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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옮겨다 준 당신의 목소리 - 「더 리더」속의 책들 :: 2010/06/23 17:50
본 지 꽤나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책이 많이 나오는 영화 중 하나였지요.
케이트 윈슬렛의 열연이 빛났던, 「더 리더」입니다.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이 영화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남주인공 '마이클'이 여주인공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는 대목입니다.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부제처럼,
언제나 사랑을 나누기 전에 책을 읽어줬던 남자,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었던 여자.
그의 목소리에서 그녀는 책 속에 담긴 세상이 펼쳐지는 걸 느꼈을 거예요.
책을 읽어주고 그것을 듣는, 사소하지만 그만큼 애정이 넘치는 그들의 모습은
그 안에 숨기고 싶었던 한나의 비밀이 2차 세계대전이란 비극과 어우러져
그저 젊은 날의 추억으로 여기기엔 너무나 가슴 아련한 기억으로 두 연인에게 남게 됩니다.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래가 유행했던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듯이,
마이클 역시 책을 보며 오래 전 그들이 나누었던 추억을 떠올리는데요.
그럼 여기서 그가 읽어주었고, 그녀가 들었던 책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오디세이 (Odyssey), 호메로스 지음

오디세이, 오딧세우스, 오뒷세이아... 등으로 불리는 이 책은
그리스 신화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 이후 귀환하는 과정을 엮은 서사시입니다.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영웅들 가운데 가장 지략이 뛰어난 영웅으로 손꼽히는 오디세우스는
그 유명한 '트로이 목마'의 계책을 생각해낸 사람이기도 합니다.

<트로이 목마 - 이래서 어른들이 아무거나 함부로 주워오지 말라고 하시는 겁니다>
원래 그는 자신이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면 20년의 세월 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참전을 피하려 미친 척을 하지요.
그의 연기에 모두 속아넘어갈 뻔 하지만, 아들 텔레마쿠스를 그가 몰던 쟁기 앞에 갖다 놓아 탄로가 나게 됩니다.
아무리 미친척을 한다 해도 아들을 쟁기로 갈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요.
일단 참전을 마음먹고 그리스 군에 합류하게 된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최고의 용장 아킬레우스를 합류시키는데 결정적 공을 세웁니다.
아킬레우스는 그의 어머니 테티스 여신의 만류로 궁전에 숨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는 미남자였던 터라 궁전 안 수많은 여자들 사이에 숨어 있으면 구별을 할 수 없었죠.
여기서 오디세우스가 꾀를 냅니다. 수많은 보석과 장신구들을 여자들 사이에 뿌린 거죠.
그리고 그 가운데 칼 한자루를 끼워 넣어 뿌렸는데,
다른 여자들이 정신없이 보석을 줍느라 난리를 치는 가운데 아킬레우스 혼자 칼을 집어듭니다.
그렇게 정체가 탄로난 아킬레우스는 참전을 결심하게 되죠.
트로이 목마의 계책으로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는 고향 이타케 섬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트로이 함락 이후 약탈 과정에서 신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저주를 받아 그후 10년간 타향을 떠돌며 고난을 겪게 됩니다.
이 과정이 바로 <오디세이>에 담겨 있지요.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는 세이렌>
노래를 불러 선원들을 암초로 유인해 배가 난파하도록 만드는 마녀 세이렌.
오디세우스는 배를 모는 부하들에게 납으로 된 귀마개로 귀를 막게 해 노래를 듣지 못하게 하지요.
그러면서도 자신은 세이렌의 노래가 어떤지 듣고 싶어 자신을 돛에 묶게하고 그녀들의 노래를 듣습니다.
넋이 나간 그의 표정이 재미있는 그림입니다.

<오디세우스의 귀환>
10년의 전쟁과 10년의 방황 끝에 오디세우스가 귀환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입니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아내 페넬로페를 유혹하고 있는 남자들을 보게 됩니다.
20년 동안 남자들의 끝없는 유혹을 받은 페넬로페였지만,
그녀는 병약한 시아버지 라에르테스를 모시고 구혼자들을 물리치며 끝까지 남편을 기다렸지요.
오디세우스는 그녀를 유혹한 남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왕위에 오릅니다.
그렇게 <오디세이>의 이야기는 끝이 나지요.

<나중에 마이클이 제일 먼저 그녀에게 녹음해 준 책이기도 합니다>
2.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Dama su sabachikoi), 안톤 체홉 지음

영화 안에서 오디세이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책이지요.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입니다.
현대 단편 소설의 기틀을 마련한 작가로 꼽히는 체홉.
그의 작품은 짧은 분량 안에 삶의 단편을 생생하게 담아내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걸로 유명해요.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그런 그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드미트리는 휴양지에 놀러왔다가 그곳에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안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서로 배우자가 있는 그들은 비밀스러운 만남을 지속하면서 죄책감도 느끼지만,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걸 깨달으면서, 그동안의 삶에 대한 반성과 함께 가정의 유지와 사랑의 실현 가운데에서 갈등하게 되지요.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그의 단편은 재미있는 것이 많아요.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외에도 저는 <애수>라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아들을 잃은 마부가 그 슬픔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마차를 몰며 밤거리를 헤매다가,
결국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자신의 말과 대화를 나눈다는 이야기예요.
" 건초를 먹니?"
"그래, 그래, 너는 아니... 꼬지마 이오니치는 이젠 없어... 이 세상을 떠나버렸지... 허무하게 떠나버렸다고...
만일 말이다. 너에게 새끼가, 네가 낳은 새끼가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말이다. 그 새끼가 죽었다면 말이다...
얼마나 괴롭겠니..?" 늙은 말이 건초를 먹으며, 이야기를 들으며, 주인의 손에 입김을 내 뿜는다.....
이오나가 아주 열심히 말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애수」 중)
체홉의 소설은 그가 세상을 떠난지 100년이 넘게 지난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공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가 애정어린 시선으로 관찰하고, 깊게 생각하고, 따뜻하게 써내려간 글이 결국 인간 본연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3. 에밀리아 갈로티 (Emilia Galotti), 레싱 지음

