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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 김만덕] 그녀는 기녀였을까 아니였을까 :: 2010/03/11 20:23

KBS 역사 드라마 ‘거상 김만덕’이 지난 주말에 시작되었습니다. ‘이미연의 복귀작’으로 시선을 집중시킨 것과 달리 초반 방영분에서는 만덕의 어린 시절을 다루느라 이미연 씨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역들의 좋은 연기와 악역들의 포스 때문인지, 간만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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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역’과 좋은 ‘악역’>

드라마를 보는 과정에서 재미를 위해 각색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김만덕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아요. 체재공이 남긴 『문암집』의 「만덕전」이 그나마 믿을만한 기록으로 남아 있을 뿐이지요. 소설가 정비석의 『명기열전』에도 만덕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작가가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덧붙인 픽션에 불과하다네요.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정창권)

역사적 기록이 부족하다는 건 작가에게 있어서 고역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하죠. 시간에 묻혀 가려져 있는 부분들을 상상력으로 멋지게 그려낼 수 있으니까요. 그럼, 여기서 드라마 ‘거상 김만덕’이 재미를 위해 각색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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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쁘신 건 사실입니다만...>


1. 너무나도 화려한 만덕의 의상 - 그녀는 기녀였을까? 아니었을까?
  네, 바로 드라마의 처음 부분이죠. 이미연 씨가 살짝 모습을 드러낸 장면이기도 합니다. 기생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옷을 입고 굶주려 죽어가는 제주 주민들 사이를 거닐며 천사처럼 구원의 손길을 펼치는 만덕.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서는 완벽한 자태(?)지만, 실제 역사를 한번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는 장면입니다.

  김만덕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기녀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기적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체재공의 「만덕전」에서는 만덕이 스무살 전후에 기생이 천하다는 걸 알고 양민 신분을 회복하였다고 적혀 있지만, 『정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는 후에 만덕이 정조를 배알하는 일을 기록하면서 그녀를 ‘제주기(濟州妓) : 제주의 기녀’ 혹은 ‘탐라기(耽羅妓) : 탐라의 기녀’로 적고 있어요. 이는 만덕이 끝까지 기녀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죠.

  체재공이 만덕을 높여주려 기녀 신분에서 면천(免賤)한 것으로 적은 것인지, 아니면 실록을 기록하는 사관이 만덕이 신분을 회복하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적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덕이 스무살 무렵 그동안 모은 돈을 밑천으로 장사를 시작해 거상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에요.

  드라마가 만덕전의 설정을 따라갈지, 실록의 설정을 따라갈지, 아니면 작가가 꾸며낸 독자적인 스토리로 나아갈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항상 ‘자냥(없을 때를 대비하여 있을 때 아끼고 모아 두는 습관)’하며 살았던 제주 여인들의 습관을 볼 때, 만덕에게 화려한 옷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여주인공은 항상 예뻐야만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지만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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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거상 김만덕 그녀는 누구인가? :: 2010/03/0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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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에 TV를 보다 새로운 드라마 예고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상 김만덕>.
    이름은 분명 '만덕'이란 남자 이름인데, 이미연이 나와서 연기를 하더군요.

    들어본 적이 없는 인물이라 어리둥절해 하다가 그녀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알고보니 김만덕은 제주의 여자들 가운데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지금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녀가 살다 간 18세기에는 멀리 떨어진 한양의 사대부들도 만나보고 싶어 하던 유명인사였지요. 현대에 이르러서도 '18세기에 21세기를 살다 간 여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그녀. 그녀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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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김만덕 영정>

    사실 역사서에 그녀의 기록은 얼마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녀에 대한 기록은 정조 시대 문인인 체재공의 문집 『번암집』 가운데 있는 '만덕전'의 기록이 전부죠. '만덕전'은 달랑 한 두 페이지 분량에 불과하지만, 그 기록만 되짚어 보아도 그녀가 굉장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739년(영조 15년)에 제주 양가집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어려서 부모님을 역병으로 잃게 됩니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하릴없이 기녀에게 몸을 의탁한 그녀는 양민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자라자마자 기적에 이름을 올려 관기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고 말죠. 가무를 익혀 제주도 제일의 기생이 된 그녀. 하지만 제 기분이 아닌 남의 기분에 맞춰 웃어야만 하는 기생의 삶은 고달프기만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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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그녀는 스무 살 즈음 관아에 호소해 양민 신분을 되찾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객주를 차려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한 그녀는 제주도 안의 물건만 사고 파는 데에 지나지 않고 배를 사들여 육지와의 교역을 시작합니다.

