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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통하는 디자인을 위해 - 북디자이너 권으뜸 :: 2010/06/04 09:27
하지만 그런 유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다부지고 또릿또릿합니다.
이야기를 나눌 때 초롱초롱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그녀,
그녀의 손에선 어떤 디자인이 피어날까요?
여러 가지 궁금증을 안고 그녀와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습니다.

Q. 안녕하세요. 먼저 북 디자이너가 되신 계기를 이야기 해 주세요.
무엇보다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 디자이너시거든요. 패션 디자인이랑 웨딩 디자인을 하셨거든요. 어머니께서 일을 하시면서 힘들어 하시는 걸 바로 곁에서 봐왔던 터라 디자인이란 걸 하기 싫었던 점도 있었어요. 그래서 순수미술 쪽을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는 학문이라서 결국 디자인을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지금은 장르 구분이 무의미해졌지만.
Q. 그럼 특별히 좋아하시는 화가가 있다면?
전엔 인상파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취향이 바뀌더라고요. 지금은 호안 미로와 파울 클레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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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태까지 본 책 중에 가장 맘에 드는 디자인의 책은?
전 모든 인쇄물은 모두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하나 고르라면 허브 루발린이 만든 잡지 <아방가르드>를 고르고 싶어요. 인쇄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잡지라고 생각해요. 허브 루발린은 제가 좋아하는 디자이너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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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다른 건 다 버려도, 이 책만은 포기할 수 없다! 하는 책이 있으시다면?
모든 책은 소중해서 몇 권을 선정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제가 인상 깊었던 책으로 이야기하자면,
중학교 때 읽었던,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의 <세상의 모든 딸들>.
대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읽게 된,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이 두권은 그 시기에 제 독서의 폭을 넓혀주었던 책이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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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학창 시절엔 어떤 학생이셨나요? 그때 가지고 있던 꿈이 있으시다면?
말 그대로 ‘꿈꾸는’ 학생이었어요. 장래 희망 란에 ‘아티스트’라고 적어 넣어 선생님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적도 있었어요.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문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어요. <김민수의 문화디자인>을 읽고 영향을 받았지요.

<김민수의 문화 디자인>
Q. 업무 외 시간엔 보통 무슨 일을 하며 지내시나요?
전시나 공연을 보는 걸 좋아해요. 문화 예술에 있어서는 보고 안 보고의 제한을 두지 않으려 해요. 그 중에서도 영화를 가장 많이 보고요. 특히 고전 영화를 좋아해요. 최근엔 <시>가 참 좋았어요. 지루하긴 했지만, 의미가 굉장히 좋은 영화더라고요.
Q. 결혼은 언제 쯤? 자신만의 결혼관과 가족관이 있으시다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웃음) 꿈을 위해 살고, 서로의 꿈을 지지해주는 가족을 꾸리고 싶어요.
Q.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으시다면?
평소에 워낙 생각이 많아서 최대한 단순해지려고 해요. 등산을 하거나 연을 날리거나, 그냥 조깅을 하거나. 집중할 수 있는 뭔가를 하려고 하죠. 아, 잠을 자는 것도 한 방법이에요! (웃음)
Q. ‘나에게 책은 OO다’ OO 안에 넣고 싶은 단어가 있다면?
음... ‘세상에 흩어져 있는 말들’! 어디선가 본 글인데, 인상이 깊더라고요.
Q. 끝으로 푸른숲 가족 여러분께 한 말씀.
‘명랑사회 도래를 위해 파이팅!’ 너무 고전적인가요? (웃음)
[인터뷰] Hot, 뜨거 뜨거, 뜨거운 것이 좋아! - 김원영 인터뷰 :: 2010/05/14 21:09
[인터뷰] 푸른숲 출판사의 미소~녀 양여진 :: 2010/05/06 11:31
그녀는 푸른숲 사옥 2층으로 들어오는 손님들과 제일 먼저 눈이 마주치는 사람입니다.
회사에 걸려오는 대부분의 전화를 담당하는 그녀는 푸른숲의 목소리입니다.
푸른숲에서 손꼽힐 정도로 바지런한 그녀는 언제나 뭔가를 하느라 바쁩니다.
그런 그녀와 어렵게 인터뷰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푸른숲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여직원이기도 합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푸른숲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소개 부탁드려요.
- 음, 저는 회사의 입출고 및 전산업무랑 회계 쪽 일을 맡고 있어요. 간단히 말하면 회사에 책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 반품 관리를 하고 있지요.
항상 바쁘신 것 같아요. 일이 힘들지 않으신지?
- 힘들다기보다는 재미있어요. 하루하루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거든요. 책마다 정해진 도서 코드를 외우는 것도, 처음엔 저걸 언제 다 외우나 했는데 일을 하면서 점차 저절로 외워지는 거예요. 그런 점이 연륜(?)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 즐거워요. 아, 일하면서 엔터 키를 칠 때 나는 키보드 소리도 경쾌해서 좋아요. (웃음)
푸른숲에 들어오시기 전엔 무슨 일을 하셨는지요?
- 제가 좀 일찍 일을 시작했어요. 19살에 처음 일을 시작했는데, 그때 들어간 첫 직장이 출판사였어요. 그리고 그 다음엔 무역회사에서 3년 정도 일을 했고요. 작년 6월 말에 그 회사를 그만뒀어요. 일하는 것에 너무 지쳐서 3개월 정도 쉴 생각이었죠. 그런데 한 2달 놀고 나니까 추석이 다가오더라고요. 추석에 어머니 용돈이라도 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때부터 일자리를 알아보게 됐어요. 그러다 푸른숲에 들어오게 되었죠. 여기서 일하면서 느끼는 건데, 전 아무래도 출판사 쪽 일이 맞는 것 같아요.
휴일에는 어떤 일을 하시나요?
- 음, 정말 특별한 취미가 없는데. 집에서 심심할 때 하는 거라면... 방 청소? (웃음) 아, 요리해서 먹는 것도 좋아요. 할 줄 아는 건 별로 없지만, 뭔가를 꾸며서 그럴싸하게 차려놓고 먹는 걸 좋아해요. 뭐, 주변 친척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고 한 잔 하는 것도 좋고요.

