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찌푸리게 만드는 우울한 사건 사고를
‘무심한 듯 시크하게’ 받아들이는 방법
1. 소녀시대의 <Gee>를 무한 리피트한다
2. <아내의 유혹>을 시청한다
3. <꽃.남>의 F4와 사랑에 빠진다
4. 아지즈 네신을 읽는다
터키의 국민 작가 아지즈 네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르한 파묵은 그에 대해 “현대 터키 문학에 유례없이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 작가다. 그의 작품들은 포복절도할 웃음과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로 성대한 만찬을 연상케 한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터키의 황석영’, ‘터키의 로베르토 베니니’라고 불리는 풍자 소설의 대가 아지즈 네신을 만나보자.
Q1. 아지즈 네신 씨, 안녕하세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르한 파묵이 당신을 극찬한 기사를 봤습니다. 터키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국민 작가로 당신을 꼽는다고 하던데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당신을 ‘터키의 황석영’이라고 말하는 독자들도 있던데요.
아지즈 네신(이하 네신): 제가 황석영 작가와 비교되는 것은 아마 수감생활과 유배생활을 반복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터키 계엄령 하에서 정부가 언론인들을 검열하고 탄압하는 일들이 빈번히 일어났어요. 저는 그런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자주 썼고, 네티즌 여러분이 여러 개의 아이디로 자신을 숨기듯 저 역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200개나 되는 필명을 쓰기도 했답니다. 그러다가 내란선동 및 좌익활동이란 죄목으로 재판을 받은 횟수만도 250회에 이르지요. 유배생활을 제외하고 5년 6개월간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Q2. 담담하게 이야기하시지만 유배생활은 정말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출간된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는 자전 소설이라고 들었는데요. 네신 : 네, 저는 당시에 <마르코파샤>라는 풍자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있었는데, 그런 제가 정부의 눈엣가시였나 봅니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팸플릿을 만들다가 인쇄소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황당한 게, 인쇄가 끝나기도 전에 경찰이 들이닥친 거라 그걸 읽은 사람이 없었지요. 안 읽었다고 하는 인쇄소 직원들을 심문해서 ‘불온 문서 유포죄’라는 죄목을 붙이더군요. 그러다 결국 유배지로 가게 되었지요. 거기서 소심하고 비굴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많이 겪었지요. 그때 겪은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은 책에 담겨 있습니다. 어쨌든 저보다 더 힘든 유배생활을 겪은 사람들 편에서 보면 제가 유배지에서 겪은 일들은 관광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Q3, 그렇군요, 우배지에서의 경험을 읽으면서 60년 전 터키의 모습이 꼭 우리나라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에 찐한 페이소스를 느꼈습니다. 요즘 한국은 공무원들이 억대의 공금을 횡령한 사건으로 어수선합니다. 작품 중에 관공서에 반드시 비치해두어야 하는 공무원 필독 도서가 있다고 하는데요? 네신: 아, 《생사불명 야샤르》 말씀이시군요. 공무원들의 행태는 세계적으로 비슷한가 봅니다.(웃음) 주인공 야샤르는 열두 살 때 초등학교 입학 서류를 준비하러 동사무소에 갔다가 그곳에서 자신이 ‘공식적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민등록증이 없었던 거죠. 주인공은 혼인 신고도 못하고 아들을 호적에 올리지도 못하고 늘상 불이익을 받으며 죽은 것처럼 사는데, 군복무나 세금 문제 등 정부가 필요한 순간에는 시시때때로 살아나는 거예요. 이런 관료주의의 횡포나 부조리한 세상의 우스꽝스러운 풍경들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인간들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았으면 했습니다.
Q4, 언젠가 "터키인의 60퍼센트는 바보다."라는 말을 해서 터키를 발칵 뒤집은 적이 있습니다. 비난 여론이 들끓었을 때, 당신은 "사실 그때 터키 국민의 92퍼센트가 바보라고 말하려 했습니다."라는 인상적인 말을 남겼지요. 형제의 나라 대한민국의 지금 상황이 많이 어수선하다는 걸 감안해서 한마디 해주신다면? 네신: 음, 반세기 앞서 집필한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과 절묘하게 딱 떨어지는 《개가 남긴 한 마디》를 추천하는 게 좋겠군요. 경제 대통령 뽑는 선거부터 내 탓 네 탓하고 있는 지금 상황까지, 예민한 분들은 어쩌면 소름이 돋을지도 모르겠네요. 아, 오해는 사절합니다. 제게 신기가 있는 건 아닙니다. 터키나 한국이나 비극적으로 희극적인 정치 상황들이 닮아서 생긴 일이니까요. 〈까마귀가 된 파디샤〉,〈진짜 도둑과 녹슨 주석〉,〈당신을 선출한 죄〉,〈아주 무서운 농담〉,〈개가 남긴 한 마디〉, 〈내 잘못이 아니야〉, ……. 작품을 나열하자니 숨이 가쁜데요? (웃음) 녹색 성장이다 뭐다 국민들이 고민이 많겠어요. 아무쪼록 건투를 빕니다.
Q5, 당신은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이라는 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책도, 아이들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동화도 냈습니다. 그렇지만 아지즈 네신의 중심은 뭐니 뭐니 해도 풍자라는 단어로 압축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 풍자는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아지즈 네신의 풍자관을 알고 싶습니다. 풍자가 가진 힘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네신: 저의 풍자관은 아주 단순합니다. 풍자는 세상을 웃음거리가 되는 것으로부터 구제해주지요. 풍자는 냉소와 다릅니다. 《당나귀는 당나귀답게》에서 저는 이런 마음을 풀어놓았습니다. “요즘도 저편의 밝은 곳으로 가기 위해 쉼 없이 유리창에 부딪히며 애를 쓰는 파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 목숨을 잃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것을 바보짓이라고 생각하며 어두운 곳에 죽치고 앉아 있는 파리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길을 택할 것인지는 파리들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다. 하지만 진실은 있다. 어둠 속에 죽치고 앉아 있는 파리의 기념비가 세워졌다는 얘기는 파리들의 역사 그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까.” 부조리한 상황에 분노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연대하고 실천하는 것, 주변을 껴안는 것, 그게 중요하지요.
아지즈 네신 AZIZ NESIN
본명은 메흐멧 누스렛(Mehmet Nusret). 1915년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예술 아카데미에서 문학 공부를 했다. 졸업 후에는 직업 군인으로 근무했는데, 이때부터 '베디아 네신'이란 필명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44년 육군 중위로 퇴역한 뒤, 신문 기자를 거쳐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신문 기자 시절, '카라괴즈'등의 신문에 발표한 풍자 소설과 콩트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시뿐만 아니라 소설, 희곡, 평론 등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백여 권이 넘는 작품 들을 남겼다.
그의 수많은 작품들은 영어, 독어, 프랑스어, 러시아어를 비롯해서 34개국 언어로 번역되었고, 이탈리아, 러시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풍자 문학상을 휩쓸기도 하였다. 1972년에는 고아들에게 교육 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해 '네신 재단'을 설립했으며, 1995년 사망 후 유언에 따라 그의 작품에서 발생되는 모든 인세가 이 재단에 기부되고 있다. 국내에 소개된 작품으로는 「생사불명 야샤르」「제이넵의 비밀 편지」「당나귀는 당나귀답게」「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개가 남긴 한 마디」「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가 있다.
글. 푸른숲 문학교양팀 카스테라
청소년팀 고고싱
푸른숲
2009/03/19 15:30
2009/03/1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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