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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회] 김만덕 연구의 최고 권위자 정창권 교수 - 4/27 :: 2010/04/12 09:27

 

2010/04/12 09:27 2010/04/1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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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만덕 생애의 몇 가지 미스터리 - 정창권 교수 인터뷰 :: 2010/04/12 09:20

요즘 KBS 1TV에서 <거상 김만덕>이란 드라마가 한창 방영되고 있다. 지금까지 수년 동안 김만덕을 계속 연구해왔고, 또 드라마나 공연, 학습만화 등으로 제작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했던 이로서, 김만덕의 생애에서 몇 가지 미스터리한 사항들을 발굴하여 새롭게 얘기해보고자 한다, 

원래 김만덕은 어떻게 생겼나?
드라마 <거상 김만덕>에서 만덕 역은 약간 가냘프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이미연 분이 맡고 있다. 한데 역사자료에선 젊었을 땐 살결이 곱고 아름다웠으며, 나이가 들어선 몸이 비대하고 키가 크며 말씨가 유순하고 외모에 후덕한 분위기가 나타났다고 한다. 즉, 관음의 형상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묘비문이나 정약용, 채제공 등의 기록에 의하면, 만덕은 특이하게도 중동(重瞳), 한쪽 눈에 눈동자가 둘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를 전혀 거리끼지 않았고, 오히려 중국의 요임금과 같이 성인들이 지닌 기이한 상으로 보았다.

어떻게 기녀에서 다시 양민으로 돌아왔나?
만덕은 20살 무렵 기녀에서 양민으로 돌아왔다. 원래 기녀들은 나이 50세가 되어서야 기녀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대비속신(代婢贖身), 곧 다른 사람을 사서 역을 대신시키고 풀려나오곤 하였다. 대개 말 한필의 값을 주고 대비속신했는데, 당시 말 한필은 거의 집 한 채 값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만덕의 경우는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기녀에게 의탁해 살았는데, 나이가 들자 그 기녀가 기안(妓案: 기녀 명부)에 올려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20살 무렵 그러한 사정을 목사에게 말한 뒤 양인 신분을 회복했다고 한다.
 한데, 만덕은 시종일관 타의적으로만 처신했을까? 필자가 보기에 만덕은 애초 기녀를 돈벌이 수단, 곧 하나의 직업으로 여기고 자청해서 기녀가 되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즉, 젊은 시절 적극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싶어서 스스로 기녀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덕은 어떻게 거상(巨商)이 되었나?
기록에 의하면 만덕은 재산이 많았고, 당시 제주 최고의 부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훗날 한양에 갔을 때 뭇 남성들이 그 소문을 듣고 접근해오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만덕은 과연 어떻게 해서 거상이 될 수 있었을까? 필자의 작품에서 자세히 얘기하고 있듯이, 만덕은 육지와의 무역, 특히 시세차익을 노려 거상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시대상황을 고려하면, 그녀는 포구에 객주(客主)를 차려놓고 제주의 특산물인 말총이나 우황, 미역, 전복, 귤 등을 배에 싣고 육지로 가서, 제주에 필요한 물건들인 곡식이나 소금, 철, 비단 등을 사서 들여왔던 듯하다. 또 나중엔 여러 척의 배도 거느리고 선주(船主)도 되었던 듯하다.