<광주 대나무 축제에서 한 컷!>
한 잔이라면, 어떤 술을 좋아하시나요?
- 소주랑 막걸리! 달작지근한 술은 별로 안 좋아해요. 술 같지가 않아서. 저는 주로 안주 때문에 술을 선택하게 되는 타입인데, 편육 같은 걸 좋아하다 보니 술 취향도 자연스럽게 소주랑 막걸리 쪽으로 가게 되더라고요. 서민적인 술이라 더 좋아요.
좋아하는 책이 있으시다면?
- 음, 제목이 재미있는 책인데. (웃음) <꿍따리 유랑단>이란 책이요. 클론의 강원래 씨가 꾸린 ‘쿵따리 유랑단’이란 극단을 소재로 한 소설이예요. 그리고 에쿠니 가오리의 <낙하하는 저녁>이랑 한비야 선생님의 <그건, 사랑이었네>도 참 좋았어요.

앞으로의 비전이나 꿈이 있으시다면?
- 일단 푸른숲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싶어요.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면서. 앞으로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를 가지게 되더라도 지금 위치에서 계속 발전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을 하면서 계속 이런 생각이 들어요.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러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지, 발전을 해 나가야지. 뭔가 커다란 꿈이 있는 것도 아니고, 평범하게 사는 게 소원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발전을 해 나가야겠더라고요. 아, 일단은 목표로 잡은 10Kg 다이어트부터! (웃음)
여진씨는 소박하면서도 꾸준히 자기 삶을 꾸려나갈 줄 아는 알찬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맡은 일을 차근차근 해나가는 그녀의 건투를 기원합니다.

