 되지요.

    관기 출신에, 결혼도 하지 않은 50대의 여인. 여자를 천시하던 한양의 사대부들에겐 하찮게 여겨질 출신의 그녀였지만, 한양의 모든 사람들은 당당히 정조 임금을 배알하고 의녀 반수의 벼슬까지 제수 받은 그녀를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벼슬이 높은 선비들은 만덕의 덕을 기리는 시와 글을 지어 칭송했지요.

    만덕을 만난 정조 임금은 그녀에게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주겠다고 말합니다. 이에 만덕은 금강산을 구경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합니다. 정조 임금은 소박하기만한 그녀의 소원을 흔쾌히 들어주어 그녀는 반년동안 금강산 유랑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때 한양에 머물고 있던 체재공은 그녀를 인상 깊게 생각하여 그녀의 전기인 '만덕전'을 지어 전해줍니다. 조선 여인, 그것도 평생 섬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제주 여인이었던 만덕은 이렇게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대우를 받고 다시 제주도로 돌아와 여생을 마치지요.

    사실,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삶은 그저 '제주도에서 성공한 여성 상인' 정도로만 치부되어 왔습니다. 그녀가 베푼 나눔의 삶과 신분과 처지를 극복해낸 의지는 주목받지 못했던 거지요. 김만덕의 주체성이 주목되기 시작하면서 그에 관련된 책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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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 빛 김만덕>과 <거상 김만덕 -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예로부터 제주는 삼다도(三多島)라 불리었습니다. 돌, 바람, 그리고 여자가 많은 섬. 애초에 제주도는 화산 폭발로 이루어진 섬이니 돌이 많은 건 당연한 것이고, 사면이 바다인 섬이니 바닷바람이 많은 것도 이해할 수 있는데, 어째서 여자가 많은 섬이 된 것일까요?

    제주도에 유독 여자가 많은 이유는 조선시대 조정에서 정해 놓은 월해금법(越海禁法) 때문이었죠. 월해금법은 제주 여자들이 바다를 건널 수 없도록 정해놓은 법이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사람이 자꾸 빠져나가는 탓에 제주의 인구가 줄어드는 걸 우려한 조정에서 취한 조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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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기 어려운 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매인 제주 여인들은 제 나름대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건널 수 없는 바다에 뛰어들어 평생 자맥질을 하며 삶을 이어가는 길을 택하거나, 항상 자냥(없을 때를 대비해 아끼고 모아 두는 것)하며 근근하게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곤 했죠.

    제주도는 삼다도와 더불어 ‘삼재도(三災島)’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산이 높아 물이 나지 않으니 수재(水災), 돌이 많고 토질이 박하니 한재(旱災), 사면이 큰 바다니 풍재(風災). 사람이 살기 힘든 땅이라는 의미지요.

    이렇게 힘든 땅에 매여 살아야만 하는 운명을 극복하고 주변 이들을 위해 가진 것을 선뜻 내어 놓는 큰 덕을 베푼 거상 김만덕. 책에 이어 이번 드라마를 통해 그녀의 삶과 뜻이 ‘나눔’의 미학이 부족한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해 봅니다.

    2010/03/06 19:22 2010/03/0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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