한데 근래 필자는 다산 정약용의 생가를 답사하던 중 이상한 지명을 발견했다. 다산이 유배되었던 강진 도암면에 '만덕리(萬德里)'라는 지명이 있었던 것이다. 강진은 당시 제주 민선(民船)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는데, 그곳에 혹 만덕의 객주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대체 얼마나, 왜 구휼(救恤)했을까?
 만덕의 나이 56세인 정조 19년(1795) 제주에 기근이 들어 백성들의 시신이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당시 제주 인구는 47,735명이었는데, 1년만에 무려 17,963명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이에 보다 못한 만덕이 자신의 재산을 내놓아 뭍에서 쌀을 사들여 제주 사람들을 구제했는데, 일설에 의하면 곡식 500석을 사들여 50석은 친척들에게 나눠주고, 나머지 450석은 관아에 바쳤다고 한다(당시 제주에서의 곡식 100석은 육지에서의 1000석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그럼 만덕은 대체 왜 구휼을 결심했을까? 먼저 그동안 돈을 너무 악착같이 벌어서 반성하는 의미로 그랬을 수도 있다. 당시 제주에 잠깐 놀러왔던 심노숭은 '만덕은 품성이 음흉하고 인색하여 돈을 보고 따랐다가 돈이 다하면 떠났는데, 남자가 입은 바지저고리마저 빼앗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유독 심노숭만이 감정적인 악평을 해놓았는데(그 깐깐한 추사 김정희마저도 만덕에게 은광연세(恩光衍世: 은혜의 빛이 널리 퍼지다)라는 글을 써줄 정도였다), 아마 심노숭이 제주에 갔을 때 뭔가 서로 다툼이 있었던 듯하다. 그렇지 않으면 실제로 만덕은 돈만 아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르는데, 이에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일순간에 큰돈을 내놓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만덕이 구휼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큰마음'에서 비롯된 듯하다. '나라도 있고 양반도 많은데, 제주 사람들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세상이 그들을 구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나라도 구해야겠다'는 심정으로 구휼했다는 것이다. 원래 만덕은 여자임에도 당당히 객주를 차리고, 뭇 남성들을 거느리고 무역을 할 정도로 포부가 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혹 채제공과 스캔들은 없었나?
구휼 후 정조 임금의 특별한 배려로 한양에 올라온 만덕은, 처음엔 거처할 곳이 없어 무척 힘들게 생활하였다. 이에 채제공이 임금께 아뢰어 비변사에 머물고 선혜청에서 달마다 식량을 대주도록 하였다. 또 채제공은 만덕이 제주로 돌아갈 무렵, 특별히 <만덕전>을 지어주기도 하였다.
 대체 채제공은 왜 그토록 만덕을 후대(厚待)했을까? 혹 무슨 스캔들은 없었을까?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두 사람은 남녀 관계를 초월한 인간적인 만남이었던 듯하다. 지우(知友), 곧 말이 통하는 관계였다는 것이다. 대개 우리는 남자와 여자가 좋게 지내면 무조건 이상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물론 질투심에서 그럴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남자와 여자를 초월한 만남도 의외로 많은 법이다.

왜 평생 독신으로 살았을까?
조선시대에 결혼은 필수적이었다. 만약 과년한 자식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 살면, 그 부모가 처벌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만덕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과연 왜 그랬을까?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남자들이 과거 그녀가 기녀였다고 결혼하기를 꺼렸거나, 아니면 기녀 출신으로서 남의 정실이 되기엔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만덕도 그럴 바엔 차라리 혼자 사는 길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물론 만덕도 뭇 여성들처럼 남자와 몸도 섞어보고 아이도 낳아보고 싶었을 테지만, 나이가 들어선 그저 일을 통해 삶의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한다. 

금강산 구경 후 제주로 돌아온 이후의 삶은 어떠했나?
만덕은 58세에 금강산 구경을 마치고 한양에 들렀다가 다시 제주로 돌아온다. 그리고 74세인 순조 12년(1812)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때까지의 행적에 대해선 기록이 부재하여 전혀 알 길이 없다. 아마도 객주를 통한 무역업을 계속했을 듯한데, 그렇다고 일에만 집착한 것이 아닌 노년의 여유로운 삶을 즐기거나 자신만의 상도(商道)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해주기도 했을 듯하다.
 그녀는 유언으로 '내가 죽거든 제주 성안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묻어달라!'고 했다는데, 죽어서도 제주 사람들을 돌보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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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_정창권 교수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하면서 저작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그동안 문학과 역사, 예술, 철학, 과학 등을 아우르는 동시에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통합형 연구’를 지향해왔고, 전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글쓰기를 시도해왔다.