인터뷰 | 푸른숲 김현철 ㆍ양여진
[인터뷰] 김만덕 생애의 몇 가지 미스터리 - 정창권 교수 인터뷰 :: 2010/04/12 09:20
요즘 KBS 1TV에서 <거상 김만덕>이란 드라마가 한창 방영되고 있다. 지금까지 수년 동안 김만덕을 계속 연구해왔고, 또 드라마나 공연, 학습만화 등으로 제작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했던 이로서, 김만덕의 생애에서 몇 가지 미스터리한 사항들을 발굴하여 새롭게 얘기해보고자 한다,
원래 김만덕은 어떻게 생겼나?
드라마 <거상 김만덕>에서 만덕 역은 약간 가냘프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이미연 분이 맡고 있다. 한데 역사자료에선 젊었을 땐 살결이 곱고 아름다웠으며, 나이가 들어선 몸이 비대하고 키가 크며 말씨가 유순하고 외모에 후덕한 분위기가 나타났다고 한다. 즉, 관음의 형상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묘비문이나 정약용, 채제공 등의 기록에 의하면, 만덕은 특이하게도 중동(重瞳), 한쪽 눈에 눈동자가 둘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를 전혀 거리끼지 않았고, 오히려 중국의 요임금과 같이 성인들이 지닌 기이한 상으로 보았다.
어떻게 기녀에서 다시 양민으로 돌아왔나?
만덕은 20살 무렵 기녀에서 양민으로 돌아왔다. 원래 기녀들은 나이 50세가 되어서야 기녀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대비속신(代婢贖身), 곧 다른 사람을 사서 역을 대신시키고 풀려나오곤 하였다. 대개 말 한필의 값을 주고 대비속신했는데, 당시 말 한필은 거의 집 한 채 값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만덕의 경우는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기녀에게 의탁해 살았는데, 나이가 들자 그 기녀가 기안(妓案: 기녀 명부)에 올려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20살 무렵 그러한 사정을 목사에게 말한 뒤 양인 신분을 회복했다고 한다.
한데, 만덕은 시종일관 타의적으로만 처신했을까? 필자가 보기에 만덕은 애초 기녀를 돈벌이 수단, 곧 하나의 직업으로 여기고 자청해서 기녀가 되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즉, 젊은 시절 적극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싶어서 스스로 기녀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덕은 어떻게 거상(巨商)이 되었나?
기록에 의하면 만덕은 재산이 많았고, 당시 제주 최고의 부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훗날 한양에 갔을 때 뭇 남성들이 그 소문을 듣고 접근해오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만덕은 과연 어떻게 해서 거상이 될 수 있었을까? 필자의 작품에서 자세히 얘기하고 있듯이, 만덕은 육지와의 무역, 특히 시세차익을 노려 거상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시대상황을 고려하면, 그녀는 포구에 객주(客主)를 차려놓고 제주의 특산물인 말총이나 우황, 미역, 전복, 귤 등을 배에 싣고 육지로 가서, 제주에 필요한 물건들인 곡식이나 소금, 철, 비단 등을 사서 들여왔던 듯하다. 또 나중엔 여러 척의 배도 거느리고 선주(船主)도 되었던 듯하다.
한데 근래 필자는 다산 정약용의 생가를 답사하던 중 이상한 지명을 발견했다. 다산이 유배되었던 강진 도암면에 '만덕리(萬德里)'라는 지명이 있었던 것이다. 강진은 당시 제주 민선(民船)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는데, 그곳에 혹 만덕의 객주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대체 얼마나, 왜 구휼(救恤)했을까?
만덕의 나이 56세인 정조 19년(1795) 제주에 기근이 들어 백성들의 시신이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당시 제주 인구는 47,735명이었는데, 1년만에 무려 17,963명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이에 보다 못한 만덕이 자신의 재산을 내놓아 뭍에서 쌀을 사들여 제주 사람들을 구제했는데, 일설에 의하면 곡식 500석을 사들여 50석은 친척들에게 나눠주고, 나머지 450석은 관아에 바쳤다고 한다(당시 제주에서의 곡식 100석은 육지에서의 1000석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그럼 만덕은 대체 왜 구휼을 결심했을까? 먼저 그동안 돈을 너무 악착같이 벌어서 반성하는 의미로 그랬을 수도 있다. 당시 제주에 잠깐 놀러왔던 심노숭은 '만덕은 품성이 음흉하고 인색하여 돈을 보고 따랐다가 돈이 다하면 떠났는데, 남자가 입은 바지저고리마저 빼앗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유독 심노숭만이 감정적인 악평을 해놓았는데(그 깐깐한 추사 김정희마저도 만덕에게 은광연세(恩光衍世: 은혜의 빛이 널리 퍼지다)라는 글을 써줄 정도였다), 아마 심노숭이 제주에 갔을 때 뭔가 서로 다툼이 있었던 듯하다. 그렇지 않으면 실제로 만덕은 돈만 아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르는데, 이에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일순간에 큰돈을 내놓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만덕이 구휼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큰마음'에서 비롯된 듯하다. '나라도 있고 양반도 많은데, 제주 사람들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세상이 그들을 구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나라도 구해야겠다'는 심정으로 구휼했다는 것이다. 원래 만덕은 여자임에도 당당히 객주를 차리고, 뭇 남성들을 거느리고 무역을 할 정도로 포부가 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혹 채제공과 스캔들은 없었나?
구휼 후 정조 임금의 특별한 배려로 한양에 올라온 만덕은, 처음엔 거처할 곳이 없어 무척 힘들게 생활하였다. 이에 채제공이 임금께 아뢰어 비변사에 머물고 선혜청에서 달마다 식량을 대주도록 하였다. 또 채제공은 만덕이 제주로 돌아갈 무렵, 특별히 <만덕전>을 지어주기도 하였다.
대체 채제공은 왜 그토록 만덕을 후대(厚待)했을까? 혹 무슨 스캔들은 없었을까?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두 사람은 남녀 관계를 초월한 인간적인 만남이었던 듯하다. 지우(知友), 곧 말이 통하는 관계였다는 것이다. 대개 우리는 남자와 여자가 좋게 지내면 무조건 이상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물론 질투심에서 그럴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남자와 여자를 초월한 만남도 의외로 많은 법이다.
왜 평생 독신으로 살았을까?
조선시대에 결혼은 필수적이었다. 만약 과년한 자식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 살면, 그 부모가 처벌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만덕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과연 왜 그랬을까?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남자들이 과거 그녀가 기녀였다고 결혼하기를 꺼렸거나, 아니면 기녀 출신으로서 남의 정실이 되기엔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만덕도 그럴 바엔 차라리 혼자 사는 길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물론 만덕도 뭇 여성들처럼 남자와 몸도 섞어보고 아이도 낳아보고 싶었을 테지만, 나이가 들어선 그저 일을 통해 삶의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한다.
금강산 구경 후 제주로 돌아온 이후의 삶은 어떠했나?
만덕은 58세에 금강산 구경을 마치고 한양에 들렀다가 다시 제주로 돌아온다. 그리고 74세인 순조 12년(1812)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때까지의 행적에 대해선 기록이 부재하여 전혀 알 길이 없다. 아마도 객주를 통한 무역업을 계속했을 듯한데, 그렇다고 일에만 집착한 것이 아닌 노년의 여유로운 삶을 즐기거나 자신만의 상도(商道)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해주기도 했을 듯하다.
그녀는 유언으로 '내가 죽거든 제주 성안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묻어달라!'고 했다는데, 죽어서도 제주 사람들을 돌보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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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KBS 사보 4월 호에 실린 정창권 교수님(<거상 김만덕,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의 저자)인터뷰 글입니다.
[인터뷰] 푸른숲 북디자이너 김명선 인터뷰 :: 2010/03/31 18:18