    풍랑을 만나 침몰하는 배가 많았던 당시 상황에서 배로 하는 무역은 굉장한 모험이었죠. 하지만 과감한 투자를 실행했던 만덕은 크게 성공해 많은 돈을 벌어들입니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부모를 잃고 기생이 된 삶에서 벗어나 커다란 부자가 된 것만으로도 조선시대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지만, 김만덕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실천한 '나눔'의 미덕 때문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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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2년부터 1794년에 이르는 3년 동안 제주에는 흉년과 태풍이 번갈아 들이닥칩니다. 들판의 양곡이 말라 죽고, 바닷물이 들어 못 먹게 되어버렸죠. 제주 주민 수천 명이 굶어 죽는 일이 발생합니다. 조정에서 보낸 구호미를 실은 배들은 제주로 건너오다가 풍랑을 만나 가라앉고, 육지의 도움이 끊긴 제주 주민들은 모두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전 현감과 장교, 유생들이 양곡을 풀어 백성들을 먹였지만, 턱도 없이 모자란 상황이었지요.이때 김만덕은 자신이 평생 모은 돈을 풀어 육지로 배를 띄워 양곡 5백석을 들여옵니다. 그리고 관아에 양곡을 전달하여 굶주린 백성들을 살려내지요. 김만덕이 들여온 양곡 5백석은 천명이 넘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김만덕이 전 재산을 풀어 기아에 허덕이는 제주 백성을 먹여 살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정조 임금은 크게 감동하여 그녀를 한양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녀는 최초로 월해금법(제주 여자들은 육지로 나올 수 없다고 정해놓은 조선시대 법)을 깨고 한양에 발을 들인 제주 여인이 되지요.

    관기 출신에, 결혼도 하지 않은 50대의 여인. 여자를 천시하던 한양의 사대부들에겐 하찮게 여겨질 출신의 그녀였지만, 한양의 모든 사람들은 당당히 정조 임금을 배알하고 의녀 반수의 벼슬까지 제수 받은 그녀를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벼슬이 높은 선비들은 만덕의 덕을 기리는 시와 글을 지어 칭송했지요.

    만덕을 만난 정조 임금은 그녀에게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주겠다고 말합니다. 이에 만덕은 금강산을 구경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합니다. 정조 임금은 소박하기만한 그녀의 소원을 흔쾌히 들어주어 그녀는 반년동안 금강산 유랑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때 한양에 머물고 있던 체재공은 그녀를 인상 깊게 생각하여 그녀의 전기인 '만덕전'을 지어 전해줍니다. 조선 여인, 그것도 평생 섬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제주 여인이었던 만덕은 이렇게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대우를 받고 다시 제주도로 돌아와 여생을 마치지요.

    사실,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삶은 그저 '제주도에서 성공한 여성 상인' 정도로만 치부되어 왔습니다. 그녀가 베푼 나눔의 삶과 신분과 처지를 극복해낸 의지는 주목받지 못했던 거지요. 김만덕의 주체성이 주목되기 시작하면서 그에 관련된 책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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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 빛 김만덕>과 <거상 김만덕 -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예로부터 제주는 삼다도(三多島)라 불리었습니다. 돌, 바람, 그리고 여자가 많은 섬. 애초에 제주도는 화산 폭발로 이루어진 섬이니 돌이 많은 건 당연한 것이고, 사면이 바다인 섬이니 바닷바람이 많은 것도 이해할 수 있는데, 어째서 여자가 많은 섬이 된 것일까요?

    제주도에 유독 여자가 많은 이유는 조선시대 조정에서 정해 놓은 월해금법(越海禁法) 때문이었죠. 월해금법은 제주 여자들이 바다를 건널 수 없도록 정해놓은 법이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사람이 자꾸 빠져나가는 탓에 제주의 인구가 줄어드는 걸 우려한 조정에서 취한 조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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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기 어려운 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매인 제주 여인들은 제 나름대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건널 수 없는 바다에 뛰어들어 평생 자맥질을 하며 삶을 이어가는 길을 택하거나, 항상 자냥(없을 때를 대비해 아끼고 모아 두는 것)하며 근근하게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곤 했죠.

    제주도는 삼다도와 더불어 ‘삼재도(三災島)’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산이 높아 물이 나지 않으니 수재(水災), 돌이 많고 토질이 박하니 한재(旱災), 사면이 큰 바다니 풍재(風災). 사람이 살기 힘든 땅이라는 의미지요.

    이렇게 힘든 땅에 매여 살아야만 하는 운명을 극복하고 주변 이들을 위해 가진 것을 선뜻 내어 놓는 큰 덕을 베푼 거상 김만덕. 책에 이어 이번 드라마를 통해 그녀의 삶과 뜻이 ‘나눔’의 미학이 부족한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해 봅니다.

    2010/03/06 19:22 2010/03/0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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