* 이 글은 KBS 사보 4월 호에 실린 정창권 교수님(<거상 김만덕,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의 저자)인터뷰 글입니다.  

2010/04/12 09:20 2010/04/1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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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 김만덕] 만덕이 떨어진 구질막은 과연 조선의 '호스피스 병동'이었을까? - 9, 10회에서 :: 2010/04/06 09:11

전 회에서 흉계에 빠져 구질막(救疾幕)에 들어가게 된 만덕.
그곳의 사람들은 모두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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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건 조.. 좀비?>

그리고 그들은 만덕을 대상군을 죽인 원흉이라 생각하고 괄시하지요.
만덕은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죽음의 그림자에 압도당합니다.

구질막은 살아갈 희망이 없는 자들이 갇혀 있는 곳이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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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종대왕님이 들으시면 눈 뒤집힐 소리를...!!>

그러나, 드라마 속에서 구질막을 '죽을 날 기다리는 곳'으로 그려놓은 것과는 달리,
실제 역사에서 구질막은 '전염병 전문 치료소'에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제주에 구질막이 생겨나게 된 것은 세종 10년에 있었던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세종 10년(1428) 8월 30일
형조에서 아뢰기를 "제주인 사노(私奴) 일동(一同, 사람 이름)은 그의 처 니을망(泥乙望)과 함께 전남편의 아들 정신도(鄭伸道)를 목매어 죽였습니다. 또 니을망에게는 나병에 걸린 10세 난 딸이 있었습니다. 관에서 나환자를 해변으로 옮긴다는 말을 듣고 그 딸을 해안으로 끌고 가서 떠밀었습니다. 그 딸이 손을 잡고 슬피 울어도 억지로 밀어서 언덕에서 떨어져 죽게 하였습니다. 청컨대 율(律)에 의하여 니을망은 장(杖) 60, 도(徒) 1년을 속하게 하고, 일동(一同)은 참에 처하십시오." 하니 그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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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

제주의 한 노비가 나병에 걸린 딸을 언덕에서 밀어 떨어져 죽게 했다는 거죠. 게다가 '관에서 나환자를 해변으로 옮긴다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제주에서는 병에 걸린 사람들을 해변에 방치하여 그대로 죽게끔 하고 있었던 거죠.

세종대왕님은 아직까진 별일 아니라고 생각 하셨는지, 패륜을 저지른 노비들만 처벌하게끔 하고 대대적인 구호 작업은 벌이지 아니하십니다. 그런데 17년 후, 제주의 역병 문제가 크게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세종 27년(1445) 11월 6일
제주안무사가 아뢰기를 "본주 및 정의·대정에 나병(癩病)이 유행합니다. 만약 병에 걸린 자가 있으면 그 전염되는 것을 우려하여 해변의 사람이 없는 곳에 두므로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암애(巖崖)에서 떨어져 그 목숨을 끊으니 참으로 불쌍합니다. 신이 승인(僧人)으로 하여금 뼈를 거두어 묻게 하고, 삼읍(三邑 ; 濟州牧·大靜縣·旌義縣)에 각각 치병소( 治病所)를 설치하여 병인(病人)들을 모아서 의복·양식·약물을 공급했습니다. 또 목욕할 그릇을 설치하여 의생(醫生)과 승(僧)으로 하여금 치료를 담당하게 하였습니다. 현재 나병(癩病)환자 69인 중에 45인은 차도가 있고 10인은 아직 낫지 않았으며 14인은 죽었습니다. 다만 삼읍에 승(僧)은 본래 군역(軍役)이 있는데, 청컨대 삼읍의 승 가운데 각 1인을 그 역에서 면제하여 항상 의생(醫生)과 같이 구료(救療)에만 전념하게 하십시오. 의생도 역시 녹용(錄用, 임용)을 허락하여 권장하십시오." 하니 병조(兵曹)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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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작에 대책을 세워 주시라고 했잖아요!!>