운전석 시트는 이미 따끈하게 데워진지 오래라 이젠 뜨거울 지경입니다. 이마에서 한 줄기 땀방울이 흘러내립니다. 핸들에서 느껴지는 묵직하고 단단한 힘이 핸들을 꺾는 손을 가로 막습니다. 자신이 핸들을 쥐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핸들이 자신의 몸을 잡아 비트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푸른숲 빌딩 옥상에서 몽돌이가 힘내라는 듯 코를 난간 밖으로 내민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밟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머뭇거리는 사이 페달 위에 어설피 놓여 힘이 꽉 들어간 다리에서 통증이 느껴집니다. 그녀는 탄식을 내뱉습니다. 아아, 베스트 드라이버의 길이 이렇게 험난한 것이었던가요. 왜 일자 주차는 이토록 어려운 건지 모르겠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님들은 허공에 손가락으로 작은 원을 그리는 것 하나만으로 날아가는 새를 불러들일 수 있었다 합니다. 몸에 밴 살기를 없애고 자연과 일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갔기 때문이라는데요. 서울시의 더러운 공기에 찌들고, 그보다 더 지저분한 닭둘기를 쫓느라 살기등등해진 마음을 가지게 된 오늘날의 우리. 그러나 디자인팀 김명선 대리님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푸른숲 마스코트 몽돌이를 춤추게(?) 하는 사람입니다. 평소 몽돌이를 너무 아끼고 사랑해주는, 따뜻한 미소를 가진 그녀를 만나보았습니다.

평소 푸른숲의 마스코트, 몽돌이를 많이 아끼시는데요, 강아지 말고도 좋아하는 동물이 있으신가요?
원래 개를 좋아한 건 아니었어요. 집에서 강아지 두 마리를 기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제가 변하기 시작했지요. 집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큰 웃음을 주는 강아지들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걸 알게 될 때쯤, 푸른숲에 몽돌이와 몽자가 왔어요. 너무 귀여워서 반해버렸어죠. (웃음) 그리고 걔네들이 점차 커가는 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큰 강아지의 매력(?)에 빠지게 됐죠. (웃음)
업무 외 시간엔 보통 무슨 일을 하시며 지내시나요?
수영을 다시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때 처음 시작했던 운동인데, 몸치인 제가 제대로 하는 유일한 운동이에요. 오랜만에 시작한 건데 한창 재미를 붙였어요. 수영 말고는... 운전 연습! 베스트 드라이버가 목표에요. 그래봐야 2종 오토 면허지만. (웃음) 집에 있는 차 가지고 가끔 출근도 해요. 요새 날씨가 춥잖아요? 운전석이 따끈해지는 게 좋아요. (웃음) 그리고 운전을 하면서 느껴지는 그 긴장감도 좋고. 집에 오면 운동한 것처럼 몸이 풀리면서 노곤해져요. (웃음) 요즘은 일자주차랑 씨름중이에요. 이게 참 어렵더라고요.
4년 된 남자친구가 있으시다고 들었어요.
햇수로는 4년인데, 정확히 따지면 3년 조금 넘었지요. 동갑이라 그런지 싸움을 많이 해요. 나이 차이가 있으면 한 쪽이 져 주거나 나이로 누르거나 해서 괜찮을 텐데, 동갑끼리는 그런 게 없거든요. 그냥 이겨야지. (웃음)
처음엔 친구의 친구로 만났어요. 그래서인지 소개팅이나 그런 거랑은 다르게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연락하고, 자연스럽게 몇 번 만나니까, 자연스럽게 대쉬가 들어오더라고. (웃음)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귀게 됐어요.
그럼 결혼은 언제쯤?
글쎄요?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웃음) 나는 ‘이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데 가끔 다툴 때에는 참 속상해요. 이런데 결혼을 해도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에 좀 망설여지고 고민도 하긴 하지만, 사랑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잖아요. (웃음) 한결같이 저에게 베풀어주고 챙겨주는 남친이 듬직하고 그래요.
자신만의 가족관이 있으시다면?
음... 가족관? ‘간지 나는 가족?’ (웃음) 농담이고요. 서로 존중해줄 수 있는 가족이 됐으면 해요. 어렸을 적 희망사항이 존경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나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남자친구가 동갑이라고 해서 친구 대하듯 하는 건 조금 아니다 싶어서, 조심하려고 노력중이에요. 그래서 결혼하면 서로 존경심을 가지고 대하는 가족이 되었으면 해요.
입사하고 가장 보람찼던 경험은?
제가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이 작은 출판사였어요. 그 다음에 들어간 회사는 첫 번째 회사보다는 조금 큰 회사였고. 푸른숲은 세 번째로 일하고 있는 회사예요. 처음 회사에 들어오고 얼마 안 지나 한비야 선생님의 책을 준비하게 되었어요. 그때 광고와 홍보물 작업이 마구 마구 밀려드는 걸 보고 참 신기했어요. 베스트셀러가 나오는 회사는 처음이었거든요. 당연히 베스트셀러를 판다는 거대한 일을 맡게 된 것도 처음이었고요. 그 ‘거대한 일’에 일조한다는 게 참 뿌듯했어요. 일하면서도 참 보람찼지요.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웃음)
앞으로 좀 더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음, 제가 이제 30살이에요. 서른이 된다는 거, 이거 연초에는 몰랐는데, 이제 3월이 되고 나니 나이에 대한 부담감이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다른 게 아니라 ‘어려 보여요’라는 말에 마냥 좋아할 수 없게 되었죠. 예전엔 마냥 좋았는데 이젠 ‘철이 없어 보이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니까요. 나이 값이라는 게 이런 건가 봐요.
그래서 좀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어요. 어릴 때 세상을 좁게 보고 더 넓게 보지 못한 게 후회가 되거든요. 일에서도 그래요. 디자이너라고는 하지만 스스로 정식 디자이너라고 하긴 부끄러우니까. 좀 더 자신에게 당당해지고 싶어요. 그러니까 좀 더 열심히 배워야지요. 아직도 배울 게 너무 많아요. (웃음)