영화에서 비중있게 등장한 위의 두 작품에 비해서 살짝 비추고 지나갔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18세기에 쓰여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현대까지 꾸준히 상연되고 있고,
독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분석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5막짜리 연극이고요. 독일의 전제정치를 비판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한 미모의 처녀가 그녀를 차지하려는 영주의 손에 약혼자를 잃고, 정절마저 짓밟힐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아버지의 손을 빌려 목숨을 끊고 만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그리고 그 아버지가 칼을 들고 영주를 찾아가 그의 얼굴에 칼을 내던진다는 파격적인 장면도 들어가 있습니다.
4. 허클베리 핀의 모험 (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마크 트웨인 지음

유명한 작품입니다.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의 후속작 격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죠.
소년 허크가 흑인 노예 짐과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강을 따라 떠나는 모험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방대한 자연에 대한 묘사 및 인물, 사회 비판 및 풍자 면에서 여러모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마크 트웨인의 역작이자, 미국문학에 한 획을 그은 명작이지요.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진 허클베리 핀>
어릴 적 동화책으로 읽었던 <톰 소여의 모험>이 참 재미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축약하지 않은 원본 소설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나이 먹은 후 원본 소설을 보고 가장 충격이었던 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지요;;)
5. 채털리 부인의 사랑 (Lady Chatterley's Lover), 로렌스 지음

<한나의 표정이 포인트입니다-_- 낭독을 마친 마이클에게 한 소리 한다는;;>
자, 자, 80년대 아이들에게 'X마 부인'을 능가하는 야한 여자로 통했던 '채털리 부인'의 등장입니다.
1928년 영국의 작가 로렌스가 쓴 작품이지요.
반신 불수가 된 남편을 헌신적으로 돌보지만, 성욕과 모성 본능을 채우지 못한
채털리 부인 콘스탄스가 다른 남자와의 관계를 통해 삶의 행복을 되찾아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에요.
사실 이 책은 당시 중산층과 하층민의 생활 묘사와 '사랑'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는 소설입니다.
그러나 굉장히 대담한 성 묘사로 인해 외설 시비의 대상이 되었고,
최근까지도 영화로 만들어지며 '문제작' 타이틀을 달 만큼 민감하기로 유명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엔 '재떨이 부인', '채터리 부인' 등으로 불리며
'아무 것도 모르지만 뭔가 아는 척 하려는 아이들'이 '그저 순진한 아이들'을 놀리는 소재로 써먹었더랬죠.
6. 닥터 지바고 (Doktor Zhivago), 파스테르나크 지음

영화로 더 유명한 '의사 지바고'입니다.

<라라의 테마는 지금도 자주 들을 수 있는 명곡이지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혼란스러워진 시대 속에서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려는 지식인의 삶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소련에서 이 작품을 발표하려 했던 저자 파스테르나크는
나라에서 책의 발표를 허락하지 않자, 이탈리아에서 책을 출판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이듬해인 195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지만,
이것이 소련 내에서 문제가 되는 바람에 러시아 작가동맹으로부터 제명 처분을 받게 되죠.
그리고 그는 "러시아를 떠나는 건 죽음과도 같습니다. 엄한 조치를 하지 말아주십시오."라고 탄원하여
국외 추방을 면하는 대신, 노벨 문학상을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파스테르나크는 그후 1년 반 뒤 모스크바 근교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닥터 지바고>하면, 영화 때문인지 눈밭과 쓸쓸한 느낌의 음악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영화 안에서도 주인공 마이클이 쓸쓸해 보이는 장면에서 등장해 더욱 어울렸던 작품이었어요.

<그리고 그들의 이별...>
'슈니츨러는 멍멍멍 짖고 있지만 슈테판 츠바이크는 죽은 개야'
'쉴러에게는 여자가 필요해'
'괴테의 시는 예쁜 틀에 끼워놓은 조그만 그림같아.'
책을 읽어주는 그의 목소리 속에서 세상을 보게 된 그녀.
감옥 안에서도 그녀는 그의 목소리가 있어 답답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편지지 위에 또박또박 써내려간 그녀의 짧은 서평은 귀여우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데가 있지요.
영화는 그들의 결말을 잔인할 정도로 확실하게 보여주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 저는 아직도 마이클이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로 옮겨진 책을 써내려갔던 작가들도 행복할 거란 생각도 했어요.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책을 써내려 갔던 그들은,
마이클 덕분에 책이 전해질 수 있는 곳 바깥에 머물던 한나에게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누군가에게 가장 좋아하는 책을
그 사람에게 가장 달콤할 것 같은 목소리로
읽어주고 싶은 요즘입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책을 읽어 주고 싶으신가요?