이때, 제주의 역병 문제는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병자들은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택하는 등, 그 참혹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거죠. 제주로 파견된 안무사(조선시대 때 지방에 변란이나 재난이 있을 때 왕명으로 파견되어 백성을 안무하던 임시 벼슬)가 이에 승려들과 의사들을 모아 병자들을 치료할 공간을 마련합니다. 이게 구질막의 시초가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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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 그럴리가>

이에 하나의 기관으로 자리잡은 구질막. 문종 대에 이르러서는 '구질막'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실록에 등장합니다.


문종 원년(1451) 4월 2일
기건(奇虔)을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로 삼았다. 기건은 이사(吏事, 문관이 하는 일)를 조금 익히고 제사(諸史)를 즐겨 보았다. 일찍이 제주목사로 있을 때 전복(全鰒)을 먹지 않았다. 또 제주가 해중(海中)에 있으므로 사람들이 나병(癩病)이 많았는데 비록 부모처자라 할지라도 또한 서로 전염될 것을 염려하여 사람이 없는 땅으로 옮겨두고 스스로 죽기를 기다렸다. 기건(奇虔)이 관내를 순행(巡行)하다가 해변에 이르렀을 때 암벽 밑에서 신음하는 소리를 듣고 가서 보니 과연 나환자(癩患者)들이었다. 그러므로 그 까닭을 물어서 알고는 곧 구질막(救疾幕)을 꾸미고 나환자 100여명을 모아 수용하되 남녀를 따로 거처하게 하였다. 고삼원(苦蔘元)을 복용시키고 해수(海水)로써 목욕을 하게 하니 태반이 치료되었다. 그가 체임하여 돌아올 때는 병이 치료된 자들이 서로 울면서 보내었다.

드라마에서는 잘 나와있지 않지만 나병은 문둥병, 혹은 한센병이라 불리는 병이에요. 하늘에서 벌을 받아 걸리는 병이라 해서 천형병(天刑病)이라 하기도 했지요. 드라마 속에서 만덕이 병이 옮아 고생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나병은 나병균에 의해 전염되는 병은 맞지만- 감기 낫듯이 쉬이 낫는 병은 아니랍니다.


아무튼, 기적에 이름을 올려 놓고도 기생이 아니라는 둥 정신을 못 차리던 만덕은
사람에 크게 데이고, 병에 한 번 크게 앓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듯 합니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 기생 신분으로부터 해방되고, 어머니를 살해한 의붓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준비하기 시작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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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의 정을 끊고 본격적으로 복수에 돌입하는 만덕 - 눈물로 인연을 끊는 수양모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친부 김응렬을 만나게 됩니다.
둘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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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실제 역사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이라니까요>

'귀양을 온 죄인' 신분으로 통정을 해 아이를 낳았다는 게 밝혀지면 크게 벌을 받게 될 김응렬.
그러나 자신이 만덕의 어머니가 양민이었다는 걸 증명해주지 못하면 만덕은 기생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조선시대엔 계층이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 세습되거든요.)

과연, 두 부녀 사이엔 어떤 일이 펼쳐질지, 만덕은 어떻게 기생 신분에서 벗어나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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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상 김만덕] 제주 기녀는 조폭인가요? - KBS 거상 김만덕 전격 해부 :: 2010/03/23 09:05

    지난 주말 ‘거상 김만덕’ 5회와 6회가 방영되었습니다.
    그동안 열연했던 아역 연기자가 퇴장하고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전환점이 되는 회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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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하게 말을 타고 변신(?)하는 만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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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을 했더니 7년이 지나 갔어요 - 여자의 변신을 제대로 보여준 문선이>