김명선 대리님은 항상 ‘성장’을 염두에 두고 노력하는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몽돌이와 대화(?)를 나누며 스트레스를 푼다는 그녀. 천진난만함 속에서도 성장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작가] 임혜지의 책에 대한 단상들 :: 2010/03/09 14:12
외국에 살면서 저는 거의 모든 독서를 독일어로 했어요. 그 중에서도 '책 읽어주는 남자' (Der Vorleser, Bernhard Schlink)와 '느림의 발견' (Die Entdeckung der Langsamkeit, Sten Nadolny)이 가장 인상에 남는 책이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은 책이고, 아직도 가끔씩 다시 읽는 책입니다. 앗, 그러고 보니까 둘 다 독일 작가의 책이군요. 요즘은 세월이 좋아졌지만 인터넷을 알기 전에 저는 한글로 된 활자에 굉장히 굶주렸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몇 권 되지 않는 한국책은 내용이 뭐든 간에 거의 달달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읽었지요. 저는 책을 원래 속독을 넘어 폭독에 가까울 정도로 빨리 읽어치우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마음에 드는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늘 새로운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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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쓴 첫 책은 독일어로 쓴 전공서적이에요. 두 번째와 세 번째 책을 근년에 한국어로 썼지요. 제가 그동안 써두었던 에세이들 중에서 건축에 관한 내용만 추려서 출판한 것이 재작년에 나온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한겨레출판)'입니다. 그러고나서 시사와 일상에 대한 에세이들이 좀 남았길래 제가 출판사에 여쭤봤습니다. 사실 저는 대운하라던가 인권, 성매매 등 시사에 관한 글을 출판하기를 내심 바랬지요. 그런 것이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푸른숲에서 '일상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모토로 소소한 일상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꼭지들을 절묘하게 조합해서 '고등어를 금하노라'로 멋지게 묶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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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저는 소설도 썼답니다. 저의 첫 한국책인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을 준비하면서 저의 한국어 실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일단 중단하고 '물안개의 집'이라는 소설을 먼저 썼습니다. 내 마음 속에 떠 있는 상을 잡아내어 표현하는 연습으로는 사랑 소설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데 뭣도 모르고 뛰어들었다가 아주 혼이 났지 뭡니까? 소설을 쓴다는 작업이 아주 사람 영혼을 말리고 진을 빼더군요. 제가 초보자라서 그랬겠지만 하도 감정이입을 하다보니 소설의 주인공이 임신하니까 저까지 가상임신을 해가지고 이거 실화라고 오해받는가 싶어서 가슴이 덜컥했네요.

소설을 다 쓰고보니 제법 제 마음에 들길래 여기저기 문학상에도 내보고 여러 출판사에 문의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블로그를 만들어서 연재로 솔솔 풀어버렸지요. 많지는 않아도 뜨겁게 공감하는 독자들도 만났고 해서 저는 성공작이라고 자부합니다. 그 소설을 쓰면서 저와 남편 사이의 깊은 상처가 치유된 면도 큰 수확입니다. 초보자로서 글쓴이의 내면세계를 겁없이 드러낸 작품이라 이제는 누가 출판하자고 해도 별로 반갑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책이 팔리고 안 팔리고는 우연이라고 믿고 있어요. 독자들이 특정 테마를 바라는 시기에 우연히 그런 책을 내면 잘 팔리는 것이고, 암만 괜찮은 책이라도 독자들이 시기적으로 외면하는 테마라면 안 팔리겠지요. 그런데 글을 쓰는 사람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쓰는 거거든요. 작가가 독자들의 변화하는 입맛에 다 맞출 수도 없고, 또 그러고 싶어도 그게 안 되니까 글 쓰는 사람들이 가난한 거 아니겠어요? 저는 글 쓰는 그 순간만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그 후에 잘 팔리거나 안 팔리는 건 제 덕도 탓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정말 쓰고 싶은 것은 탐정소설이어요. 잔인하지 않으면서 스릴 있는... 고건물에 얽힌 글감도 많이 확보해놓았구요,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까지 미리 써놓았다지요. (앗, 그런데 독일어로 썼구나.) 그런데 언제 그것을 쓰게 될지는 좀 요원합니다. 요즘 제가 거의 의무감에서 숙제처럼 쓰고 있는 글들은 독일 운하에 관한 칼럼 등 시의성이 있는 글들이거든요. 사대강 공사처럼 끔찍한 사건만 막고 나면 저도 한국 일에 신경을 끄고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에는 저의 문제지요. 제가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은 계속 일어날 테니까요. 또 저랑 독일어로 전공서적을 같이 내기로 한 독일 노교수님이 한 분 계신데 제가 아마 그 약속도 거절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언젠가는 양단간에 결정이 나겠지요. 제가 의무감에서 쓰는 글을 더욱 정성껏 씀으로써 만족감을 느끼던지, 아니면 어느 순간 의무감을 확 던져버리고 탐정소설을 쓰던지...
어쩌면 제가 탐정소설을 쓰더라도 한국어로 쓰게 될지도 몰라요. 제가 독일어로 소설을 쓴다면 꽤 오랜 시간을 모국어와 작별하고 독일어에 몰입해야 할 텐데 제가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을지도 몰라요.