    그리고 만덕이의 어린 시절을 마무리하는 사건은, 만덕이 묘향의 계략에 빠져 그녀의 수양딸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죠. (말이 수양딸이지... 기생 만들겠다는 거였지만요 ㅠㅠ)
    동화를 구하기 위해 묘향의 제안을 받아들인 만덕은 이제 꼼짝 없이 제주 기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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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뭐, 조폭도 아니고...>

    실제 역사에서는 만덕이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어 의지할 곳이 없어 한 기녀에게 의탁해 살다 기녀가 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먼저, 채제공(蔡濟恭)의 「만덕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 만덕의 성은 김이니, 탐라의 양갓집 딸이었다.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의지할 데가 없어 한 기녀에게 의탁해 살았는데,
      조금 자라자 관아에서 만덕의 이름을 기안(妓案, 기녀 명부)에 올려버렸다.
      만덕은 비록 머리를 숙이고 기녀 노릇을 할망정 기녀로 자처하지는 않았다.
      나이 스무 살이 넘어 자신의 사정을 관아에 울면서 호소하니, 목사가 가긍히(불쌍하고 가엽게) 여겨 기안에서 빼주고 양민으로 되돌려주었다. ...’

    그리고 만덕이 죽은 뒤 한 달 뒤인 1812년 11월에 쓰였다는 <구묘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합니다.

    ‘김만덕의 본은 김해 김씨요, 탐라의 양갓집 딸이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홀로 가난으로 고생하며 자랐다.
    살결이 곱고 아름다워 교방에 의탁한 바 있으나, 의복을 줄이고 먹을 것을 먹지 아니하여 재산이 점점 커졌다. ...’

    어쨌든 만덕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기녀가 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처럼 여러 가지 계략을 꾸며 양갓집 규수를 기녀로 끌어들이는 건... 불법행위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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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남자 - 이걸 보면서 문득 생각난 영화, 멀쩡한 여자를 타락시키는 게...>


    『탐라지(耽羅志)』에 따르면, 관기(官妓)는 관비(官婢 : 관아에 속한 여자 노비) 중에서 용모와 재주가 뛰어난 자를 뽑았다고 합니다.

    어떻게든 좋은 인재(?)를 발굴해야만 했던 묘향으로선 만덕이 탐났을 게 분명해요.

    19세기 중반에 작성된 『탐라영사례(耽羅營舍例)』에는 조선시대 제주목에는 관기가 32명, 관비가 17명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하네요.

    그리고 이들 제주 관기는 특히 세력이 무척 강했다고 합니다.
    이익태(李益泰,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의 『지영록(知瀛錄)』의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하네요.


    ‘... 제주에는 관노비의 수가 많다. 그들은 모두 기안에 들어간다. ... 관기는 목사의 수청을 드는 것 이외에도 삼읍의 수령 및 교수, 아객(雅客 : 반가운 손님), 군관, 삼학(三學)의 수청을 들기도 한다. ... 데리고 있는 관기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총애하는 것을 믿고 건방지게 구는데다가 그 세력 또한 굉장하여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 아주 하찮은 일이라도 뇌물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세상에서 이르기를 '제주기의 권세가 무섭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라고 한다. ...’

    뭐, 이렇게 기가 셌던 제주 기생이었으니, 어린 아이 하나 기녀로 끌어들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만덕 역시 제주기에 걸맞은(?) 강단이 있었으니, 묘향의 선택은 탁월한 것이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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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심(一心)을 제대로 보여준 시위 장면>

    그리고 6회 말미에 등장한 흥수!
    자, 7년의 세월. 만덕의 멘토 할매와 첫사랑 흥수가 나란히 제주에 들어오지만, 만덕은 옛날 만덕이 아니었으니...
    변해버린 만덕과 이들이 얽어가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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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이 아니요, 홍이! - 그리고 7년 공부 끝에 그녀를 쫓아 제주까지 온 한 남자>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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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자유에 모미 아냐...(?)>