[인터뷰] 임혜지 작가님을 인터뷰할 블로거를 찾습니다 :: 2010/03/09 09:45

블로거 발표 : 3월 18일
신청 방법 : 블로거 이름, 블로그 주소, 인터뷰 질문 5가지 이상을 적어서 degool@prunsoop.co.kr 토트 메일로 보내주시고 덧글로 한줄 남겨주는 센스를 발휘해주세요~
인터뷰 방법 : 임혜지 선생님께서 블로거와 질문을 보시고 한 분을 지정하시면 그 분에게 임혜지 선생님과 메일로 인터뷰가 진행됩니다. 여기서 블로거님의 자기 소개와 질문이 선정되는 중요한 기준이 되겠지요. 질문의 내용에는 아무 조건이 없으니 마음껏 하시면 됩니다.
참조 사항 : 블로거가 아니어도 인터뷰어로 신청을 하실 수는 있으나, 블로그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면 더 좋겠네요. 블로거의 선택은 전적으로 임혜지 선생님이 선택하십니다.
[인사] 임혜지 작가가 블로거들에게 :: 2010/03/08 16:26
블로거에게 쓰는 편지
이렇게 블로거 독자들과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평소에 한국말로 대화할 기회가 적어서 이렇게 글로나마 대화하는 걸 참 좋아해요.간략하게 제 소개를 하자면 전 지금 36년째 독일에 살고 있는 50대 여성이고요, 문화재 연구와 고건물 실측이 한동안 본업이었어요. 지금은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삶의 질을 높이고 좀 더 즐겁게 살려구요.
저는 독일인인 남편과 성년이 된 아들과 딸을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지로 여기며 살고 있지요. 저는 우리 아이들이 남편과 저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인간들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답니다. 당연하지요. 우리가 얼마나 정성을 들여서 키웠는데요. 그래서 딸이 시험 전날 밤에 춤추러 나가서 집에 안 들어와도 저희 부부는 쿨쿨 먼저 잡니다. 부모 사랑 듬뿍 받고, 넘치지는 않아도 모자라는 것도 없이 편안하게 자란 세대인데 자기들 인생을 오죽 잘 알아서 설계하겠냐고요. 옆에서 부모라고 괜히 믿지 못하고 걱정하는 것은 아이의 정서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독일 부모들이 다 이런 건 아니에요. 독일에서도 저희 가정이 좀 독특한 편입니다.)
남편과 저는 극과 극으로 다른 사람이어요. 정서적으로 공통점이 없다 보니 이론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저희 부부 사이에서 유일한 소통의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척하면 삼천리일 사안을 가지고 저희는 늘 머리를 싸매며 갑론을박 했는데, 이런 점이 저희 관계의 매력이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젊어서는 이런 상황이 참 한심하고 성가셨지만 이제 나이 먹으면서 보니 그렇게 다른 점으로 인해 우리는 서로에게 도전이 되어주고 서로를 키워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 부부는 아직도 잘 싸우지만 이젠 절망하지는 않고 쪼금 미워하다가 금방 잊어버립니다.
임혜지 작가님