    참고도서 :
    <거상 김만덕,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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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거상 김만덕,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 2010/03/1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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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게 벌어 크게 쓴 조선의 여장부 김만덕 이야기!
    18세기에 21세기의 삶을 살다 간 여인,
    거상 김만덕의 불꽃같은 삶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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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권 지음 | 244쪽 | 값 11,000원
    도서출판 푸른숲 | 편집_  문학교양팀  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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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 만덕, 길을 나서다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시대 변화를 읽는 눈
    제주에서 상인이 된다는 것

    2부 - 거상의 탄생
    거상이 되기 위한 첫걸음
    타고난 장사꾼
    육지와의 직거래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야
    주문생산제의 도입

    3부 - 이제 곳간을 열어라!
    공물 진상선 경합
    만덕, 널리 덕을 베풀다
    이분이 임금이시고, 저곳이 금강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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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김만덕의 일대기와 더불어 18세기 제주 문화사를 표방하고 있다. 얼마 되지 않는 기록을 놓고 한 인물의 일대기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그 인물이 살았던 시대를 전면적으로 고찰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무엇을 입고 먹으며 살았는지, 생계를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고단한 삶을 달래기 위해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등이 촘촘히 들어찬 이야기 속에서 만덕은 그 시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생생한 캐릭터로 되살아났다.

    조선의 서민층 여성 중에서 생전에 김만덕만큼 큰 공적 명예를 누린 이는 없었다. 그녀는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안동 장씨 등이 개인의 뛰어난 능력으로 일부 상류층에 알려졌던 것과는 사뭇 대비되는 인물이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이들은 양반층에 속했고, 남성들이 정의한 위인의 조건에 들어맞는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만덕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보다 능동적인 인물이었고, 일찍이 나눔의 가치를 깨달은 말 그대로 ‘큰’ 상인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만덕을 한국 역사(특히 여성사)를 대표할 새로운 인물로 내세우려 한다. 만덕은 누구보다 비참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결국 모든 금기를 깨고 제주 최고의 거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룬 뒤에는 그동안 이룬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즉 그녀의 삶을 이끌었던 것은 축적이 아니라 성취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부자유한 시대, 빈한하게 자란 한 여성이 자아실현에 매진하는 모습은 경이롭고 아름답다. 어여쁜 아내, 인자한 어머니가 되기보다는 꿈을 가진 한 사람의 ‘나’로 살았던 김만덕. 그녀는 우리 시대의 진취적인 여성들은 물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도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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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덕은 본래 제주의 양갓집 딸이었으나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한 기녀에게 의탁해 살았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나이가 들자 자연 관기로 뽑혀 들어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만덕의 부모가 죽은 이유는 무엇이고, 그 시기는 과연 언제쯤이었을까? 먼저 아버지의 경우는 만덕이 어렸을 때 장사를 다니다 배가 난파되어 죽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뒤에서 보겠지만 상업이 매우 발달해 있었던 당시 제주에서는 남자들이 연달아 상선에 뽑혀 나가곤 했는데, 바닷길이 멀고 험하여 물에 떠내려가거나 빠져 죽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편 어머니는 만덕의 나이 열두 살 무렵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까 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만덕의 나이 열두 살 때인 영조 26년(1750) 9월에 여역(廬疫)으로 제주에서 죽은 사람이 무려 882명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 본문 21 페이지 중에서

    만덕은 상품유통이 활발한 포구에 객주와 유사한 점포를 차려놓고 뭍과 교역을 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왜냐하면 채제공의 <만덕전>에 "그는 재산을 늘리는 데 가장 재능이 있어 시세에 따라 물가의 높고 낮음을 잘 짐작하여 사고팔기를 계속하니, 몇십 년 만에 부자로 이름을 날렸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 본문 34 페이지 중에서