[인터뷰] 푸른숲 마케팅팀 문창운 :: 2010/02/03 18:32

... 그 옛날 청림(靑林)에 기골 장대한 장부 한명이 머물고 있었으니, 그 성은 문이요, 이름은 창운이라 하였다. 키가 팔 척에 행동거지가 묵직하여 발걸음을 놀릴 땐 산이 하나 움직이는 듯 했다. 중후한 모습과 다르게 농을 즐기고 풍류를 사랑하여 그를 따르는 벗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 날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청림에 들게 된 연유가 궁금하여 가끔 그에게 그 경위를 묻곤 하였으나, 그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창운이 가만히 손을 들며 가로되,
“내 옛일이 이미 지나 허망함을 알게 되었으니 가볍게 털어 놓고자 하노라”하니, 벗들이 귀 기울여 듣더라...
푸른숲 내에서 마케팅팀은 가장 활동적인 부서입니다. 항상 거래처와 전화를 하고, 서점과 회사를 분주히 오가고, 각종 행사를 준비하느라 바쁘지요. 그 가운데 듬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분이 계세요. 바로 문창운 대리님입니다. 언제나 외근 때문에 바쁜 그를 어렵게 만나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특파원이 꿈이었어요.”
푸른숲에 들어오게 된 경위를 묻는 뻔한 질문에 그는 엉뚱한 대답으로 응했습니다.
“군대에서 내 꿈이 뭔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됐어요. 그러다가 세계 각국을 전전하는 특파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방송국 쪽으로 일자리를 알아보게 됐어요. EBS에서 계약직으로 영상 편집 일을 하게 됐지요.
2년간 일하다 보니 이쪽 일이 더 내게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쪽 분야에서 더 욕심을 내게 됐어요. EBS에서 재계약 요청이 들어왔는데 그걸 마다하고 독립 스튜디오에 들어갔어요. 그곳에서 사용하는 고급 편집기술을 배우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거기 사정이 제 생각 이상으로 열악했어요.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보다 다른 이유로 받는 스트레스가 더 많았고요. (웃음)
슬슬 결혼을 생각할 나이가 됐는데 이 일로 평생 벌어먹고 살긴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출판계에 입문하게 되었죠. 평소 책을 좋아했고,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산업이라는 면에서 제 꿈과 비슷한 데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연애? 할 말이 많은데...”
문대리님은 작년 8월 31일에 결혼을 했습니다. 아내분이 굉장히 미인이시라 회사 내에서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는데요. 연애와 결혼에 관해 묻자 그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띠우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군대 가기 전에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한창 일하던 중 그곳에서 알바생 구인 광고를 문 앞에 붙여 놓았는데, 사람을 구해서 떼어야 하는 걸 제가 잊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걸 보고 지금의 와이프가 찾아왔지요.”
첫눈에 그녀를 보고 반한 문 대리님은 알바 자리가 없다는 말을 듣고 돌아가는 그녀를 붙잡기로 마음먹었답니다. 가게 사모님을 ‘저 친구와 함께 일하게 해주시면 정말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설득하고 멀리 가버린 그녀를 찾아 복잡한 경희대 골목을 뒤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둘은 함께 일하게 됐지만, 둘의 관계는 아직까진 대리님의 일방적 짝사랑이었어요. 결국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문 대리님은 군대에 가게 됩니다.
“제대 후 방송국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쳤어요. 집에서 며칠 앓으면서 나름 관계정리(?)를 했지요. 그때까진 이 친구와 저의 관계가 애매한 관계였어요. 잘 안 만나주고, 핑계대고, 1년에 한번 볼까 말까한 사이였지요. 그래서 이번에 결판을 내겠다는 생각으로 메일을 보냈어요. 그런데 반갑게 답장을 하는 거예요, 이 친구가. 기회가 왔구나 싶었죠.”
그렇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그녀와 7년 연애 끝에, 두 분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짝사랑으로 시작된 연애의 성공 비결로 문 대리님은 ‘편하게 대하기’를 강조했습니다.
“마음을 접으려고 만난 거라 전과 다르게 막 대한(?) 게 주효했던 것 같아요. (웃음)”
“아들과 내가 생긴 게 닮은 것만으로 만족해요”
요즘 관심사를 묻자 그는 곧바로 ‘육아’라고 말했습니다. 11개월 된 아들을 둔 그는 요즘 한창 돌잔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돌잡이 땐 붓을 집었으면 좋겠어요. 아들이 공부를 잘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거든요. 편집부 직원들처럼 글에 소질이 있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됐음 해요. 나에게 없는 걸 아들이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단 거죠. 아들이 저랑 닮았으면 하는 마음은 없냐고요? 생긴 게 닮은 걸로 만족해요. 그 안에 담긴 성격이나 다른 건 차라리 아내를 많이 닮았으면 해요. (웃음)”
“꿈은 ‘뭐가 되겠다’가 아닌 ‘어떻게 살겠다’의 의미가 큰 것 같아요”
KTF 부사장의 입지전『모티베이터』를 감명 깊게 읽었다는 그는 꿈에 대해 그렇게 정의했습니다.
“뭐가 되겠다, 어떤 걸 해 보겠다가 아니라 그때그때 살아가는 과정에서 가지는 삶의 태도가 중요하겠죠. ‘뭐가 되겠다’하는 꿈은 지금 제겐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바라는 게 있다면 와이프랑 행복하게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싶은 거? (웃음)”
‘복권이 당첨되어 만나도 열 받게 되는’ 냉소 유머의 달인이자 푸른숲 엔터테인먼트 계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는 문 대리님은 소탈하고 편안한 사람이었습니다. 매달 월급날마다 ‘한 달 열심히 살았구나!’를 외치며 파이팅한다는 그의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
[인터뷰] 주니어팀 김솔미 :: 2010/01/07 16:00

3층은 언제나 조용했습니다. 말 대신 글이 지배하고 있는 곳. 칸막이 너머에 선 수많은 이야기들이 원고 속 글자로 아로새겨져 편집자들의 애정 어린 시선을 받고 있을 터였습니다.
그들이 보고 있는 이야기는 어떤 것들일까. 궁금해진 그는 책상 쪽으로 다가섰습니다. 그때 칸막이 너머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 곳은 주니어팀 김솔미 대리님의 자리였습니다. 소리를 내며 떨어진 것은 페퍼톤스의 시디였습니다. 떨어진 시디를 주으러 책상 쪽으로 다가서는 오스카의 귀에 미카의 간지러운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녀는 자리에 없었습니다. 스피커에서는 여전히 미카의 노래가 조그맣게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책상 정리 중이었나 봅니다. 책상의 모든 서랍이 열려 있었고, 그 안에 담겨 있었을 물건들이 모두 책상 위에 서낭당 앞 돌탑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었습니다. 정성스럽게 쌓여 있는 물건들이 아니었다면 도둑이 든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법한 광경이었습니다. 오스카는 손에 든 시디를 조심스레 물건들의 탑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때 쌓인 물건들이 중심을 잃고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오스카는 당황해 어떻게든 일렁이는 물건들을 진정시켜보려 했지만, 물건들의 탑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오스카는 물건들을 이불처럼 덮고 누워 있었습니다. 비실비실 일어난 오스카는 바닥에 널린 물건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지었습니다. 자리를 난장판으로 만든 건 누가 뭐래도 그의 책임이었습니다. 재빨리 정리를 해야 했습니다. 이왕이면 김솔미 대리님이 돌아오기 전에 말이죠.
꼬마 니콜라의 라임 오렌지 나무
오스카는 자신의 손으로 막아내지 못해 바닥에 떨어진 책을 하나 집어 듭니다. 귀퉁이가 닳은 책 표지에는 '꼬마 니콜라의 라임 오렌지 나무' 라고 적혀 있습니다. '꼬마 니콜라'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짬뽕인 것 같습니다. 책을 펼쳐 보았습니다. 군데군데 찢겨져 있고 물이 번진 것처럼 글자가 흐려져 보이지 않는 곳이 많이 보였습니다. 어릴 적 그녀가 화장실을 갈 때까지도 손에서 떼어놓지 않을 정도로 좋아하던 두 책은 이제 내용이 온전히 기억나지 않아 서로 헷갈릴 정도로 오래된 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구라다 말풍선에는 아직도 그 책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만큼 그녀에게는 감명 깊은 책이었나 봅니다.
전쟁과 평화, 두 얼굴의 역사
가까스로 팔로 막아낸 책은 '전쟁과 평화, 두 얼굴의 역사'였습니다. 반질반질한 윤기가 남아 있는 새 책이었지만 군데군데 이빨 자국이 보였습니다. 쉬이 읽어 삼킬 수 있을 만큼 말랑한 책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책을 펼쳐드니 잔뜩 그어진 밑줄이 눈에 들어옵니다. 책을 만들며 겪었던 그녀의 고충이 느껴집니다. '1939년 2차 세계대전' 이라 적힌 글자에서 수많은 밑줄이 뻗어 나온 것이 보입니다. '왜 전쟁이 나쁜가?', '군수업자의 이윤 추구', '히틀러', '홀로코스트' 등 수많은 생각의 덩어리들이 밑줄에 매달려 덜렁거리고 있습니다. 뭔가 생각할 거리가 잔뜩 담겨 있는 책 같습니다. 가만히 손을 뻗어 생각의 덩어리들을 밑줄에서 떼어내어 보려 하는데, 옆에서 커다란 물건 하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집니다.
목발
이젠 별게 다 튀어나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꽤나 오랫동안 쓴 것 같아 보이는 목발에는 꼬리표가 달려 있습니다. 'Since 2009. 5월'. 좋을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는 평이한 한해였지만, 5월에 사고를 당해 목발 신세를 지게 된 것이 그녀에게는 기억에 남는 일이었나 봅니다. 언제나 몸이 마음보다 빨랐던 그녀였기에 '마음은 멀리 있는데 몸은 여기 있어야만 하는' 3주간의 목발 생활은 괴롭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모로 신경써주는 회사 동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낸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똘레랑스 1015
어렸을 때처럼 그녀는 요즘도 책을 달고 다니는 모양이었습니다. 오스카는 점심시간에 그녀가 이 책을 들고 휴게실로 들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 책에 대해 묻자 그녀는 '아이들에게 인권과 가족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책'이라 말하며 요즘 이런 경향의 책들이 많이 눈에 띄어 읽어보기 시작했다고 대답했었습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자
단단한 아크릴 판 위에 굵은 글씨로 쓰여 있는 그녀의 좌우명. 그녀는 저 좌우명 아래 2009년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연애
하트가 알알이 박힌 안경이 수줍은 듯 책들 사이에서 굴러 떨어집니다. 그녀는 연애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만들어서 좋다고 말했습니다. 행복한 마음이 깃든 책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거니까요. 그녀는 그런 면에 있어서 연애는 책을 만들 때도 커다란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솔로가 아닌 시점' 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연애는 해야 한다”라는 거지요.
너만 그런 건 아니야
물건을 정리해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고 오스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눈에 책상 한 구석에 구겨진 채로 처박힌 종이가 들어옵니다. 그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너만 그런 건 아니야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너무 고민하지 마.
고민되는 건 이해하지만 너만 그런 건 아니야.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들이
누구나 재능과 꿈이 한가지씩은 있는 법이라고
사기를 치는 바람에 그렇지,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당신은 음악을 하지 않냐고?
나, 음악 하는 거에 대한 확신을 갖기까지 무려 15년 걸렸어.
38년 만에 겨우 하나 건진 거라구.
그렇게 쉽게 찾아지는 게 아니더라고.
- '이석원 일기' 중
음, 아무래도 그녀는 선생님의 '구라'에 직접적인 피해를 본 사람 중에 한 명인 것 같습니다. 착실하게 학교를 다니던 그녀는 졸업 후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해 방황했습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콤플렉스였고 들추기 곤혹스러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와중에서 '책을 만드는 일은 멋져 보인다!'라는 느낌 하나만으로 일을 시작했고, 이 일에 들어선 후에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구라다 풍선은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어요

기껏 정리한 물건들을 왜 치워 버리냐는 오스카의 말에 그녀가 대답합니다.
“2010년이잖아요.”
아아, 그렇군요. 이젠 더 이상 2009년이 아닌 겁니다. 그녀는 책상 위에 늘어놓을 2010년의 새로운 물건들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다시 2010년이 지나고 새해가 다가오면, 그때 그녀는 새로운 말풍선을 준비해 2010년의 기억이 가득한 물건들을 집어넣어 보관하겠지요. 그때, 그 말풍선의 이름은 무엇이 될지 궁금할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