    "내 재산은 결국 제주 사람들 덕분에 모은 것이니, 이제 저들에게 돌려주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저들이 다 죽어가고 있는데 내가 천만금의 재산을 가진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또 그걸 어디에다 쓰겠느냐." - 본문 202 페이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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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지은이 : 정창권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하면서 저작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그동안 문학과 역사, 예술, 철학, 과학 등을 아우르는 동시에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통합형 연구’를 지향해왔고, 전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글쓰기를 시도해왔다. 특히 여성, 장애인, 노숙인, 아동, 노인 등 우리 사회의 약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영혼’을 되살리는 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연구 성과를 널리 알릴 수 있는 문화 콘텐츠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치밀하게 연구하되, 그것을 이야기식으로 풀어써 대중과 함께 호흡하려고 노력하는 그는 이 책에서 이야기체와 설명체가 교차하는 기존의 형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최대한 이야기체로 전개하되 필요한 부분에서만 역사적 설명을 가하는 방식을 택했다.
      최근의 논문으로는 <조선에서의 장애인 인식>, <김만덕 콘텐츠 개발과 활용방안> 등이 있고, 주요 저서로는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향랑, 산유화로 지다》,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등이 있다.

    2010/03/19 09:54 2010/03/1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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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상 김만덕] 그녀는 기녀였을까 아니였을까 :: 2010/03/11 20:23

    KBS 역사 드라마 ‘거상 김만덕’이 지난 주말에 시작되었습니다. ‘이미연의 복귀작’으로 시선을 집중시킨 것과 달리 초반 방영분에서는 만덕의 어린 시절을 다루느라 이미연 씨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역들의 좋은 연기와 악역들의 포스 때문인지, 간만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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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아역’과 좋은 ‘악역’>

    드라마를 보는 과정에서 재미를 위해 각색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김만덕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아요. 체재공이 남긴 『문암집』의 「만덕전」이 그나마 믿을만한 기록으로 남아 있을 뿐이지요. 소설가 정비석의 『명기열전』에도 만덕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작가가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덧붙인 픽션에 불과하다네요.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정창권)

    역사적 기록이 부족하다는 건 작가에게 있어서 고역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하죠. 시간에 묻혀 가려져 있는 부분들을 상상력으로 멋지게 그려낼 수 있으니까요. 그럼, 여기서 드라마 ‘거상 김만덕’이 재미를 위해 각색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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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여쁘신 건 사실입니다만...>


    1. 너무나도 화려한 만덕의 의상 - 그녀는 기녀였을까? 아니었을까?
      네, 바로 드라마의 처음 부분이죠. 이미연 씨가 살짝 모습을 드러낸 장면이기도 합니다. 기생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옷을 입고 굶주려 죽어가는 제주 주민들 사이를 거닐며 천사처럼 구원의 손길을 펼치는 만덕.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서는 완벽한 자태(?)지만, 실제 역사를 한번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는 장면입니다.

      김만덕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기녀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기적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체재공의 「만덕전」에서는 만덕이 스무살 전후에 기생이 천하다는 걸 알고 양민 신분을 회복하였다고 적혀 있지만, 『정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는 후에 만덕이 정조를 배알하는 일을 기록하면서 그녀를 ‘제주기(濟州妓) : 제주의 기녀’ 혹은 ‘탐라기(耽羅妓) : 탐라의 기녀’로 적고 있어요. 이는 만덕이 끝까지 기녀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죠.

      체재공이 만덕을 높여주려 기녀 신분에서 면천(免賤)한 것으로 적은 것인지, 아니면 실록을 기록하는 사관이 만덕이 신분을 회복하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적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덕이 스무살 무렵 그동안 모은 돈을 밑천으로 장사를 시작해 거상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에요.

      드라마가 만덕전의 설정을 따라갈지, 실록의 설정을 따라갈지, 아니면 작가가 꾸며낸 독자적인 스토리로 나아갈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항상 ‘자냥(없을 때를 대비하여 있을 때 아끼고 모아 두는 습관)’하며 살았던 제주 여인들의 습관을 볼 때, 만덕에게 화려한 옷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여주인공은 항상 예뻐야만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지만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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